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8화
온갖 값비싼 집기들로 가득한 사무 실 안.
장년의 사내, 윤현구가 무릎을 꿇 고 있었다.
“면목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장 님.”
그런 윤현구의 앞에는 노인에 가까 운 사내, 김 사장이 의자에 앉아 있 었다.
“너 나한테 뭐라고 했어!!! 찾아온 다고 하지 않았어? 근데 뭐? 애새 끼들이 도망을 쳤다고? 그래서 못 잡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김 사장의 고함에 윤현구는 계속해 서 고개를 푹 숙인 채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래서 어떡할 거야? 협회에서는 구단을 넘기든 아니면 해체를 하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데. 이 손 해 어쩔 거냐고!!!”
거짓말이었다.
김 사장은 지속적인 대리와 연봉 미지급으로 인해 빅스타즈 인수에 사용한 돈을 회수한 지 오래였다. 이제는 물밑에서 빅스타즈를 판매 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런 때에 빅스타즈 대리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러니 김 사장이 길길이 날뛰는 것이 당연했다.
“사람들을 시켜 알아보고 있습니 다. 길어도 이틀 안에는 꼭 사장님 앞에 데려오겠습니다.”
윤현구가 고개를 들고 애처롭게 말 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렇게 알아.” 김 사장은 나지막이 말하고는 손을
휘휘 저었다.
나가보라는 뜻이었다.
윤현구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순 식간에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
현우는 탱이의 2차 각성 이후에는 더욱 손쉽게 거인을 사냥하고 다녔 다.
바람의 숨결로 한층 더 빨라진 현 우의 움직임은 거인이 따라잡기 버 거운 속도였다.
현우의 도가 검은 잔상을 남기며 움직였다.
촤아!!!
거인의 발목이 반쯤 잘리며 피가 뭉텅이로 흘러나왔다.
[고대의 거인이 상태 이상 ‘출혈’에 걸 렸습니다.]
거인의 발목을 가른 현우는 자연스 럽게 몸을 돌려 반대편 발목 역시 자르는 데 성공했다.
[고대의 거인이 상태 이상 ‘빙결’에 걸 렸습니다.] 갈라진 거인의 발목을 시작으로 거 인의 발 한쪽에 옅은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빙결의 효과였다.
순식간에 양 발목이 잘린 거인이 고통이 가득한 울음을 내질렀다.
“크오오!!!”
하지만 거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딱 그것뿐이었다.
거인은 기본적으로 크다.
그렇기에 하체에 들어가는 부담 역 시 컸다.
그런데 두 발목이 반쯤 잘렸다?
그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은 곧 자 살 행위였다.
‘초승달 베기.’
쌔애액!!
현우는 여유롭게 초승달 베기를 사 용했다.
검은색의 삭월이 거인의 목을 스쳤 다.
- 고대의 거인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체감되는 속도 차이가 꽤 심해.’
사냥할 때마다 느끼는 점이었다.
바람의 숨결을 받을 때와 아닐 때 의 차이가 생각보다 극심했다.
지금 같은 스펙이라면 그 어떤 플 레이어와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게 단체든 개인이든 간에.
“대단한 전사로군. 그대의 전투에 경의를 표하겠네.”
그 순간 우거진 나무들을 사이로 거인이 나타났다.
지금까지의 거인과는 생김새가 약 간 달랐다.
터질 듯한 근육과 거대한 키는 그 대로였지만, 그의 몸에서는 현우를 향한 적대감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는 동네 할아버 지 같은 친근감까지 느껴졌다.
스릉!
하지만 현우는 만에 하나의 가능성 을 생각해 허리춤의 도를 뽑아 들었 다.
“무기는 넣어도 좋네. 난 자네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니 말일세. 부 탁이 있네.”
거인의 말이 끝나자 현우의 눈앞에 퀘스트의 생성을 알리는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버림받은 거인족] 거인족은 그들의 신을 향해 반기를 들 었다.
그 결과 신에게 버림을 받고 말았다.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자.
등급 : S-
조건 : 거인족 처치 0/657, 미쳐버린 아르페리움의 지배자 0/1.
보상 : 경험치, 거인족의 성물.
거인은 본격적으로 퀘스트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크로마라고 하네. 거인 들의 성지, 아르페리움의 주술사였 지.”
