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송아지
오호라.
"열기구라."
고놈 참 둥실둥실 높게도 나네.
항상 뭐 어디 관광지에서나 커플들 태우고 푸쉬익-하고 날아다니는 걸 보다가 이렇게 전선 시찰 나왔다가 최전선에서 정찰용으로 쓰는 걸 보고 있자니 또 새롭다.
하기야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시대도 아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열기구를 요격할만한 대공포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닌 시대니까 제법 쓸만하다-수준을 넘어서 좀 느리다는 단점을 제하자면 거의 혁명적인 발명품이겠지만.
지금처럼 정찰하는 데 써도 되고, 멀리 떨어진 곳까지 명령서를 보낼 수도 있을 테고, 폭탄이나 총을 쏴도 되고.
여하간 21세기인인 내가 봐도 이 열기구를 사용할 방도라면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벌써 열기구가 발명된 시대였나?
[벌써고 자시고, 나름 10년도 전에 루이 오귀스트가 후원해서 개발에 성공한 발명품일세.]
그래? 그렇게 오래되었나?
흠, 그런 것치고는 난 막상 프랑스 혁명기를 다룬 게임이나 드라마 같은 곳에서 열기구가 등장하는 걸 본 기억이 없는데.
···모르겠다.
아마 내 생각만큼 효용성이 없었거나 수구꼴통 나보의 보수적 타성이 문제였겠지 뭐.
"그렇게 저 열기구가 마음에 드십니까?"
곁에 있던 마세나가 말을 걸어왔다.
"음, 그냥 저 열기구로 폭탄을 떨구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폭탄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한 반응.
한참을 멍하니 눈을 깜빡거리던 마세나가 미간에 주름을 잡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뭐, 재미는 있을 것 같지만 좀 너무 많이 죽어 나갈 것 같은뎁쇼."
"그렇습니까?"
"언제 터질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척탄병도 깡따구가 돌아버린 놈들만 하는 건데 하늘에서 터지면 안에 타 있던 놈들은 꼼짝없이 스틱스 행 아니겠습니까."
아, 맞다.
아직 다이너마이트가 나오기 전이지 참.
그럼 저 열기구로 폭격하려 들었다간 진짜 하늘에서 폭사하는 경우가 수두룩하겠구먼.
비바람에 심지가 젖어서 못쓰게 되거나 도중에 불이 꺼져버리는 경우도 수두룩 할 테고.
아쉬워라.
"어쩔 수 없지요. 우선 공군 창군은 한참 뒤로 미뤄두겠습니다."
"···공군?"
이 또한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한 반응.
어안이 벙벙해진 마세나가 반신반의하며 내게 되물었다.
"농담이시지요?"
"아뇨, 진담입니다만. 우선 육군 소속의 정찰대로 편성한 다음 차차 역할을 늘려봅시다."
"···그, 파리의 꼴통들이 아주 염병을 할 텐데요."
"그럼 로마군에 편성하지요. 뭘."
이래 봬도 나름 원수다.
당연히 육군 원수일 거라고만 생각했더니 공화국 원수일 줄 누가 알았겠느냐마는 하여튼 내 직함 자체는 군 통수권자를 나타내는 것.
비행선 정찰부대를 정규 편성하기엔 프랑스 국민군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면 로마군에 편성하면 그만일 뿐이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누구도 여관집 아들, 마부의 아들이 군단장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 가령 마세나 당신 말이여.
"그런데 언젠가 사람이 하늘을 정복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당장은 정찰이나 간단한 파발 정도가 한계일 테지만, 그것만 해도 얼마나 많은 병사와 말과 수고를 아낄 수 있을까요. 공화국에 필요한 건 영웅 한 사람이 아니라 군인 아저씨 열 사람입니다."
통통.
"그리고 짜증 나는 기상나팔과 군내 나는 막사에서 깨어난 군인 아저씨들이 새벽부터 적과 맞서 싸울 용기를 내려면 생각보다 많은 준비물이 필요하지요."
가령 오늘 우리 점심 한끼를 책임질 이 병조림처럼 말이다.
이것만 해도 엄청난 성공이고 혁신이기야 하지만, 끝내 통조림 개발만큼은 기한에 맞추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다.
그냥 철통에 구겨 넣으면 되는 거지 뭐가 문제냐고 간단히 생각했더니 그러면 또 녹물이 새어 나와서 못 먹는 물건이 된다더라고.
끝내 통조림 따개를 고안한 위대한 기술자가 나오지 않아서 쌩 철통을 총검으로 쑤셔서 먹어야 하다 보니 군부에서 외면해버린 것도 컸고.
그래도 어떻게든 늦지 않게 병조림이라도 납품에 성공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2년 동안 펑펑 놀다가 뭘 혼자 전쟁 다 치른 양 잘난 척이냐는 소리나 들었을 거다.
