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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의 귀환-2화 (3/939)

(다음 편에서 계속) 제 2화.

며칠 후.

현우는 어머니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들렀다.

그런데….

‘아레나… 아레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말로는 안 한다고 했지만, 아레나 에 대한 생각은 끊임없이 뇌리를 맴 돌았다.

물론 역부족이었다.

이제 와서 앞서간 플레이어들을 따 라잡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도 없었다.

안 그래도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시 간을 쪼개고, 또 쪼개는 생활의 연 속이었다.

만약 게임에 손을 댔다간 당장 생 계조차 막막했다.

고가의 A-큐브를 살 돈이 없기도 했고.

“샤넬....”

이런저런 생각에 백화점 안을 걷던 차, 우연히 어머니께서 즐겨 입곤 했던 브랜드의 매장을 스치게 되었 다.

“비싸네... 살 엄두가 안 날 정도 야.”

힐끔 쳐다본 구두의 가격이 무지막 지 했다.

아니, 그 구두뿐 아니라 뭐든 비쌌 다.

금수저 시절이라면 생각 없이 샀을 신발, 가방, 옷 등등의 재화들이 이 제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이 렇게 비싼 것들일 줄이야… 우리 집 진짜 망했구나….’

새삼스레 집안의 몰락이 더더욱 실 감이 났다.

“하….”

결국, 현우는 빈손으로 매장을 스 쳐야만 했다.

손에 쥔 돈은 88만 원이 전부였다.

이 돈으로 뭐든 샀다간 당장 아버 지의 병원비부터가 막막했다.

“지혜야, 이번 건 마음에 들어?”

그 순간.

현우의 귓가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해당 목소리의 주인은 명품관에서 나오는 커플 중 청년이었다.

“응, 오빠. 고마워. 내가 뽀뽀해 줄 까?”

“아니? 그거보다 좋은 거.”

“그게 뭔데?”

“이따 모e… 어? 너 혹시?”

청년이 현우를 아는지 친한 척을 해왔다.

“이게 누구야? 강현우 아냐?”

하지만 현우는 그런 청년이 누구인 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누구세요?”

“이야 이거 기억도 못 하네. 기억 할 가치도 없다 뭐 그런 건가?”

“누구신데요?”

“나야 나. 정한백.”

“정한백? 아!”

현우는 정한백이 자신의 이름을 말 하자 그제야 기억이 났다.

정한백.

중학교 시절에 아버지의 소개로 알 게 된 양아치 같은 놈이었다.

첫 느낌부터가 이상스레 좋지 않아 일부러 거리를 두었는데, 그래서 기 억에 남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뭐야, 우리 잘나신 담수 건설 회 장 아드님께선 나 같은 놈은 기억도 못 하신다, 이거냐?”

정한백이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어 왔다.

“뭐야,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데?”

“무슨 말이긴. 큭!”

“잘나신 금수저 아들내미를 오래간 만에 봐서 반가워서 그렇지. 큭, 큭 큭큭!”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사려던 거나 사서 곱게 집에 가 라.”

현우는 그런 정한백을 그냥 무시하 기로 했다.

괜히 시비가 붙어봤자 좋을 게 없 는 상대였다. 그냥 안 본 셈 치고 넘어가는 게 여러모로 덜 피곤할 터 였다.

“아, 그래? 난 샀는데, 넌?”

“......?”

“안 샀네? 아니, 살 돈이 없는 건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아니면 아직 살 만한가? 집이 망 했으면 이런 곳은 얼씬도 하지 말아 야 하는 게 아니냔 말이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현우는 깜짝 놀랐다.

정한백이 자신의 집이 몰락한 것을 어떻게 아는가? 친한 친구인 영찬에 게도 말한 지 얼마 안 된 사실을.

씨약-

정한백은 그런 현우를 보며 입꼬리 를 살살 올렸다.

정한백은 기분이 좋았다.

여자 친구의 선물을 사러 온 백화 점에서 자신을 무시하던 현우를 만 났기 때문이었다.

‘네놈 낯짝이 일그러지는 걸 한 번 쯤은 보고 싶었지.’

그렇게 생각한 정한백의 입에서 현 우가 미처 모르던 뒷이야기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현우의 심장을 찌를 이야기가.

“어떻게 알긴…. 너희 집 망한 거, 사실 우리 아버지가 하신 일인데 자 식인 내가 모르면 쓰나.” 정한백의 조소어린 말에 현우는 갑 자기 몸에서 열이 확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 저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 통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집을 망하게 한 것이 정한 백 아버지의 짓이라니?

“설마....”

짚이는 곳이 있었다.

“우리 아버지 뒤통수를 쳤다는 사 람이… 너희 아버지라고 말하는 건 가?”

혹시나 싶어 던져 본 질문.

정한백은 부정하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야. 뒤에서 이리저리 고생 많이 하셨다. 수십 년을 굽히 고 사셨는데 이제 좀 피고 사셔야 지? 안 그러냐. 현우야?”

“……

“새끼, 금수저라고 어깨 힘주고 거 들먹거리고 다니더니 꼴좋다. 실컷 즐기라고, 실컷!”

“즐기라고…? 도대체 뭘”?”

“흙수저의 고통이랄까? 거지새끼가 돼서 개처럼 벌어 먹고사는 거 말이 다. 큭…!”

