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154)

평범한 이들의 전쟁

교외에 있는 무명용사 묘역. 

얼마 전 우리 부부가 함께 조성에 기여했던, 그 평생 잊히지 않을 신혼여행지에서. 

"이 에우로파의 시민 동지들에게 여쭙고 싶습니다." 

요 몇 주 사이 장 란과 마세나에게 벼락치기로 전수받은 남부식 방언으로 더듬더듬 연설에 나섰다. 

언제까지고 청중 앞에서 지식인들이나 알아들을 라틴어로만 연설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물론 진짜 이탈리아어에 비하면 이래저래 손색이 있을 테고, 억양도 심하겠지만-. 

그거야 평소보다 느리게, 그리고 발음 하나하나에 유의해가며 말하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어차피 내가 혓바닥 굴리는 거 아니니까. 

[···이봐.] 

어허. 

이미 다 동의하셨으면서 이제 와 다른 소리 하진 맙시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하여 싸우고 계십니까?" 

발음이 정확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객석에서 대기 중인 마세나와 눈을 마주쳤다. 

척. 

유쾌하게 엄지를 들어 올려 보이는 마세나는 당장이라도 폭소를 터트릴 듯 붉으락푸르락하고 있었다. 

···흠, 역시나 진짜 남부인에겐 영 어색하게 들리는 건가. 

그거야 어쩔 수 없이 감수하는 수밖에. 

"목숨을 걸어야 할 이유는 발견하셨습니까?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는 다 하셨는지요. 혹시 누군가의 강요로, 억지로 그 끔찍한 전장에 끌려 나오시진 않으셨습니까." 

천천히 무명용사들의 묘소를 돌아보았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교외에서 짐승들에게 뜯어먹히며 백골이 되더라도 아무런 후회 없으시겠습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다만 나지막한 탄식과 성호를 긋는 이들의 주기도문만 들려올 뿐. 

"아마 그런 초인은 이 세상에 얼마 되지 않을 겁니다." 

아예 없지는 않을 거다. 

혁명가라는 인종 중에선 드물게나마 이에 부합하는 이들이 존재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엘레오노르가 내게, 우리에게 꾸짖었듯이 모두가 그럴 수는 없다. 

그리고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전쟁에 나서는 이들은 언제나 그 평범한 절대다수다. 

단지 그들조차 죽음을 각오하게 할 동기가-명분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최후에는 후회했겠지요. 두려움에 떨면서 부모님과 고향의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전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그들을 전장에 몰아세운 이들을 욕보이고 저주했을 겁니다." 

그건 국왕이나 귀족이 될 수도 있고, 우리 같은 혁명가들일 수도 있으며, 그도 아니면 빚쟁이나 직업소개꾼, 혹은 철없던 시절의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명예로운 기사님들은 이를 두고 겁쟁이라고, 소인배라고 흉보겠지. 

하지만 정말로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도 않으며, 용기 있게 적과 싸우다가 죽을 수 있는 이들이 특별한 거지 흉본다고 그들이 못난 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린 누구나 평범한 사람이니까." 

천천히 청중들을 돌아보았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조차 수치스레 여겨지던 기사들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지금 우린 평범한 사람들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때로는 부조리한 이유로 타인을 원망하며, 불명예스럽더라도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 내일을 맞이하고 싶어하는-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전쟁." 

그렇다면. 

"우리들의 새로운 전쟁을 정의하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가령 기사들의 전쟁을 정의하는 건 명예였다. 

전장에 나서는 이들은 누구나 명예로워야만 했다. 

마치 연극 속에 등장하는 영웅들처럼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사악한 적을 살해하는 데에 있어서 주저가 있어서도 안 되고, 필요 이상으로 승리를 갈망해서도 안 되었다. 

누가 승리할 것인가야 천상에 계신 전지전능한 조물주께서 어련히 정해주실 일이니까. 

전장에 나선 기사들은 다만 명예롭게, 최선을 다하여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낸 다음 신께서 그들에게 승리를 허락하기를 겸허하게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우리는 저들처럼 명예롭지 않아도 됩니다." 

그야 기사가 아니니까.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수치스러워하며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겁쟁이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보다 두려운 무언가를 막기 위하여 당당히 적과 맞설 수 있기에 진정 위대한 것입니다." 

