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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심야의 밀회 (6/208)

6화. 심야의 밀회2020.05.21.

16562796284375.jpg“린 씨……?”

레나가 속삭이는 순간 구름이 달을 뱉었다. 희미한 달빛이 청년의 단아한 얼굴을 비추었다. 린이었다. 레나의 날 선 눈이 그를 향해 풀어졌고, 린은 붙잡았던 레나의 팔목을 놓아주었다. 풀려난 레나가 짐짓 심각하게 중얼댔다.

16562796284375.jpg“깜빡 두고 왔어요.”

16562796284385.jpg“뭘?”

16562796284375.jpg“안전장치요.”

접근하면 단검으로 찌르랬지. 소리 없는 접근에 놀랐던 레나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에 린은 뻐근한 손목을 돌리며 중얼댔다.

16562796284385.jpg“굳이 없어도 될 것 같던데.”

16562796284375.jpg“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16562796284385.jpg“아무것도…….”

레나가 추궁하자 린은 어물쩍 입을 닫았다. 그의 딴청에 레나는 실소를 터트렸다. 그러곤 한결 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16562796284375.jpg“생각보다 금방 만났네요.”

16562796284385.jpg“그러게.”

황궁에서 만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바로 마주칠 줄이야. 레나와 린은 서로를 솔직히 반가워했다. 그리고 레나는 어렴풋이 보이는 린의 모습에 주목했다.

16562796284375.jpg“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네요?”

레나가 린의 머리와 옷을 살펴보며 말했다. 그의 모습은 며칠 전과 딴판이었다. 더벅머리는 깔끔하게 빗어 넘겼고, 낡은 망토 대신 수가 놓인 코트를 걸쳤다. 게다가 안으론 새틴 재질의 고급 블라우스가 보였다. 떠돌이 방랑자 같던 청년이 귀공자가 되어 나타났다. 목소리를 먼저 듣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레나가 그 모습을 신기해하자 린은 머쓱하게 대답했다.

16562796284385.jpg“여긴 황궁이니까.”

16562796284375.jpg“여기 사람이라고 다 그렇게 입진 않던데.”

레나가 굳이 짚어내자, 린은 난처한 듯 말을 돌렸다.

16562796284385.jpg“산책 중이야?”

16562796284375.jpg“네. 린 씨는요?”

16562796284385.jpg“나도…….”

린은 느리게 대답하며 망설였다. 반가운 마음에 대뜸 다가오긴 했지만, 막상 마주하니 어떤 얘길 꺼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아도 쉽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뜸을 들이는데, 문득 레나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16562796284385.jpg‘또 잠옷이네.’

그는 오늘도 잠옷 차림인 숙녀를 바라보다가, 넌지시 되물었다.

16562796284385.jpg“춥지 않아?”

갑작스런 물음에 레나는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자신의 어깨를 살며시 쓸었다.

16562796284375.jpg“조금요.”

춥기는커녕 약 때문에 열이 오르지만, 아닌 척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러자 그가 주섬주섬 겉옷을 벗었다. 이윽고 린의 코트가 레나의 어깨에 걸쳐졌고, 그것은 그럭저럭 함께 걸을 핑계가 되었다.

16562796284375.jpg‘착하긴.’

레나는 몰래 웃으며 린의 외투 자락을 여몄다. 옷에 담긴 체온이 몸을 감싸는 게 느껴졌다. 낯선 향기가 번지는 건 그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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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나는 따스함을 느끼며, 린의 옆얼굴을 살짝 훔쳐보았다. 그는 다정했다. 배려를 빌미로 집적대지 않고, 순수한 선의로 사람을 대했다. 복잡한 악의로 독을 들이켰던 레나는 그의 친절이 퍽 반가웠다. 위로가 필요한 심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따뜻해서 좋았다. 레나가 훈훈한 마음으로 걸음을 뗄 때였다.

16562796284385.jpg“아버지는 잘 만났어?”

모처럼 기분전환을 하고 있었는데. 다시 아버지 얘기가 나오자 레나는 쓰게 웃었다.

16562796284375.jpg“질문이에요? 아니면 확인?”

16562796284385.jpg“만났다는 얘기 들었어.”

16562796284375.jpg“어디까지?”

16562796284385.jpg“문전박대당했다는 것까지.”

16562796284375.jpg“거의 다 들으셨네요.”

독에 대한 것만 빼고.

16562796284375.jpg“황궁에선 말에 날개가 돋친다더니, 정말인가 봐요.”