저 병사들 입힐 옷가지에서 구두까지 치수별로 규격화 시켜서 의류공장에서 펑펑 찍어내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도 몰라보고 말이야.
내가 마담한테 아예 염료까지 보라색으로 통일시켜줄 수 없겠냐고 했다가 얼마나 까였는지 알아?
보라색 염료가 얼마나 비싼지 아냐고, 누군 흙 파서 장사하냐고 개같이 까이는 바람에 그냥 값싼 붉은색 염료에 프랑스군 제복 만드는데 쓰는 파란색 염료를 배합하느라고 편지를 몇 통을 주고받았는지 원.
흑흑, 선구자는 외롭구나.
[외롭기는. 아주 꿀이 떨어지더구만.]
입 닥쳐, 막시밀리앙.
"안 그렇습니까?"
깡-.
조금 전부터 마세나가 영 반응이 없길래 가볍게 병조림을 두드려 소리를 냈다.
음, 이 맑고 고운 소리.
역시 르블랑 씨의 유리공장에서 나온 거라 아주 튼튼하구먼.
그, 뭐더라.
[탄산나트륨.]
그래, 그 소다 대량 생산법이 아니었더라면 이 병조림도 지금처럼 대량납품할 수 없었겠지.
일단 병조림을 대량 생산하기 위한 보존식품 이전에 유리 단가가 나오지 않아서 진짜 소량만 생산한 다음 평소엔 아껴두다가 정 먹을 게 없을 때나 하나씩 까서 먹어야 했을 테니까.
당장 이 병조림이 대량 생산되고 식량 보급이 크게 개선되면서 우리 프랑스군의 약탈 빈도가 확 줄어들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뭐.
르블랑 씨 아니었으면 지금쯤 우리는 메뚜기 떼 취급이나 당하면서 굶어 죽지 않기 위하여 궐기한 농민 자경단과 사방에서 목숨을 건 혈투를 치르고 있었을 거다.
다시 퀴뇨 씨와 만나지 않았으면 마차철로를 깔아서 이 머나먼 전선까지 병조림을 속속 실어나르지 못했을거고.
그런 의미에서 내게 르블랑 씨를 소개해주고 퀴뇨 씨를 설득해준 마리 테레즈에겐 다시 한번 감사할 따름이다.
난 죽었다 깨어나도 소다 제조법의 가치를 깨닫지 못했을거고, 또 왕당파 퀴뇨 씨를 설득하지도 못했을테니까.
[어휴, 무식하긴.]
시꺼.
좌우지간 모두의 성원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또 이럴 거야?
"···하필이면 이 양반이 이러니까 사기를 치는 건지 선구안인 건지 도통 구분이 안 된단 말이야."
응?
마세나가 뭐라고 중얼거린 것 같은데.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뇨. 병조림 파스타 참 맛있겠다고요."
음, 누가 봐도 둘러대는 소리군.
하지만 이번에는 관대히 넘어가 주기로 하자.
어차피 이놈이 날 놀려먹은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괜히 귀담아들어봤자 내 정신건강에만 해가 되는 소리일 테니까.
"여하튼, 저 비행선 정찰부대는 제가 한번 건의해 보겠습니다."
단.
"위원장 동지 명의로."
"···그, 저기 전 이탈리아 반도면 몰라도 현 프랑스 정부 기준으로는 일단 군부와 무관계한 민간인입니다만."
"그러니까 참모부의 나보 놈한테 편지를 써보겠다고요."
아하.
그거라면 가능하겠네.
라파예트가 묵직하게 중심을 잡는 동안 뒤무리에가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수구꼴통을, 나보가 참모부다 증기 자동차라면서 이것저것 수혈을 시도하는 젊은 피 포지션을 가져갔으니 이래저래 균형도 맞을 테고.
"아니면 동지께서 직접 쓰시렵니까? 그게 여러모로 편하긴 합니다만."
"···예? 그 친구랑 남들 눈치 안 보고 편지를 주고받는 건 그리 흔하지 않은 기회일 텐데요."
모처럼 나폴레옹과 끈을 만들어둘 절호의 기회일 텐데 왜?
이해가 잘 가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거리자니 마세나가 코웃음을 치며 대꾸하길.
"꼴에 귀족이랍시고 군인이라는 놈이 자꾸 정치판에 얼씬거리는 게 아주 꼴 보기 싫어서."
[오···?]
···이건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대답인데.
그렇지만 공화국의 군인으로서는 정답이다.
"알겠습니다."
그런 이유에서라면 어쩔 수 없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다음 도로 하늘 높이 두둥실 날아오른 열기구를 올려다보았다.
"멀리 날았으면 좋겠군요."
