소설리스트

123화 (123/154)

혁명

"오···." 

철컥. 

생전 처음 보는 라이플이 신기한 듯 요모조모를 살피던 코르데가 능숙하게 견착 자세를 취했다. 

"이렇게 잡는 것 맞죠? 생각보다는 훨씬 묵직하지만 편하네요."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런데 당신까지 무장하라는 소리는 안 했는데. 

물론 저 도제가 전쟁 핑계로 공화귀족들 풀어주는 동안 나는 통역사와 함께 라틴어까지 곁들여가며 열심히 무장하라고 선동하고 다니기는 했는데 당신은 보모잖아. 

후방에서 우리 막시밀리앙 2세를 돌봐야지 지금 뭐 하는 겨. 

아니 그것보다 오늘 처음 총 잡아보는 사람 맞아? 

견착 자세가 아무리 봐도 예비군훈련소 막 다녀온 아저씨인데? 

"무슨 생각 하시는지 알아요." 

아니, 모를걸요. 

"그런데 어쩌죠. 사모님께서 무장하라고 하시는데." 

"···부인이 무장하라고 했다고요?" 

"예. 본인도 무장 중이신걸요." 

[맙소사.] 

오, 주여. 

"전장에 나서지는 않을 거라 약속드릴게요." 

척. 

코르데가 능숙하게 소총을 등쳐 맸다. 

"대신에 우리 걱정은 하지 마세요. 아시겠죠?" 

"···예, 알겠습니다." 

아마 우리 몸 하나쯤은 우리가 알아서 지키겠다-라는 거겠지만. 

왜 정신을 차려보면 어디선가 암살부대로 활동하고 있을 것 같지. 

편견이라는 걸 알면서도 만날 때마다 그런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뎅-. 

때마침 저 너머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미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아닌, 벽이나 땅에 부딪히면서 나는 뭉툭한 소리였다. 

그래서 저건 과연 청동 종일까, 아니면 금이나 은 따위로 만들어진 보물일까. 

전자라면 이제부터 녹여서 대포를 만드는데 쓰일 것이고, 후자라면 금괴나 은괴로 녹여져서 전시물자 구매를 위한 대금으로 쓰일 것이다. 

포크나 나이프 같은 식기를 포함하여 철이란 철은 모조리 녹여서 총이나 창을 만드는 데 쓰이고 있고, 요강이며 화장실이며 하여간 분뇨를 모으거나 퍼 나를 수 있는 모든 수단이 총동원되어 화약공장을 돌리고 있다. 

의류산업은 온통 병사들이 입을 군복과 붕대를 만드는데 동원되었고, 아녀자들과 성당의 금은 장신구들은 모조리 녹이거나 팔아치우고 있으며, 마차란 마차는 모조리 전시물자를 실어 나르는 데 쓰이고 있다. 

가구란 가구는 모조리 때려 부숴서 바리케이드를 만드는 데 쓰고, 카펫이나 커튼은 병사들을 위한 천막을 치는 데 재사용하고, 도자기나 그릇은 내다 팔거나 전시물자를 실어 나르는 데 쓰이고 있으며, 사치스러운 술과 식재료들은 보존식품을 만드는데 동원되었다. 

사내대장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전장으로 향하고, 여인들은 거추장스러운 치마를 자르거나 말아 올린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으며, 전장에 나설 수 없는 노인과 환자들은 자그마한 짐수레나마 밀거나 끌고 있으니. 

"장관이네요." 

코르데가 황홀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래, 장관이고 말고. 

지난날 파리는 비교적 수월하게 전쟁을 치른 덕분에 여기까지 할 필요도 그럴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았으나, 작금의 제노바는 달랐다. 

사방이 적이고, 그들 중 만만한 상대는 단 한 곳도 없으며, 믿을 수 있는 우방이 있기야 하지만 프랑스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제노바가 함락된다면 아무 소용 없다. 

고로, 총력전이다. 

감옥에서 풀려난 공화귀족들은 제 죄를 사면받는 대가로 가진 자산을 모조리 이 총력전에 사용하겠노라 서약해야만 했고, 그들의 사병은 신생 제노바 국민군에게 일괄적으로 흡수되었다. 

물론 이 점은 그 밖에 옥에 갇혀있던 크고 작은 죄수들 또한 매한가지. 

남자들이란 남자들은 전시 동원에 필요한 관료나 장인들을 제하면 어린아이에서부터 늙은이까지 모조리 동원했고, 그 빈자리는 여인들이 채우도록 했으며, 또 그걸로도 모자라 로마 재건의 기치 아래 사방에서 몰려든 외국인 의용군들까지 동원했다. 

