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7화
“영찬아, 넌 발터 산맥이라고 아 냐?”
현우는 노트북을 켜며 물었다.
“발터?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긴 한 데…. 아! 그거 설정에 있는 거다. 동대륙과 서대륙을 가로막고 있는 산맥 아니냐?”
현우는 영찬의 대답에 감탄한 얼굴 로 영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렇게 쳐다봐. 인마.” 영찬은 그런 현우의 시선이 이상하 다고 느꼈다.
그러고는 자신의 방으로 휙 들어갔 현우는 그런 영찬을 신경 쓰지 않 았다.
어차피 한두 번 저런 것도 아니었 다.
그리고 현우의 머릿속은 이미 발터 산맥에 대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 다.
‘설정, 기본 설정이란 말이지….’
현우는 유명 아레나 커뮤니티란 커 유니티는 다 화면에 띄웠다. 그러고는 하나하나 검색하기 시작 했다.
발터 산맥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 았다.
정보라고 하기에도 뭐했다.
그냥 위치 정도만 알 수 있었으니 까.
무슨 몬스터가 나오는지.
레벨은 몇인지.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이런 정보는 조금도 없었다.
정보가 없다는 것은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왜 가지 않을까.
대부분 이유는 두 가지로 나뉘었 다.
첫째, 출몰하는 몬스터의 레벨이 너무 높은 경우.
이런 경우에는 정보가 없다.
없다기보다는 숨겨져 있다.
일부 길드들이 공유하지 않는 것이 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정보는 일반 플레이어들이 올리는 게 대부분이었 다.
그런 일반 플레이어의 수준이 넘어 간다면 정보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둘째, 최근 패치로 인해 생긴 필드 인 경우였다.
이런 케이스에는 정보가 없는 게 당연했다.
가본 사람이 적은데 무슨 정보가 나올까.
특이하게도 이런 필드만 돌아다니 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런 곳을 돌 아다닐 리도 없었다.
‘가만.... 특이한 곳을 돌아다니는 거면….’
그 순간 현우의 뇌리에 스쳐 지나 가는 이름이 있었다.
“파이오니어.”
‘그들이라면 발터 산맥에 대해 잘 알지 않을까?’
현우는 곧바로 노트북을 정리했다.
어차피 대단한 정보는 없었다.
위치라도 안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 이 들 만큼.
“발터 산맥이라….”
파이오니어의 길드장이자 현우의 스폰서 중 한 명인 케트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혹시 안 가보셨나요?”
현우는 케트의 표정을 보고 조심스 럽게 되물었다.
현우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랐지 만, 그것은 괜찮았다.
골목대장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었 으니까.
하지만 발터 산맥에 관해 물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골목대장이 그곳에 관심을 가질 줄 도 몰랐고.
현재 발터 산맥에 관심을 가진 곳 은 케트가 알기로는 단 한 곳도 없 었다.
모두가 헤진 대산맥에만 관심을 두 고 있었다.
더불어 메인 시나리오까지.
“가봤습니다. 그런데 발터 산맥은 왜…?”
“발터 산맥과 관련된 퀘스트를 얻 어서요. 그래서 혹시라도 관련된 정 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요.”
“그곳은 굉장합니다. 몬스터들이 무척 강력하고 아마 저희 길드가 모 두 3차 전직을 마쳤지만, 지금 간다 고 해도 사냥하기가 불가능에 가깝 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현우의 얼굴이 구겨졌다.
케트가 한 설명대로라면 발터 산맥 은 현재 어떤 플레이어의 침입도 허 락하지 않은 땅이었다.
“그렇게 강한가요? 몬스터들이?”
“강한 수준이 아닙니다. 지나다니 는 몬스터 하나하나가 헤진 대산맥 의 네임드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네임드면 별로 강하지 않은데?’
현우는 속으로 다른 사람들이 들으 면 기겁할 소리를 했다.
그 정도 수준이면 충분히 사냥할 만했다.
다른 누가 아닌 현우라면.
“그런데?”
“몬스터가 무척 많습니다. 기본적 으로 세 마리 이상씩 뭉쳐 다닙니
다. 그래서 더 어렵습니다.”
이건 조금 안 좋은 소식이었다.
기본적으로 현우는 사냥에 거침이 없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의 수준 차이가 있을 때의 얘기였다.
케트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한 무 리의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꽤 고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힘겨운 사냥은 정신적인 피 로감을 동반했다.
그게 문제였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정보.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현우의 말에 케트가 기겁하며 현우 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 메인 시나리오만 해도 충 분합니다. 그리고 이번 토벌에 저희 를 또 넣어주셨더군요. 저희만으로 는 벅차다는 생각이 들어 골목대장 님의 친구분인 스트리머 아르곤님의 길드와 함께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 다.”
