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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 사냥의 끝 (156/208)

156화. 사냥의 끝2021.10.28.

엔지는 창가에 서서 균열을 향해 달리는 말들을 내려다보았다.

16562832628138.jpg‘정말 가시는구나…….’

저기 보이는 한 무리의 기사들은 루비드와 남부공이 지휘하는 수색대였다. 엔지는 작게 보이는 기사들 중 제복을 입은 남부공을 발견하고 몰래 탄식했다.

16562832628138.jpg‘괜찮으실까?’

남부공은 아직 몸이 성치 않았다. 그래서 웬만하면 직접 나서는 걸 말리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어제 남부공이 한 말 때문이었다.

16562832628153.jpg―멀쩡히 잘 있다. 네 친구 말이다.

처음 엔지는 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16562832628153.jpg―유니, 그 녀석을 데려오마.

그래서 남부공이 재차 말하자, 엔지는 그제야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뻐끔댔다. 남부공은 좀처럼 믿지 못하는 엔지에게 유니가 지금 숨어 있다고 말했다. 원래는 바로 데려올 생각이었는데 그럴 겨를이 없었고, 마침 수색대가 꾸려졌으니 이 틈에 찾아오겠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엔지는 남부공을 차마 말릴 수 없었다.

16562832628138.jpg“으윽…….”

남부공과의 대화를 곱씹던 엔지는 돌연 얼굴을 가리며 탄식했다. 갑자기 울어버린 자신의 추태가 떠오른 탓이었다. 엔지는 유니가 살아 있다는 말에 어버버대다가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남부공은 그걸 황당하다는 듯 쳐다봤다.

16562832628153.jpg―기쁜 소식인데 너무 서럽게 우는군.

남부공이 어이없어했지만 엔지는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노인의 말은 정확했다. 엔지는 유니가 살아 있다는 소식이 기쁜 한편 서러웠다. 그리고 혼란스러웠다.

16562832628138.jpg―기, 기쁜 건 맞는데…….

16562832628153.jpg―맞는데?

16562832628138.jpg―……비참해요.

그래서 엔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백했다. 말마따나 비참했다. 이번이 두 번째라서, 죽은 줄 알았던 소중한 사람이 사실 살아 있는 게 벌써 두 번째여서. 누나든 유니든 엔지의 눈앞에서 죽어버리고 그가 모르는 곳에서 살아났다. 그러곤 그가 관여하지 못하게 선을 그었다. 엔지는 그 사실이 너무 서러웠다.

16562832628153.jpg―그 둘이 원망스럽나?

16562832628138.jpg―아뇨.

16562832628153.jpg―그럼?

16562832628138.jpg―외로워요.

남부공의 물음에 엔지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서 남부공은 웃으며 탄식했다.

16562832628153.jpg―난감하게 됐군. 본디 높은 자리는 외로운 법인데.

16562832628138.jpg―제, 제 자리는 별로 높지 않아요.

16562832628153.jpg―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남부공의 반문에 엔지는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눈물을 닦으며 얼굴만 붉혔다. 하녀와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었다고 그의 신분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또한 누나를 그리워한다고 가문의 적장자 자격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레나와 유니는 살아 있어도 죽은 척해야 하는 자들이었고, 엔지는 그 두 사람에 비해 너무 고귀한 자리에 있었다.

16562832628153.jpg―정 외롭다면 어울리기 편한 친구를 찾게. 아니면 그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든가.

그래서 남부공은 단호히 조언했다.

16562832628153.jpg―선택은 그대의 몫이지만 이 얘긴 해주고 싶군. 각자의 자리가 달라 동행이 어렵다고 우애나 우정까지 부정하지는 말게.

그렇게 말하는 남부공의 얼굴은 여느 때처럼 무시무시했다. 말투도 그리 자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엔지는 어쩐지 격려를 받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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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남부공과의 대화를 곱씹던 엔지는 굳은 얼굴로 몸을 돌렸다.

16562832628138.jpg‘약을 더 구해야 돼.’

남부공이 돌아왔을 때 상태가 더 안 좋아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엔지는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몰래 집사의 방으로 향했다. 남부공이 급격히 쇠약해진 건 분명 독 때문이다. 하지만 남부공이 어떤 방식으로 독을 마셨는지는 모른다. 다만 엔지가 아는 건 아버지가 남부공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 약에 능통하다는 것, 그리고 집사의 가방에서 꺼낸 약이 죽어가던 남부공에게 효과가 있었다는 것뿐이다. 웃는 얼굴로 복도의 기사들을 방심시킨 엔지는 집사의 방에 몰래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집사의 방은 비어 있었고, 엔지는 서둘러 약을 찾았다.