통일된 제식소총은커녕 통일된 군복조차 없어서 적당히 색깔만 맞추기야 했으나 이리하여 아슬아슬하게 1개 군단을 완편. 

한데 머릿수를 채우고 나니 이번에는 또 전시물자가 부족해져서 아직 신성동맹 함대가 해역을 봉쇄하기 전에 한 푼이라도 더 벌고 단 한 자루라도 더 준비하기 위하여 금은괴나 보석들은 물론이고 대리석 조각상들까지 뜯어다가 마르세유로 퍼 날라야만 했으니. 

이 정도 절박함이라면 21세기 한국인이 보기에도 그럭저럭 총력전이라고 불러줄 법했다. 

[대한민국이란 대체···.] 

그렇지만 사방에 군사 대국들 뿐이라면 남들 다 냉전 끝나고 군축해도 전 국민을 전시근로역이나 예비군으로 갈아넣어야지만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건 「상식」이잖아? 

그야말로 올인. 

이 나라의 가장 고귀한 이들에서부터 가장 비참한 이들까지 누구 한 사람 남김없이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국민국가의 전쟁. 

오히려 제노바가 조금만 더 커다란 나라였다면 여기까지 총동원하지는 못했을 텐데, 이번만큼은 도시국가인 덕택을 톡톡히 봤다. 

일단 도시 하나만 설득하고 총동원의 당위성을 이해시킬 수만 있다면 진짜로 밑도 끝도 없이 밀어붙일 수 있었으니까. 

"저희도 저들을 도와야 할까요?" 

"···저로선 말리고 싶지만, 우선 부인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솔직히 신혼여행 핑계로 전쟁터에 끌려왔으니 무슨 죄야. 

막상 본인은 화를 내기는커녕 부부가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하고 있는 눈치긴 했는데. 

이 정도 담력은 있어야 혁명가의 아내란 말인가. 

정말이지 무시무시하군. 

"다만, 억지로 모범을 보일 필요는 없다고만 전해주십시오. 우리는 어디까지나 외부인이고, 오히려 너무 설치려 든다고 흉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네에. 그렇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코르데가 놀리듯이 키득대며 물러났다. 

마치 아직도 부인을 그렇게 모르냐고 되묻는 듯 보였기에. 

우린 다만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는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더니.] 

이 양반은 갑자기 또 왜 이래. 

닭살 돋게시리. 

쾅-. 

때마침 저 너머에서 포성이 들려왔다. 

아군의 포성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자그마한, 그야말로 지평선 너머에서 울려 퍼지는 포성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야 뻔했기에. 

"시민 동지들이여." 

혁명의 흥분이 가시고 뒤늦게 두려움에 사로잡힌 군중을 돌아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단, 프랑스어가 아닌 라틴어로. 

잘하지도 못하는 이탈리아어로 어설프게 연설하느니 집주인의 라틴어 실력을 믿어보는 게 낫겠지. 

"지금껏 우리는 전쟁이 한낱 농담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우리의 연설을 온전히 알아듣는 이는 드물었다. 

대부분은 의아해했고, 누군가는 불편해했으며, 열성 통일론자로 보이는 일부만이 감격해했다. 

다만-무슨 의미인지 정도는 어렴풋이나마 전달되는 듯했다. 

이곳 제노바에서 쓰이는 리구리아어를 포함한 모든 로망스어군의 뿌리니 당연한 소리지만. 

"상고적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승전에 기여한 뱃사공들이 귀족들에게 제 몫을 주장함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로마의 민주주의는 전쟁에서 승리한 시민군이 귀족들에게 제 몫을 주장함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 에우로파의 봉건주의는 군사 귀족들이 로마 시민들의 몫을 도둑질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쟁이 한낱 농담거리로 전락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천천히 좌중을 돌아보며 언성을 드높였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로마적의 전쟁은 분명 패망을 전제로 한 도박이었습니다. 당장 카르타고가 그렇게 패망하여 사라졌으며, 갈리아가 그렇게 로마의 일부로 복속하였고, 다시 게르만인들에 의하여 로마가 패망하여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저 게르만인들이 승리한 바로 그 순간. 

"전쟁은 한낱 농담거리가 되었고, 조국을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모든 사회구성원이 전쟁에 참여하고 다시 조국을 위한 전쟁에 기여한 바를 근거로 제 몫을 주장하는 일련의 행위 또한 비웃음거리로 전락했습니다." 

여기까지 말했으면 다들 내 말의 의미를 이해했겠지. 

"도대체 왜 전쟁이 농담거리가 되고 말았습니까?" 

