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6화
‘홍, 어디서 개수작이야.’
현우가 순간적으로 마력을 잔뜩 끌 어올려 현천보를 사용했다.
현우는 번천루라면 눈을 감고도 돌 아다닐 수 있을 만큼 익숙했다.
소녀가 사라진 방향은 우측.
현재 현우가 있는 위치는 번천루의 4층, 음식 상점들이 즐비한 곳이었 다.
개중에서도 정확히는 막다른 길이 었다.
‘저쪽에는 상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단 한곳뿐.’
그곳에 있는 것은 만두를 파는 상 점이었다.
현우는 순식간에 만두를 파는 상점 의 앞에 나타났다.
그러고는 숨은 한 번 가볍게 고르 고는 가게의 안으로 들어갔다.
“계십니까?”
가게는 평범했다.
번천루의 여타 가게들처럼 적당히 화려했고 적당히 깨끗했다.
“일행이 계십니까?” 직원은 정중히 현우에게 물어왔다.
“저 혼자입니다. 혼자는 안 되나 요?”
현우가 고개를 저었다.
현우는 누군가를 쫓아왔다고는 생 각이 들지 않을 만큼 여유로워 보였 다.
“이 가게는 무엇을 팝니까? 만두?”
“다른 손님들은 대개 새우만두가 가장 맛있다고들 하십니다.”
“그런데 혼자 운영하시나 봅니다?”
“그건 왜…?”
현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다른 가게들과는 다른 것 같 아서요. 다른 가게들은 사람이 무척 많았는데…. 이곳은 손님도 직원도 없어 보여서 말입니다.”
“아…! 직원이 한 명 더 있는데 곧 나올 겁니다. 이 가게는 제 딸아이 와 둘이 꾸려가는 가게거든요.”
직원인 줄 알았던 사내는 가게의 주인이었다.
현우의 얼굴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가요? 근데 왜 안 보이죠? 제가 분명 이곳으로 들어오시는 걸 봤는데….” 현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가게의 주 인에게서 살벌한 기세가 뿜어져 나 왔다.
“당신 뭐야?”
“뭐긴 뭐야? 만두 먹으러 온 손님 이지. 왜 그렇게 쳐다봐? 손님 처음 봐?”
현우는 주인의 기세 따위는 무시한 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그럼 조용히 만두나 먹고 꺼져.”
가게 주인이 현우에게서 등을 돌려 주방으로 향했다.
현우는 그런 주인을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하늘이 개었나 모르겠네. 비가 올 것 같았는데….”
가게 주인이 어깨를 미묘하게 떨었 으나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주방으로 들어가 현우에게 내올 음 식을 준비했다.
잠시 후, 만두가 나왔다.
만두를 본 현우의 두 눈이 떨렸다.
정확히는 만두가 아닌 만두를 가져 오는 사람을 보고 있었다.
긴 머리의 소녀.
현우가 쫓아온 그 소녀가 만두를 들고 나왔다.
“주문하신 만두 나왔습니다.”
현우는 소녀를 바라봤다.
소녀의 얼굴을 가리는 뭔가가 있었 다.
[문주의 위엄이 활성화됩니다.]
[현천마공을 익힌 자의 움직임을 제한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현우가 잘못 찾아오지 않았 다는 증거였다.
“맛있겠네요. 만두가.”
현우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 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강하게 염원
했다.
눈앞의 소녀가 마력을 사용하지 못 하도록.
그때 였다.
소녀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것이 현 우의 머릿속을 울렸다.
- 잠…잠깐만 멈춰주세요.
소녀는 고통스러운 듯 말을 잔뜩 더듬었다.
‘뭐지? NPC들이 쓰는 기술인가?’
현우는 소녀의 말에도 금제를 가하 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소녀는 도망친 전례가 있었다.
그렇기에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퀘스트를 진행하려면 말은 들어줘야겠지.’
소녀의 말이 계속해서 현우의 머리 를 울렸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현우는 절대 그만두지 않았 다.
- 저…저는 배신하지 않…않았어요. 저자가 제 감시역….
쿵!!! 소녀는 거기까지였다.
말을 끝내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 졌다.
금제를 거스르고 마력을 사용한 대 가였다.
“무슨 일입니까?!!”
주방에 있던 주인은 밖에서 들려온 소리를 듣고는 다급하게 뛰쳐나왔 다.
“따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요.”
주인은 쓰러진 소녀를 안아 들었 다.
