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2화 (132/154)

루비콘강

신성동맹 군영. 

"···왜지?" 

총사령관 프리드리히 요시아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우리가 대체 뭘 잘못한 건가?" 

"그건-." 

"모두 대답해보게. 정말로 아무런 이유 없이 저들이 우릴 등지진 않았을 것 아닌가. 뭔가 우리가 단단히 미움을 살 일을 했건, 아니면 오해가 있는 거겠지." 

그런데. 

"도대체 우리가 저들에게 무엇을 잘못했길래 복수의 대상이 되고 만 건가? 이 늙은이에겐 짐작 가는 구석이 전혀 없으니 제발 경들이 답을 해주시게." 

하지만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참모들은 다만 필사적으로 서로 눈치를 살피며 눈알을 데굴데굴 굴려댈 뿐 누구 한 사람 속 시원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그야 적어도 그들의 상식선에서는 신성동맹이 유별나게 잘못한 거라고는 무엇 하나 없었다. 

물론 전쟁을 위하여 물자를 징발하거나, 아니면 노역자들을 징용하는 등 농노들의 분노를 살만한 조처를 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적들도 매한가지였을뿐더러, 그 강도도 기본적으로 자국령에서 멀리 원정을 나온 침략군이었던 만큼 적들이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왜?" 

생전 계몽주의라고는 접해보지도 못했을 농노들이 낯선 도시인을 위해 신성동맹에 복수하려 한다는 말인가. 

딱히 계몽주의에 물든 것도 아니면서. 

물론 개중에서도 보급기지를 습격하는 등 본격적인 군사작전에 나서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사례에 불과했고, 대다수는 그저 농촌 코뮌이 만들어진 선에서 그쳤으나 이미 그것만 해도 신성동맹군의 부담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농촌 코뮌 하나라도 그 근방에 남겨둔 채 방치하면 마치 곰팡이 포자가 번지듯이 그 근방 일대가 연쇄 붕괴하면서 지역 전체가 반역향-저들의 표현에 따르자면 해방구-로 변모하던 것이다. 

그럼 전체 머릿수가 늘어났으니 극히 예외적인 습격사례 또한 그만큼 늘어나며, 그 일대에서 신성 동맹군이 저 자칭 로마군의 침략에 대비하여 군사작전을 펼친다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그러니 어디선가 해방구가 불쑥 나타날 때마다 토벌군을 파견하여 강경히 진압해야만 했고, 또 그럴수록 주민들의 저항과 농촌 코뮌을 향한 지지는 강경해지기만 하며, 점점 더욱 많은 토벌군을 사방팔방으로 분산배치 하면서 막상 프랑스군과 맞서 싸울 주력군단을 희생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악몽 같은 순환이 아닐 수 없었다. 

막상 적 주력군단은 포강 너머에 진을 친 이래로 옴짝달싹도 안 하고 있는데 아군은 이미 늪에 빠져 허우적대며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천혜의 요새를 방벽 삼고 조직적인 유격전으로 적들을 괴롭히면서 후방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힘을 비축한 예비대가 기진맥진해진 적군을 단숨에 격퇴한다던 당초의 전략이 피아만 거꾸로 뒤집어서 실현되고 만 것이다. 

"···좋아, 그럼 다들 짐작도 못 하는 듯하니 질문을 고치도록 하겠네." 

하아-. 

요시아스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뱉었다. 

"어찌하면 되겠나? 전쟁을 피해서 시골로 도망치는 도시 청년들을 하나하나 다 감시하거나 통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떻게 해야 폐하의 근심을 덜어드릴 수 있겠느냐는 말이야." 

"그렇다면 전하, 반란에 기여한 관계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여 본보기를 보이신다면-." 

"불가하네." 

혐오와 경멸이 서린 대답이었다. 

"우리가 바르바로이도 아닐진대 어찌 문명의 고향에서 그런 끔찍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인가. 주동자를 효수하여 본보기를 보이는 거야 몰라도 관계자를 모조리 잡아 죽이자니. 그런 야만스러운 말은 두 번 다시 꺼내지도 말게." 

"···죄송합니다." 

장교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개전 초에 프랑스군에게 함락되어 지금도 군정을 받는 피에몬테 태생의 사르데냐 군이었기에 순간 이성을 잃고 만 것이다. 

그야 아직 점령되지도 않은 로마냐와 밀라노 일대조차 이 지경인데 사보이-피에몬테야 어떤 상황이겠는가. 

날이 갈수록 하나둘씩 연락이 끊겨가는 사보이-피에몬테의 유격부대가 곧 이들의 인내심이요, 이성의 잔량이리라. 

"우선···." 

하지만 사르데냐군의 제의를 단호히 뿌리친 그들 합스부르크군이라고 뾰족한 대안이 있는 건 아니었다. 