설령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이해한 이들이 점차 분위기를 끌어올려 줄 테니 문제없고. 

"제아무리 사소한 전쟁이라도 사람이 죽거나 다치기 마련입니다. 혹여 지기라도 하면 난데없는 국경선이 고향 땅을 조각낼지도 모르고, 막대한 배상금 탓에 증세에 시달려야만 하며, 자칫 생전 써보지도 않은 타국의 언어를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전쟁이란 우리 모두에게 언제나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조국을 위하여 그 두려운 전쟁에 나서는 애국자들은 언제나 숭고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이 두려운 전쟁을 타인에게 떠넘기고 더는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민 동지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우리의 애국자들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전쟁을 업신여기고, 그 값을 치르는 데 인색해졌기에. 

"조국을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두려움에 맞서던 애국자들이 주군을 위하여, 제 한 사람의 사리사욕을 위하여 타인의 죽음을 악용하는 기사들로 대체되고야 말았기에!" 

쿵. 

있는 힘껏 발을 굴렀다. 

"우리는 전쟁이, 시민군이, 민주주의가 한낱 웃음거리로 전락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대신 농담 같은 전쟁을 치러주고, 보호라는 미명 아래 우리의 몫을 도둑질하는 폭거를 로마가 패망한 이래로 너무나도 오랜 시간 동안 묵과해왔습니다!" 

"옳소!" 

누군가가 라틴어로 맞장구를 쳐줬다. 

어깨에 완장처럼 두른 붉은 붕대. 

그리고 붉게 물든 눈시울. 

그가, 그들이 어떤 성격의 인물인지 한눈에 알게 하는 상징들이었다. 

"전쟁이란 모름지기 두려운 것이어야만 합니다." 

하여, 더욱 언성을 드높였다. 

"전쟁이란 국운을 건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어야만 합니다! 누구 한 사람 빠짐없이 참여하고 그들의 몫을 당당히 주장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전쟁이 두려워질수록 그만큼 민중이 더 많은 권리를 취할 수 있고, 민주주의 또한 굳건해지며, 혁명의 승리 또한 앞당겨지는 까닭입니다!" 

"""시민군 만세! 민주주의 만세! 승리 만만세!""" 

"저는 총력전을 원합니다! 누구 한 사람 빠짐없이, 미련 한 줌 남기지 않고서 모든 것을 쏟아내는 총력전을 원합니다! 새로운 로마 공화국의 시민동지들이여, 여러분께서도 총력전을 원하십니까?!" 

"""예!!!""" 

그렇다면. 

"먼저 우리의 총력전에 휘말려 든 저 비참한 광대들을 동정해줍시다." 

척. 

조금 전 대포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삿대질을 날렸다. 

"우리는 저 광대들을 역사라는 흙더미로 파묻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무덤 위에서 잠시 잊혔던 시민군의 기치를 다시 일으킬 것입니다! 저들이 우리로부터 도둑질해갔던 것이라면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되찾을 것입니다!" 

"""Ave, Robespierre(로베스피에르 만세)!""" 

사방에서 절규와도 같은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근래에는 보기 드문 라틴어 연호였다. 

분명 대다수는 연설의 내용에 감격했다기보다는 현장의 분위기에 휘말려 든 거였겠지. 

콰콰쾅-! 

저 너머에서 또다시 포성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만세 소리에 파묻혀 더는 누구의 귀에도 닿지 않았다. 

*** 

신성동맹군 막사. 

"우선 제노바는 포위하되, 공격하지는 않겠네." 

신성동맹군 총사령관 작센공 프리드리히 요시아스가 단언했다. 

"따로 용병을 구했다는 소문도 없고, 본대야 한 줌도 안 될 텐데 무모한 공성전으로 물자와 시간만 낭비할 필요는 없겠지."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솔직히 제노바야 이대로 말려 죽이기만 해도 충분할 텐데요 뭘." 

"스페인도 당분간은 신대륙 반란이 더 급할 테니 지중해까지 달려오지는 못할 겁니다. 해군에게 영광을 양보하시죠." 

참모들이 짠 듯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야 그들의 적은 처음부터 프랑스군이었지 베네치아와 패권을 겨루던 전성기는 온데간데없이 약소국으로 전락한 제노바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당장 앙드레 마세나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전방위에서 피에몬테를 침공해 들어오고 있는 와중에 제노바를 함락시킬 병력을 따로 차출할 여유도 없겠다, 괜히 저쪽에서 작정하고 시가전을 강요해오기 시작하면 골치 아프겠다. 