“주술사였다면…?”
“지금은 멸족을 지켜보는 방관자에 불과하네. 주술사로서 일족을 올바 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 책임을 이제 야 지려고 하네.”
크로마는 과거를 회상하는 듯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괴로움과 후회로 가득 했다.
“우린 오만했지. 그리고 자만했네. 그랬기에 신을 향해 반기를 들었겠 지. 그 결과, 날 제외한 모든 거인 족은 드높던 용기를 빼앗기고 호수 같은 지혜마저 금제 당했네. 어리석 었지. 근원을 몰라봤던 것이었네.”
크로마는 한숨을 내쉬고는 짧게 덧 붙였다.
“우리 일족을 구원해주게나. 그대 여.”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깨야 할 던전이었다.
빵빵한 보상이 있는 퀘스트라면 오 히려 현우가 환영했다.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겠습니다.”
“고맙네. 그럼 나를 따라오게나. 구 원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해주겠 네.”
크로마는 현우와 탱이를 이끌고 현 우가 처음 나타났던 광활한 평야를 지나 나타난 산을 올랐다.
“저쪽을 보게. 저곳이 바로 이지를 잃은 동족들이 남아 있는 곳이라 네.”
크로마가 가리킨 곳은 거대한 성벽 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성벽의 근처에는 거대한 덩치를 가 진 인간, 거인들이 종종 모습을 드 러냈다.
“그리고 저쪽 무너진 종탑에 과거 의 족장, 플로이가 있네. 그는 정말 강하네. 그랬기에 동족들이 그를 믿 고 반기를 들었었네. 결과는 참혹했 지만.”
이번에 크로마의 거대한 손이 가리 킨 곳은 종탑이라 부르기에도 민망
한 건물이었다.
화려했던 과거는 보이지 않고 이제 는 반쯤 무너진 상태였다.
“내 생각으로는 다른 동족들부터 구원하고 난 뒤, 플로이를 구원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네. 신께서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무의식까지는 앗 아가지 못하셨는지 플로이의 워크라 이가 퍼지면 주변 동족이 그의 주변 으로 몰리네.”
‘쫄병 소환이네.’
크로마의 설명에 현우는 왜 크로마 가 플로이, 보스 몬스터를 가장 마 지막에 잡는 것을 권유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전형적인 보스 몬스터의 패턴.
부하 소환.
이것 때문이었다.
‘아무렴 변수는 적은 게 좋지.’
현우는 크로마의 말을 따르기로 했 다.
괜한 호기는 좋지 않았다.
호기가 객기로 되는 것은 순식간이 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한 번도 죽지 않 은 만큼 괜한 객기로 첫 사망을 겪 고 싶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보통의 거인들부터 구원하고 마지막에 플로이를 구원하 러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크 로마님은 저를 도와주실 생각이십니 까?”
현우의 물음에 크로마는 고개를 저 었다.
“미안하네만 난 해야 할 일이 있 네. 도와주기는 힘들 것이네. 신께 용서를 빌어야겠지. 그렇다면 언젠 가 신께서 우리 종족을 불쌍히 여겨 다시 불러 주실지도 모르지 않나.”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결국 도와주 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현우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면이 아니라면 현우의 표정이 그 대로 크로마에게 드러났을 것이다.
“괜찮습니다. 다만 혼자 하려면 시 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빨라 도 사흘?”
현우의 말에서 불만이 약간 드러났 다.
크로마는 알고도 무시하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단지 고개를 주억일 뿐이었다.
“수십 년을 기다렸네. 누군가 동족 들을 구원하기를. 그에 비하면 사흘 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 아닌가.”
크로마는 현우의 상체만 한 그의 손을 현우의 눈앞에 뻗었다.
“잘 부탁하네. 제발 그들에게 구원 을… ”
현우는 손을 들어 겨우 그의 새끼 손가락만을 붙잡았다.
“최대한 힘을 써보겠습니다.”
현우는 그 후로도 꾸준히 구원이라 는 이름의 거인 사냥에 나섰다.
- 고대의 거인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 거인족 처치 193/657
“아직 멀었다. 탱이야.”
탱이는 어제부터 계속된 사냥에 입 이 댓 발 튀어나온 상태였다.
현우는 그런 탱이를 달래기 바빴
고.
