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8화 (138/154)

프레임전

[아니, 오히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네.] 

공병장수가 당연하다고? 

[내가 아는 한 루스 농노들은 나무 움막에서 나무 수저로 귀리죽이나 먹고 사는 목기시대인일세. 그런 이들이 어디 평생 유리병을 구경이나 해봤겠나? 저들에겐 그냥 보석병으로 밖에는 안 보일 거야.] 

···그, 뻑킹 레이시즘은 좀. 

[이건 인종적 편견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하는걸세, 이 친구야. 수 세기 전만 해도 이 유럽대륙에서 유리는 엄연히 보석이었네. 유럽보다 수 세기 이상 문명이 뒤처진 저들에게도 당연히 마찬가지 아니겠나?] 

어,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렇네. 

"과연." 

보니까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 뒤무리에도 그렇고 저 전령도 그렇고 나름 짚이는 구석이 없지는 않은 눈치들이다. 

오히려 이들이 의아하게 여기고 있었던 건-. 

"그런데, 왜 벌써 약탈을 허락한 거지?" 

다름 아닌 이쪽. 

"이미 승리는 기정사실이라고 여기고 있는 건가? 아니면 벌써 통제를 잃어버린 건가." 

"그건 저희도 잘···." 

"뭐, 그렇겠지. 기대한 적도 없으니 대답할 필요 없네." 

제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듯한 뒤무리에가 이쪽을 돌아봤다. 

"우선 적 약탈부대가 더는 함부로 전선을 넘어올 수 없도록 총체적으로 방어선을 보강하겠습니다." 

다시 말해 적의 저의가 명백히 밝혀질 때까지 신중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것. 

화려함보다는 정석적인 전투를 장기로 하는 뒤무리에 다운 방침이었다. 

"혹시 그 밖에 달리 뭔가 지시사항이 있을는지요?" 

"아니, 뜻대로 하시게. 그거야 자네가 가장 잘 알 테니까." 

나름 공화국 원수니까 개입하려면 명분이야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렇다고 아무 때나 개입하면 콧수염 대마왕이랑 다를 게 뭐야. 

여기선 인간 뒤무리에가 아닌 군인 뒤무리에를 믿어보기로 하자. 

덜컥. 

자, 그럼 뒤무리에도 출격했고. 

이제 남은 건 우리 나름대로 이번 사태를 해석해 보는 건데. 

일단 우리답게 가보자고. 

지금 러시아 정치판은 어때? 

[갑자기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한창 여제가 쓰러지고 제위 계승 준비가 착착 이뤄지고 있잖아. 

이번 일이랑 연결 지을만한, 내가 모르는 정보 뭐 없어? 

[···흠, 정보라. 일단 여제와 황태자 사이가 엄청나게 나쁘다는 건 잘 알고 있지.] 

오호라, 그 둘의 사이가 안 좋아? 

[황태자가 진작에 계승 받아야 했을 제위를 여제가 가로챘으니까. 다른 봉건 왕조들이었다면 아비가 죽었을 때 물려받았겠지만, 어머니까지 죽고 난 다음에야 겨우 상속받을 판이니 그야 울화가 치밀겠지.] 

···엥? 

잠깐, 그건 좀 이상한데. 

혹시 예카테리나 대제는 친오빠나 동생이랑 결혼했던 거야? 

[그뭔씹.] 

아니, 그게 아니고서야 제위 계승 구도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 

예카테리나 여제가 황태자의 어머니라면서? 

그리고 다른 봉건왕조였다면 아비가 죽었을 때 제위를 계승 받았을 거라고 했고. 

그럼 이 두 사람은 부부라는 소리고, 다시 현 황태자의 부모라는 소리겠지? 

그런데 왜 남편이 죽었는데 그 아들이 아니라 부인에게 제위가 넘어간 건데? 

황태자랑 황태녀 부부였던 거야? 

[···그게 아니라 루스 차르국이 지명상속제라서 그런걸세.] 