레나의 자조에 린은 몰래 생각했다. 후작을 대놓고 찾아간 의도가 궁금했는데, 황궁의 생태를 몰라서 그런 건 아닌 모양이라고. 그렇다면 뭘까?

16562796284385.jpg“당신 정말 레나 루벨이야?”

16562796284375.jpg“네?”

16562796284385.jpg“정말 병으로 죽은 후작의 딸이냐고.”

16562796284375.jpg“병으로 죽진 않았지만, 루벨 각하가 제 아버지인 건 맞아요.”

장난스러운 대답에 린의 의구심은 더 깊어졌다. 이 말이 사실이면 묘한 상황이다. 루벨은 멀쩡한 딸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 딸은 수년 만에 아버지를 찾아왔다. 세상의 이목이 쏠린 황궁으로, 심지어 건국기념일을 앞두고. 그러니까 아주 보란 듯이, 작정하고 찾아온 거다.

16562796284385.jpg‘너무 위험한데.’

루벨은 갑자기 나타난 레나가 퍽 부담스러울 거다. 하지만 그건 레나도 마찬가지. 루벨은 북부의 주요 인사. 그런 거물에게 추문을 덮어씌운들 흠집이나 낼 수 있을까? 흠집은 둘째 치고, 함부로 돌을 던졌다간 산사태에 휩쓸릴지도 모른다.

16562796284385.jpg“루벨은 왜 만나려는 거야?”

16562796284375.jpg“린 씨는 제 일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자기 얘긴 하나도 안 하면서.”

린이 걱정스럽게 묻자, 레나의 미소가 피로해졌다. 레나는 이 청년의 착함이 좋았다. 하지만 참견이 과한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레나는 이 화제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입을 다물게 할 목적으로 넌지시 찔렀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16562796284385.jpg“난 동부 소속이야.”

린이 덤덤히 고백했다. 레나는 이제 와서 무슨 소린가 하다가, 이어진 해명에 할 말을 잃었다.

16562796284385.jpg“진작 말 안 한 건 당신이 루벨의 딸이라고 해서.”

뜻밖의 말에 웃음기로 가늘었던 레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린은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16562796284385.jpg“내가 동부 소속인 걸 알면 불편해할 줄 알았어. 의미 없는 짓이었지만, 그땐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으니까.”

동부와 북부가 앙숙인 건 제국민 모두가 아는 사실. 그래서 린은 루벨 후작의 딸이라 주장하는 레나에게 정체를 밝힐 수 없었다. 당장 갈 곳 없는 처지에 아버지의 숙적과 만난 걸 알면 더 곤란해할까 봐. 그리고 린의 설명에 레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레나는 린이 정체를 숨긴 것을 단순한 무례로 치부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배려였다니.

16562796284375.jpg“린 씨는 정말…….”

레나는 얼이 빠져 중얼대다가, 이내 못 당하겠다는 듯 웃었다. 그러곤 별수 없이 털어놓았다.

16562796284375.jpg“저는 존재하고 싶어서요.”

16562796284385.jpg“음?”

16562796284375.jpg“아버지를 만나려는 이유 말이에요.”

결국 레나는 항복하는 마음으로 앞선 물음에 답했다.

16562796284375.jpg“린 씨도 아까 그러셨잖아요. 병으로 죽은 후작의 딸이냐고. 저는 지금 그런 존재예요. 세상에서 깨끗이 지워진, 살아 있는 게 이상한, 죽은 게 더 당연한.”

레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 의지대로 움직였다. 소소한 움직임이지만, 레나는 그것을 통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다시 확인했다. 동시에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야하는 처지를 비웃었다.

16562796284375.jpg“그래서 아버지한테 책임지게 하려고 왔어요.”

16562796284385.jpg“책임?”

16562796284375.jpg“당신이 지우셨으니 당신이 다시 되돌려 놓으라고요.”

레나는 담담히 웃더니, 가볍게 덧붙였다.

16562796284375.jpg“그런데 책임을 묻기는커녕, 아직 만나지도 못했네요.”

초연하게 말한 건데 린은 그걸 처연하게 들었다. 그래서 조심히 되물었다.

16562796284385.jpg“돌려줄까?”

16562796284375.jpg“네?”

16562796284385.jpg“당신이 찾은 제단. 그게 있으면 루벨이 만나줄지도.”

16562796284375.jpg“제가 양보한 걸 다시 돌려주겠다고요?”