저것보다 높이 날면 구름 아래가 보이지 않을 테니까.
"이미 멀리 날고 계십니다."
마세나가 대꾸했다.
나는 답하지 않았다.
휘이잉-.
과연, 시원한 바람이 새파란 도화지로 멀리 밀어주고 있었다.
***
네덜란드 공화국 암스테르담.
"글쎄,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공화국의 태양, 경애하는 영도자, 풍차혈통 빌럼 5세 판 오라녜나사우가 구레나룻을 비비 꼬며 비꼬았다.
"그리고 애당초 우리가 프랑스에 인도산 초석을 팔건 말건 대체 무슨 상관이오? 인도가 어디 당신네 전유물이던가? 우린 그저 모두가 득을 보는 거래를 했을 뿐이오만."
"하오나···!"
항의차 방문한 영국 공사가 언성을 높이려다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이 이상 억지를 부렸다간 정말로 네덜란드까지 적국으로 돌릴 판이라는 걸 눈치챈 것이다.
애당초 엄밀하게 말하여 네덜란드가 국제법을 어긴 건 아니었다.
네덜란드는 이번 전쟁에서 엄연히 중립국이었고, 중립국이 어디에서 어떤 물건을 사서 어떤 나라에 사고팔지야 국제법이 보장한 그들의 자유였으니까.
하물며 동인도회사가 무굴제국을 꼭두각시 삼고 있다지만 오늘날 인도에 무굴제국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령 마라타 동맹(मराठा साम्राज्य).
중부 인도의 패자로서 십수년 전 영국과의 전쟁에서 당당히 승리하고 지금도 친영파 라자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변함없는 성세를 누리고 있는 힌두교도들의 제국 또한 엄연히 존재했다.
그럼 네덜란드와 영국이 동맹관계인 것도 아니고, 전쟁 당사국은 더더욱 아니며 이번 전쟁과는 무관한 제삼자로서 그들만의 국익을 추구하는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우리 상부상조 좀 합시다."
빌럼 5세가 영국 공사를 향해 빙그레 미소지어보였다.
"진짜로 저 거대한 인도를 통째로 삼키셔야 성이 풀리시겠소? 이미 인도 아대륙의 절반 넘게 독차지하셨으면서 그 나머지와 거래하는 것까지 트집을 잡다니. 솔직히 좀 너무하시구려."
"큭, 그건···!"
"우리가 뭐 영토를 떼어달라던가, 아니면 무굴제국에 빼앗은 이권을 넘겨달라던가 한 것도 아니잖소."
차분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작작 좀 하시오."
풍차 혈통의 지엄한 경고에 그제야 공사는 꼬리를 말고 물러났다.
물론 그냥 얌전히 물러난 건 아니고, 편을 착각하지 말라던가 암스테르담을 한 번 더 불살라줘야 정신을 차리겠냐라든가 하는 은유를 곁들이긴 했지만-.
"흥,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보라지."
···물론 그냥 허세 부리는 거니까 진짜로 그러지는 말고.
그들도 지금 영국이 아직 이성을 잃지 않았다에 걸고 배짱 장사를 벌이는 거지 눈이 까뒤집힌 런던이 외교고 뭐고 대서양을 봉쇄하겠다고 설치기 시작하면 꼼짝없이 관짝에 들어가야 할 테니까.
그 뒤에 프랑스에서 좋아라하며 산송장이 된 네덜란드를 주워갈 거라는 걸 모르진 않을 테니 영국도 어지간하면 그러지는 않겠지만,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만큼 주의해야 해야만 했다.
모름지기 남의 불난 집에서 도둑질 할 때는 언제나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스러워야만 했으니.
"그래서, 이만하면 충분하겠나?"
"물론입니다, 총독 각하."
뚜벅.
그늘 속에서 해밀턴이 걸어 나오며 품위 있게 고개를 조아렸다.
"···흠."
유일한 불만이 있다면 공화국의 태양, 인민의 영도자, 풍차 혈통 빌럼 5세를 일국의 왕이 아니라 대통령처럼 대우하고 있다는 건데.
'뭐, 신대륙 촌놈이 그럼 그렇지.'
빌럼 5세는 이 촌놈의 무지를 관대하게 넘어가 주기로 했다.
뉴욕, 아니 뉴 암스테르담.
지난 2차 영란전쟁 당시 그 잠재력을 몰라본 조상님들 탓에 잃어버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다시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거라는 기대만으로도 이미 행복했으니까.
"혹시 잊었을까 봐 다시 말해두지만, 우린 자네들을 도우려는 게 아니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 감흥도 없는 척.
너무나도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린 척 가장하며 빌럼 5세가 덧붙였다.
"그저 저 런던 놈들의 기세를 조금이나마 꺾어두려는 거지."