지명 상속제? 

[그래, 루스에선 이론상 황실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지명을 받아 황제가 될 수 있네. 예카테리나의 경우에는 6촌 근친혼이라 귀족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남편으로부터 제위를 찬탈할 수 있었던 거고. 

그리고 여제는 이전부터 사이가 나쁜 아들 대신 손자에게 보위를 물려주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지. 이게 그냥 뜬 소문이 아니라면 또다시 눈 뜨고 보위를 빼앗길 판인 황태자는 지금쯤 속이 타들어 가고 있지 않겠나.] 

···음, 이제 대충 어떤 이야기인지 이해가 가네. 

그래서 저 수보로프라는 사령관은 황태자와 여제 중 어느 쪽? 

[그건 잘 모르겠네. 내가 아는 여제는 숱하게 정부를 갈아치우며 제 남성 편력을 정치에 이용한 바람둥이니까, 저 수보로프라는 친구가 여제의 성은을 입은 몸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높은 계급에 올라가 있겠지. 그러니 아마 여제의 사람은 아니겠지만-.] 

지만? 

[상식적으로, 황태자의 측근이라면 제위 계승을 눈앞에 둔 와중에 대륙 반대편으로 돌릴 리가 있나? 당연히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 두고 당장 근위군부터 장악하라고 했겠지.] 

아항. 

확실히 맞는 말이네. 

그럼 저 양반은 여제의 측근도 아니고, 황태자의 측근도 아니고 진짜로 제 실력과 군공만으로 야전원수까지 올라온 친구라는 건데. 

이게 사실이라면 제위 교체를 눈앞에 두고 사실상 내전 발발 직전일 러시아 국내에서 저 수보로프라는 친구의 입지는 굉장히 불안정할 거다. 

결국 어떤 파벌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건 유사시 기댈 언덕이 없다 내지는 그 자신이 또 다른 제거대상이다와 동의어니까. 

그리고 수보로프는 좌천당했거나 좌천을 자처했고, 그의 군대는 전장에 투입되는 즉시 러시아에선 보석병이나 다름없는 유리병을 사방에서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합리적인 추론은? 

[본국의 유력자들에게 선물 보따리를 보내고 있는 거군. 저 살벌한 국내정치로부터 제 가문과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딩동댕-! 

아휴, 개운하다. 

이제 좀 어떤 그림인지 보이기 시작하네. 

그래, 동유럽이나 중동이면 몰라도 이탈리아부터는 솔직히 러시아의 국운을 건 전장은 아니지. 

물론 우리가 폴란드에서 한바탕 신경을 긁어놨으니 보복하러 달려온 거겠지만, 그렇다고 이게 러시아의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전쟁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이탈리아에서 괜히 수만 대군을 잃어버리면 그거야말로 국운이 기우는 격. 

수보로프는 군인으로서 누구보다 이걸 잘 알고 있을 테고, 사보타주를 벌일 작정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피를 피로 씻는 소모전을 각오하고 이탈리아로 달려온 건 아닐 거다. 

그런데 지금 이탈리아에 딱 도착해서 전황 지도를 살펴보니 뭐다? 

사방팔방에 곰보처럼 해방구가 득시글거리는 게 이건 무조건 진흙탕으로 끌려가는 지옥길이다. 

과감한 공세를 펼치자니 해방구 때문에 툭하면 보급이 끊어질 판이고, 시간을 질질 끌자니 누군 전비가 썩어나는 줄 아냐고 본국에서 원정군을 독촉할 테고. 

그렇다고 합스부르크가 외국군을 해방구 토벌 작전에 끼워주진 않을테니 그냥 프랑스 전열 보병과 싸우려고 온 러시아군 입장에선 완전히 사기당한 격이지. 

그러니까 우리도 놀고만 있는 건 아니다, 적과 싸우고 있다-라는 증거로 일단 닥치는 대로 값비싼 유리병들을 약탈해서 본국에 보내고 있는 거다. 

