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르데냐령 피에몬테.
"···하여간 성가시게 구는구만."
퉷.
잘근잘근 물어뜯은 시가를 뱉어내며 마세나가 투덜거렸다.
치사하게 머릿수도 많은 놈들이 참호전이라니.
그의 독재관이 제아무리 날고 기는 선동꾼이라지만 그 조막만 한 제노바로 8만에 육박하는 신성동맹군 한복판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어떻게든 마세나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저 알프스산맥과 해안가 사이 실낱같은 평지를 가로막은 알프스 방어선을 뚫고 니스를 함락시켜야 본격적인 이탈리아 혁명전쟁을 시작할 수 있을 텐데-.
"보고드립니다! 사보이아에서 적 유격대가 아군 보급대를-."
"그라스 방면 부대들의 탄약이 고갈되었습니다. 시가지는 함락시켰으나, 이래서야 니스까지는···."
"몽블랑산 근방에서 적 별동대 활동이 확인되었습니다. 예비대를 투입할까요?"
"내륙은 글렀습니다. 참호로 꽉꽉 채워서 꼼짝도 안 합니다. 병사들의 피해도 심각하고요."
"이대로는 아군이 먼저 쓰러질 겁니다. 이만 공세를 중단하고 휴식을-."
변함없이 들려오는 소식들은 온통 하나같이 지루하고 답답한 이야기들 뿐.
너흰 거시기도 없냐, 벽 뒤에 숨어서 느그끼리만 재미 보기 있냐 등 도발적인 언사로 적들을 끌어내거나-기사의 명예 타령하는 놈들에겐 가끔 먹혔다- 그냥 뒤무리에에게 빌린 포병으로 방어선째로 싹 밀어버리거나 하면서 어떻게든 전선을 뒤로 걷어내고 있지만 이래서야 너무 늦었다.
당장 그의 군단이 패하거나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건 아니었으나 적들은 그야말로 그들이 가진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지연전에만 매달리고 있었으니.
그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동물적인 통찰력과 경보병대를 이용한 의표 찌르기도 일단 상대가 움직여야 살을 날리는 거지, 지금처럼 바닥에 넙죽 엎드린 채 꿈쩍도 하지 않고 있으면 달리 방도가 없었다.
차라리 뒤무리에처럼 우직하게 밀어붙이거나 나폴레옹처럼 상식 바깥의 기동력을 보여주는 천재가 이런 치졸하기까지 한 지연전에 더 제격이리라.
'···합스부르크 놈들이 달라졌다.'
이는 지난날의 합스부르크였다면, 아니 비단 그들만이 아니라 유럽의 봉건귀족들이라면 절대로 취하지 않았을 대전략이었다.
설령 지연전을 치르더라도 그건 애초에 병력 차이가 말도 안 되어 지원군을 기다려야 하거나 다른 전선에서의 공세를 위한 선택과 집중이었지.
지금처럼 쌍방의 병력이 대등함에도 한때 저들이 비겁하다고 흉보았던 유격전으로만 반격하면서 요새선에 틀어박혀 꿈쩍도 하지 않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정말로 종전까지 이렇게 시간만 끌 작정인지, 아니면 달리 노림수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끄는 건지는 몰라도 이는 그들 혁명군과 잇달아 부딪히면서 저들도 기사의 명예나 전쟁의 미학 같은 상대적으로 불필요한 요소들을 조금씩 포기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거 안 좋은데."
이러면 저들도 조만간 국민개병제로 수십만 대군씩 동원하여 덤벼들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물론 근본적인 인구 차이가 있으니 한계는 명확하겠지만 대신에 저들은 떼거리로 덤벼들고 있고, 프랑스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혼자서 전 유럽과 맞서야만 할 테니.
혹시 지금 적들이 지연전을 펼치고 있는 것도 후방에서 국민개병제를 시행할 준비 중이거나 이미 도입해서 반격을 위한 대군을 쥐어짜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불안한 예감이 마세나의 뇌리를 스치던 찰나.
벌컥.
"대장!"
그의 부관이 허겁지겁 막사로 뛰어 들어오며 마세나의 불길한 상상을 끊어냈다.
"그래, 그래. 또 뭐냐. 병사 파업 빼고 다 터져봤으니 이젠 전선에서 아그들이 못 해 먹겠다고 들고일어났나 보지?"
"몽 따보흐 방면의 적들이 후퇴하고 있습니다!"
"뭐? 걔들이 왜 후퇴해?"
뜻밖의 소식에 마세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함정, 이 두 글자였다.