"예. 그거면 충분합니다."
해밀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본은 흘러야만 합니다. 자본이 흐르고 물류가 흘러야 경제에 활력이 도는 법이니까요. 한데, 이제 와서 저 낡아빠진 스페인 식민제국이 런던의 빈자리를 메워줄 수 있을까요?"
"오, 땅이나 파먹고 사는 카스티야 촌놈들이 퍽이나."
빌럼 5세가 코웃음을 쳤다.
"그놈들은 돈의 ㄷ자도 모르는 멧돼지일세.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엄니로 우악스럽게 땅을 파헤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강도고, 약탈자지."
해밀턴은 대꾸하지 않았다.
풍차 혈통 또한 그 사실을 트집 잡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네덜란드인도 아닌 이에게 거무튀튀한 민족감정에 호응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례한 짓이기도 했고.
"그래서, 약속한 거래증서는?"
"여기 준비해 두었습니다."
척.
해밀턴이 품에서 금으로 멋지게 장식된 증서를 꺼내 보였다.
곧 로베스피에르와-보다 정확하게는 그의 정부와 거래관계임을 나타내는 거래증서였다.
"좋아, 아주 좋아."
빌럼 5세가 흡족한 미소를 떠올렸다.
비록 그 붉은 리슐리외와 직접 거래를 틀 수야 없더라도, 이렇게 직접적인 연줄을 만들어두면 훗날에 두고두고 그들 네덜란드의 안전을 보장받을 때 큰 도움이 되어줄 터.
아무렴 베갯머리 송사라는 말이 괜히 있던가?
어찌 보면 저 냉혈한과 직접 거래를 트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헤자부터 메우는 게 두고두고 보탬이 될지도 몰랐다.
안그래도 요근래 네덜란드의 외교정책은 프랑스에 맞설 믿을 수 있는 동맹을 찾는다기보다는 최대한 비위를 맞추는 거였으니까.
가령 저들이 말하는 민주화 요구에 따라 유산자들만의 민선의회를 확대하거나, 공화국 헌법을 제정하여 그간의 느슨한 연합을 연방제로 재편하는 등의 노력이 대표적이었다.
괜히 프랑스를 등에 업은 브뤼셀이 북 저지대 인민들을 해방 시키겠다며 전 국토를 불사르게 둘 바에야 그냥 내줄 건 내주면서 굴욕스러운 평화라도 취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물론 그만큼 검열이나 단속도 확대하고 있기야 하지만.
"그리고."
해밀턴이 품 안에서 또 다른 거래증서를 꺼냈다.
이번에는 다소 엉뚱하게도 미합중국 정부의 명의로 되어있는 거래증서였다.
"괜찮으시다면, 이 거래도 함께 받아주셨으면 합니다만."
완곡한 권유였다.
저 프랑스라면 모를까, 프랑스에 의지하여 간신히 숨통이 트인 신대륙의 신생국이 그들 네덜란드에 큰소리칠 처지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닌 말로 빌럼 5세가 이건 협의에 없지 않았냐고 망신을 주며 내쫓아도 절차상 문제는 없겠지만-.
"좋아, 그렇게 하지."
어차피 다 알면서 궁전에 들였던 것이었다.
그야 런던이 바보도 아니고, 네덜란드 혼자서 호박씨를 까는데 언제까지고 참아줄 리가 없잖은가.
기왕에 호박씨를 깔 거면 최대한 공범을 늘려야만 했고, 철천지원수 스페인과 협조할 수 없다면 이 대서양에서 끌어들일 수 있는 나라는 프랑스와 더불어서 단 두 곳뿐.
암스테르담은 런던이 지중해에 눈이 까뒤집힌 틈을 타 조금이라도 더 대서양에서 지분을 되찾아올 작정이었다.
'뭐, 러시아까지 참전한다는데 그리 쉽게 끝나진 않겠지.'
모르긴 몰라도 한 5년 정도는 안정권 아니겠는가.
아예 이참에 인도 아대륙의 마라타 동맹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카리브해의 서인도회사와 경제특구 루이지애나를 각기 연계하여 더욱 큰 그림을 그려보려던 암스테르담에게 뉴욕의 자발적인 합류는 기껍기만 할 따름이었다.
"모쪼록, 자네들이 우리처럼 물욕에 솔직한 친구들이길 바랄 뿐이네."
"아, 그거라면 걱정 없으실 겁니다."
해밀턴이 쓰게 웃었다.
"제가 아는 한 뉴욕은 금송아지의 도시니까요."
"훌륭하군."
그래야 뉴 암스테르담답지.
덥석.
빌럼 5세는 환히 웃으며 해밀턴과 손을 마주 잡았다.
그들의 앞날이 금빛으로 가득하기를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