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 화.
“형님, 생각보다 던전이 쉬운데요? 인원 제한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강중구는 아이템을 루팅(RPG 등의 게임에서 적을 쓰러트리고 적이 떨 어트린 아이템을 줍는 행위)을 하며 김석중에게 말을 걸었다.
“다 동상 덕 아이가. 정확히는 저 귀여운 아가 다 했제.”
김석중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
했다.
그의 시선은 아이템이 아닌 탱이에 게 향해 있었다.
“내도 저런 아 하나 구해야 하지 안 하나.”
“저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펫을 하나쯤은 가져야 하지 않나…. 저 정도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냥 귀 여운 동물이면 만족합니다.”
“허허…. 그러게 말이여.”
이내 루팅을 끝낸 두 사람은 현우 에게 돌아왔다.
“그 화염 마법이 요놈의 것이제? 아주 강력하더마.”
“스킬이 세다기보다는 이놈들의 약 점이 신성력하고 불입니다. 형님도 직접 타격보다는 신성력 위주로 싸 우시면 한결 편할 겁니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나? 이곳은 지금 처음 와 본 것일 텐데….”
강중구가 당연한 의문을 드러냈다.
이곳은 어제 자신이 발견한 곳이 다.
그리고 방금 전투가 이곳에서의 첫 전투였다.
즉, 현우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뜻이었다.
“이 녀석이 가르쳐 줬습니다. 원래 이런 놈들을 알고 있었다고 하네요. 이놈들의 주인, 던전의 보스도 안답 니다.”
현우는 탱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복덩이 였다.
‘말이 좀 험해서 그렇지….’
탱이는 그런 현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껏 자세를 잡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곳의 주인은 뱀파이어가 분명하 다. 자기들의 입으로는 밤의 귀족이 네 황혼의 뭐네 떠들지만, 결국 흡 혈귀에 불과하다.”
“그럼 이곳의 보스 몬스터가 뱀파 이어라는 말이냐?”
“그렇다, 대충 남작에서 자작 사이 로 생각한다.”
“흐... ” 丁그 '
김석중은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아는 한 현재 뱀파이어를 봤거나 사냥했다는 플레이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남작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 지.
자작은 얼마나 강력한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형님, 뭘 그리 걱정하십니까. 몽크 가 둘에 저처럼 잘 싸우는 칼잡이 에, 여기 마법과 버프, 유사시에는 탱커 역할도 가능한 곰돌이도 있습 니다.”
시름에 잠긴 김석중을 향해 현우가 소리쳤다.
다른 보스도 아니고 뱀파이어라면 충분했다.
놈이 아무리 세 봐야 오행 거미보 다 세겠는가.
또 세면 어떤가.
그때와는 다르게 동료가 둘이나 더 생겼는데.
그것도 상성이 가장 좋다는 신성력 과 흑마력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쇼. 가볍게 깰 테니
까요.”
현우는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현우의 호언장담이 현실이 되지는 않았다.
***
현우의 도기가 오크의 창백한 얼굴 을 갈랐다.
촤아!!!
얼굴이 대각선으로 잘린 오크는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었다.
- 로톤의 오크 노예를 처치했습 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형님, 이제 마지막인 것 같습니 다.”
그간의 사냥으로 다져진 그의 감각 이 외치고 있었다.
이 벽 너머에 보스 몬스터가 자리 하고 있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제 슬 슬 나올 때가 되었죠. 벌써 네 시간 이 넘게 던전을 뒤졌으니까요.”
강중구의 말에 현우가 덧붙였다.
탱이는 계속된 사냥이 지겨웠는지 던전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 다.
“그렇제? 나도 그렇게 느껴부렀어 야.”
사냥은 쉬웠다.
무투를 버리고 신성력을 쏟아붓기 시작한 이후로 강중구와 김석중의 공격을 세 번 이상 받아내는 오크가 없었다.
오크는 신성력과 몸이 닿는 즉시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타들어 갔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들을 현우가 마무리했다.
던전에서의 사냥은 단순한 노동과 다르지 않았다.
“주인 놈아, 빨리 와라.”
그때 탱이가 뭔가를 발견했다.
현우는 얘기를 나누는 김석중과 강 중구를 놔두고 탱이에게로 갔다.
“ 왜?”
“이것 좀 봐라.”
탱이가 가리킨 것은 작은 구멍이었 다.
바닥에 뚫린 작은 구멍.
그 사이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 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화르륵!
