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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화. 클라비스 (196/208)

196화. 클라비스2022.03.17.

클라비스. 꼭 1년 만에 듣는 이름에 레나의 눈빛이 깊어졌다.

16562842159087.jpg“그 사람 잘 알아?”

레나의 물음에 엔지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16562842159093.jpg“아니, 잘은 몰라.”

클라비스는 엔지를 가까이 두었지만,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클라비스는 자신을 과거에 둔 사람이어서, 현재를 살아가는 엔지에겐 일말의 마음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엔지는 클라비스를 꽤 좋아했다.

16562842159093.jpg“그냥, 나한테 이야기를 해줬어.”

16562842159087.jpg“이야기?”

16562842159093.jpg“레지나 그라샤에 대해서. 나중에, 바로는 말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사람들에게 알려주라고.”

그래서 엔지는 여기 오기 직전에도 원고를 집필 중이었다. 클라비스가 부탁한 대로 그의 이야기와 참고문헌을 토대로 레지나 그라샤의 일대기를 재구성했다. 그렇게 꼬박 1년, 조만간 완성될 원고는 이우라에게 전달할 예정이었다. 엔지는 황궁에 두고 나온, 자신의 못마땅한 초고를 떠올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16562842159093.jpg“황제에 대한 이야기는 곧 공개될 거야.”

16562842159087.jpg“잘 쓰이면 좋겠네.”

16562842159093.jpg“응…….”

엔지는 소심하게 끄덕였다. 실은 확신이 없었다. 그는 사실에 입각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글을 썼다. 그런데 초고를 완성하고 보니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었다. 바로 방향성이었다. 엔지는 그저 클라비스가 준 사실을 나열했을 뿐,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유나 목적은 원고에 담지 못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스스로도 아직 모르니까. 엔지는 이 이야기에 어떤 바람을 담아야 하는지, 어디까지 바라도 되는지 가늠하지 못해 내리 고민 중이었다. 하지만 겨우 만난 누나에게 징징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엔지는 시치미를 떼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16562842159093.jpg“그런데 추기경 전하 얘기는 거기 안 넣었어.”

16562842159087.jpg“왜?”

16562842159093.jpg“본인이 싫다고 해서.”

클라비스는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저 제국 막바지에 미치광이 추기경이 있었다는 정도로 충분하다며, 자신이 왕자나 대공이던 시절의 이야기는 감춰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래서 엔지는 레지나의 이야기에서 클라비스의 부분을 지워버렸다. 하지만 지워진 건 종이 위에서일 뿐, 그의 존재는 엔지에게 남아 아픈 손가락처럼 매 순간 함께했다.

16562842159093.jpg“그래서 혹시 궁금하다고 하면 누나한테만 이야기하려고. 그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은 레나를 지옥으로 밀어 넣은 장본이지만, 동시에 레나가 누구보다 좋아하는 시인이기도 하니까. 엔지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엔지는 누나의 침착함에 안심하며 천천히 운을 뗐다.

16562842159093.jpg“클라비스 추기경이 황제의 친동생인 건 알지?”

16562842159087.jpg“응.”

16562842159093.jpg“니힐 황제가 처형을 당했던 것도 알아?”

16562842159087.jpg“응, 알아.”

16562842159093.jpg“그런데 추기경은 그걸 몇 십 년 동안 몰랐대. 황제가 처형당한 날 균열이 벌어져서 상황을 알 방법이 없었을 거야.”

100년 전 그날, 더없이 혼란스러웠지만 클라비스는 모든 문제를 뒤로한 채 누나의 생존을 기뻐하는 쪽을 택했다. 누이에 대한 죄책감과 눈 앞에 펼쳐진 참극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래서 제국을 세우는 일도 누구보다 열심히 도왔다. 우선 니힐을 따르는 것이 분명한 까마귀들을 그라샤의 서부 외곽으로 숨기고, 니힐을 위해 전기를 썼다. 인접국의 왕들을 설득해 제국의 제후로 삼은 것도 그였으며, 또한 니힐이 저항하는 나라를 칠 때 묵묵히 지지한 것도 대공이던 시절의 그였다. 그로써 남매를 중심으로 제국이 성립되었다. 하지만 클라비스는 이전과 달리 무정하고 과격해진 니힐과 연거푸 부딪혔고, 결국 제국의 형성이 마무리되자 미련 없이 누이의 곁을 떠났다.