가령 자유를 잃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조국을, 겨레를, 소중한 이를 잃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최선을 선택하기 위함이 아닌 최악을 피하기 위한 투쟁. 

고로.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전쟁을 정의하는 가치는 단언컨대 연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천천히 무릎 꿇으며 흙더미를 쓰다듬었다. 

얼마 전 비가 내려서일까. 

흙더미는 또다시 무명용사들의 시신에서 흘러나온 진물로 끈적하게 변해있었다. 

"기사들은 날 때부터 전쟁만을 생각하고 또한 준비해온 이들입니다. 오로지 전쟁을 위하여 태어난 이들이 전쟁에 나서서 그들이 믿는 가치를 위하여 죽는다고 해봐야 누구도 그를 안타까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차라리 얼마나 명예로운 죽음이었는가를 평가한다면 모를까. 

"그렇지만 우리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누구도 전쟁을 위하여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끔찍한 재난이 닥쳐오기 전까진 누구도 전쟁을 생각하거나 준비해온 적 없습니다. 이 장병들은 누구나 휘말려 든 피해자고, 그럼에도 공포에 맞서며 조국을 위하여, 우리 모두의 자유를 위하여 싸우고자 나선 위대한 투사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이 평범한 이웃사촌들이 얼마나 인간다웠는지를 추억하며 이들의 안타까운 최후를 함께 연민합시다." 

미화가 아니다. 

이들을 위대한 영웅으로서 기억하기 시작하면 궁극적으로는 개개인의 죽음 그 자체를 긍정하게 된다. 

고로, 연민이다. 

그들 또한 평범한 인간이었음을 잊지 않기 위하여. 

누군가가 믿는 거룩한 대의를 위하여 두려움 없이 나선 투사가 아닌 분위기에 휘말리고 다시 역사라는 흐름에 휘말려 든 피해자로서. 

마님이 지적했듯이 이들 모두가 동지는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만 했다. 

"저는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이들을 부추기고 휘말려 들게 한 책임자로서 그 죄를 회개합니다." 

다들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야 마님에게 지적당하기 전까지는 우리 모두 그런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었을테니까 당연하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 전장에 나섰음을 후회하며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원망하였을 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운 나쁘게 휘말려 들어 목숨을 잃게 된 모든 피해자의 저주를 달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저를, 우리가 믿었던 이상을, 보편적 다수를 위한 보다 나은 내일을 포기하지 않았던 모든 동지들에게 경외를 보내겠습니다." 

도제나 귀족들에 관한 이야기는 일부러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그걸 언급해서야 그들을 공격하기 위하여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여겨질 테니까.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죽어간 무명용사들만을 언급하는 게 정치적으로도 정답이었고, 무엇보다 예의였다. 

"앞으로도 저는, 우리는 그 위대한 동지들이 믿었던 내일을 위하여 주저 없이 싸워나갈 것입니다. 그들의 기대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언젠가 이상이라는 산봉우리에 올라 그 정상에서 당당히 승리를 부르짖으며 먼저 떠난 이들이 천상에서 내가 이것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노라 자랑스레 말할 수 있도록 자정의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누군가는 휘말려 들게 되겠지요. 우리가 말하는 내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른 누군가의 강요로, 혹은 우리의 강요로 휘말려 든 피해자들 또한 끊임없이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는 성대한 추모를 받으며 대리석 관에 묻히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가족들의 애도를 받으며 묻힐 것이며, 누군가는 짐승들이 파먹는 백골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곳에 묻힌 이들처럼. 

"그러니 산자로서 우리 함께 먼저 간 이들을 연민합시다." 

고작 나 혼자서 추억하고 연민하기엔 잊힌 사자들이 너무도 가엾으니까. 

척. 

때마침 마세나의 수신호에 연설을 듣고 있던 공병들이 하나둘 장비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 신성동맹이 급히 달아나느라 두고 간 공병 장비들이었다. 

두고두고 재사용할 수 있는 중장비들도 있지만 일부는 소모품이고, 고작 공동묘지 하나 조성하는 데 쓰기엔 아깝다고 불평하는 보급관들도 적지는 않았으나-. 

"우리는 누구나 로마의 자손이고, 그리스도의 피조물이니까." 

조금도 아깝지 않다. 

아니, 않아야만 한다. 