그 순간 탱이가 앞발을 움직이자 구멍 너머에 불씨가 생겨났다.
“어? 저거 트롤 아니야?”
불씨로 인해 생겨난 시야에는 오크 와 마찬가지로 창백한 피부색을 자 랑하는 트롤이 있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던전이 미궁 형식을 띠고 있다는 것.
몇 층짜리인지는 몰라도 일, 이 층 은 아닐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 었다.
“빼도 박도 못하고 열 시간은 더 사냥해야겠네.”
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냥이 길어질 것만 같은 확신이 들었다.
***
김석중에게 돌아온 현우는 그들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두 가지 소식이 있습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어떤 것부터 들으시 겠습니까?”
갑작스러운 현우의 말에 강중구는 당황한 표정으로 현우를 쳐다봤다.
하지만 현우는 가면을 쓴 상태, 현 우의 표정이 보일 리가 없었다.
“나쁜 것부터 듣자고 좋은 소식을 나중에 들어야 기분이 좋지 않겄어? 안 그르면 마 뒤가 찝찝하제.”
“그럼 나쁜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 다. 저 뒤에 있는 것은 이 던전의 보스가 아닙니다. 계층 파수꾼이라 고 하죠? 이곳은 1층이니 1층 파수 꾼이라고 부르면 되겠네요.”
현우의 말에 강중구와 김석중의 표 정이 변했다.
뭔가 짚이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 다.
강중구가 입을 열었다.
“그럼 여기가 다중 던전이라는 말 인가?”
“그렇습니다. 제가 지금 확인한 바 로는 바로 밑에 층, 2층에는 창백한 피부를 가진 트롤이 보였습니다. 아 마 로톤의 트롤 노예라는 이름을 가 진 몬스터겠죠.”
다중 던전.
보통의 던전과 달리 여러 층으로 이뤄진 던전을 뜻했다.
층마다 다른 몬스터가 나타나며 가 끔은 구조마저도 달라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던전의 주인인 보스 몬스터 와는 별개로 각층을 지키는 계층 파 수꾼들이 따로 존재했다.
당연하게도 보통의 던전보다 난이 도가 높았다.
던전이 여러 개가 있는 꼴이었으니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그럼 좋은 점은 뭔가? 다중 던전 임은 이미 밝혀졌는데.”
“좋은 것은 당연히 저희가 얻을 보 상이 좋아진다는 것이죠. 다중 던전 의 보상이 짭짤한 것은 애도 다 아 는 겁니다. 아! 경험치도 짭짤합니 다. 사냥을 오래 해야 할 테니까요.” 현우의 유들유들 웃으며 하는 말에 강중구는 두 주먹을 쥔 채로 부들부 들 떨었다.
“그럼 싸게 가지. 얼른 내려가야 하지 않겄어?”
김석중이 계층 파수꾼이 있을 것으 로 추정되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 겼다.
“형님, 이번에는 제가 메인으로 나 서겠습니다. 두 분이 기회를 노려 딜을 넣으세요.”
현우는 반도를 뽑아 들며 말했다.
던전에 들어온 이래로 사냥을 했을 뿐, 싸움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한 현우였다.
몸이 근질근질한 것이 당연했다.
“알겠다, 현우 자네도 싸울 때는 싸워야지. 너무 나랑 형님만 싸운 것 같군.”
“감사합니다.”
강중구는 현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 였다.
분명 현우는 많은 부분을 희생했 다.
가상현실 게임에서 최전방 공격수 를 플레이한다는 것은 싸움에 대한 욕심이 확실하다는 소리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칼을 들고 거대한 몬스터 사이에서 날뛰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동상 마음 이해혀. 이번엔 동상에 게 넘김세. 하지만 다음 층은 이 김 석중이 거시여.”
“형님도 감사합니다.”
김석중과 강중구에게 양해를 구한 현우는 곧장 창백한 피부를 가진 거 대한 오크를 향해 달려갔다.
그런 현우를 향해 탱이가 응원과 버프를 보냈다.
“주인 놈아, 힘내라!!!”
[곰의 기세를 받으셨습니다.]
[체력이 상승합니다.]
[힘이 상승합니다.]
[숲의 가호를 받았습니다.]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체력이 지속해서 회복됩니다.] 현우는 탱이의 말에 부러진 도를 들어 흔들었다.
알았다는 표시였다.
[전투의 달인이 활성화됩니다.]
[스탯이 상승합니다.]
