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전환
포강 방위선.
와아아-!
"···하여간 징그러운 놈들."
전선을 시찰하던 가장 고귀한 베네치아 공화국의 제120대 도제 루도비코 마닌이 진저리를 쳤다.
그래도 같은 사람을 징그럽다고 표현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저 지평선을 가득 메우며 몰려드는 적병을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었다.
물론 그건 아군 또한 매한가지.
제아무리 전쟁이라지만 무슨 개미도 아니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건지 원.
다들 인간을 밭에서 수확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이미 양측의 군세만 합하여도 베네치아 시민 전체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얼마나 곤혹스러웠는지.
'무슨 십자군 전쟁도 아니고.'
아니, 따지고 보면 사실상 적그리스도의 군세에 맞선 십자군 전쟁인가?
그리고 아직도 내륙의 속령들로부터 넉넉하게 받아챙기고 있는 베네치아라면 몰라도 저 코르시카까지 팔아치운 땅그지 제노바 놈들은 뭔수로 저 많은 병사들에게 총을 한자루씩 쥐어준건가?
감히 주제넘게도 S.P.Q.R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땅그지들을 흘겨보며 도제가 용병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절대로 반격하지 말게. 장교들에게도 괜히 호승심을 내지 말라고 전하고. 무조건 루스 놈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만 하네."
"아이고, 그거야 여부가 있을깝쇼."
비릿한 웃음.
낄낄대며 기뻐하는 용병대장의 모습이 눈에 밟히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야 용병들로선 제대로 싸우지도 않으면서 분기마다 꼬박꼬박 돈만 받아 가니 얼마나 좋겠는가.
그 또한 고용주로서 내심 아깝지 않은 건 아니었고, 이 대금을 대기 위한 특별세에 불평하는 시민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저 땅그지 제노바 놈들에게 멸망 당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차라리 다른 봉건 군주들과의 전쟁에서 패한다면 막대한 배상금과 영토 일부를 할양하고 끝나겠지만, 폭도들과의 전쟁에서 패하거든 꼼짝없이 패망일진데.
그것도 모자라 심지어는 그냥 폭도도 아니고 제노바 땅그지들이라니.
베네치아의 마지막 역사서에 제노바 놈들에게 멸망 당했다는 글귀와 함께 마지막 도제로 그의 이름이 올라가는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이러다 더는 저당 잡힐 게 없어서 파산하고 합스부르크에게 나라를 팔지언정 저 땅그지 폭도들에게 패망할 수는 없었다.
콰콰쾅!
"옳지, 잘들 하고 있군."
그리고 전선은 문외한인 도제가 보기에도 그들의 의향대로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벌써 그가 목격한바 오늘 하루만 세 번째 총공세임에도 적들은 질척거리는 강변에서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포강 전선만 따지자면 신성동맹이 수적 우위를 차지한 덕택이 컸다.
적들도 곧장 오스트리아와 접한 밀라노-베네토 일대로 진공하기엔 이래저래 부담이 크다 보니 로마냐 방면을 주공으로 잡은 것이다.
비록 앞서 알프스 방어전에서의 뼈아픈 장비 손실로 화력이 크게 뒤지게 되었다는 건 뼈아팠으나, 대신에 그만큼 공들여 진지를 구축한 덕택에 적의 집중포화에도 굳건히 버티고 있었으니.
'···가만, 이참에 갤리선을 투입해서 퇴로를 끊어버려야 하나?'
돛단배면 몰라도 노선이라면 이곳까지 올라오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텐데.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도제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아무리 총력전이라도 고작 7척밖에 남지 않은 갤리선을 함부로 전장에 투입할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조금 전 적군에게 화력에서 밀리고 있다며 자백한 주제에 이 좁다란 강에 고정표적을 만들어주겠다는 것도 바보짓이었고.
"그럼 이만 이 몸은 돌아가 보겠네."
결국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도 마음을 다잡은 도제가 뒤돌아섰다.
"거듭 강조하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게. 그까짓 돈보다 더 아까운 게 우리 시민들 목숨이니까."
"네이, 네이. 맡겨만 주십셔!"
척.
익살스러운 경례.
그 품위 없는 작태가 영 눈에 거슬리긴 했으나 도제는 이번에도 모른 척해주기로 했다.