현우는 그런 주인을 향해 의뭉스러 운 말을 던졌다.
“아,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밀부’ 라는 이름의 상점을 아십니까? 이곳 번천루 어딘가에 있다는데 영 찾기 가 쉽지가 않더군요. 제가 못 찾은 것일까요? 아니면….”
주인은 소녀를 가게 한구석에 조심 스럽게 눕혔다.
“‘밀부’라…. 저는 잘 모르겠습니 다. 그리고 음식을 다 드셨으면 계 산을 하고 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현우는 가게 주인의 말에 빙긋 웃 으며 만두 접시를 들어 보였다.
“아직 남은 만두가 많습니다.” 현우는 뜨듯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우만두를 입으로 가져가 우적우적 씹어 댔다.
그러면서도 주인의 심기를 건드리 는 말을 연신 뱉었다.
“아, 제가 가게 이름을 착각했습니 다. ‘밀부’가 아니라 ‘구천밀부’였습 니다. 혹시 ‘구천밀부’는 아십니까?”
‘언제까지 참을 수 있나 보자고.’
현천마공을 익힌 소녀가 나타난 이 후, 현우는 이 상황을 즐겼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주인을 도발 하기도 했고 맛있는 만두도 음미하 며 먹었다.
어차피 퀘스트의 실마리는 현우의 손에 들어온 상태였다.
한 줄기 감각은 소녀에게 집중해 놓았다.
이번에도 놓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 었다.
“죽어!!!”
결국 주인이 참지 못하고 식칼을 휘둘러왔다.
현우가 원하던 상황이 만들어진 것 이었다.
“죽긴 뭘 죽어, 살벌하네.”
현우는 장난스러운 말과 함께 가진 바 모든 것을 주인에게 쏟아냈다. 위엄, 투기, 마력, 권역 선포.
모두가 상대방의 움직임을 옭아맬 수 있는 것들이었다.
검붉은 기운이 가게 주인의 몸을 붙들었다.
“이게 뭐야!!! 왜 안 음직여!!!”
가게 주인은 옴짝달싹하지 않는 몸 을 움직이려 애썼다.
하지만 몸만 부들부들 떨려올 뿐, 움직이지 않았다.
현우와의 격차가 너무 심한 탓에 아예 움직이는 것 자체가 통제됐다.
“이제 어떻게 해줄까?”
현우가 은근하게 물어왔다.
“당장 풀지 못해?”
주인은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는지 아직도 현우를 향해 소리를 뻥뻥 쳤 다.
하지만 현우가 물은 것은 그가 아 니었다.
주인의 뒤에 누워 있던 소녀에게였 다.
현우는 저 사내가 소녀의 감시역이 라는 말을 듣고 계획을 급선회했다.
어찌 됐든 소녀에게 자초지종은 들 어보기로 한 것이었다.
소녀의 감겨 있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죽여주세요. 쓰레기 같은 작자입 니다. 사부님이 돌아가시고 하루하 루가 지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소녀는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들었지?”
현우가 주인을 보며 말했다.
“안 돼…!!!”
현우는 움직이지 못하는 사내를 향 해 주먹을 뻗었다.
현우의 주먹에서 뻗어 나온 거대한 검은 빛줄기는 사내를 집어삼켰다.
검은 강기는 핏물 하나 남기지 않 고 사내의 모든 것을 없앴다.
“그럼 이제 얘기를 해봐. 어떻게 된 일인지. 속는 셈 치고 한 번은 들어줄 테니. 왜 배신했지?”
현우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 다.
“저는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이에요.”
소녀는 결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 눈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믿을 현우가 아 니었다.
“그러니까 말을 해봐. 어떻게 된 일인지. 왜 문주가 죽었고, 현천마공 을 익힌 사람들이 번천루에 그렇게 많은지.”
“그건…. 진태 때문입니다.”
“진태?”
현우는 처음 듣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뒷말을 듣지 않고도 그게 누구를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또 다른 제자로군. 두 명이라고 하더니.’
“그놈이 왜? 내가 본 편지에는 두 명 모두 배신자라고 쓰여 있던데 말 이야. 괜한 회피는 좋지 않아. 차라 리 용서를 구하고 자결이라도 하는 게 어때?”
현우는 강하게 나갔다.
아레나는 가상현실 게임이지 현실 이 아니었다.
강하게 나가면 그에 맞는 결과가 도출될 뿐이었다.