레나가 웃으며 되묻자 린은 기꺼이 끄덕였다. 레나는 그가 진심인 걸 깨닫고 더 짙게 웃었다.

16562796284375.jpg“제안은 감사하지만 괜찮아요. 저는 아버지가 절 반겨주셨으면 하거든요. 다른 무언가가 아니라.”

레나의 단호한 대답에, 린은 달빛이 내린 그의 옆얼굴을 슬쩍 바라보았다. 신기했다. 다정한 사람은 무른 법이고 강한 사람은 냉랭하기 마련인데. 이 숙녀는 부드럽고도 견고했다. 고작 두 번의 만남으로 다 안다고 할 순 없지만, 단 두 번의 만남으로도 충분히 감명 깊은 아가씨였다. 린은 그의 면면이 이채로워 저도 모르게 중얼댔다.

16562796284385.jpg“강하네, 당신.”

16562796284375.jpg“린 씨는 예뻐요.”

그리고 돌아온 반격에 신음했다. 린이 질색하며 바라보자, 레나는 도리어 방긋 웃어 그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결국 린은 괜히 헛기침을 하고서 말을 돌렸다.

16562796284385.jpg“만약 후작이 거부하면 동부로 와.”

16562796284375.jpg“가면요?”

16562796284385.jpg“걸맞게 대우할게.”

16562796284375.jpg“재밌네요.”

16562796284385.jpg“뭐가?”

16562796284375.jpg“린 씨요. 혼자 제단을 찾아다녀서 말단인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생각보다 높은 분이시라.”

뜻밖의 제안에, 레나가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16562796284375.jpg“다음에 뵈면 공작 저하라고 불러야 할까요?”

레나가 걸음을 멈추며, 덩달아 멈춰선 린에게 물었다. 아까까진 긴가민가했는데 이제 확실해졌다. 며칠 전 린을 만났을 땐 그를 황실의 심부름꾼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제단을 수거하기 위해 파견된 기사 정도. 하지만 오늘 보니 아니었다. 최상급의 의복, 후작을 하대하는 태도, 그리고 동부를 대표하는 언행까지. 동부의 젊은 공작에 대해선 레나도 들은 바가 있었다. 레나의 간파에 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숨길 마음은 없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알아챌 줄은 몰랐다.

16562796284385.jpg“사람들 앞에선 그래야겠지.”

사람들 앞에선? 레나는 묘한 단서라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16562796284375.jpg“궁금한 게 있어요.”

16562796284385.jpg“어떤?”

16562796284375.jpg“린 씨는…….”

레나는 일부러 린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린은 무던히 바라보았고, 레나는 계속 이렇게 부르기로 결심했다.

16562796284375.jpg“린 씨는 왜 혼자 다니셨어요? 제단을 찾을 때요.”

16562796284385.jpg“그게 가장 조용하고 빠르니까.”

가장 확실하고, 또 안전하니까. 그리고 필요했으니까. 린에겐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두 가지만 말하고 나머지는 숨겼다. 하지만 레나는 그가 숨긴 것 중 일부를 눈치채고 초승달처럼 웃었다.

16562796284375.jpg“동부의 기사님들도 고생이 많겠네요. 발로 뛰는 공작 저하를 모셔야 한다니.”

16562796284385.jpg“별로 안 그래. 안심하고 와.”

레나의 장난스러운 말에 린은 힘없이 웃으며 부정했다. 진심이었다. 동부의 주인은 실력과 여유, 품위, 그리고 매력까지 갖춘 이 숙녀가 탐났다. 그래서 넌지시 일렀지만, 레나는 고민도 않고 거절했다.

16562796284375.jpg“제안은 감사하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16562796284385.jpg“왜?”

16562796284375.jpg“할 일이 있거든요. 아니면 린 씨가 저한테 오실래요? 예쁜 린 씨라면 언제든 환영이에요.”

레나의 역제안에 린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린은 진심인가 싶어 레나를 바라보았다. 숙녀는 태연히 마주 보았고, 그 배짱에 린은 결국 실소를 터트렸다.

16562796284385.jpg“당신은 정말…….”

린은 얼이 빠져 중얼대다가, 이내 못 당하겠다는 듯 웃었다. 누구에게도 밝힌 적 없지만, 그에게 ‘리그난 아이테르너’라는 이름은 떨칠 수 없는 짐이었다. 그래서 ‘린’으로 만난 레나에게 정체를 선뜻 드러낼 수 없었다. 그럼 린은 리그난 아이테르너의 이름에 짓눌려 사라질 테니까. 그런데 웬걸, 레나는 그걸 가볍게 무시했다. 심지어 원하면 거두어주겠노라 한다.

