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바로이
이 세상의 전장에 나서서 다른 궁리에 빠져있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어디에 있을까.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그게 사랑이 되었건, 정치가 되었건, 재산싸움이 되었건, 무엇이 되었건 간에 마찬가지다.
오롯이 전쟁에만 집중해도 운 나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전장에서 다른 생각에 빠져있다는 것만큼 사치스러운 게 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정말로 목숨 아깝지 않은 놈이나 할 바보짓이고, 전장에 막 끌려와서 현실도피에 빠진 애송이나 할 짓이다.
그래, 그들도 모르진 않았다.
"우라질, 도대체 헤트만은 뭘 하는 거야?"
그렇지만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할 카자크 기병대장 이반 스코로파츠키는 바로 그 멍청한 짓에 빠져있었다.
아니,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그를 비롯한 카자크 지도자들 모두가 그러했다.
"다들 들었잖소. 흉년이라 그렇게 보내줘도 돈이 좀 모자랐다고."
"우리가 농노도 아닌데 뭔."
"보면 몰라? 또 곡물상 놈들이 바가지 씌웠겠지."
"애초에 그렇게 많은 보석 병을 보내줬는데도 돈이 모자란다는 게 말이 되나?"
말이 될 리가 없지.
루스의 생활 수준을 생각하면 그 하나하나가 같은 무게의 은 덩어리나 다름없었을 텐데.
그렇게나 많은 보석 병을 정겨운 고향 땅으로 보냈는데도 아직도 그들 자포리자 코사키의 자치를 되사기엔 역부족이라니.
그러면 뭐 진짜 흑해를 저 보석 병으로 가득 채워야지만 그들이 독립할 수 있겠는가?
"···그냥 사기당한 거 아니겠습니까?"
젊은 코사크 지도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솔직히 아시잖습니까. 지금 헤트만이 인제 와서 뭐가 아쉬워서 자치를 되사와요."
"에헤이, 어린 새끼가 어딜 어르신들 이야기하는데 끼려고."
"그러게, 애새끼 취급 좀 하지 마시라니까요. 그리고 제 말이 틀렸습니까? 예? 과학 아카데미 학장까지 한 놈이 인제 와서 뭣 하러 루스랑 척을 져요. 그냥 충신 소리 들으면서 떵떵거리며 살고 말지!"
"아니 이놈이 그래도!"
철썩!
당장에 사방에서 따귀가, 아니 채찍이 날아들었다.
감히 공동체의 규율을 깬 무법자를 향한 지당한 징벌이었다.
철썩철썩!
그렇지만 진정 그게 전부인가.
고작 말 한마디 잘못 끼어들었다고 사람을 피떡이 되도록 채찍으로 후려치는 게 그리도 당연한 일이었는가.
아니, 그렇지 않았다.
제아무리 그들 자포리자 코사키가 루스인들에게조차 야만인이라 멸시받는다지만 그렇다고 합당한 이유도 없이 동포를 해치는 미치광이는 아니었다.
결국, 그들도 내심 알고 있던 것이다.
이제와서 저 보석 병으로 자치를 되사온다는 건 애당초 가능성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사기극이었다고.
그들은 모두 그 저열한 매국노이자 차리나의 충신에게 속았던 거라고.
그놈은 처음부터 우크라이나의 헤트만이 아니라 러시아의 총독이었다고.
"그만."
이반이 피떡이 된 젊은 지도자와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씩씩대고 있는 늙은이들을 억지로 떼어놓았다.
"그래서 기분은 풀렸나? 분풀이하면 뭐가 달라지지? 애꿎은 동포나 괴롭히면 보석 병이 돌아오기라도 하냐는 말이야."
"···하지만 대장."
"됐으니까 자리로 돌아가게. 저 아이도 치료해주고. 적들이 마중 나왔다잖은가. 슬슬 또 일해야지."
참으로 합당한 명령이었다.
그렇지만 그들 중 누구도 선뜻 발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차라리 희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면.
그래, 예전처럼 어떻게든 차르의 눈에 들어서 출세하는 게 그들 족속을 위하는 유일무이한 길이었다면 차라리 이런 탈력감도 없었으련만.
잠시나마 자치를 되사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손에 잡힐 듯하다가 도로 이렇게 멀어져가니 그 탈력감이 참으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폴란드는 고향 땅과 가깝기라도 했지, 여기 이탈리아는 정말로 그들 자포리자 코사키와 연관관계라고는 하나도 없는 땅이었으니.