크리오요 반란과 나폴리 왕국의 이반으로 스페인 해군이 모처럼 지중해에서 힘을 못 쓰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영국과 함께 제노바를 해상봉쇄로 말려 죽이고 육군은 오롯이 프랑스군의 침공에 맞서는 데 투입하기로 대전략을 짠 것이다. 

"그래서, 사보이는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은가?" 

요시아스가 사르데냐의 연락관을 돌아보았다. 

"길면 보름, 어쩌면 그보다 짧을지도 모릅니다." 

"고작 한 달도 버티지 못할 거라는 말인가?" 

"전하, 이번 침공에 프랑스군이 동원한 병력만 3개 군단입니다. 고작해야 1달이 아니라, 자그마치 1달이라고 정정해주십시오." 

3개 군단. 

프랑스군이 1개 군단을 보통 2만 명에서 3만 명 사이로 편제한다는 걸 고려하면 약 6만에서 9만 명에 달하는 대군. 

"···실례했네." 

결국 요시아스는 새삼스레 이 용감한 사르데냐인에게 사죄를 건네는 수밖에 없었다. 

현재 북이탈리아에 전개된 그들 신성동맹군을 모두 합해야 8만 명을 넘길 텐데 저들은 전 병력이 아닌 1개 방면군만 해도 저 정도라니. 

아직 프랑스의 동원 태세가 마무리되지 않았음을 떠올려보면 새삼 등골이 오싹해질 수밖에는 없었다. 

"그럼 이번에는 반대로 그대들 사르데냐군의 의지를 묻겠네. 우리가 이대로 사보이로 달려가 주길 바라는가? 아니면 적들을 조금 더 끌어들인 다음 격퇴하기를 원하는가. 왕국군을 대표하여 허심탄회하게 답해주게." 

"마음 같아서는 물론 지금 당장 사보이로 달려와 주셨으면 합니다만···." 

연락관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서야 승산이 없다는 건 저희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볼 테니 피에몬테까지만 나와주십시오." 

"고맙네." 

진심이었다. 

아무렴 제아무리 승산이 없었다고 하나 왕가의 뿌리를 적들의 군홧발 아래 짓밟히도록 둔다는 게 결코 쉬운 판단은 아니었을 테니까. 

"제군들." 

호흡을 가다듬은 요시아스가 참모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에겐 알프스가 있네." 

한니발 이래로 단 한 번도 뚫려본 적 없는 천혜의 요새가. 

곧 그들 신성동맹이 믿고 있는 가장 큰 자산이자 유일무이한 승기였다. 

"물론 우리의 적들은 비겁하고 한심하다고 할지도 모르지. 요새선에 틀어박혀서 옴짝달싹도 하지 않는다고 말이야. 하지만 누가 알프스를 넘으려 들라고 협박했었나?" 

"""아닙니다!""" 

"그래, 먼저 침공해온 건 저들일세. 우리는 저 야만스러운 폭도들에 맞서 교회와 주군을 지키려 하는 의로운 기사들이고." 

요시아스의 연설에 참모들은 누구나 자긍심을 담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실로 그러했으니까. 

그들의 곁에는 카이저가, 교황 성하가, 국왕 폐하가, 도제가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한데 저 프랑스인들이 제아무리 강성하다고 한들 스페인이 떠난 지중해에서 무슨 수로 알프스를 넘을 텐가? 

"두려워할 필요 없네." 

하여, 요시아스가 단언했다. 

"자고로 최후에는 언제나 정의가 승리하는 법. 전지전능하신 주님과 자비로우신 성모의 은총 아래-." 

벌컥. 

"급보입니다! 제노바군이 포위를 뚫고 토스카나로 진공 중! 조속히 지원 바람!" 

도중에 느닷없이 전령이 뛰어 들어오지만 않았더라면 그도 멋들어진 개전사를 끝마칠 수 있었으련만. 

그야말로 뜻밖이라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소식에 요시아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갑자기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제노바 시민이 9만명 남짓이니 모조리 쥐어짰다고 해봐야 9천 명 정도일 거 아닌가. 숫자만 많은 폭도들에게 그리 쉽게 길을 내줬다고?" 

"아닙니다! 1, 1만 6천 명입니다!" 

1만 6천. 

편제에 사치스러운 프랑스군을 기준으로 잡아도 1개 군단을 채우고도 남을 대군. 

"···뭐?" 

아군의 배후에 1개 군단이 자유롭게 풀려났다. 

알프스를 자연 방벽으로 삼아 요새전을 펼쳐도 모자랄 판에. 

오스만 튀르크와 수차례 겨루며 생사의 고비를 넘어온 합스부르크의 백전노장은 더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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