16562842159093.jpg“그 후 서부로 갔는데, 서부에선 거의 은둔하다시피 지냈대. 세상을 등진 채 몇십 년을 책만 읽으면서. 그러다 가면을 쓰기 시작했고.”

16562842159087.jpg“늙지 않는 걸 눈치챈 거구나.”

16562842159093.jpg“응.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 늙어가는데 자긴 그대로니까. 그래서 죽어보려고도 했는데 그마저도 실패해서 무작정 니힐을 만나러 갔었대.”

자살에 실패한 클라비스는 두려운 마음으로 누이를 찾아갔다. 하지만 황제에게서 돌아온 건 또 도망치냐는 매몰찬 비난이었다. 그리고 내가 죽지 않는 한 너는 절대 죽지 못한다는 가혹한 저주였다. 클라비스는 그제야 무언가 잘못된 걸 느꼈다. 아니, 세상이 기이하게 돌아가는 건 진즉부터 알았지만 직시하는 것이 무서워 눈을 감았던 걸 겨우 인정했다. 그리고 죽음으로도 도피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자 그는 결국 무너져버렸다. 클라비스가 모든 걸 버린 채 제국을 떠돌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그는 정말 맨몸으로 세상을 헤맸다. 어차피 죽을 수도 없는 몸이니 두려울 것은 없었다. 아니, 죽음을 바라기에 오히려 고통을 원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수십 년간 제국을 떠돌며 클라비스는 거의 모든 일을 경험했다. 굶주림, 추위, 멸시, 온갖 종류의 폭력과 위협에 자신을 고스란히 내바쳤다. 심지어는 팔려간 적도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지만 거기서 벗어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벌을 받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16562842159093.jpg“그런데 사람들이 있는 곳엔 오래 머물 수가 없었대. 심하게 다치면 주위 사람의 생명력을 빼앗게 되는 바람에.”

클라비스는 여러모로 매력적인 희생물이었다. 그는 부랑자 주제에 여전히 아름다워 배덕감을 부추겼다. 게다가 어떤 일을 겪어도 이미 체념한 듯 순응하니 뻔뻔한 자들은 그를 발견하면 강아지를 줍듯 끌고 갔다. 다만 그 누구도 클라비스를 일정 기간 이상 소유하지는 못했다. 정도를 넘어선 상처가 생기면 저절로 발현되는 쇠약의 권능 때문이었다. 가혹한 시대, 잔인한 사람들은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학대하는 것에 익숙했다. 그래서 클라비스는 몇 번이고 죽음의 문턱에 섰다가 주변인을 희생시켜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니 클라비스는 계속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더 열악한 곳으로 전전하던 끝에 가닿은 곳이 배교자들의 소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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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2842159093.jpg“그러다 배교자에게 잡혀서 제물로 쓰이게 된 거야.”

제물이라는 말에 레나는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무겁게 내려앉는 마음을 달래고자 고개를 들었고, 하늘 가득한 별빛이 그들을 적게나마 위로해주었다.

16562842159087.jpg“거기서 무덤으로 떨어진 거구나.”

16562842159093.jpg“응…….”

아마 클라비스는 배교자들 앞에서도 저항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무덤으로 이어지는 균열을 보고는 오히려 기뻐했는지도 모른다. 저곳으로 넘어가면 죽음에 도달할 수 있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되려 기꺼이 달려들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무덤에서의 경험은 그의 기나긴 권태에 변화를 일으켰다.

16562842159093.jpg“그리고 용서받지 못한 왕을 만난 거야.”

클라비스가 붉고 검은 세상 한가운데 떨어졌을 때, 그가 찾아왔다. 조각난 모습으로 얼굴을 숨긴 레지나는 무덤으로 추락한 동생을 보며 슬퍼했고, 클라비스는 그런 누이를 본능적으로 알아보았다.

16562842159093.jpg“그때 겨우 알게 됐대. 레지나가 이미 죽은 걸, 그리고 지상에 있는 게 반으로 나뉜 누나의 일부라는 것도.”

무덤에서 클라비스가 레지나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레지나와의 만남이 그를 더 절박하게 만들었다는 거였다.

16562842159093.jpg“용서받지 못한 왕은 클라비스 전하를 지상으로 돌려보냈어. 그 후 전하는 누나를 만나려고 다시 무덤에 갔지만 만날 수가 없었대.”