“흥, 언제 쉬나. 벌써 몇 시간째인 줄 아나? 망할 주인. 이건 착취다. 착취!”
탱이는 현우의 달래기에도 화가 누 그러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럼 붕붕섬에서 쉬다 올래? 나도 할 일이 있어서.”
“알았다. 주인 놈아. 그럼 나중에 다시 불러라.”
현우는 결국 탱이를 돌려보냈다.
어차피 이제는 탱이가 없어도 상관 이 없었다.
왜?
이젠 사냥이 아니라 스트리밍을 해 야 할 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오늘의 콘텐츠는 탱이가 없 더라도 전혀 지장이 없었다.
물론 시청자들이 탱이를 보고 싶다 고 칭얼대는 모습들이 현우의 눈앞 에 선했다.
‘뭐, 그럼 그때 잠깐 보여주지. 거 기서도 쉬는 건 마찬가지잖아?’
그렇게 생각한 현우는 로그아웃을 준비했다.
스트리밍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한 시간 반.
휴식을 취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었다.
현우는 쉴 때도 그냥 쉬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붙잡은 채 전화하기에 바빴다.
현우는 이런 시간을 활용해 어머니 께 자주 전화를 했다.
그러나 오늘의 통화 상대는 어머니 가 아니었다.
“궁금해서 전화했어요.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말이죠.”
- 그렇습니까? 뭐, 저희 보스가 굉 장히 좋아하셨죠. 근래 본 표정 중 에서는 가장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제이미, 그런데 이번 빅스타즈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아무래도… 해체 수순을 밟겠지요?”
현우의 통화 상대는 니케 매니지먼 트의 대표, 제이미 무어였다.
- 그건 아닐 겁니다. 아레나 구단 창단 조건이 까다로운 만큼 해체가 아니라 매각 수순을 밟게 될 겁니 다. 그리고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한국의 협회에서는 이미 매각자를 찾았다고도 합니다.
제이미의 말에 현우의 두 눈이 커 졌다.
벌써 매각자가 나왔다니.
아레나가 그만큼 대단했나?
현우의 머릿속에는 절로 그런 생각 이 들었다.
“그렇군요. 좋게 해결돼서 다행입 니다. 그나저나 최지수 양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지요?”
- 그렇습니다. 지금까지의 수술 중 에서 가장 좋은 결과라고 의사들이 얘기했으니 아주 건강할 겁니다. 그 런데 이 얘기 정말 밖에 퍼지면 안 되는 얘기입니까? 이미 기자들과 사 람들은 미스터 강을 상대로 진실에 근접한 소설들을 마구 써내고 있습 니다. 차라리 직접 발표하는 것이….
“안 됩니다. 전 그렇게 얼굴이 두 껍지 않으니까요. 절대 제 입으로는 말할 수 없죠. 그럼 다음에 다시 연 락하겠습니다. 제이미.”
- 알겠습니다. 시간 되시면 미국에 꼭 오시길.
현우는 통화를 황급히 끝냈다.
제이미고 케일이고 번번이 최윤과 최지수의 얘기를 꺼냈다.
기자들의 추론이 아니라 매니지 먼트 차원에서 발표하고 싶다는 것이다.
‘쪽팔려서 그걸 어떻게 발표해.’
자신은 그럴 깜냥이 못됐다.
그저 이런 골목대장이라는 스트리 머면 충분했다.
벽에 걸린 시계의 시간을 힐끗 쳐 다본 현우는 슬슬 스트리밍을 준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 다.
오늘의 콘텐츠는 평이했기 때문에 딱히 준비할 것은 없었다.
‘투기장 금메달.’
10,000등부터 99,999등 사이에 있 는 랭커를 칭하는 말.
금메달.
그게 오늘 목표였다.
현우의 현재 투기장 등수는 약 320,000등.
칼 같은 스트리밍 시간을 추구하는 현우가 과연 220,000이라는 등수를 줄일 동안 스트리밍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별문제가 되지 않았 다.
지금까지 무패.
한 번의 랭킹전을 이길 때마다 현 우의 등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 다.
현우는 많아도 스무 경기 적으면 열다섯 경기 안에 다섯 자리 랭킹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자신은 지지 않는 골목대장이기에.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골목 대장입니다.”
이 순간부터 현우는 불패의 골목대 장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