16562796284385.jpg‘대범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거웠다.

16562796284385.jpg“생각해볼게.”

린은 기분 좋게 대답했다. 숙녀는 선심 쓰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게 청년을 더 웃게 만들었다. 가볍게 시작한 산책이 예정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 . . 헤어질 시간이 되자, 린이 작별인사 전에 물었다.

16562796284385.jpg“다음에 만나면 뭐라고 부르지?”

16562796284375.jpg“저하께서 절 부르실 일이 있을까요?”

레나의 장난에 린은 쓰게 웃었다. 그 말이 농담만은 아니어서. 레나는 서운해하는 린을 보고 말을 바꿨다.

16562796284375.jpg“사람들 앞에선 레이디, 지금처럼 둘일 땐 이름을 불러주세요. 레나라고.”

린은 알겠다고 대답하는 대신, 호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16562796284385.jpg“밤엔 바람 쐬러 자주 나오는 편이야.”

16562796284375.jpg“네?”

16562796284385.jpg“그냥, 그렇다고.”

린은 여상히 시선을 피한 채 말했고, 레나는 그 의미를 헤아리다가 아랫입술을 물었다.

16562796284375.jpg“우연이네요.”

레나는 웃음을 꼭 삼키며, 린처럼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16562796284375.jpg“저도 밤 산책을 좋아하거든요.”

  *** 동이 트며 하늘 가득 햇살이 비쳤다. 그 이른 새벽, 루벨 가의 집사는 썩은 고목처럼 창가에 앉아 있었다.

16562796509228.jpg‘지금쯤이면 끝났겠지.’

뜬눈으로 밤을 새운 집사가 탄식했다. 천년 같이 긴 밤이었다. 어떤 비보가 날아올지 몰라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걱정이 깊었으나 다행히 지난밤은 평온했다. 어느 숙녀가 밤중에 위독했는데 고비를 넘겼다거나, 일찍 발견해 목숨은 건졌다는 소식은 없었다. 예정대로 고요히 숨을 거둔 모양이었다.

16562796509228.jpg‘슬슬 움직여야…….’

집사는 시계를 보며 뻐근한 몸을 일으켰다. 이제 뒷수습을 해야 했다. 황궁에서의 죽음이니 조용히 은폐하는 것은 불가능. 그 숙녀가 루벨 후작에게 접촉을 시도한 것 역시 숨길 수 없다. 정황상 사람들은 후작을 의심할 것이다. 의심은 막을 수 없지만 의혹이 꼬리를 무는 건 막아야 했다. 집사는 어느 때보다 정갈히 단장해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고 방을 막 나설 때였다.

16562796509228.jpg“집사님.”

집사는 마침 찾아온 기사와 복도에서 마주쳤다. 북부 소속인 그는 후작의 집사에게 깍듯이 인사하더니, 곤혹스러운 투로 말했다.

16562796509228.jpg“새벽부터 실례합니다. 레나 루벨이라는 숙녀가 찾아왔습니다.”

16562796509228.jpg“누구요?”

노집사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하지만 기사는 그의 경악을 모르고 말을 이었다.

16562796509228.jpg“루벨 각하께, 밤새 기다리신 소식이라며 편지를 전했습니다.”

기사가 상앗빛 종이를 내밀었다. 깨끗이 접힌, 특별할 것 없는 편지였다. 집사는 인사도 잊고 허겁지겁 편지를 펼쳤다. 거기엔 그린 듯한 필체로 레나 루벨의 안부인사가 적혀 있었다. 그리운 아버지께. 안녕하세요, 아버지. 상황이 여의치 않아 편지로 먼저 인사드립니다. 어젠 기별도 없이 찾아가 많이 놀라셨지요. 아버지를 뵙고 싶은 마음이 앞서 그런 거니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아버지를 끝으로 뵌 날이 벌써 6년 전이네요. 그간 소식도 없이 조용하다가 갑자기 찾아온 이유가 많이 궁금하실 거예요. 저도 꼭 그만큼 궁금합니다. 아버지가 제게 왜 그러셨는지요. 그러니 그 이유를 알려주시면 저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제가 아버지께 무엇을 하러 왔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요. 그럼 조속한 시일 내에 뵙겠습니다. 부녀의 재회를 기대하며, 레나 루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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