16562832628138.jpg‘약 가방이 어디 갔지?’

저번엔 침대 밑에 있었는데, 오늘은 보이질 않는다. 다른 데로 옮겼나? 설마 약이 줄어든 걸 눈치챈 건 아니겠지.

16562832628138.jpg“아.”

찾았다. 두리번대던 엔지는 옷장 위에 놓인 가방을 발견하고 힘껏 까치발을 들었다. 손끝에 닿을락 말락 애태우던 가방을 겨우 끌어 내려 보니 예의 그 약재가 그대로 있었다. 엔지가 그것을 몰래 챙기려 할 때였다.

16562832683849.jpg“도련님.”

나직한 부름에 엔지의 심장이 곤두박질쳤다. 엔지는 숨을 멈춘 채 뒤를 돌아보았다. 끼이이 소리가 나며 장문 뒤에 숨어 있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루벨가의 집사였다. 숨어 있던 집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엔지를 바라보았다. 그 굳은 얼굴에 엔지는 놀라서 횡설수설했다.

16562832628138.jpg“지, 집사……. 어, 이거는, 내가 좀 필요해서…….”

16562832683849.jpg“이리 오십시오.”

16562832628138.jpg“어?”

16562832683849.jpg“주인님께서 찾으십니다.”

하지만 집사는 엔지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팔을 뻗었다. 마치 준비된 듯한 행동이 당황스러웠지만, 엔지는 아버지가 찾는다는 말에 조용히 일어났다. 집사는 루벨 후작의 방으로 엔지를 이끌었고, 그곳에서 엔지는 차를 준비하고 기다리던 아버지와 만났다. 집사가 엔지를 두고 나가자, 후작은 말없이 맞은편의 소파를 가리켰다. 엔지는 무서웠지만 주저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직 한구석에 아버지를 믿는 마음이 있었다. 자상하고 다정했던, 날 아끼던 아버지를. 엔지는 일말의 믿음을 품은 채 자리에 앉았고, 후작은 조용히 운을 뗐다.

1656283268387.jpg“남부공에게 약을 가져다주었느냐?”

16562832628138.jpg“……네.”

1656283268387.jpg“어째서?”

아버지의 음성은 차분했다. 그래서 오히려 기괴했다. 이건 마치 남부공을 독살하는 게 당연하다는 투였다. 후작은 아무 설명 없이 엔지를 추궁했고, 멍하니 있던 엔지는 저도 모르게 울컥했다.

16562832628138.jpg“남부공 저하가 아파 보이셔서요.”

그래서 주먹을 꽉 쥔 채 말했다.

16562832628138.jpg“황궁에선 분명 괜찮았는데 여기 오자마자 상태가 너무 나빠져서 약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마침 집사가 가지고 있는 약이 잘 들었고요.”

1656283268387.jpg“방법은 찾았느냐?”

엔지가 일부러 반항적으로 말했지만 후작은 개의치 않았다. 개의치 않을 뿐 아니라 덤덤히 자신의 범행을 시인했다.

1656283268387.jpg“남부공에게 독을 먹인 방법, 찾았느냔 말이다.”

16562832628138.jpg“아버지…….”

후작의 실토에 엔지가 신음했다. 그러나 후작은 못 들은 척 품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한 줌 크기의 작은 가죽 주머니였는데 안에는 숯처럼 검은 돌이 들어 있었다.

1656283268387.jpg“세 종류의 독초와 북부 동토에서 나는 흙으로 만든 석탄이다. 보통 벽난로에 넣어두는데 불을 피울 계절이 아니어서 등잔의 기름과 섞었다. 등불을 켤 때마다 조금씩 독을 마시도록.”

16562832628138.jpg“대체 왜…….”

1656283268387.jpg“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대체 왜 날 방해하느냐?”

16562832628138.jpg“무슨…….”

1656283268387.jpg“네가 누구 덕에 그 자리에 있는지 정말 모르고 그러느냐? 내가 망하면 너도 망한다. 그걸 알면서 그토록 순진하게 구냔 말이다.”