'대체 왜 우릴 바르바로이 취급이나 하는 놈들을 위해 죽어야 하지?'
그게 루스인이 되었건, 게르만 놈이 되었건 간에.
누구나 한 번쯤 자문해보았고, 유감스럽게도 그때 자아로부터 만족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는 코사키를 이반은 지금껏 본 적 없었다.
그러니까 그놈의 보석병에 희망을 걸었던 것인데, 그 희망마저 사기극이었다는게 드러났으니.
"···엿같군."
그냥 보드카나 진탕 마시고 취해버려야 하나.
그럼 하다못해 아무 생각 없이 싸우다가 죽을 수 있을 텐데.
형제들과 함께 말 등에 올라 적들이 나타났다는 방향으로 말을 몰면서도 이반은 도저히 이런저런 잡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이 잡생각이 이번 전쟁보다 훨씬 중요했으니까.
폴란드 놈들도 앗아가지 못했던 그들 자포리자 코사키의 자유를 앗아가려는 루스 압제자들을 위해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 총칼을 겨눠야 할 운명이라니.
참으로 기구한 팔자 아닌가.
"저기 적 똘마니들이 보입니다!"
"옹냐."
때마침 저 너머에 적 호송대가 보였다.
나름 나팔도 불고 이것저것 야단법석을 떠는 게 그들도 뒤늦게나마 자포리자 코사키를 발견한 모양이었지만.
"미안하지만 이미 늦었다."
저 굼벵이 같은 짐마차들이 무슨 수로 질풍처럼 날쌘 코사키를 당해내겠는가.
언제나처럼 한번에서 두 번 정도 휩쓸고, 적 기병대가 아직 도착하기 전에 빠져나가면 되겠지.
유리병 소동이 사기극이었다는게 밝혀진 이상 이제 와 약탈품에 연연할 필요도 없을 테고.
뿌우-.
있는 힘껏 돌격 나팔을 불며 대열을 갖추려는데.
"···응?"
거리가 점차 가까워질수록 어딘가 이상한 점이 나타났다.
그도 그럴게, 어디에도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 주위가 소란스러워지면 군마에 비하여 이런 상황에 대비한 훈련이 덜 된 짐말들이 지르는 비명이 들려야 하는데.
오히려 들리는 소리라곤.
부르릉-.
그래, 온통 저 불쾌한 쇳소리뿐.
난생처음 듣는 이 요란한 소음에 이반과 형제들이 저마다 눈살을 찌푸리던 찰나.
부웅-!
"어, 어?!"
돌연, 짐마차가 선회하여 그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니, 달려드는 게 아니라 도망치려 한 건가?
하지만 진정 놀라운 건 그게 아니었다.
그들을 진정 놀라게 만든 건.
"없다···!"
짐말이 없다.
보이는 거라고는 온통 마차와 마부뿐.
불쾌하고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는 고철 덩어리가 달리는 말보단 느리게, 그러나 사람보단 빠르게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 어디에도 저 쇳덩어리를 움직이게 할 가축은 보이지 않았음에도!
"귀, 귀신 들린 마차다!!!"
"주술사다! 적들이 주술을 부린다!"
"염병할! 그게 대체 뭔 개소리야?!"
겁에 질린 이반이 그럼에도 정신 차리라며 신경질적인 고함을 질러봤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조금 전까지 용감무쌍하게 적 호송대를 향해 돌격하던 형제들은 이미 창백하게 질려서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려고 있었다.
자고로 모든 공포 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무지로부터 오는 공포였으니.
푸르륵!
말들조차 생전 구경해보지 못한 초자연적인 현상과 이상한 소음에 놀라 날뛰는 와중 냉정을 지킬 수 있는 코사키는 없었다.
결국 돌격대형이 무너지고, 다들 짐마차를 피해 좌우로 선회하자.
우지끈-!
마침내 귀신 들린 마차와 부딪힌 운이 나쁜 형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분명 의도해서 부딪힌 건 아니었다.
적들도 마차를 몰다가도 진짜로 부딪히려고 하면 기를 쓰고 피하려 들었으니까.
워낙에 많은 기병들이 그것도 전력 질주로 달리다 보니 운이 나쁘게 교통사고가 일어난 것에 가까웠다.
푸쉬익-.