[스탯 ‘투기’로 인해 스탯이 상승합 니다.]
[상대방이 플레이어보다 강합니다.]
[추가로 스탯이 상승합니다.]
[학살자의 마음가짐이 활성화됩니 다.]
[모든 스탯이 15% 상승합니다.]
현우의 온갖 스킬이 모두 활성화가 되었다.
‘보스에게 쓰는 건 처음이네?’ 현우가 자신 있게 나선 이유는 바 로 크라슬의 저주 덕분이었다.
[오행 거미의 저주]
공격이 성공할 시, 대상에게 다섯 가지 저주 중 한 가지를 무작위로 부여한다. 최대 다섯 번 중첩 가능.
(화상, 빙결, 석화, 속박, 출혈)
지속 시간 : 5분
‘화상하고 출혈만 빼면 뭐든 좋다.’ 빙결, 석화, 속박 모두 움직임을 제한하는 상태 이상이었다.
하나라도 걸리는 순간부터는 보스 몬스터든 뭐든 샌드백과 다르지 않 을 터였다.
“흐압!!!”
쐐애액!!!
시작은 초승달 베기였다.
파수꾼 오크만 한 길이의 도기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취익!!!”
1층의 파수꾼, 거대한 오크는 콧방 귀를 뀌며 현우의 도기를 향해 자신 의 도끼를 휘둘렀다.
펑!!!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흥, 그럴 줄 알고 마력 폭발도 같 이 썼다, 이거야.’
현우는 영악했다.
거대한 오크가 막을 것을 예상하고 초승달 베기에 마력 폭발을 연계해 도기를 날렸다.
그 결과 거대한 오크의 몸 곳곳은 부서진 도기가 남긴 상처들로 가득 했다.
[로톤의 던전 I의 파수꾼이 상태 이상 ‘빙결’에 걸렸습니다.]
[로톤의 던전 I의 파수꾼이 상태 이상 ‘출혈’에 걸렸습니다.]
[로톤의 던전 I의 파수꾼이 상태 이상 ‘출혈’에 걸렸습니다.]
[로톤의 던전 I의 파수꾼이 상태 이상 ‘석화’에 걸렸습니다.]
[로톤의 던전 I의 파수꾼이 상태 이상 ‘빙결’에 걸렸습니다.] 연달아 다섯 번의 메시지가 울렸 다.
현우의 노림수는 제 역할을 다했 다.
애초에 노린 것은 이거였다
오행 거미 저주의 오 중첩.
빙결이 두 번, 석화가 한 번.
그 결과.
파수꾼 오크의 한쪽 팔과 한쪽 다 리, 그리고 등이 뻣뻣하게 굳고 언 상태였다.
‘좋아!!! 이번에 끝을 본다.’
현우는 블링크까지 사용하며 파수 꾼 오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저주가 유지되는 오 분 사이에 끝 을 볼 생각이었다.
현우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파 수꾼 오크의 주위를 뱅뱅 돌며 도기 를 흩뿌렸다.
촤아!!!
파수꾼 오크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 다.
한쪽 팔과 다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상 현우의 날카로운 공격 을 피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파수꾼 오크의 온 몸은 상처로 도배됐다.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몸의 절반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치명적인 피해는 어떻게든 막아냈 다.
마침내 파수꾼 오크의 움직임을 방 해하던 모든 상태 이상이 사라졌다.
파수꾼 오크는 그간의 분노를 풀어 내려는 듯 현우를 향해 고함을 쳤 다.
“크앙!!!”
그러나 피어는 현우에게 아무런 영 향을 미치지 못했다.
[투기의 영향으로 로톤의 던전 I 의 파수꾼의 피어를 무시합니다.] 자신의 피어가 현우에게 아무런 피 해를 주지 못한 것을 깨달은 파수꾼 오크는 더욱 분노했다.
피로 범벅된 몸이 되어 창백함을 잃어버린 파수꾼 오크의 몸이 더욱 붉어졌다.
‘광포화.’
“크아아아!!!”
파수꾼 오크는 이번에야말로 오 분 간의 수모를 갚겠다는 듯 도끼를 들 어 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푹!!!
블링크와 배쉬의 연계를 통해 폭발 적인 속도로 순식간에 파수꾼 오크 의 앞에 도착한 현우가 파수꾼 오크 의 목에 자신의 도를 쑤셔 넣은 것 이다.
파수꾼 오크는 복수를 하지 못한 채 허무한 최후를 맞이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