우선 아군이 포강에 진지를 치기가 무섭게 아펜니노 산줄기를 따라 남하한 적군이 볼로냐를 함락 시키고 루비콘강과 마주하며 제2전선을 열어버린 게 문제였다. 

로마냐와의 육상연결로가 단절된 가운데 요 몇 달 사이 벌어진 적군의 산발적인 도하 시도는 하나하나 헤아리는 것조차 불가능했고, 이 기습적인 도하를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늘 신성동맹군은 강 너머의 적 군영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어야만 했다. 

그동안은 당연히 도하에 앞서서 아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취약한 지점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여겼고, 그래서 각 부대에 언제나 다소 과할 정도로 열렬히 반격하도록 지시했으나-. 

'···당했다.' 

진짜 노림수는 유격전이었는가. 

꽃봉오리가 만개할 때까지 아군의 관심을 끌면서 방어선을 지킬 병사들까지 후방안정을 위해 빼돌리면 그때 느긋하게 도하할 속셈이었다니. 

상식적으로 영내에서 적 유격부대가 나타날 거라고는 짐작조차 못 했던 게 그들의 패착이었다. 

"교황청에 협조를 청하게." 

한참을 주저하던 총사령관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사제와 수녀들을 동원하여 저 농민들에게 봉사를 베풀어달라고 말이야." 

저들의 침투수법은 기본적으로 수상쩍은 외부인에서 선의로 봉사를 베푸는 유용한 만능일꾼으로 둔갑하는 데에서 시작하니까. 

이미 익숙한 얼굴들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베푼다면 구태여 그런 수상쩍은 외부인에게 손을 벌리려 하지 않을 터. 

무엇보다 그들이 지키고 다스려야 할 농민들과 복수를 위해 피를 피로 씻는 것보다 인도적일 뿐더러 중장기적으로 훨씬 안정적일테고. 

"꼭 교회가 아니어도 좋네. 이 일대의 영주와 총독들에게 협조를 요청하여 농민들에게 대민봉사를 베풀라고 전하게. 알겠나?" 

"그···." 

참모들은 대꾸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반박할 말이 있지만 하지 않겠다는 얼굴들이었다. 

그야 이런 식의 조치는 좋건 싫건 20년 전 해산된 예수회와 같은 수도회들의 활동을 북돋아 주는 격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그렇다고 그들 푸른 피가 직접 대민봉사를 베풀기에는 번거로울뿐더러 흙먼지가 묻어가며 일한다는 건 귀족으로서의 불명예였고. 

그럼에도 이보다 나은 대안이 없기에 다들 말을 아끼고 있었으나-. 

"이의 없다면 군소리 말고 하기나 해." 

요시아스는 단칼에 이들의 불평을 잘라냈다. 

아무렴 평민이면 어떻고 귀족이면 또 어떻다는 말인가. 

발칸의 민중을 위하여 튀르크 군에 맞서 왈라키아를 해방하고, 다시 그곳에서 만난 평민에게서 얻은 사생아를 귀족으로 인정받게 해주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던 그에게 이런 대책 없는 특권의식은 불쾌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제야 참모들은 뭐라 구시렁대면서도 자리를 떠났고, 이로써 논의는 일단락된 듯하였다. 

"하여간 쥐뿔도 없는 애송이들이 목만 뻣뻣해서는." 

홀로 남은 요시아스가 들으라는 듯이 젊은이들의 특권의식을 흉보던 찰나. 

똑똑. 

"각하." 

카이저의 연락관이 막사를 찾아왔다. 

"···아무래도 이 늙은이가 폐하께 근심을 안겨주었나 보군." 

하기야 요즈음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럴 법도 했지만. 

자세를 바르게 고친 요시아스가 되물었다. 

"그래, 어쩐 일인가. 폐하께서 또 하루빨리 피에몬테를 탈환하라고 보채시던가?" 

"아닙니다. 그게···." 

"부담 가지지 말고 편히 말해보시게. 나는 다과라도 먹으며 기다리고 있을 테니." 

자네도 먹겠나? 

노장의 권유에 연락관은 머뭇거리면서도 달콤한 터키 과자를 입에 넣었다. 

그 이가 저릿저릿해 오는 달콤함에 뒤늦게 용기가 난 걸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군을 파병하겠노라 약조했습니다." 

역시 그렇게 된 건가. 

얼마 전 끝내 폴란드와 러시아 간의 휴전조약이 체결되었음을 떠올린 요시아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조만간 인사이동이 있을 듯하다고." 

"인사이동." 

이미 요시아스는 신성동맹군 총사령관일진데. 

러시아의 참전과 함께 그의 인사이동이 예정되었다면 그건 곧-. 