후작의 물음에 엔지는 숨 쉬는 법마저 잊었다.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민낯을 본 기분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맨얼굴은 엔지의 상상보다 훨씬 더 싸늘했다.

1656283268387.jpg“네게 사냥을 가르쳤어야 했는데, 몸이 약하다고 책을 읽게 했더니 마냥 꿈만 꾸는구나.”

엔지가 말을 잃자 후작이 푸념했다.

1656283268387.jpg“살아 있는 건 사냥하거나 사냥당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16562832628138.jpg“그런……!”

1656283268387.jpg“듣거라. 오늘 네가 먹은 것, 지금 네가 입은 것. 네 손을 더럽히지만 않았을 뿐 다 누군가가 사냥해서 마련한 것이다.”

후작이 엔지의 반박을 막으며 말했다.

1656283268387.jpg“사냥은 더럽고 고된 일이다. 체취를 숨기기 위해 짐승의 배설물을 묻히고 산속을 헤매야 한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춥든 덥든, 그렇게 간신히 사냥감을 잡으면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것을 찢어야 한다. 피며 담즙이며 온갖 더러운 것이 튀고 악취가 진동하지만 참아야 한다. 네가 오늘 입에 넣은 고기도 그렇게 잡힌 것이다.”

후작이 속삭이듯 말했고, 엔지의 낯빛은 더 창백해졌다. 아들의 겁먹은 눈을 봤지만 그는 여상히 말을 이었다.

1656283268387.jpg“먹고 먹히는 건 세상의 섭리다. 감히 부정할 수 있느냐? 잊을 수는 있겠지. 짐승들은 제 이빨과 발톱으로 사냥하지만 인간은 더러운 일을 남에게 미루니까. 식탁 앞에서는 상상도 못 할 거다. 만찬을 위해 발라낸 내장과 비계와 뼛조각이 얼마나 추한지. 그걸 까맣게 모른 채 목에 냅킨을 두르는 게 귀족이 된 나와, 내 아들인 너의 특권이다.”

후작은 그렇게 말하며 엔지의 어린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계산대로면 남부공은 지금쯤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다. 그런데 몸져눕기는커녕 수색에 나서다니, 개인차를 고려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원인을 찾다가 금방 알아냈다. 엔지가 남부공의 처소를 들락댔다는 걸. 그걸 알아낸 후작은 깊은 허탈감을 느꼈다. 자식이라는 것들이 하나같이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생각에,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미 마음을 거의 굳혔지만, 후작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엔지를 마주 보았다.

1656283268387.jpg“하나뿐인 자식이 호의호식하는 것에 불만은 없다. 어차피 내 모든 건 네 것이니까. 하나 그 자식이 필사적으로 사냥하는 아비를 방해한다면, 내가 뭘 보고 견뎌야겠느냐?”

후작의 물음에 엔지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보며 후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약한 녀석. 착하고 순해서 크게 속 썩인 적도 없는 녀석. 후작은 아들을 좋아했다. 딸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엔지는 그가 일궈온 모든 것을 물려받을 유일한 자식이다. 후작은 그런 아들까지 버리고 싶지 않아, 간절한 마음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16562832628138.jpg“……아버지 말이 맞아요.”

그의 마음이 닿았는지, 엔지의 입에서 온순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6562832628138.jpg“살기 위해 사냥을 하는 것도, 제가 아버지 덕에 고생을 모르는 것도 다 사실이에요.”

1656283268387.jpg“알아들었구나.”

16562832628138.jpg“아뇨.”

하지만 후작이 안도하자 엔지는 고개를 저었다. 문득 남부공의 말이 떠올랐다.

16562832628153.jpg―정 외롭다면 어울리기 편한 친구를 찾게. 아니면 그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든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버지가 그 높은 자리를 지키려고 얼마나 필사적인지, 자신이 얼마나 안일하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 때문에 누나와 친구를 잃어버렸다는 사실도.

16562832628138.jpg“아니에요, 생존을 위해 사냥하는 건 맞지만, 이건 사냥이 아니에요. 위기를 면하려고 다른 사람을 해치는 건 살인이에요.”

엔지는 어린 미간을 좁힌 채, 떨림을 참기 위해 자신의 옷자락을 쥔 채 말했다.