어차피 러시아군이 전선에 도착하여 어느 정도 베네토가 안전해졌다는 확신이 들쯤 토사구팽할 작정이었으니까.
'보자, 루스인들이 약속한 기일이 보름 뒤였던가?'
그렇다면 그가 베네치아로 돌아가 피로를 풀쯤이면 이미 계약서에 끼워 넣은 독소조항을 근거로 용병계약서를 갈가리 찢고 있을 터.
도제는 모쪼록 저 용병대장이 맷값에 만족 못하고 감히 주제넘게 대들기를 바랐다.
그럼 고용주를 겁박했다는 핑계로 그동안 지급한 대금까지 남김없이 회수할 수 있을 테니까.
"안 그래도 슬슬 쪼들렸는데 마침 잘 되었군."
마차에 오른 도제가 홀로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희희낙락하던 찰나.
끼요옷-!
"···응?"
저 너머에서 타타르인들이나 낼법한 괴성과 함께 수십,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기마병들이 일제히 말을 모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그저 아군 기병대가 출격했나보다, 여겼지만 또 그러기엔 소리가 점점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벌써 루스인들이 도착했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이른데.
"이보게,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여 도제가 마부에게 되물었고.
"프, 프랑스 놈들입니다!"
"뭐?"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이쪽으로, 히이익!"
타타탕!
창백하게 질린 마부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기병대 간의 전초전이 시작되었다.
허나 이때까지도 도제는 당황하지 않았다.
분명 숫자 자체는 동수이거나, 어쩌면 아군의 우세였다.
그리고 이런 후방까지 침투하려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할 수 없는 게 당연하기도 했으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조금만 시간을 끌어도 원병이 달려올 그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런 분견대 정도야 호위부대만으로도 충분-.
서걱.
"이뭔···?!"
순간, 마치 과도로 사과를 자르듯이 흉갑기병을 가르는 창날에 도제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만큼 비상식적인 광경이었던 것이다.
저 비상식적인 존재가 한번 장작을 패듯이 창을 휘두를 때마다 그의 호위무사들이 쓰러졌고, 용기백배한 적 기마병들은 더욱 맹렬하게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럼 이런 기상천외한 광경을 연출할 수 있는 존재는 그가 아는 한 이 대륙에서 단 한 명뿐.
"뮈, 뮈라다! 뮈라가 왔다!!!"
욕실에서 바퀴벌레를 목격한 소녀처럼 가냘픈 비명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뮈라가 이끄는 창기병들이 호위대장을 고슴도치로 만들고 대열을 완전히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으니.
주르륵.
뒤늦게 정신이 든 그가 바지가 축축해졌음을 눈치챘을 무렵에는 이미 마차는 조금 전 떠나온 아군 막사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이대로 저 머나먼 베네토까지 사자에게 쫓길 바에야 조금이라도 가까운 아군에게 의지하겠다는, 너무도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왜, 왜?! 왜 아무도 구하러 나오지 않는 게냐! 다들 뻔히 보고 있을 거면서 왜?!"
콰콰쾅!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적의 집중포화를 피하느라 다들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으련만.
두두두-!
그리고 조금 더 주위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적 기병대의 산발적인 기습을 당하고 있는 게 그들만이 아니었다는 걸 눈치챘을 테고.
유감스럽게도 당장 저 사람 형상을 한 맹수들에게 뒤쫓기던 도제에겐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 따윈 없었다.
애당초 그는 전쟁에 문외한이었으니까.
화력에 압도당했다는 건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것이고, 아군이 진지에 숨거나 포격을 피해 산개하는 동안 적들은 자유로이 각개격파를 시도할 수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의 눈에는 그저 집중포화에도 끄떡없는 방어선만 보였으니.
"이런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라고!"
공포와 절망에 사로잡힌 도제가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그제야 저 멀리에서 포격이 잠시나마 사그라든 틈을 타 아군 기병대가 그를 구하기 위하여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시야에 잡혔다.
얼굴 생김새를 식별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온 뮈라가 입맛을 다시면서 물러나는 것도.
하지만 그것이 도제가 베네토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 뒤로도 적들의 집중포화는 연일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아군이 진지에 숨거나 포격을 피해 산개한 틈을 탄 적 기병 군단의 산발적인 습격도 계속되었으니.
뮈라의 한 끼 식사가 되고 싶지 않았던 도제와 그의 수행원들은 얌전히 전선에 붙들려 있어야만 했다.