허. 

"우리 루스 친구들이 어지간히 대군을 약조한 모양이로군. 

연락관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마 이 노장이 격분하여 카이저에게 항명하거나 그게 아니라도 연락관 정도는 잡아먹으려 들거라고 여긴 거겠지. 

"그래서, 새로 오는 놈은 누구인가?" 

"···예?" 

"차리나가 보낸 밍간 말일세. 그만한 대군을 파병한다면 무명의 전사를 보내진 않을 것 아닌가." 

하지만 요시아스는 개의치 않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초전에 허무하게 알프스 방어선을 내준 것만으로도 진작에 교체되고도 남았으니까. 

오히려 지금껏 그를 교체하지 않고 뚝심 있게 신뢰해주신 것만으로도 카이저께는 이 늙은 몸이 여생을 다 바쳐도 갚지 못할 은혜를 입은 격. 

한데 그가 어찌 선하신 카이저를 원망할 수 있을쏜가.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하지만 연락관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온 순간. 

"-야전 원수께서 몸소 이탈리아 원정군을 이끌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맙소사." 

요시아스는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의 명성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지난 튀르크와의 전쟁 당시 2만 5천으로 10만 대군이라 선전된 적군을 글자 그대로 학살하고 그보다 젊은 시절에는 연대장, 여단장 지위로 폴란드-리투아니아 군단을 연달아 격파한 그 불세출의 명장을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수보로프는 지난 튀르크와의 전쟁 당시 적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이미 함락된 이스마일 요새에서 사흘 밤낮에 걸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4만에 달하는 포로와 민간인을 학살한 인물이었다. 

혹자는 이를 부하들의 폭주라고 두둔했으나, 뒤이어 이번 폴란드와의 전쟁에서도 다시 수만 명의 바르샤바 시민들을 학살했으니 이를 어찌 부하들의 폭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수보로프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군인과 민간인을 막론하고 시산혈해와 공포만이 가득했으니. 

만일 그가 이 해방구로 가득한 이탈리아반도와 마주하게 된다면-. 

"주여." 

제발 이 땅의 농민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합스부르크의 노장은 몇 번이고 필사적으로 성호를 그으며 그들의 안전과 안녕을 빌었다. 

*** 

제노바항. 

"드디어 저놈들이 물러나는구만." 

하여간 징한 놈들. 

망원경 너머의 좁쌀만 한 사람이 뭐가 보이기야 하겠냐마는,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유니언잭을 단 군함들을 보고 있자면 내심 등골이 오싹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우릴 방심 시키기 위한 함정이고, 진짜 본대는 경계가 풀어지기만을 어디선가 뚫어지게 감시하고 있을 것만 같아서. 

마르세유-코르시카-토스카나 삼각 포위망에 갇혀 잠시 숨돌릴 정박지 하나 남지 않은 적들에게 그럴 여유가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긴가민가 싶다. 

[뭐, 안심하게. 장장 몇 달을 봉쇄하고 있었으니 저놈들도 진이 빠져서 물러나는 건 맞을 거야.] 

그렇겠지? 

파리에서 날아온 보고서에 따르자면 라파예트의 아일랜드 상륙 준비가 마침내 완료되었다고 했으니 어쩌면 그것 때문에 물러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천하의 로열네이비가 앞마당에서 그리 쉽게 상륙을 허용할 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기엔 워낙 가까우니까. 

지중해 쪽 함대까지 총동원해서 도버해협이고 켈트해협이고 모조리 봉쇄하려는 걸지도 모르지. 

뭐, 지금 이건 내 희망 사항에 가깝긴 하지만. 

"어떻게, 추격할까요?" 

어딘가 비굴한 인상의 프랑스 해군 제독이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이름이 아마-. 

[피에르 빌뇌브일세.] 

그래, 그런 이름이었다. 

죄다 망명하거나 아예 배에서 내린 프랑스 해군 장교 중에서는 드물게 귀족 출신임에도 친 혁명파였던 덕분에 서른 조금 넘은 젊은 나이에 제독 지위를 달은. 

단순히 서사만 보면 마세나나 장 란, 나폴레옹처럼 내가 익히 아는 위대한 군인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친구긴 했는데. 

"며, 명령만 내리신다면 우리 함대는 지금 당장이라도 출항할 수 있-." 

"아니, 관둡시다. 당장 전과에 그리 목맬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솔직히 영 미덥지 않단 말이지. 

본인도 지가 역량 부족이라는 건 알고 있어서 본인 판단을 내세우기 보단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는 건 좋은 자세이긴 한데, 아무리 봐도 최후의 1인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듯싶다. 

그러니까 뭔가 유별난 재주나 강운으로 승승장구한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해군에 마지막까지 남은 게 본인뿐이라서 제독을 단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냥 얌전히 보내주시죠." 