이것도 이것대로 놀라운 소식이었 다.
‘근데 영찬이 새끼는 나한테 이런 말 안 했는데?’
“이 새끼가….”
현우의 혼잣말에 케트가 되물었다.
“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요, 혼잣말입니다. 혼잣말이 요.”
현우가 당황해 말을 반복했다.
“그럼 어떤 몬스터들이 나오는지 아십니까?”
현우는 급하게 말을 돌렸다.
케트는 그런 현우의 말에 친절하게 답했다.
“일단 저는 데릭 성에서 발터 산맥 에 진입했습니다. 초입에는 두 종류 의 몬스터가 나옵니다. 거대한 사자 의 모습을 한 검은 갈기 사자와 하 피가 나옵니다. 그리고 저희도 멀리 서 본 것이지만, 드레이크도 있었습 니다.”
케트의 말은 놀라웠다.
드레이크.
드래곤의 아류.
드래곤의 버금가는 신체능력을 갖 췄으나 지성이 없고 마법을 사용하 지 못한다고 알려진 바로 그 몬스터 였다.
“드레이크도 있습니까?”
현우가 묻자 케트가 현우의 말에 담긴 속뜻을 알아차리고는 옅게 웃 으며 말했다.
“물론 그 녀석은 혼자 다녔습니다. 얼마나 큰지, 수백 미터 떨어진 곳 에서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일반 몬스터는 아닐 겁니다.”
그 이후로도 현우는 발터 산맥에 대해 십분은 더 물었다.
기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아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음에는 실제로 만났으면 좋겠습 니다.”
케트가 현우를 향해 인사를 건넸 다.
아쉬웠다.
골목대장과 얘기를 나눌 시간이 이 것밖에 없다는 사실이.
“시간이 된다면 한 번 뵙는 것으로 하지요.”
현우 역시 케트를 향해 감사를 담 아 인사했다.
사내는 험준한 산을 타고 있었다.
사내의 복장은 독특했다.
검은색 일색의 옷차림에 기다란 코 트까지.
산행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목에 걸쳐져 있는 곰 인형이었다.
그 사내, 현우가 입을 열었다.
“탱이야, 여기부터는 조금 위험하 다는데 그만 내려오는 게 어때?”
현우는 탱이를 설득했다.
이곳, 발터 산맥은 위험한 곳이었 다.
케트의 설명에 의하면 아무리 자신 이라고 해도 언제 로그아웃당할지 모르는 곳이었다.
“알았다, 주인 놈아. 대신 나중에 또 태워줘야 한다.”
탱이는 현우의 머리를 몇 번 툭툭 치고는 순순히 내려왔다.
그러고는 현우에 버프를 걸었다.
마치 택시를 타고 택시비를 내듯
버프를 걸어준 것이다.
[곰의 기세를 받으셨습니다.]
[체력이 상승합니다.]
[힘이 상승합니다.]
[숲의 가호를 받았습니다.]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체력이 지속해서 회복됩니다.]
현우는 탱이의 행동에 어이가 없었 지만 참았다.
생각해보니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 았다.
뭐랄까….
귀여웠다.
“그래, 다음에 다시 태워줄게.”
‘그래도 여긴 사람이 없어서 좋네.’ 현우가 헤진 대산맥에서 사냥을 포 기하고 퀘스트를 선택한 이유는 다 른 것도 있었지만, 이 이유가 가장 컸다.
헤진 대산맥에 사람이 너무 많아졌 다.
대형 길드와 프로 구단, 즉 세력과 일반적인 랭커 사이의 암묵적인 룰 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필드 프리미엄이 었다.
최초로 필드를 차지한 길드에 50 일이라는 독점권을 쥐어 주는 것.
그 50일 동안은 필드를 차지한 곳 에서 허락한 플레이어들만이 그곳을 드나들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끝난 이후 수많은 플레이어가 헤진 대산맥에 유입됨으 로써 현우의 사냥이 불편해진 것이 다.
단순히 사냥이 느려진 것이 아닌 현우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기를 요 구하며 심하면 PVP까지 하는 일도 있었다.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움직이던 현 우의 눈에 사자 세 마리가 보였다.
언뜻 봐도 10미터에 가까운 덩치 와 검은 갈기를 소유한 人}자.
케트가 설명해 준 검은 갈기 사자 였다.
“탱이야, 넌 여기 있다가 내가 위 험해지면 그때 마법을 써. 파이어는 됐고 아이스나 라이트닝으로. 알았 지?”
현우는 탱이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탱이는 그런 현우의 걱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당차게 말했 “나만 믿어라, 주인 놈’아. 내가 다 죽여버리겠다.”