지금껏 쌍방의 병력이 대등한 상황에서 제노바 해방을 위해 마음이 급했던 프랑스군만 일방적으로 공세를 퍼붓고 있었는데 적들이 먼저 후퇴할 이유가 하등 없었으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마세나 군단을 결전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이었을 텐데-.
"···가만."
몽 따보흐(Mont Thabor)라면 사보이와 피에몬테 사이에 있는 산봉우리의 이름이다.
그나마 그 근방은 알프스산맥치고는 산세가 덜 험한 편이라 산길이 한 갈래 나 있긴 하지만, 상식적으로 대군을 끌어들이기에는 너무 매력 없는 함정이다.
제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제정신이 박힌 지휘관이라면 저 외갈래 길에 대군을 밀어 넣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함정이 아니라 정말로 뚫렸다는 가정을 해보면-.
"저것들 이제 보니 좀 헐거워진 거 같은데."
"네?"
"딱 저 참호까지야 아무튼, 그 너머 구릉에 양 떼가 다시 돌아다니고 있잖아. 그러면 저기 있던 예비대가 줄었거나 자리를 비웠다는 소리인데···."
일단 줄었다, 는 가능성은 배제하는 게 옳았다.
당장 일방적인 공세를 퍼붓던 마세나군도 아직 예비대가 바닥나진 않았는데 지금껏 진지를 지키고 있던 저들이 벌써 유의미한 수준으로 예비대를 소모했다는 건 행복회로를 넘어선 현실왜곡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적 예비대가 자리를 비웠다 뿐.
다시 말해 몽 따보흐 방면의 적 수비대는 적절한 시기에 지원을 나왔어야 할 예비대의 부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아군에 길을 내주었다는 추론.
"야."
"듣고 있습니다, 대장."
"경보병 사단을 편성하려면 얼마나 걸리겠냐?"
"···지금 당장이요?"
"뭐, 사단이 어려우면 여단도 되고."
적들도 지금쯤 몽 따보흐가 뚫렸다는 소리를 들었을 테니 한시가 아쉽다.
만일 그의 추측대로 이게 함정이 아니라 정말로 예비대가 후방-가령 제노바-로 빠져야만 할 이유가 생긴 거라면 적들은 어떻게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허세를 부리려 들 테니까.
늦어도 내일이나 모래면 어디선가 급조된 수비대라도 몽 따보흐로 달려갈 거고, 그러면 또다시 산길이 막힐 테니 이 지루한 소모전만 앞으로도 몇 달씩 더 계속해야 할 거다.
물론 반대로 이게 정말로 적들의 함정이라면 이제부터 몽 따보흐로 달려갈 아까운 경보병들만 잃게 되겠지만-.
"지휘는 내가 한다."
마세나에겐 확신이 있었다.
적들이 해상봉쇄 탓에 마르세유-제노바 사이의 연락이 끊겼음을 이용해 아무 일 없는 듯이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제노바가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되면서 적들이 어쩔 수 없이 예비대를 빼돌릴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자신이.
왜냐하면 그의 독재관은 민중의 여신에게 총애받는 기린아였으니까.
그리하여 앙드레 마세나와 경보병대는 알프스를 넘었다.
***
구 토스카나 공국령 피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격의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농부 아저씨.
라틴어라면 모를까 이탈리아어는 영 젬병인 우리에게 열심히 말해봐야 못 알아들을 걸 눈치챈 건지, 그냥 감격이 복 받아친 건지는 모르겠지만 콧수염이 콧물로 범벅이 될 만큼 기뻐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역시 민심 장악에는 토지개혁이 최고라니까.
둔전이라는 단서가 붙기야 했지만.
"이 은혜를 도대체 어찌 갚아야 할지···!"
"그 토지는 처음부터 민중의 것이었습니다."
덧붙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거 저번에도 그랬듯이 라틴어.
당연하게도 농부 아저씨는 못 알아듣는 눈치였지만, 이번에도 아예 의미 자체가 전달되지 않는 것 같진 않았다.
대강 뉘앙스는 알겠는데 정확히 설명하라고 하면 아리까리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우린 다만 저 부당한 침략자, 강도무리가 도둑질해간 토지를 빼앗아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드렸을 뿐이니, 감사를 받을만한 일도 아닙니다. 부자 되십시오, 동지."
"아아, 아···! 감사합니다. 꼭 부자 되겠습니다!"
당장 지금만 해도 그랬다.
우리가 한 말 중 태반은 못 알아들었지만, 아무튼 부자라는 단어는 확실하게 캐치했으니 저런 대답이 나온 걸 테니까.
이런 거 보면 확실히 이탈리아어가 라틴어의 직계 후손이 맞기는 한 모양이야.