엔지의 설명에 레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단편적인 조각 몇 개가 서로 맞물리는 기분이었다. 내리 무덤에 있던 레지나가 바깥 상황에 대해 깨닫게 된 건, 그리고 자신의 동생이 어떤 꼴인지 알게 된 것도 아마 그때였나 보다. 그렇게 니힐의 정체를 알게 된 클라비스는 다시 황궁으로 돌아갔다. 그러곤 클라비스 대공의 손자인 척 서부공의 지위를 되찾고 니힐의 곁에 머물렀다. 니힐은 수십년만에 돌아온 동생을 잠자코 받아주었다. 그간 뭘 했는지 궁금해하지도,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겨 돌아왔는지 묻지도 않았다. 하지만 묻지 않아도 클라비스가 돌아온 이유는 곧 밝혀졌다. 이후 클라비스가 몇 번이나 니힐을 죽이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칼로 찔렀고, 그다음엔 높은 곳에서 밀었다. 자는 틈을 노려 자객을 보낸 적도 있었다. 니힐을 죽이고 함께 사라지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 믿은 까닭이었다. 하지만 이미 죽은 황제는 다시 죽지 않았고, 니힐은 딱 세 번 동생을 봐줬다. 그런데 클라비스는 경고를 무시하고 니힐의 차에 독을 탔다. 바로 그날, 니힐은 더 참지 않고 무고한 자들을 잡아다 처형했다.

16562842159087.jpg“87년 7월 30일이구나.”

16562842159093.jpg“응…….”

니힐의 잔혹한 경고에 클라비스는 충격을 받고 서부로 달아났다. 그가 본격적으로 미치기 시작한 건 그때 즈음이었다. 자기가 차에 독을 타는 바람에 백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클라비스는 그 사실에 괴로워했다. 몇 날을 울고 또 몸부림쳤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하지 못하고 원망스러운 하늘을 쏘아보며 흐느꼈다. 그러길 십 수 일, 극한까지 내몰렸던 클라비스는 돌연 깨달음 비슷한 것을 얻었다. 왜 나만 이렇게 괴로워해야 하나, 하는 의구심이었다.

16562842159093.jpg“나는, 클라비스 전하가 죄책감 때문에 미친 거라고 생각해.”

클라비스는 사람들이 자신을 무자비하게 학대할 때도 저항한 적 없었다. 오히려 세상을 둘러보며 그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아 괴로워했다. 니힐을 죽이기로 마음먹은 것도 제국이라는 괴물을 무너트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순수했고, 또 순진했다. 그래서 백 여명의 사람들이 몰살당할 때 간신히 유지하던 마음이 몽땅 깨져버렸다.

16562842159087.jpg“그때부터 균열로 사람들을 밀어 넣은 거구나.”

레나가 이후의 일을 예상하며 말했다. 클라비스는 무슨 짓을 하든 니힐만 죽이면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래서 자신의 성 지하에 균열을 만들고 사람들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어떤 논리도 계산도 없이, 오로지 믿음과 광기로 저지른 일이었다.

16562842159093.jpg“그런데 그것도 얼마 못 가서 황제에게 들켰대.”

16562842159087.jpg“들켰다고?”

쭉 이야기를 듣던 레나의 눈이 처음으로 커졌다. 앞선 이야기는 다 예상 가능한 흐름이지만 이 부분은 꽤 새로웠다. 그래서 엔지를 쳐다보던 레나는 곧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16562842159087.jpg“아, 그래서 그 일지에도…….”

예전에 서부 접경지에서 진이 전해준 일지. 거기서 봤다. 니힐이 어느 날 서부로 찾아왔다는 기록을. 레나는 일 년 반만에 풀린 수수께끼에 연신 끄덕이며 되물었다.

16562842159087.jpg“그래서, 들켜서 어떻게 됐어?”

16562842159093.jpg“황제가 또 화풀이를 했어.”

16562842159087.jpg“……그때 서부가 망자들에게 넘어간 거구나.”

16562842159093.jpg“응.”