“정말 저는 아닙니다. 놈은…. 밀부 수뇌부의 자식입니다. 현천마공을 익혀 차기 구천밀부의 주인을 노린 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 사실을 안 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넌 왜 입을 다물고 있었지? 왜 사부에게 말을 하지 않았지?”
“당시 사부님은 중요한 일이 있다 고 저와 진태를 없는 것과 마찬가지 로 여기셨습니다. 말할 기회만을 찾 고 있었는데…. 그들이 덮쳐왔습니 다. 저는 진태에게 끌려 이곳까지 끌려온 겁니다.”
소녀는 절박하게 말했다.
현우가 무표정했기에 더욱 감정에 호소했다.
‘얼추 내용은 맞는데….’
소녀의 말을 마냥 거짓으로 취급하 기에는 너무 딱딱 들어맞았다.
현천문주는 자신에게 얻은 온전한 현천마공을 익히기 위해 수련을 했 을 것이고 당연히 두 제자에게 소홀 했을 게 분명했다.
현천문이 습격당한 타이밍도 맞았 다.
편지에 남겨진 대로라면 온전한 현 천마공을 전수하지 못했다.
제자들에게 관심을 다시 주려던 차 에 그들이 밀부의 간자라는 것을 알 아냈고 습격당했다.
‘말에서 틀린 것은 없어. 근데 왜 퀘스트가 갱신이 안 되지?’
다만 소녀의 말이 의심스러운 이유 는 하나였다.
퀘스트.
퀘스트가 갱신되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소녀의 말을 믿지 못했 다.
‘홈….’
“그럼 번천루에 대한 것을 물어보 지.”
현우는 다음 질문을 준비했다.
번천루에 숨은 밀부의 세력.
현우가 성호채주의 방에서 봤던 장 부에 적힌 금이 흘러간 곳.
그것을 물어볼 생각이었다.
“네, 제가 아는 것은 모두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소녀는 희망이 생긴 듯 당차게 대 답했다.
“이곳에 밀부와 연관된 곳이 얼마 나 있지? 아는 내에서는 모조리 말 해. 하나도 숨김없이.”
“제가 아는 곳은 세 곳입니다. 3층 에 있는 보석상 ‘금송아지’와 4층에 있는 이곳 ‘왕만두’ 그리고 7층.”
“7 층?”
현우는 끝까지 말을 하지 않은 소 녀를 다그쳤다.
‘왜 말을 하다 말아?’
7층에 어디가 구천밀부와 연관된 곳인지 말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현우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것을 눈치를 챈 것인지 소녀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7층의 도박장 전체가 구천밀부에 속해 있습니다.”
“7층 전체가?”
현우는 그제야 왜 그렇게 많은 금 화가 이곳, 번천루로 향했는지 깨달 았다.
도박장은 엄청난 양의 금이 움직이 는 공간이었다.
외부에서는 절대 알 수 없었다.
유동량을 파악할 수 없다는 뜻이었 다.
“구천밀부가 잘도 숨어 있던 이유 가 그거였군. 상단과의 접점도 없었 다더니만….”
그러자 현우의 뇌리에 한 가지 의 문이 스쳐 지나갔다.
‘이걸 황실에서 몰랐을까?’
동대륙 유일의 제국이?
자신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수도에 서 대놓고 벌어지는 일을 파악하지 못한다?
‘둘 중 하나네.’
구천밀부가 유신 제국의 눈을 벗어 날 만큼 대단한 세력이라는 것이 하 나였고 다른 하나는….
‘유신 제국이 곧 구천밀부라는 뜻 이겠지.’
황실에서 지방의 귀족들을 견제하 려는 수단으로 사용했다면 이해가 됐다.
가상의 세력인 ‘구천밀부’를 세워 놓고 지방의 귀족을 견제하고 긴장 감을 조성한다.
왜?
황실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실로 간단하고 명확한 이유였다.
‘둘 중 뭐라도 상관없지.’
하지만 현우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얘기였다.
어차피 현천문은 이미 멸망했고 동 대륙에 다시 자리를 잡을 일은 없을 것이었다.
‘르브론한테 던지든지 아니면 나중 에 얻을 영지에 자리를 잡으면 되겠 지.’
현천마공을 익힌 수백 명의 기사.
그런 이들로 구성된 기사단.
생각만 해도 환상적이었다.
그런 현우의 기분을 한층 배가시켜 주는 것이 있었다.
- 구천밀부에 대한 정보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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