괜히 붙었다가 또 대판 깨질라. 

"적절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저놈들이 정말로 물러나는 게 맞는지, 혹시 아군을 방심시키려는 건 아닌지만 확인하고 돌아와 주십시오." 

"명 받들겠습니다." 

휴우-. 

···잠깐, 지금 저 친구 싸우지 않아도 된다니까 안도의 한숨을 몰아쉰 거 같은데. 

[나도 똑똑히 들었네.] 

그 유명한 넬슨의 맞수가 되어야 할 친구가 이 모양이라니 프랑스 해군의 앞날이 암담하구만. 

요 몇 년 사이 묵은 때나 따개비들을 다 벗겨내서 그나마 전열함들은 겉보기엔 그럴싸해졌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게 훤히 보이는 듯하다. 

그나마 앞뒤 꽉꽉 막히고 인성에 결함까지 있는 원균과는 아니니 쓸만한 참모진이라도 붙여주면 밥값은 하려나. 

"자, 그럼." 

빌뇌브 함대의 출격까지 확인한 뒤 보라색 토가를 여미며 천천히 뒤돌아섰다. 

솔직히 이거 싫다는데도, 괜히 불편하기만 하고 연극배우 같다고 몇 번이고 말하는데도 로마의 최고존엄이라면 이걸 입어야 가오가 산다면서 곧 죽어도 입히더니 경호원들에게 파스케스까지 들려주더라. 

뭐, 그래봐야 흰 가발은 그대로이긴 한데-. 

"푸흡." 

···그 모든 걸 걸친 지금 내가 과연 어떤 꼴일지는 무뚝뚝한 장 란의 반응만 봐도 대강 짐작이 간다. 

개자식들, 어디 나중에 두고 보자. 

"슬슬 시작합시다." 

무엇을, 같은 거추장스러운 설명은 불필요했다. 

그야 적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해방구로 애를 먹는 꼴을 보려고 몇 달을 쉬었으니 슬슬 동으로는 포강을, 남으로는 루비콘강을 건널 때가 온 거지. 

물론 정말로 그것만을 위해 쉰 건 아니고, 슬슬 점령지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정 이양을 위해 단기간에 행정부를 몇 배로 불리면서 소화불량을 해소하는 용도가 더 크긴 했지만. 

겸사겸사 1개 군단을 지탱하기 위해 한계까지 쥐어짜이고 있던 제노바 시민들도 이제 그만 쉬게 해주고. 

그렇게 맞이한 우리 프랑스의 총선주간. 

이제 병사들도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힘을 비축했고, 성공적으로 코뮌 선거를 치르고 이들이 실권을 넘겨받으면서 그럭저럭 점령지들도 안정되었으며, 무엇보다도 공화 귀족들이 사보타주를 멈췄다. 

앞서 도제가 자진 납세했듯이 이미 여기까지 대세가 기운 이상 괜히 거스르려고 해봐야 저만 상할 뿐이라는 걸 마침내 자각한 것이다. 

그럼 이제 곧 죽어도 독재관이나 황제는 두 번 다시 안 한다고 버틴 내게 저들이 선물한 원수 직권을 발휘할 때가 온 거지. 

다시말해 총공세다. 

보자, 지금 공세에 나서면 딱 총선 당일쯤에 결과가 하나둘 나올 테니 진짜 본국의 유권자들에겐 잊지 못할 선거유세가 되겠군. 

[아, 그리고 아무래도 자네가 끝까지 눈치 못 챈 것 같아서 해주는 말인데. 라틴어로 원수는 프린켑스(Princeps). 다시 말해 흔히들 말하는 제1시민일세.] 

···뎃? 

[하핫, 속았구나 막내야!] 

샤아! 속였구나, 샤아! 

"에이, 시작합시다가 아니죠." 

마세나가 질색을 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지금 루비콘강을 건너려는데 뽀대 안 나게 대체 그게 뭡니까?" 

"···다들 진짜로 이럴 겁니까?" 

"어라, 동지야말로 진짜 이러실 겁니까? 모처럼 보라색 토가까지 차려입으셨는데 여기선 그 말을 해주는 게 상호 간의 예의죠." 

안 그렇습니까? 

과장된 연극조로 마세나가 군중을 은근히 부추겼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이 자리에서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로마 공화국의 각료들도, 장 란을 비롯한 프랑스인 장교들도. 

다들 은근슬쩍 퇴로를 막아서며 기대 어린 눈치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이게 도대체 희극인이야, 정치인이야. 

이미 한번 했던 말을 또 되풀이한다는 게 내심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도다." 

그제야 다들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카이사르의 군세가 루비콘강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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