그러면 귀신 들린 짐마차들은 대부분 희생양에 만족한 듯 또다시 끔찍한 소음을 내며 제 자리에 멈춰 섰으나.
콰콰쾅!
아주 극히 드물게는 느닷없이 폭발하기도 했다.
마치 피의 공물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듯이.
"히이익, 힉!"
한데 그 공포야 두말해 무엇하겠는가.
운이 나쁘게 저 귀신 들린 마차와 가까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산산조각이 난 형제들을 목격한 코사키들은 더는 집단으로서 통일된 행동을 보여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그들의 상식에서는 이교도 주술사의 사특한 주술 외에는 도저히 이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무렴 도대체 어떻게 말도 없이 마차가 굴러간다는 말인가?
그리고 기병과 정면충돌했다고 마차가 폭발한다니, 무슨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으로 끌고 가고야 말겠다는 사악한 마귀라도 깃들었다는 말인가?
"모두 도망쳐!"
"악에서 구하시옵고! 제발 악에서 구하시옵고!"
"우라질, 제발 좀 진정해!"
"어허엉! 엉, 엉-!"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나마 대장으로서의 책임감 덕택에 무지로부터 온 공포에 맞서는 데 성공한 이반 정도나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 이미 코사키들은 당초의 목적을 잊어버린 채 갓난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사람이야 어떻게 해서던 잔인하게 죽이면 그만이지만 손에 잡히지도 않는 요술이나 마귀는 당해낼 도리가 없었으니.
뿌우우-!
"이런 우라질···!"
때마침 저 너머에서 익숙한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곧 그들의 숙적 폴란드 놈들이 쓰는 나팔이었다.
왜 하필이면 이 머나먼 이탈리아에 저놈들이 나타났는지.
궁금한 것도 묻고 싶은 것도 한둘이 아니었지만, 이것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모두 후퇴! 후퇴하라-!"
뿌우우-!
이런 상태로 저놈들과 맞서 싸울 수야 없다.
애초에 마주치지 않는 게 최선이었고, 마주쳤으면 만전의 상황이었어야만 했다.
결국 이반은 혼란한 와중 적들에게 난도질당하는 형제들을 뒤로한 채 그나마 맨정신을 유지한 형제들과 함께 후퇴했고.
"볼로냐는 이만 포기 한다."
"예?"
군영으로 돌아온 즉시 지도자 회의를 소집해 선언했다.
"아니 잠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고작 한번 패했을 뿐-."
"···놈들이 요술을 부리고 있다."
이반이 조급한 듯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말도 없는데 마차가 굴러갔다고?"
"그게···말이 되나?"
"사실이다. 나도 똑똑히 봤어."
"미친놈들. 아무리 전쟁이라지만 마귀를 불러들이다니···!"
처음에는 누구도 믿지 못했다.
그러나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전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그 귀신 들린 마차를 목격하였음을 증언하기 시작하자 삽시간의 군영에 동요가 번지기 시작했고-.
"일단 물러나서 상황을 보시죠."
"그래."
누구나 짠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프랑스 놈들이랑 싸우러 왔지, 귀신 잡으려고 왔나."
아닌 말로 적들이 또 어떤 요술을 부릴지 아무도 모르는 건데.
차라리 육신의 죽음이라면 달게 받아들여도 영혼까지 고통받을지 모르는 요술을 부리는 적과 싸울 순 없었다.
그것도 그들을 야만인이라 무시하고, 자유를 앗아간 이들을 위하여.
'···아니, 이쪽이 진짜인가?'
처음부터 이 전쟁에서 도망치기 위한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을 뿐인가?
문득, 이반은 또다시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면으로부턴 어떠한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반은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는 듯했다.
***
신성동맹 군영.
"이 미개한 놈들이 또···."
수보로프가 지끈거려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도저히 못 싸우겠다, 이건가? 고작 증기자동차와 마주쳤다고?"
"예, 그게-."
"아니, 말하지 않아도 충분하네."
보나마나 안 그래도 싸우기 싫었는데 좋은 핑곗거리가 생긴 것뿐일 테니까.
일찍이 예카테리나 여제가 시치(Sicz)를 해체하여 자포리자 코사키를 직할령으로 삼았던 전적을 알고 있던 수보로프에겐 너무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전개였다.
물론 정말로 미신에 빠져든 이도 적지는 않을 거다.