그럼 이제 호주머니가 두둑해진 배불뚝이들이 원정군을 옹호해줄 테고, 그러고 나면 수보로프도 타지에서 국내 정치까지 신경 쓸 필요 없이 한결 편하게 지휘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땡-. 

"거기 계십니까?" 

호출용으로 설치한 작은 종을 울려 비서관을 불렀다. 

"병조림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 카자크 기병대가 나타나면 주민들에게 섣불리 저항하지 말고 유리용기를 양보하라는 지침을 내려주십시오." 

"···유리용기,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이군. 

나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대강 가늠해보기 전에는 이해가 안 갔으니까 당연하지만. 

"다만, 안전이 확보되고 나면 우리 병사들에게 루스인들이 왔다 갔음을 분명히 전해달라고 해주십시오. 최소한의 동선은 파악해야 할 테니까요." 

이렇게 하면 카자크 기병대로서는 구태여 민간인들을 해칠 이유가 없다. 

물론 진짜 재미로 괴롭히는 이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건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빨리빨리 이동해야 더욱 많은 유리병을 챙길 수 있을 텐데 괜히 시간을 끌어서 추격대에 붙들리는 바보짓이다. 

어차피 해방구의 주민들에게 저 유리병은 군정청과 거래하면 언제건 받아올 수 있는 물자에 불과하니 이렇게 지침까지 내려두면 러시아군이 내놓으라고 해봐야 대단한 저항도 없을테고. 

그러니 카자크 기병대는 유리병만 받아 챙기면서 끊임없이 이동할 거고, 이러면 하루에도 마을 몇 개를 들를 수 있다. 

그리고 신문에는 모조리 러시아군의 「습격」이라고 올라가겠지. 

그럼 그걸 받아서 읽는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이 야만스러운 루스 놈들이 하라는 전쟁은 안 하고 애꿎은 민간인만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실제 피해 규모는 한 줌이라도 지도상에 나타난 피해 보고사례는 광범위하다는 표현조차 모자를 지경일 테니까. 

다들 유리병만 챙기면서 이동했다고는 생각지 못할 테니 그 지도 삽화만 한장 넣어줘도 신문을 펼치자마자 아연실색하거나 분기탱천하거나 할 거다. 

저쪽에서 그런 게 아니라고 둘러대면 우리도 맞다고, 신문사에서 과장한거지 쟤넨 그냥 공병만 줍고 다닌거라고 대꾸해주면 되고. 

잔혹무도한 약탈자와 전장에 나와서 공병이나 모으고 다닌 땅그지. 

우리 루스키 친구들은 둘 중에 어느쪽 프레임이 더 마음에 드시려나? 

"네, 뭐···알겠습니다. 주민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니까요." 

끝까지 내 저의를 짐작하지 못한 듯 비서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떠나갔다. 

그거면 족했다. 

보자, 어느 찌라시가 가장 맛깔나게 저 훈족들을 까줄까? 

*** 

포강 전선. 

"···얘네들은 대체 뭐냐?" 

척. 

뮈라가 곤죽이 된 카자크 포로들을 창날 끝으로 가리키며 되물었다. 

"하다못해 뭉쳐라도 좀 다니던가, 이건 뭐 하자는 전개야? 얘네들 이미 전쟁 이겼냐? 뭐 벌써 전리품 챙기는 중이야?" 

"그, 글쎄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반응. 

그나마 머리가 돌아가는 부관들조차 이 모양이었으니 뇌 대신에 척수반사로 살아가는 뮈라가 뭘 어찌 알겠는가. 

처음에는 해방구들만 노리길래 그냥 위력정찰인가 보다 했고, 그다음에는 주민들에게 공포를 심어줘서 군정청과 거래를 끊게 만들려고 이러나 보다-했지만. 

"거참 골때리는 놈들일세." 

또 그렇다기엔 숫자가 너무 많았다. 

개별 습격부대는 많아야 대대 단위라지만 이걸 다 합하면 너끈히 기병연대, 아니 여단급 병력은 되어 보였으니까. 