이보다 우리의 혁명이 누구를 위한-무엇을 위한 대업인지 세상에 보여줄 기념비도 또 없을 테니까. 

"그럼 시작합시다." 

잔소리는 그거면 족했다. 

이날, 마세나가 이끄는 프랑스군 공병대는 나를 포함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교외의 무명용사 묘소를 통째로 갈아엎기 시작했다. 

이미 한번 파묻힌 이들을 도로 파내는 것도 보통 수고가 아니었고, 혹시나 시신이 훼손되지는 않을까 살피느라 평소의 몇 배가 되는 시간이 흘렀지만 다들 개의치 않았다. 

이번 이탈리아 원정 와중에 죽어갈 프랑스군 장병들 또한 이곳에 매장하기로 결론이 나왔으니까. 

혹시 제가, 전우가 묻힐지도 모르는 공동묘역을 만드는 데 소홀함이 있을 수야 없었다. 

"제발 목숨만 건지게 해주십시오···." 

털썩. 

얼마 뒤, 홀연히 공사장을 찾아온 도제가 내가 보는 앞에서 무릎 꿇으며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노라 약조했다. 

그 이튿날 제노바 국민공회는-아니 로마 원로원과 민회는 만장일치로 그를 대신할 새로운 최고지도자를 선출했다. 

*** 

로마냐의 농부 마르코에게 있어서 통일이란, 혁명이란 멋모르는 도시 샌님들의 허튼소리에 불과했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조차 많이 순화시킨 편이고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육두문자 없이는 단 한 글자도 서술할 수 없었다. 

그야 안 그래도 먹고살기 바쁜 마당에 선하신 나리들을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전쟁을 일으켜서 그들까지 휘말려 들게 만든 놈들을 대체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는가. 

마르코와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는 지금껏 수차례 있어온 침략전쟁에 불과했고, 만일 이 전쟁의 업화가 마을까지 닥쳐온다면 당연히 선하신 나리들을 위하여 저 못된 불한당과 맞서 싸울 작정이었다. 

그것이 전통이었고, 또 그렇게 단호히 실력을 보여줘야 멋모르는 도적들이 함부로 마을을 약탈하려 들지 않았으니까. 

그럴 때 그들을 도와줄 선하신 나리들을 지극히 섬기는 것도, 힘들 때일수록 그들끼리 뭉치는 것도 너무도 당연한 이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어르신. 편하게 마치니라고 불러주십시오." 

"흥···!" 

고로 어느 날 마을에 마치니라는 도시 샌님이-마르코는 그게 가명이라는 걸 한눈에 꿰뚫어 봤다-나타났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그를 곧장 신고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신용하지도 않았다. 

그야 그들이 선하신 나리들을 섬기는 건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지 그들을 위해 목숨 바쳐가며 앞장서서 싸우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아직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괜히 동료를 잃어버린 도적들이 마을을 침공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벌써 밀고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까 원래 피렌체에서 목수였었다고?" 

"네, 아시다시피 요즈음 혁명이다 뭐다 난리잖습니까? 이대로 있다간 꼼짝없이 전쟁터에 끌려갈 판이니 몰래 도망쳐 나왔지요." 

"잘했네. 잘한 일이야. 좀 비겁하다고 손가락질당하면 어떤가? 괜히 개죽음당하는 것보다야 천번 만번 나은 일이지." 

"암, 지금껏 살아온 나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긴 젊은 친구가 벌써 그래서야 쓰나. 자비로우신 성모께서도 다 이해하시고 용서해주실걸세." 

그런 마르코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건 이 마치니라는 청년이 아주 쓸만한 목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였다. 

비록 수상쩍기 그지없다는 딱지가 떨어지지야 않았으나, 이런 시골 마을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목수다 보니 하릴없이 밥만 축내는 식충이라는 딱지는 일단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본래라면 도시까지 찾아갔어야 할 온갖 잡일들을 이 마치니에게 떠맡기기 시작했고, 다시 마치니는 군소리 없이 작업을 해내며 그 대가로 먹을 것이나 입을 것 등 꼭 필요한 생필품들만을 받아 갔다. 

누가 봐도 무해해보이는, 정말로 진지하게 정착을 생각하고 있는 이나 보여줄 법한 행동으로서 제 결백을 증명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 마치니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물레방아를 설치하고 난 뒤. 