16562832628138.jpg“사람에겐 규율이 있어요. 선이 있고 약속이 있어요. 생존을 위해 모든 게 합리화되지는 않아요.”

엔지는 눈을 질끈 감아 차오른 눈물을 떨어트렸다. 하지만 눈물은 금세 다시 차올랐고, 결국 엔지는 엉망이 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16562832628138.jpg“알아요, 아버지가 망하면 저도 망한다는 거. 그래서 망설였어요. 착각이길 바라기도 했어요. 하지만 더는 안 돼요. 이렇게 확실한 이상 계속 못 본 척할 수는 없어요.”

1656283268387.jpg“……못 본 척할 수 없다면?”

16562832628138.jpg“벌을 받아야 한다면 같이 받을게요. 아버지가 어떤 일을 겪으시든 옆에 있을게요.”

후작의 물음에 엔지는 울면서도 굳게 말했다. 결국 후작도 괴로운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는 시선을 떨어트리더니 작게 중얼댔다.

1656283268387.jpg“네 뜻이 정 그렇다면.”

후작은 탁자에 놓인 종을 흔들었다. 평소와 달리 힘줘서 세 번이나 종을 울렸다. 그러자 문밖에 있던 집사와 기사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난입에 놀란 엔지를 붙잡았다.

16562832628138.jpg“아, 아버지!”

기사들에게 팔을 잡힌 엔지가 경악하며 후작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후작은 아들을 보지 않고 시선을 피한 채 읊조렸다.

1656283268387.jpg“살아 있는 것은 사냥하거나 사냥당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리고 너는 방금 날 사냥하는 편을 택했지.”

16562832628138.jpg“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버지……!”

1656283268387.jpg“다 내가 잘못 키운 탓이지.”

후작은 그렇게 말하며 기사들에게 턱짓했다. 기사들이 끌어당기자 엔지는 놀라서 발버둥 쳤다. 하지만 여린 소년은 기사들의 억센 손을 뿌리치지 못했고, 결국 입까지 틀어막힌 채 속수무책 끌려갔다. 후작은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돌렸다. . . . 후작은 속이 헐어버린 것처럼 아팠다. 레나를 보낼 때와 꼭 같은 심정이었다. 왜 내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처음부터 고귀하게 타고났다면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될 텐데. 무능한 돼지들은 그저 귀족이라는 이유로 떵떵대며 살아가는데. 그것들보다 훨씬 나은 내가 왜, 대체 왜. 후작은 비참함을 느꼈지만 이를 악물고 자신을 추슬렀다. 자식은 다시 낳으면 그만이다. 고작 이런 일로 무너질 수는 없다. 내가 누군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후작은 그렇게 생각하며 씁쓸함을 지웠다. 그러곤 조용히 채비했다. 그래, 자식은 다시 낳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자식들을 버려놓은 장본인을 내버려 둘 순 없다. 후작은 숨겨둔 까마귀 탈을 다시 쓰고 자신의 심복들과 함께 남부공을 쫓았다. 남부공, 빌 알레스 그라샤. 너다. 네가 나와 내 자식들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마음에 묻은 딸을 황궁으로 불러들이고, 순종적이던 아들까지 꾀어 나를 배신하게 했다. 그러니 이것은 복수다. 기회를 잡은 후작은 까마귀 탈 속에서 짙게 웃었다. 서쪽 균열과 맞닿은 숲, 그 숲 위로 불길이 치솟았다. 남부공의 권능이었다. 후작은 넘실대는 불꽃을 기쁘게 쫓았다. 그러곤 불꽃 너머에서 남부공을 찾아냈다. 그는 마침 혼자였고 지쳐 있었다. 남부공의 목숨을 노리는 것도 벌써 세 번째. 이미 거듭 실패한 후작은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석궁을 겨눴다. 그래, 자식들은 주마. 대신 너는 권능을 내놓아라. 준비를 마친 사냥꾼은 숨을 참고 고요히 때를 기다렸다. 타오르는 불길이 돌풍을 일으켜 대기를 어수선하게 흔들었다. 하지만 그 복잡한 흐름 속에도 길은 있었다. 찰나의 길이 열린 순간, 석궁이 불꽃을 꿰뚫었다. . . . 그날, 여름의 끝자락. 지옥의 문이 더 크게 열리고 하늘 가득 검은 망자들이 날던 날. 그날 후작은 성공했다. 복수도, 사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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