“그럼, 다음에 보자고?”

정한백은 마치 연극을 하는 배우처 럼 표정과 말투를 바꿔 가며 말을 했다. 그는 정말이나 즐거운 듯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가자, 지혜야.”

“응, 오빠.”

정한백이 등을 돌렸다.

“병신 새끼… 돈이 없어지니까 배 짱도 없어졌나 보네… 그런 말을 듣 고도 주둥이 다무는 꼴 좀 보소….”

이어지는 것은 혼잣말이었다.

현우가 들을 수 있도록, 일부러, 더 크게.

“개… 새끼야….”

그리고 그 혼잣말은 현우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덥석!

현우는 정한백의 어깨를 붙잡아 당 겼다.

그러자 정한백의 몸이 빙그르르 돌 았다.

이어지는 펀치!

빠-악!!!

현우의 주먹에 정한백의 얼굴에 정 통으로 틀어박혔다.

“악!!!”

“오, 오빠…!!!"

정한백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 다.

“뭐, 뭐야!”

“거기, 왜들 그러세요!”

그 광경을 본 백화점 직원들이 다 급히 현우를 말리기 시작했다.

“놔, 놔 이 새끼들아!!! 말리지 마, 다 죽여 버리기 전에!!!”

하지만 이미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현우는 한 마리의 야수였다.

그러나….

“막아, 맞은 사람이 정 사장님 아 들이래!”

“붙잡아!!!”

“이 새끼가! 가만히 안 있어!”

백화점 직원들도 현우의 편이 아니 었다.

정한백은 W1P였고, 현우는 허름 한 옷을 입은 일개 20대 청년이었 다.

돈.

그놈의 돈.

그 한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가 이 제는 분노의 표출마저 발목을 부여 잡고 있었다.

…그놈의 돈이 뭐길래.

“뭣들 해요? 경찰에 신고 안 하시 고? 빨리!!”

그렇게 말한 정한백은 아무렇지 않 다는 듯 코를 한 번 훔치며 현우를 향해 비열한 웃음을 보였다.

몇 시간 후.

인근 파출소 앞.

경찰서를 나선 현우는 곧바로 전화 기를 꺼냈다.

확인할 게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한 사람에 게만 들어야만 하는 답변이.

- 여보세요?

“어머니, 저에요. 아버지는 괜찮으 시죠?”

- 네 아빠야 여전히 누워 계시는 구나.... 너는 괜찮고?

“저야 잘 지내죠. 이번 어머니 생 신 때 병원에 갈게요. 근데 아버지 사업 말이에요. 그거 배신했다던 사 람이 혹시 정 아저씨예요?”

- 그, 그게…!

어머니는 현우의 갑작스러운 물음 에 놀랐는지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 네, 네가 어떻게….

“정말이에요?”

- 그게 말이야… 현우야….

이어지는 어머니의 답변은 가히 가 관이었다.

온갖 협잡질… 정한백의 아버지가 현우의 아버지에게 한 짓은 차마 인 간이 할 짓이 아니었다.

작정하고 털어먹으려 덤빈 게 아니 라면 그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싶을 지경이었다.

툭.

현우는 어머니의 말에 황급히 전화 를 끊었다.

더는 듣기가 힘이 들었다.

한때는 가족처럼 여겼던 아저씨가 자신들을 배신할 줄이야….

게다가 회사가 그렇게 빨리 넘어간 것을 보니 절대 혼자서 한 일은 아 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조력 자들이 있을 터였다.

‘어떻게든… 복수하고 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현우는 조용히 분노를 삼켰다.

부르르…!

그리고 두 주먹을 움켜쥔 채 차오 르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주르륵”.

어찌나 주먹을 꽉 쥐었는지, 손톱 이 파고든 손아귀에서 피가 흘러내 렸다.

‘개새끼… 두고 보자…. 다음엔 절 대, 절대 이렇게 끝나진 않을 거다.’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분노는 도무 지 꺼질 줄을 몰랐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놈에게 복수할 방법이.

‘어떻게... 어떻게....’

밤낮으로 아르바이트하는 것으로는 답이 없었다. 병원비와 생활비만으 로도 빠듯했기 때문이었다.

대학교를 휴학한 지금에서는 어디 에 취직할 길도 없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집안을 일으 키고, 나아가서는 놈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집으로 향하는 현우의 머릿속엔 온 통 복수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때 였다.

근처 전자제품 상가에서 흘러나오 는 소리가 현우의 귓가를 파고들었 다.

- 저 선수, 이번에 연봉 오 억 원에 계약했다죠!

- 스트리밍 수입은 이미 수십 억 이 넘었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선숩니다.

현우의 발걸음이 우뚝 멎었다.

‘그래, 이것밖엔 답이 없다….’

아직 희망의 불씨 정도는 남아 있 는 모양이었다.

현우는 곧바로 전화기를 꺼내 들었 다.

“영찬이냐? 나다.”

그리고 말했다.

“나... 아레나, 다시 한 번 시작해 보련다.”

아레나 최강의 플레이어.

부동의 랭킹 1위.

투기장 무패 신화의 주인공.

아레나 최고의 피지컬을 가지고 있 단 평가를 받던 그가, 다시 아레나 에 복귀하려는 순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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