이만한 대군이라면 산발적으로 습격할 게 아니라 아예 마을 전체를 포위해서 물샐틈없이 깡그리 토벌하여 본보기를 보이는 게 아군의 유격전을 견제하는데 더욱 효과적일 터. 

한데 이들은 마을 하나를 습격하여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다음 생존자가 남아있는지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고 바로 다음 마을로 이동하고 있으니 본보기라기엔 모자랐다. 

'무슨 마적 떼도 아니고.' 

···가만, 마적? 

"야야, 쟤네 뭐 털고 다녔는지 확인해봐." 

"어차피 먹을거나 입을 거 아닙니까? 아니면 금품이나." 

"까라면 깔 것이지 칵-. 지금 대장 말에 토 다는 거냐? 얼른 확인해보라니까." 

그럼 일상적인 폭력에 길들여진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뮈라를 제외한 일당은 쉴 새 없이 뭐라 구시렁거리면서도 대장의 명령에 따라 포로들의 속옷까지 남김없이 벗겨 약탈물자를 확인했고-. 

"···병?" 

온갖 금품들이나 식자재와 함께 등장한 산더미 같은 병조림 용기를 목격한 순간. 

"공병장수냐? 얘넨 이걸 대체 왜 챙긴 거야?" 

뭔가 으레 그렇듯이 마적들만 아는 좋은 정보가 돌았나 보다. 

나도 이참에 한몫 크게 잡을 수 있겠구나-하고 남몰래 희희낙락하고 있던 뮈라로서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들 프랑스에서도 유리가 그리 흔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약탈지에서 뭔 유리병을 챙긴다는 말인가? 

가지고 가는 동안 깨질지도 모르고 가방에서 깨졌다간 다른 약탈품들까지 훼손시키거나 자칫 저도 다칠지도 모르는데. 

이 마적 놈들은 약탈의 기본도 모르나 보다, 하고 넘겨짚던 찰나. 

"아···!" 

짝. 

때마침 그의 부관이 유레카를 외치며 손뼉을 쳤다. 

"대장, 얘네들 아무래도 용기 때문에 눈이 까뒤집힌 것 같습니다." 

"뭐? 고작 유리병이 왜?" 

"그거야 우리나 그렇죠. 움막에서 나무 수저로 귀리죽이나 퍼먹는 놈들이 유리병을 구경이나 해봤겠습니까? 얘네들한테는 보석병으로밖에는 안 보일걸요." 

"···그런가?" 

그제야 뮈라가 포로들을 뚫어지게 살피기 시작했다. 

과연. 

다른 금품이나 식자재를 압류당했을 때만 해도 애써 모른척하거나 바득바득 대들던 이들이 유리병을 압류당했을 때는 도통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혹여 금이라도 갈까 봐. 

떨어트려서 깨트리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눈치들이었다. 

"흐음-."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야,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병조림이 얼마나 있지?" 

휙. 

뮈라가 곁에 선 부관에게 냅다 유리용기를 집어던졌다. 

가까스로 받아내기야 했으나, 설령 깨트렸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았을 무신경함이었다. 

"너, 넉넉하게 보름은 먹을 수 있을 겁니다!" 

"잘됐네. 그거 몽땅 이 주변 마을들에 넘겨주고 먹을 것이랑 교환해와. 앞으로 우리 군량은 그거다." 

"···예?" 

부관이 어안이 벙벙해져서 다급하게 되물었다. 

"자, 잠깐만요 대장! 그게 갑자기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모조리 넘기라고요?!" 

"엉. 너도 어차피 병조림 먹기 싫어했잖아?" 

"아니, 그거야 그렇긴 한데···!" 

그러다가 비가 내리거나 해서 기껏 교환해온 식량들이 죄다 썩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보급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도 합리적인 판단이겠으나-. 

"일단 숫자가 늘어야 가치가 떨어질 거 아니야." 