***
로마냐 전선.
"이건 또 뭔가, 창?"
군단장 프란츠 요제프 뤼지냥 후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이 무슨 30년 전쟁기인 줄 아는 건가? 이제 와서 창으로 무장한 폭도들이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그, 말씀 드리기 좀 그렇지만···."
부관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검지와 엄지를 모아 보였다.
돈.
"염병할."
설명은 그거면 족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사이 수만 대군이 맞부딪히는 대규모 전면전과는 도통 연이 없었던 이탈리아 반도였다.
르네상스 이래로 유럽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조금씩 밀려나고, 합스부르크와 부르봉이라는 두 덩치가 보호라는 핑계로 짓눌러왔으니 사르데냐 정도를 제외하면 대규모 상비군을 유지할 이유도, 여력도 없었다.
어지간한 분쟁은 용병고용 선에서 해결되었으니.
한데 이제 와서 갑자기 총력전이라면서 있는 대로 동원해봐야 저들을 무장 시킬 총이 그리 넉넉하게 비축 되어있을 리가 있는가.
당연히 핸드캐논이 되었건 장창이 되었건 일단 무기고에 들어가 있는 무기들로 급히 무장 시키고 전장에 내보낸 거지.
어쩌면 그조차 모자라서 요사이 급하게 대장간에서 장창을 새로 조립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알겠으니까 일단 후방 예비대로 보내게."
이름도 모를 소국들과 로마냐의 깃발을 나란히 휘날리고 있는 장창병 부대를 애써 시야에서 치우며 후작이 으르렁거렸다.
차라리 그들 합스부르크의 봉신이라는 놈이 이따위 군대를 끌고 왔으면 당장 돌아가라고 하거나 아니면 무기들 손에서 내려놓고 잡일이나 도우라고 했으련만.
지난 베스트팔렌 조약 이래로 이들은 형식상 합스부르크의 봉신이라도 실질적으로는 엄연히 동맹국에서 파견한 군대였으니 차마 그의 재량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카이저에게 모욕당했다면서 저 폭도들에게 쪼르르 달려가 붙기라도 하면 그 뒷감당은 꼼짝없이 그가 하게 될 테니까.
"혹시라도 총을 구하게 되면 당장 저 녀석들부터 재무장시키고."
"그, 각하."
"또 뭐가 문제인데?!"
신경질적인 반응.
그러자 이번에도 부관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검지와 엄지를 말아 보였다.
"돌겠군."
이번에는 또 화약이 문제인가.
하기야 무기고에 처박혀 있던 옛날 무기를 들고 온 놈들이 무슨 예비 화약을 챙겨왔겠느냐마는.
도대체 총도 안 챙겨오고, 심지어는 아군 몫의 화약까지 나눠줘야 할 판인 이 자칭 동맹군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뤼지냥 후작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장창이나 들고 있으라고 하게."
"알겠습니다, 각하."
어차피 화약도 없는 총이라고 해봐야 총검 달린 꼬챙이 수준 밖에는 안될 테니 하다못해 조금이라도 더 길기나 한 장창이 나으리라.
우국충정과 신앙심에 벅차오르고 있는 저 병사들에겐 참으로 유감이었으나, 그렇다고 장전도 할 줄 모를 오합지졸들에게 피 같은 화약을 나눠줄 수야 없었다.
기껏 나눠줬는데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버려진다면 그보다 피눈물 나는 사태도 또 없을 테니까.
'그나마 긍정적인 기대를 해보자면, 적들도 똑같은 상황일 거라는 건가.'
아니, 냉정히 생각해보면 적들이 그들보다 훨씬 더 심각한 총기 부족에 시달리고 있을 개연성이 높았다.
그야 오늘날 프랑스의 상비군만 해도 30만 대군을 훌쩍 넘는다.
거기에 국민개병제랍시고 전국민을 무장 시키려 들었으니 지금쯤 프랑스 국내에서 생산된 총이나 화약은 모조리 현상유지에 소모되고 있을 터.
그럼 제노바와 피에몬테를 주축으로 한 저 자칭 로마군을 무장 시킬 여력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저 피에몬테 또한 말이 좋아서 주축이지 프랑스군과의 치열한 교전 끝에 강제로 점령된 사르데냐령이니 무기고를 털고 어쩌고 해봐야 한 줌일 테고.