니힐은 게으를 뿐 바보는 아니었다. 그리고 클라비스와 마찬가지로 깊은 권태에 시달리며, 이 모조품 같은 세상 속에서 자신의 동생만 유일하게 선명히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시선은 자연히 동생에게로 향했고, 그가 벌인 수상한 짓도 곧 포착했다. 서부 성에서 균열을 찾아낸 니힐은, 그렇게 무덤 구경이 하고 싶다면 손수 시켜주겠다며 자신의 피를 제단에 쏟았다. 제단에 주인의 피가 닿자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규모로 균열이 벌어졌고, 그 안에서 망자들이 몰려나왔다. 그것이 서부 멸망의 전말이었다.

16562842159087.jpg“황궁에서 추기경 노릇을 한 건 그 다음 일이고.”

16562842159093.jpg“응, 맞아.”

레나가 황궁에서 만난 건 그런 일을 모두 겪은 클라비스였다. 이미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어리석고 가련했던 왕자. 클라비스 시렌치움의 긴 일대기가 끝나자 레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16562842159087.jpg“그런 사람일 거라고 생각은 했어.”

밀려오는 파도를 피하지도 견디지도 못해 상처만 가득 난 사람. 레나가 잠자코 수긍하자 엔지가 중얼댔다.

16562842159093.jpg“변호하고 싶은 건 아니야. 어쨌든 사람은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하고, 추기경 전하는 스스로 책임지지 못할 만큼 나쁜 짓을 했으니까. 그러니까 누가 뭐라든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이야.”

16562842159087.jpg“그런데?”

16562842159093.jpg“응?”

16562842159087.jpg“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인데, 왜 굳이 이런 얘길 한 거야?”

레나가 웃으며 엔지를 돌아보았다. 머리를 곱게 땋아 내린, 마치 새신부처럼 단아한 누나의 모습에 엔지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엔지는 고민했다. 클라비스가 비트라라는 사실을 누나에게 알리는 게 옳은지, 아니면 이대로 모르는 척 그 둘을 연관 짓지 않는 편이 나은지. 가장 존경하던 사람의 실체를 알게 되는 충격도, 진실에서 배제된 채 홀로 기만당하는 고통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엔지는 계속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내놓은 답은 탄식 섞인 작은 바람이었다.

16562842159093.jpg“……누나가 행복하면 좋겠어.”

때마침 바람이 밀려와 두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리고 야무진 손길이 엔지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16562842273091.jpg“왁!”

16562842159093.jpg“으악!”

귓가에서 터진 고함에 엔지는 몸서리를 치며 비명을 질렀다. 그대로 뒤를 돌아보자, 유니가 뻔뻔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보고 있었다.

16562842273091.jpg“너 뭔데 우리 아가씨를 독점해? 아가씨 지금 찬바람 쐬면 안 되는 거 몰라?”

갑자기 난입한 유니가 엔지를 타박했다. 엔지가 얼떨떨하고도 억울하게 쳐다보자 유니는 흥흥대며 레나의 팔짱을 꼈다. 레나도 유니에게 기꺼이 옆자리를 내주며 물었다.

16562842159087.jpg“왜 나왔어요?”

16562842273091.jpg“아무도 없어서요.”

16562842159087.jpg“다들 어디 가고요?”

16562842273091.jpg“루비드 저하랑 진이가 쓰러져서 린 씨랑 휘 아줌마가 방으로 옮겼어요. 진이가 몰래 담금주를 꺼내온 거 있죠?”

16562842159087.jpg“아하…….”

진이 휘의 담금주를 꺼내와 어른들 틈에서 용기 있게 홀짝인 모양이다. 달콤하지만 몹시 독한 술이라 루비드는 한 방에 가버렸고, 진이 그 뒤를 장렬히 따르며 자리도 자연스럽게 파했다.

16562842159087.jpg“슬슬 잘 시간이긴 하네요.”

레나가 가볍게 하품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엔지는 어어 하며 일어나는 누나를 쳐다보았다. 아직 이야기가 덜 끝났는데. 엔지가 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주저하자, 레나가 엔지를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

16562842159087.jpg“나도 알아.”

16562842159093.jpg“어?”

16562842159087.jpg“그 사람이 시를 쓴 거.”

뜻밖의 말에 엔지는 말을 잃고 레나를 바라보았다. 동생의 멍한 모습에 레나는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곤 유니와 돌아서며 가볍게 덧붙였다. ‘괜찮아, 나는 지금 행복해.’라고. 레나는 그 말을 끝으로 유니와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엔지는 발에 못이라도 박힌 듯 그 자리에 한참을 혼자 서 있었다. 고요한 밤하늘의 별빛이 소년의 어깨로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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