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화.
현우의 계획은 간단했다.
헤진 대산맥에서 레벨 업을 한다.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티안 허의 길드원이 보이는 족족 죽인다.
그 방식이 PK가 됐든 결투가 됐든 아니면 몬스터를 몰아와 죽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런 마음을 가진 현우가 헤진 대 산맥을 돌며 야금야금 사냥하던 도 중 저 멀리에서 플레이어 한 무리를 발견했다.
‘저런 표시는 처음 보는데?’
그들 가슴에 그려진 길드 마크는 현우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헤진 대산맥을 헤맨 경 험과 커뮤니티를 통해 얻은 정보 속 에는 저런 길드 마크는 본 적이 없 었다.
“우리 먹은 레어 아이템 몇 개죠? 여덟 개? 일곱 개를 언제 더 모으 냐….”
‘레어 아이템을 모아? 작업장 놈들 인가?’
“근데 왜 갑자기 목소리를 죽이는 거야. 짜증나게.”
현우는 조금 더 대화를 듣기 위해 살금살금 숨어들었다.
“이번에 선발대가 누구한테 전부 PK를 당했다고 해. 아무도 말은 하 지 않지만, 놈들 성격으로 봐서는 랭커라도 하나 건드린 모양이야. 그 래서 복수하겠다고 그놈들은 작업에 서 빠지고 레벨 업만 한다나 봐.”
‘맞네. 작업장 놈들.’
저들이 티안 허의 작업장 놈들이라 는 것을 확인한 현우는 빠르게 자리 를 떴다.
그러고는 멀리서 느긋하게 그들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제발 시비 걸어라. 제발.’
그리고 그런 현우의 마음을 알아채 기라도 한 듯 작업장의 플레이어들 이 현우를 향해 우르르 다가왔다.
“어이! 넌 자존심도 없냐? 대산맥 에 있을 정도면 마냥 즐겜도 아닌데 남을 따라 하기나 하고 말이야.”
왕펑을 비롯해 쉬 준과 그의 파티 원 네 명은 현우의 주변을 막아섰 다.
‘그렇지, 그렇지. 시비를 걸어 주셔 야지.’
현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목소리를 냈다.
어차피 얼굴은 가면으로 가려진 상 태기 때문에 무슨 표정을 지어도 저 들로써는 알 방법이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왜 길을 막아서는 거죠? 그리고 제 복장이 무슨 문제 가 됩니까?”
현우의 대답에 왕펑이 소리를 질렀 다.
“그 가면 골목대장 코스프레 아냐? 어?”
현우는 이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 랐다.
골목대장 코스프레.
‘고맙다. 자식아.’
“제가 가면을 쓴 게 그렇게 문제가 됩니까?”
현우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단순히 골목대장 코스프레를 한 플레이어 연기를 시작했다.
“당연하지. 난 그 가면이 꼴 보기 가 싫어. 오늘만 해도 몇 번을 봤는 지 알아?”
“그럼 결투하시겠습니까? 캐릭터를 걸고 말입니다.”
현우의 말이 끝나자 왕펑과 그 일 행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떠올 랐다.
‘이 새끼 완전히 몰입했는데?’
왕펑은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 다.
‘그냥 코스프레 좀 하나 했더니. 이거 완전 중증환자잖아?’
“야, 그런다고 네가 골목대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하려면 골목대장 처럼 단체전으로 해야지. 안 그래?”
왕펑이 자신의 동료들을 향해 동의 를 구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목소리로 대답했 다.
“당연하지. 그 정도는 해야 진정한 골목대장에 가까워지는 것 아니겠 어‘?”
“들었지? 붙을 거면 단체전으로 붙 자고. 골목대장처럼.”
‘큭큭큭….’
왕펑의 말에 현우는 웃음을 참기에 바빴다.
현우는 이 순간만큼 가면의 존재가 고마운 적이 없었다.
눈물까지 날 정도로 웃던 현우가 겨우 진정한 채 대답했다.
“그래, 그럼 단체전으로 하자.”
왕펑은 현우의 대답에 방긋 미소를 지었다.
‘어휴, 너무 세게 질렀나 했네. 이 놈만 털면 최소 이틀은 쉴 수 있겠 네.’
왕펑은 현우가 한참을 웃느라 대답 을 하지 못한 것을 현우가 단체전을 망설이는 것으로 생각해 내심 초조 했었다.