그렇다면 실질적인 주축은 제노바 뿐이요, 이들은 혁명 전까지만 해도 몰락할 때로 몰락했다는 베네치아보다도 더한 진짜배기 도시국가 상황이었으니.
장장 수백 년을 제 앞마당처럼 다루던 코르시카를 프랑스에 팔아치워야만 했던 제노바에 수만 대군을 무장 시킬 총과 화약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래, 생각해보니 그렇군. 차라리 피에몬테를 함락시킨 기세를 몰아서 마구 공격을 퍼부었어야지, 본인들에게 여유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수개월 간의 휴식 기간을 줬을 리가 있나.'
틀림없었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신성동맹만큼이나-혹은 그 이상으로 적들도 보급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정황증거.
아무렴 프랑스가 유럽 제일의 인구 대국이라고 하나 공업 대국은 아니잖은가.
라인란트가 넘어가긴 했지만 거긴 지금 프로이센군과 대치 중일 거고.
그렇다면 이제 정황증거와 합리적인 추론이 나왔으니 남은 건 그가 직접 적들을 맞이하며 두 눈으로 보급실태를 확인하는 것뿐.
"각하! 수색대가 북서 방면에서 남하해오는 적 군단을 발견했다고 하옵니다!"
"그래, 어느 쪽인가? 제노바? 프랑스?"
"제노바입니다. 자칭 로마군입니다!"
때마침 그의 의심을 확신으로 고쳐줄 기회가 찾아왔다.
만일 수색대가 근방에서 프랑스군이나 그 흔적을 발견했다면 보고시에 반드시 그 사실을 끼워 넣었을 터.
하지만 그런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으니, 이는 정말로 저 자칭 로마 군단만으로 이루어진 대열이리라.
"실로 성모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셨구나."
그럼 그거면 족했다.
"당장 채비를 갖추게."
"···그, 공격하시렵니까?"
"그야 당연하지. 우선 수색대를 있는 대로 풀어서 적군이 매복해 있는 건 아닌지만 샅샅이 살펴주게. 만일 정말로 저들 뿐이라면 당연히 공격하고말고."
부관들은 저 모자란 동맹군들 탓에 내심 썩 내키지 않아 하는 눈치였지만, 군단장은 이미 승기를 자신하고 있었다.
수적으로는 아군이 근소하게 위.
질적으로는···저 한심한 동맹군들 탓에 다소 아쉽기야 하지만, 어차피 형편없는 질이야 적들도 매한가지일 터.
그럼 남은 건 적들의 실체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뿐이었고.
"어···?"
망원경으로 저 지평선 너머로 등장한 로마군이 모두 똑같은 총을 들고 나타났음을 확인한 순간.
뤼지냥 후작은 도저히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하다못해 옷가지조차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저리 똑같이 복제했을까, 의아할 정도로 색감에서 형태까지 모두 같았다.
유일하게 똑같지 못한 건 급조된 군대임을 암시하듯 발맞춰 걷는 것조차 제대로 못 하는 병사들 뿐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조심스러운 참모들의 재확인.
그것이 우회적인 만류임은 따로 확인해볼 필요도 없었다.
"이만 물러납니까?"
"아니, 전초전은 해봐야지 않겠나."
그래야 저게 진짜인지, 아니면 겉으로 보기에만 그럴싸한 총검 꼬챙이인지 가늠할 수 있을 테니까.
무엇보다 군단장으로서 체면이 있지 이대로 물러나기에도 그랬고.
"돌격-!"
하여 뤼지냥 후작은 몸소 전선에서 검을 휘두르며 전초전을 독려했고.
타타탕!
그의 기대를 완전히 벗어난 적군의 집중사격에 휩쓸렸다.
불과 수개월 사이 급조되었음을 증명하듯 느릿느릿한 화망이었다.
당연히 고작 이 정도로 합스부르크 군이 동요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장창과 구형 화승총을 들고나온 이들은 달랐다.
아직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전임에도 이들은 이미 적의 화력에 압도되어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왜?!"
뤼지냥 후작이 절규했다.
피차 똑같은, 아니 적들이 더 열악한 상황이어야 정상일 텐데 왜 그의 동맹군은 장창병이고 적들은 전열보병이란 말인가?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지 그의 상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식이 아니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