그런데.
[또 뭔가?]
댁은 어떻게 이렇게 라틴어를 잘하세요?
저번부터 보니까 무슨 고대 로마인이라고 해도 믿겠던데.
[···내가 재학생 대표로 국왕 앞에서 라틴어 축사를 읽었다고 안 했던가?]
어, 그랬나?
[덧붙여 그놈이 루이 오귀스트였다네.]
···그것 참 기묘한 인연이군.
아무튼 국왕이 보는 앞에서 라틴어 축사를 읽었을 정도면 확실히 원어민처럼 할만했네.
대학 졸업한 게 몇 년 전인데 아직도 이렇게 능숙하게 한다는 건 솔직히 이해가 안 가지만.
보통 졸업하면 1달 안에 대학에서 뭐 배웠는지 다 까먹는 게 상식? 아닌가!
[도대체 3세기 사이 대학가가 얼마나 영락해야 그런 게 상식이 되는 거지···.]
알면 다쳐.
"자비로우신 집정관께 성모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여하튼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후다닥 도망치는 농부 아저씨나 얼굴에 웃음꽃이 핀 마을 사람들을 보니 확실히 일부러 여기까지 나온 보람은 있었던 모양이었다.
솔직히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렇게 발로 뛰어다닐 게 아니라 전권대사답게 얌전히 제노바에서 교섭하거나 손님을 기다리거나 할 생각이었는데···.
···나라를 뒤집어엎는 데에 가장 중요한 토지개혁을 무슨 식민지 토지개혁처럼 굴리겠다는데 도대체 뭘 믿고 얌전히 기다려.
한번 따끔하게 경고하기야 했지만 또 보나 마나 신경 쓰지 않고 있으면 방식만 조금 달리해서 슬쩍 다시 식민지 사업 추진하려 들 것 같길래 그 길로 현장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딱 예상한 그대로였고.
심심해서 죽을 것 같은 눈치였던 장 란과 함께 우리가 여기까지 달려오지 않았으면 저 농부들은 해방을 자축할 게 아니라 이름만 바뀐 지주 밑에서 한탄과 원망을 쏟아내고 있었을 거다.
아니 무슨 통일전쟁 하겠다는 놈들이 심심하면 동포들을 식민지처럼 굴리려고 드냐.
우선 이 둔전제로 한 사람이라도 여유 병력을 늘릴 궁리부터 해야지, 전쟁 끝날 때까지 최후의 한 명까지 태세로 가려고?
[그야 딱 제노바라는 도시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토스카나까지만 정복해도 단숨에 영토를 3배, 4배로 불리는 격인데. 이것만 해도 뭐 아쉬울 게 있겠나.]
오, 그러니까 여기서 시마이 치시겠다?
그렇게는 안 되지.
이 도제님이 자꾸 혁명동아리들을 얕잡아보시네?
걔네들이 아직 경험이 모자라고 실무능력이 모자라서 얼치기인 거지 뇌가 없는 게 아닌데 이렇게 벌써 「난 사실 처음부터 통일전쟁이 싫었어」 태세로 나오시면 쓰나.
이러다가 진짜로 제노바 너머에서 원망이란 원망은 다 들으면서 통일운동까지 실패로 돌아가면 도시 공화국은 지켜도 공화귀족 여러분 모가지가 성치는 못할 텐데.
아무래도 내가 너무 곱게 말로 해줬더니 아직 기강이 덜 잡힌 모양이다.
제노바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우리 이탈리아의 혁명 동아리원들 선동해서 아주 깽판을 쳐줘야지.
"동지."
옆에서 보초를 서던 장 란이 말을 걸어왔다.
아직 붕대도 풀기 전인데 이 친구는 뭐 몇 시간씩 보초를 서도 힘들어하는 티도 안 내네.
"듣고 있네. 그래, 무슨 일인가?"
"아군이 적과 교전 중인 모양입니다."
타타탕!
때마침 내 귀에도 저 너머에서 미약하게 들려오는 총성이 잡혔다.
이걸 듣다니 진짜 미래에서 온 전쟁 기계인가.
"그래, 내 귀에도 잘 들리는군."
"···어떻게 할까요?"
교전할 것인가, 이대로 물러날 것인가.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저기에 끼어들 이유가 없다.
우린 어디까지나 우방국의 토지개혁이 파리의 뜻대로 잘 집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멀리 시찰을 나왔을 뿐이고, 지금 우리 곁에는 마세나가 붙여준 한 줌의 호위대뿐.
지난날 장 란이 외국인 의용군을 지휘했다지만 본디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어디까지나 국방무관이지, 외인부대 지휘관이 아니니 지휘권을 주장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자네, 게릴라전에 대해 알고 있나?"