하지만 현우가 단체전을 받아들이 자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웃 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왕펑은 볼 수 없었지만 가 면 뒤 현우의 얼굴도 환하게 웃는 상태였다.
***
“그럼 결투를 신청하지.”
[플레이어 ‘강현우’가 결투를 신청 하셨습니다.]
[승낙하시 겠습니 까?]
“당연하지.”
[ YeS ]
왕펑은 현우의 결투를 받아들이며 쉬 준을 향해 고개를 돌려 눈을 찡 긋해 보였다.
‘흐흐, 형님. 이걸로 우리 최소 이 틀은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잘했어. 왕펑. 이따가 만나자고.’
쉬 준도 왕펑을 향해 눈을 찡긋했 다.
이 둘이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수년째.
이미 눈빛만으로도 대화가 통하는 사이였다.
‘잘들 노네.’
현우의 눈에 저들은 이미 금덩어리 였다.
집안의 빚을 갚는 데 쓰일 금덩어
리.
현우는 손을 늘려 룰을 설정했다.
[플레이어 ‘강현우’가 룰을 설정했 습니다.]
[정해진 룰은 ‘승자독식’과 ‘캐릭터 삭제’ 그리고 ‘단체전’입니다.]
[승낙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승낙한다.”
[ YeS ]
왕펑은 시원시원하게 결정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에라도 붙 고 싶었다.
깔끔하게 이긴 후 쉬 준을 만나 거하게 술이라도 한잔 하고 싶은 마 음뿐이었다.
[결투에 참여할 인원을 정해 주세 요.]
“여섯 명.”
왕펑은 자신을 포함한 파티원들의 수를 불렀다.
기왕 ‘사냥’을 하는 것 모두가 즐 기면 좋지 않은가.
‘발버둥도 좀 치면 좋고.’ [결투에 참여할 인원이 정해졌습니 다.]
[플레이어 ‘강현우’팀 VS 플레이어 ‘왕펑’팀 6명]
현우와 왕펑 일행을 감싸는 20미 터의 반원형 돔이 생겨났다.
임시 결투장이었다.
[잠시 후 결투가 시작됩니다.]
[5… 4… 3… 2… 1.] 숫자가 줄어감에 따라 모두의 얼굴 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이토록 어울 릴 수가 없었다.
‘이놈만 잡으면 휴가가 주어진다.’
이건 왕펑과 그 일행들의 생각이었 다.
‘여섯 명이니까 티안 허가 어지간 히 빡치겠군.’
이건 현우의 생각이었다.
이윽고 결투가 시작되었다.
[결투가 시작되었습니다.]
***
스릉.
티안 허의 길드. 아이시스의 정예 중 한 명인 라오위는 가벼운 마음으 로 검을 뽑았다.
“5분만 가지고 놀다 죽이면 된다 고?”
“그래, 알아서 해.”
라오위의 말에 왕펑이 대답했다.
라오위는 상대를 향해 달려가기 직 전까지도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스트레스 좀 풀자.’
그리고 정확히 이 마음은 3초도 가지 못했다.
쾅!!
골목대장 코스프레를 한 상대, 현 우의 도에서 뻗어 나온 도기와 부딪 친 라오위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 대로 날아갔다.
부웅.
마치 거대한 보스 몬스터와 부딪친 것처럼 무기력하게 날아갔다.
탁!
날아간 라오위는 반투명한 막에 부 딪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플레이어 ‘라오위’님이 상태 이상
‘스턴’에 걸렸습니다.] 그 순간 현우가 사라졌다.
사라진 현우가 나타난 곳은 의식을 잃은 라오위의 바로 앞이었다.
새로 장만한 대협곡의 바람 세트의 내장 스킬인 블링크였다.
현우는 라오위의 목에 도를 꽂았 다.
‘이걸로 한 명.’
왕펑은 정신이 나갔다. 현실을 믿지 못하겠는지 두 손을 들어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그래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라오위는 처참하게 발리고 죽었다.
단 한 번의 공격에.
그 순간 왕펑의 머릿속에 한 생각 이 떠올랐다.
‘잘못 건드린 건가?’
왕펑은 고개를 저었다.
라오위가 방심한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무력하게 당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왕펑은 가슴 한편에 차오르는 불안 감을 애써 무시했다.