당장 그들 루스 농노 중에도 똑같은 상황에 부닥친다면 오줌을 지리면서 갓난아이처럼 엉엉 울어 젖힐 이들이 수두룩하니 카자크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겠지.
그렇지만 뻔히 이 세상에 요술 따윈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지도자들까지 동조했다는 건-.
'이놈들이 누굴 침몰선으로 보고 있는 건가.'
하여간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라고.
변경 우크라이나 놈들 아니랄까 봐 그냥 다 압수할 수 있었던 걸 일부나마 고향으로 가져갈 수 있게 해줬더니만.
카자크라고 자포리자 코사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껏 큰 사고 없이 얌전히 그를 따르는 돈 카자크 부대도 있으니 정말 사기가 바닥을 쳐서 전투 불능 상태일 수도 있겠으나-.
"알겠으니까 적들이 더 넘어오지나 못하게 만들라고 전하게."
수보로프의 육감은 그런 게 아닐 거라고 분명히 경고해오고 있었다.
명백한 반역의 징후.
새로운 차르께도 지금 당장 소식을 전해드려야 할까?
아니면 혹여 정말로 일을 그르쳤을 때를 대비하여 아껴둘까.
"계획을 수정하겠네."
늙은 원수의 선택은 후자였다.
정말로 태업을 벌이고 있다는 증거도 없거니와, 섣불리 저들을 의심하고 있다는 징후를 보여줬다간 진짜로 공세 와중 검을 거꾸로 쥘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라벤나에서 결전을 치르겠다."
"예···? 한시라도 빨리 남하해야 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러면 이대로 보급도 없이 포위되어야 만족하겠는가?"
애당초 그들의 계획에는 산마리노를 공략하던 마세나가 북상할 수 있을 거라는 가정은 없었다.
당장 사방에서 반전 여론이 폭발하는 와중에 급조된 공세 계획이기도 했거니와, 상식적으로 좁다란 산길을 지키던 아군 부대가 이들을 붙잡아두거나 하다못해 속력을 낼 수 없도록 유격전이라도 펼쳐줄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기대와는 달리 아군은 마세나가 회군하는 동안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겁을 집어먹은 거다, 그냥 무능한 거 다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수보로프가 보기에 가장 큰 가능성은 그냥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아군이 생각보다 적었다, 였다.
그야 봉건주의를 핑계 삼은 반전주의 여론전에 시달린 건 그들만이 아닐 테니까.
이런 식의 동요도 항복 협상을 논의 중이거나 이미 화친한 남쪽이 더했고, 결국 좁다란 산길목을 틀어막고 농성할 병력은 있었지만, 적들을 붙잡아둘 병력까진 없었다는 합리적인 추론.
그렇다면.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라벤나를 함락시켜야만 하네."
어차피 해상보급에 의존하기로 했으니 적들이 먼저 항구를 차지한 이상 한 번쯤 회전을 각오해야 했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서 결과물이 썩 만족스럽지 않다면 아직 그렇게 멀리 나오진 않았으니 그대로 배를 타거나 볼로냐 외곽에 진을 친 카자크인들과 합류하여서 후퇴하면 되고, 명백한 승리라면 계속 남하하면 된다.
반대로 패한다면?
저 미신에 빠진 카자크인들의 소극적인 움직임 때문에 무리한 결전에 나섰다고 둘러대면 된다.
어느 쪽이건 말은 되니까.
"우리의 적들은 우리를 사악무도한 바르바로이라고 부르더군."
수보로프가 뒷짐을 지며 그의 루스인 참모들을 돌아보았다.
"그렇다면 이 라벤나에서의 결전 또한 하느님이 점지해주신 운명 아니겠는가."
서로마제국을 끝내 멸망시킨 게르만인 장군 오도아케르.
그와 서로마 제국군 최후의 결전이 벌어졌던 곳이 바로 이곳 라벤나니까.
기실 적들의 선전이 사실임을 시인하는 격이나 다름없었으나.
"제군들."
루스인들은 추호도 동요하지 않았다.
저 나약한 서구인들의 바르바로이 취급이라면 진즉에 익숙해졌기에.
소위 문명인들이 경멸이 아닌 증오와 두려움을 담아서 부르는 바르바로이라면 오히려 기껍기까지 했다.
"이번에도 우리가 이길걸세."
지난날 오도아케르가 이끄는 바르바로이 군단이 라벤나에서 최후의 서로마군을 격멸시켰듯이.
개전사라면 그거면 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