"요즈음 보기 드문 참한 청년이야." 

"동네 꼬마들도 다들 좋아하며 따르고 있잖은가. 그 조막만 한 것들이 얼마나 예민하고 섬세한데 수상쩍은 것 하나 모르겠나." 

"음, 그러고 보니 우리 딸이 마침 혼기가 찼는데-." 

"어허, 이 양반이 어디서 새치기를!" 

마르코와 마을 사람들은 점차 그를 당연하다는 듯이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야 이때까지 마치니가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한 적도 없겠다, 마을에 해가 되기는커녕 군소리 없이 도움만 베풀어주고 있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전화를 피하여 평생 정붙이고 살아온 고향 땅을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했던 참하고 바른 목수 청년. 

그렇게 마치니의 평가가 격상한 어느 날. 

"그럼 다수결로 정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다수결?" 

"예. 도시에서는 의견이 갈릴 때는 곧잘 그렇게 방침을 정하고는 했습니다. 한번 투표에 부쳐보시죠." 

"으음, 투표라." 

마치니는 그들에게 표결을 권했다. 

다가올 만찬에 어떤 요리를 내놓을 것인가처럼 사소한 주제이기도 했고, 본격적인 투표를 한 적은 드물어도 다수결이야 흔히 있었던 일이었으니 다들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마르코와 마을 사람들은 만찬에서 어떤 요리를 올릴지 표결에 부쳐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서 문제를 해결했고, 그날 이후로도 의견이 엇갈릴 때마다 교회나 문제당사자의 집에 모여서 표결에 부쳤다. 

"요즈음 심상치 않은 게 슬슬 우리 마을까지 사정권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마을 청년들과 함께 자경단을 만들어 마을을 지키고자 하니 허락해주십시오." 

그로부터 다시 얼마 뒤 마치니가 자경단을 권했다. 

"마을을 생각하는 마음이야 기특하네만, 괜찮겠나? 다들 군대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데."

"괜찮습니다. 피렌체에서 멀리서 눈대중으로나마 익힌 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진짜로 싸울 것도 아닌데 그리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겠습니까." 

"하기야 자경단이라고 했으니. 알겠네. 표결에 부쳐봄세." 

이를 수상쩍게 여기는 이들도 없지는 않았으나 슬슬 전화가 격화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거니와 마치니와 마을 청년들도 얌전히 마을을 지키는 자경단으로서만 활동했기에 다들 크게 개의치 않았다. 

다시 얼마 뒤 마치니는 전화에 대비하여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하자고 제안했고, 이 또한 표결에 부쳐져 통과되었다. 

혹시 모를 물자 부족이나 약탈에 대비하여 식량 같은 비상 물자를 한데 모아서 공동관리하자고 제안하자 이것도 표결에 부쳐져 무사히 통과되었다. 

그리고. 

"이 빨갱이 놈들이 이게 지금 뭐 하는 짓거리야?! 누가 지시한 일인지, 누가 책임자인지 남김없이 고하지 못할까!" 

그들 마을을 지키던 선하신 나리께서 무고한 마을 사람들에게 누명을 씌우며 총칼을 내세워 겁박하자. 

"우리가 지은 죄가 없는데 대체 무슨 책임을 진다는 말입니까? 제가 가서 나리를 설득하고 오겠습니다. 

"하, 하지만···괜찮겠나? 자네에게 뭔 일이라도 나면 내 딸은 과부가 되는 건데." 

"하핫! 괜찮습니다. 설마 별일이야 있으려고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이번에도 마치니는 마을을 위하여 앞장섰고, 마르코의 사위는 외부인을 끝내 신뢰하지 못했던 나리의 미움을 사 곤죽이 되어서 돌아왔다. 

그날, 자경단은 대장을 위하여 복수에 나섰다. 

마르코 부녀와 그의 벗들은 기꺼이 젊은이들과 함께했다. 

나리의 졸병들은 마르코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허약해 저택이 함락되었고, 나리 일가가 줄행랑을 쳤다. 

그럼에도 분이 덜 풀린 청년들은 텅 빈 저택에서 마치니의 치료비를 징수할 겸 나리의 자산을 빼앗아 마을 사람들끼리 나누어 가지자고 제안했으며, 그 즉시 표결에 부쳐져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그렇게 마르코의 마을은 해방구로 지도에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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