“다들 모여서 한 번에 가. 버프 잘 받고. 저 녀석은 힐러가 없어. 혼자 라고. 레이드 뛴다고 생각해.”
쉬 준이 파티원들을 독려했다.
일이 살짝 꼬인 것 같지만, 이 정 도는 고려했어야 했다.
애초에 너무 편하게 생각했다.
이곳에 혼자 돌아다닐 정도면 어느 정도 무력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 은 잘못이 컸다.
“그럼 버프 앞 라인부터 돌려.”
하지만 이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현우에겐 힐러가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좋은 힐러가.
현우는 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 는 동안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왜?
‘혹시 모르니까 나도 탱이나 소환 해야겠다.’
탱이를 소환하기 위해서였다.
혹시 모를 변수에 대처하기 위해.
“탱이야.”
현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 마법진을 찢고 탱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며칠 전보다 확연히 털이 더 복슬 복슬해진 탱이였다.
“어이, 주인 놈아. 또 싸우나? 인 간이 덜됐어. 허구한 날 처 싸우고 자빠졌으니…. 그래. 오늘은 이 몸이 뭘 하면 되나.”
탱이는 나타난 그 순간부터 존재감 을 과시했다.
현우를 향해 독설을 내뱉은 것이 다.
현우는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탱이에게 버프를 주문했다.
“일단 버프부터 넣고. 저기, 바위 위에서 잘 앉아 있어. 인형처럼. 알 았지?”
“내가 인형 같다고? 우헤헤. 이 몸 이 그런 면이 있긴 하지.”
탱이는 현우의 말을 잘못 이해하고 는 혼자 실실 웃었다.
이내 탱이는 현우에게 버프를 걸어 주고 또 혼자 실실 웃으며 바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곰의 기세를 받으셨습니다.]
[체력이 상승합니다.]
[힘이 상승합니다.]
[숲의 가호를 받았습니다.]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체력이 지속해서 회복됩니다.] “이거면 충분해.”
현우는 몸을 가득 채우는 힘을 느 꼈다.
저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기 직전 까지.
왕펑은 현우를 향해 몸을 움직였 다.
‘물약을 먹는다고 해도 한계는 곧 온다. 버티기만 하면 우리가 이겨.’
당연한 생각이었다.
힐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 는 극심했다.
그러나 현우에게는 저들이 모르는 힐러가 있었다.
왕펑이 검을 휘둘렀다.
현우의 어깨를 노리며 쏘아진 검은 현우의 어깨를 찔렀다.
그것은 왕펑의 착각이었다.
슉
왕펑이 찌른 것은 허공이었다.
그리고 그가 본 것은 현우의 잔상 이었다.
푹!
“끄으!!!!”
왕펑의 등 뒤에서 비수가 꼽혔다.
현우는 자신을 노리고 들어오는 왕 펑의 검을 끝까지 보고 최후의 순간 에 블링크를 사용해 왕펑의 뒤로 이 동했다.
심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단검을 찌르고 그대로 오른쪽으로 긁어냈다.
“자, 다음은 누구냐.”
현우가 남은 네 명을 향해 소리쳤 다.
단검은 이미 인벤토리에 넣은 지 오래였다.
현우의 손에는 골목대장의 트레이 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장도가 들려 있었다.
“저, 저거!!!”
“드워프의 도….”
이제야 그들은 깨달았다.
저자는 단순한 코스플레이어가 아 니다.
골목대장이었다.
“아, 아….”
쉬 준의 입에서 탄식이 터졌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쉬 준이 절망했다.
***
‘나인 걸 감출 필요가 없게 됐네.’ 현우는 계획을 수정했다.
원래는 무차별적으로 티안 허의 길 드원들을 습격해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저들로 인해 스토리가 생겨 버렸다.
‘좋아, 좋아.’
현우는 자신에게 좋게 돌아간 상황 에 절로 웃음을 지었다.
자신에게 명분이 선 것이다.
자신을 습격한 왕펑의 일행.
그리고 저들이 작업장이라는 것.
이 두 가지가 합쳐진다면 블랙스컬 때보다 더 큰 판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영상은 자신의 이름을 한 단계 위로 올려 줄 것이라고 확 신했다.
“드루와, 드루와!!!”
현우는 도를 어깨에 걸친 채 다른 한 손을 까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