"게릴라?"
장 란이 눈살을 찌푸렸다.
"···작은(illa) 전쟁(Guerra)입니까? 무슨 어감인지야 알겠습니다만, 그걸 보통 붙여서 쓰던가요?"
어, 게릴라라는 말이 아직 없었나?
[난 오히려 저 친구가 스페인어를 알고 있었다는 게 더 신기한데.]
에헤이, 무슨 사람을 고릴라 취급하는 건 적당히 하시고요.
하여튼 간에.
"얼마 전 동무가 지휘하던 의용군 중에는 분명히 이곳 토스카나 출신들도 있었지. 안 그런가?"
"예,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그럼 그들에게 오늘 우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토지문서를 불사르고 농민들에게 모든 것을 돌려주도록 부추길 수 있겠나?"
장 란은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어렵지야 않을 겁니다."
왜, 같은 건 물어보지도 않았다.
내 의도를 제멋대로 곡해해서 받아들인 건지, 아니면 내가 알아서 설명해줄 거라고 여긴 건지야 아직 잘 모르겠지만-.
"잘됐군."
그거야 친절하게 설명해주면 그만인 일이지.
안 그래도 평소 말수가 적은 친구라 잘 이해한 줄 알았더니 오해였더라-하는 식이면 진짜 나중에 가거나 알게 될 테니 곤란하다.
뭐, 이번 건 본인이 좋아하는 전쟁 이야기니 그리 말을 아끼진 않을 테지만.
"그럼 앞으로는 이탈리아계 의용병들에게는 저 혁명군의 지시를 따를 게 아니라 각자 고향으로 이동해서 토지를 나눠주며 별도 행동하라고 전하게."
"그래도 동맹군 아닙니까?"
"물론 동맹군이지. 하지만, 자네도 오늘 보았잖은가? 난 저 공화귀족들을 믿을 수 없네. 말로는 전향했다고 하지만 보여준 행실이 이 모양인데 대체 어찌 믿으란 말인가?"
현실적으로 저 공화귀족들-그러니까 기존 제노바 공화국을 지탱하던 엘리트층을 배제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신용할 수 없다.
당장 오늘 보여준 행동이 단순히 제 탐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일부러 제노바 너머에서 혁명이라는 기치에 반하도록 부추기기 위한 사보타주일 가능성은 진정 없는가?
무작정 적을 근시안적이다, 탐욕적이라고 얕잡아보는 것이야말로 진정 위험한 판단이다.
저들은 결코 멍청이가 아니다.
앞으로도 저 공화귀족들은 통일운동에 반하여 그들의 모형 정원을 지키기 위하여 크고 작은 사보타주를 감행할 것이고, 이를 막을 유일한 방법은 판을 키우는 것.
다시 말하여 더욱 많은 민중의 지지를 끌어모으는 것이다.
"적들을 민중의 바다에 익사시켜야 하네."
봉건군주가 되었건, 교회가 되었건, 공화귀족이 되었건 상관없다.
모조리 인민의 바다에 익사시켜야 한다.
한 놈도 남김없이.
"그러니 동무가 저들을 조직화 시켜주게. 통일운동에 뛰어들 계몽주의 운동가 정도면 나름 이것저것 배운 지식인이나 기술자일 테니 이래저래 쓸모가 많을 거야. 당분간은 전투에 뛰어들게 아니라 이 지식과 기술들로 민중을 섬기도록 만들게. 가령 무상 치료를 베푼다던가 말이야."
"···그럼 막상 전쟁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내가 언제 봉사만 하라고 했나? 우선 민중의 마음을 얻어야 숫자를 모으고 해방구를 차차 늘릴 것 아닌가."
그제야 장 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무뚝뚝하고 표현에 인색한 친구였다.
"절대로 민중들에게 먼저 총을 겨누거나 포악하게 굴지 말라고 전해두겠습니다."
그러나, 절대 멍청하지는 않았다.
"정면 대결을 피하고 보급선 타격과 요인암살 등의 후방활동에 집중할 것.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훌륭하네."
짝짝짝.
가볍게 손뼉을 치며 그의 통찰력을 치하했다.
"잊지 말게. 민중은 바다일세. 우리는 그 바다에서 헤엄쳐야 할 물고기고."
"명심하겠습니다, 동지."
척.
절도 있는 군례.
언제부터인가 총성은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펄럭-.
때마침 이름 모를 독수리가 마을 광장에 내걸린 깃대 위로 날아들었다.
아퀼라(Aquila)가 이 땅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