마적의 관점에서 보면 달랐다. 

"그러니까 우리가 마구 공급해줘야지." 

그럼 가격이 싸진 만큼 한 번의 거래에 더욱 많은 유리병 용기를 사용하게 될 테니까. 

아무렴 뮈라는 요즈음 점령지나 해방구에서 이 유리병 용기를 일종의 대체화폐로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군정청에서도 이를 이용해 비교적 싼 가격에 필요한 물건을 들여오거나 노역에 동원하거나 하고 있다는 것도. 

그때는 이제 와서 유리병 몇 개에 반색할 만큼 돈이 궁한 것도 아니겠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지만-. 

'유리병에 환장하는 놈들이 있다면 이야기가 또 다르지.' 

이 경우 저 약탈자들이 유리용기의 가치가 일정 이하로 내려가지 않도록 유지해주는 안전장치가 된다. 

아무렴 저들이 이 근처에서 다른 쓸모 있는 것과 교환하려고 유리병을 약탈했을 리가 있는가? 

당연히 저 유리병들은 그 즉시 본국으로 이송되거나 아니면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저만 아는 비밀창고에 고이 저장될 거고, 이렇게 한몫 잡은 놈들이 늘어날수록 입소문이 돌면서 더욱 많은 이들이 약탈에 동참할 거다. 

그리고 이 유리병 용기 공급이 어느 순간 중단되거나 더는 그들에게 가치가 없을 때까지 반복되겠지. 

그게 한몫 잡을 건수가 생겼을 때 일반적인 마적들의 생리니까. 

하지만 이번엔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거다. 

이 병조림 용기는 공장에서 대량생산 된 군수물자고, 고작 약탈로 가득 채우기에 러시아는 너무도 거대한 나라니까. 

이번 전쟁이 끝나서 러시아군이 전면 철군하기 전까지는 이 선순환(?)이 끊어질 리가 없었다. 

"저것들도 죄다 돌려보내 줘." 

뮈라가 포로들을 손가락질하며 덧붙였다. 

"이 유리병도 한 사람씩 손에 들려서 한가득 선물로 보내주고." 

"···괜찮을까요?" 

이래서야 결국 습격을 권장하는 격인데. 

민중을 지켜야 할 혁명군이 거꾸로 위험에 빠트려도 되나? 

그런 의문이 서린 의혹이었으나. 

"괜찮아, 임마." 

우선 떡밥을 넉넉하게 챙겨줘야 나중에 풍어를 수확하는 거지. 

정말로 저 루스 놈들이 이 유리병 때문에 난리법석인거라면 한꺼번에 이만한 물량의 유리병을 푸는 즉시 군 기강이 아작날텐데. 

"대신에 수색대도 그만큼 늘리면 되는 거지. 애들한테 언제건 마을 근처에서 출격할 수 있게 대기하라고 전해." 

"그러다 천벌 받아요, 대장." 

"에헤이, 이놈이 부정 타게." 

뮈라가 부관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하아-. 

땅이 꺼지라고 한숨. 

"···수색대를 늘리기보다는 차라리 전서구나 봉화를 설치하시죠." 

이미 다 포기했다는 듯한 얼굴로 부관이 대꾸했다. 

"앞으로 얼마나 몰려올지도 모르는데 괜히 넓게 분산배치 하는 것보다야 거점에서 대기하다가 다 같이 출격하는 게 나을 겁니다. 대신에 마을 자경단이나 사령부에도 협력을 요청해놓고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지 뭐." 

뮈라가 낄낄대며 웃었다. 

변함없이 습격당할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었다. 

아마 누가 쳐들어오건 한 놈도 빠짐없이 제가 다 때려잡을 수 있다는 무한한 자신감인 거겠지만. 

"···이게 마적이지 무슨 장군이야." 

누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다행히 뮈라는 듣지 못한 모양이었고, 또 뒤늦게 이를 듣게 된 이들 또한 따로 고자질하진 않았다. 

그야 사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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