탱이의 호언장담에 현우는 말없이 탱이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세 마리의 사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전투의 달인이 활성화됩니다.]
[스탯이 상승합니다.]
[스탯 ‘투기’로 인해 스탯이 상승합니 다.]
[상대방이 플레이어보다 강합니다.]
[추가로 스탯이 상승합니다.]
[스탯 ‘위엄’으로 인해 상대방의 스탯 이 하락합니다.]
[학살자의 마음가짐이 활성화됩니다.]
[모든 스탯이 15% 상승합니다.] 위엄 스탯은 현우보다 낮은 작위를 가진 상대의 스탯을 깎았다.
레벨이 낮을수록, 작위의 차이가 크게 날수록 많은 스탯을 감소시켰 다.
‘몬스터든 플레이어든 열에 아홉은 깎인다.’
뱀파이어 귀족 같은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몬스터들에게 작위 는 없다.
플레이어들은 그런 예외 케이스조 차 없다.
황실 기여도가 없으면 무조건 평민 이다.
현재 시점에서는 위엄 스탯은 그야 말로 전가의 보도였다.
현우의 움직임은 사자들에게 다가 갈수록 빨라졌다.
현우가 사자들을 향해 도를 가볍게 털었다.
하지만 그 위력은 절대 가볍지 않 았다.
현우의 도에서 뻗어 나간 새카만 강기는 허공을 날카롭게 찢으며 사 자를 향해 나아갔다.
촤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현우의 강기가 그대로 흑색 갈기 사자의 몸을 가르고 지나간 것이다.
그 이후로도 기세는 줄지 않고 숲 의 나무를 수십 그루나 베어냈다.
‘헐.... 엄청 센데?’
현우는 자신이 만든 결과에 경악했 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 다.
도기와는 차원이 다른 위력이었다.
왜 이런 위력이 나왔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강기 발현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스 킬이 었다.
효과 :강기 발현 시, 마력의 위력이 총합의 100% 증가합니다.
지금까지의 계산은 합이었다.
한 스킬에서 마력의 위력이 100% 증가하고 다른 스킬에서 50% 증가 했다면 해당 플레이어는 기본 공격 력에서 150% 추가된 위력으로 공 격한다.
즉, 초기의 공격력이나 마력을 기 준으로 계속 더해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기 발현은 달랐다.
다른 스킬로 인한 마력의 위력 증 가 효과를 모두 적용한 다음, 가장 최종적인 공격력을 기준으로 100% 가 증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위력이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바로 3차 전직의 힘이었다.
강기의 힘이었고.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사자 한 마리는 다리가 잘리고 전 투에서 이탈했지만, 아직 검은 갈기 사장 두 마리가 남아 있었다.
쾅!
검은 갈기 사자 한 마리가 현우를 향해 날렵하게 달려와 앞발을 휘둘 렀다.
현우는 가볍게 그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현우가 움직인 그곳에는 이 미 다른 검은 갈기 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까득!
꼼짝없이 사자의 이빨에 꿰뚫리는 가 싶었던 그 순간 현우의 신형이 사라졌다.
대협곡의 정기 세트 스킬.
블링크의 발현이었다.
사라진 현우가 나타난 곳은 검은 갈기 사자의 위였다.
푹!
현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 자의 등에 도를 꽂았다.
그리고 스킬을 사용했다.
콰가강!!!
마력 폭발이 사자의 내부를 헤집었 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대로 검은 갈기 사자의 몸이 터 져나가며 죽어버렸다.
- 검은 갈기 사자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현우는 현천보를 사용해 아직 멀쩡 한 다른 검은 갈기 사자의 곁에 도 달하는 데 성공했다.
검은 갈기 사자는 높은 레벨의 몬 스터답게 현우의 움직임을 본능적으 로 쫓았다.
하지만 검은 갈기 사자가 현우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별처럼 은은한 빛을 내는 강기가 사자의 눈앞에 다 가와 있었다.
푸욱!
강기는 사자의 머리를 그대로 꿰뚫 었다.
머리가 꿰뚫리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체는 없었다.
그것이 설사 게임이라고 할지라도.
- 검은 갈기 사자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 검은 갈기 사자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그 순간 두 개의 메시지가 나타났 다.
가장 처음 다리가 잘린 사자가 크 라슬의 저주, 출혈 상태에 걸려 결 국 과다 출혈로 죽은 것이다.
전투는 현우의 생각보다 허무하게 끝났다.
현우는 바닥에 떨어진 골드와 재료 아이템을 줍지도 않고 생각에 잠겼
‘ 나….’
“생각보다 더 센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