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5화
쌔애애액!!!
거뭇한 초승달 수십 개가 플레이어 들을 덮쳤다.
조금 전, 방어 스킬들을 활성화시 킨 탱커들이 방패를 들고 초승달의 진로를 막았다.
퍼버벙!!!
조금은 커다란 소리가 곳곳에서 터 져 나왔다.
현우의 강기를 막은 탱커들은 몇 발자국씩 밀려났다.
그들의 표정은 미묘했다.
하지만 밝았다.
“생각보다 버겁지는 않은데?”
“스탯이 깎인 거에 비하면…. 큰 데미지는 아냐.”
“힐만 충분하면 죽지는 않을 것 같 아.”
탱커들이 하나둘 자신의 의견을 말 했다.
이 말은 고스란히 가장 뒤쪽의 비 욘과 프레비 그리고 그들이 데려온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NPC를 잡는 데에 무슨 스킬을 사용했을 수도 있지. 그 페널티도 지금 약해졌을 가능성도 있어.”
비욘이 나름대로 추측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그럴듯한 말 이었다.
강력한 NPC 둘을 순식간에 처리 했다.
스킬의 소모가 없을 수가 없었다.
“포메이션 변경은 어때? C로 가도 될 거 같은데.”
프레비가 제안했다.
그의 생각으로는 C로 가도 충분했 다.
“C로 가셔도 괜찮겠습니까? 피해 가 만만찮을 텐데요….”
제니스의 마스터, 마쓰모토가 중간 에 끼어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우려가 꽤 섞여 있었다.
“아냐, 괜찮은 것 같아. 괜찮아. 마 력만 더 소모하게 해도 이득이야. 최종 목표는 놈을 잡는 것이니.”
그러나 비욘은 프레비의 의견이 일 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포메이션 c는 이곳에 모인 이들 절반의 목숨을 걸 정도로 공격적으 로 나가는 전략이었다. 즉, 이들의 목숨과 골목대장의 체 력과 마력을 교환하겠다는 생각이었 다.
골목대장이라고 해서 마력이 무한 정은 아니라는 것을 노린 전략이었 다.
강력한 스킬일수록 재사용 대기 시 간이 길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페널티도 안고 있고 마력도 없으 면, 그때 나서도 돼.’
“그쪽 생각은 어떠십니까? 토니 씨.”
비욘이 고개를 돌려 토니를 쳐다봤 다.
“놈은 굉장히 영악합니다. 어디까 지가 자신의 한계인지 보여주지 않 습니다. 그러니 한 번 정도는 도박 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습니 다.”
토니는 팀 쉐도우의 팀장이었다.
현우를 두 번이나 노렸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팀 쉐도우의 팀 장.
‘이번에 성공하면 지금까지 쓴 돈 이상을 단번에 벌어들일 수 있다.’
팀 쉐도우의 명성은 금이 간 상태 였다.
특히 골목대장의 스트리밍에서 한 차례 굴욕을 맛본 이후 철저하게 무 너져 내렸다.
한때 최고라 불렸던 이들은 다른 업체들처럼 그저 그런 수준이라는 평가까지 낙인처럼 떨어졌다.
‘한 번만 성공하면 돼. 한 번만….’
토니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욘 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길드원에 게 말했다.
“포메이션 D를 준비한다. 그냥 다 쏟아부어.”
비욘은 더 극단적인 포메이션을 꺼 냈다.
C는 부족했다.
D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포메이션 D.
대형을 흩트리고 모든 스킬을 사용 해 딜을 집중시킨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딱 하나였 다.
통하면 좋고 아니어도 좋다.
왜?
통하지 않더라도 그걸 막기 위해 골목대장은 무슨 수를 쓸 것이다.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고 막는 것은 운영자가 와도 불가능했다.
골목대장의 스킬, 숨은 한 수가 빠 진 시점에서 비욘 자신을 비롯한 이 들이 나서 골목대장을 죽이면 된다.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 다.”
‘분위기가 이상하네?’
현우는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다.
이미 자신에게 로그아웃을 당한 이 들이 열 명이 넘었다.
그들 대부분이 탱커였고 극히 일부 가 근접 딜러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저들의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 이었다.
‘사려야 하는 타이밍인데….’
오히려 현우를 향해 저돌적으로 달 려들었다.
‘거인 버프는 1분? 정도 남았고.’
갈망하는 자는 거인 버프들보다 지 속 시간이 5분이 더 기니 6분이 남 은 셈이었다.
시간 계산을 한 현우의 얼굴에 비 열한 미소가 떠올랐다.
‘낚시가 이렇게 잘 먹히나?’ 현우는 4분간의 전투에서 마력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각종 버프가 아까웠다.
그러나 이들을 빨리 처리할 수 있 다면 기꺼이 버릴 수 있었다.
때마침 초승달 베기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왔다.
현우는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이들 을 향해 마력을 듬뿍 담아 초승달 베기를 시전했다.
쐐애애애액!!!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섬뜩한 소리가 산채를 채웠다.
이제는 몇 명 남지 않은 탱커 플 레이어들이 모여 현우의 강기를 막 아섰다.
지금까지 충분히 잘 막았기에 이번 에도 그럴 것이라 믿고 있었다.
촤아아아!!!
믿음은 여지없이 박살났다.
방패가 잘리고 탱커들이 잘려나갔 다.
잘려나간 상처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 뒤에 서 있던 근접 클래스의 플레이어와 마법사들 역시 피하지 못하고 몸으로 강기를 받아냈다.
한순간에 산채의 바닥에 핏물이 흥 건하게 흘렀다.
흐르는 핏물과는 반대로 공기는 적 막했다.
뭔가에 꽉 막힌 것처럼 아무런 소 리도 들리지 않았다.
현우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 다.
무언가를 찾는 눈치였다.
두어 번을 좌우로 고개를 돌린 현 우가 입을 열었다.
작지만 또렷하게 현우의 목소리가 울렸다.
저 멀리에 있는 비욘과 그 일행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제야 걸리적거리는 애들 다 치 웠네. 이제 탱커가 없네? 이야…. 이제 무슨 수로 막냐? 비욘아!!!”
비욘의 이름이 산채를 쩌렁쩌렁 울 렸다.
현우의 말을 들은 비욘의 얼굴은 종이 짝처럼 구겨졌다.
뒤에 있어 알지 못했다.
정확한 전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 는지를.
‘탱커들이 전멸이라고?’
“최악이군. 프레비, 당장 준비해.
두 분도 알아서 준비하시길.”
비욘은 어두운 얼굴로 파이브 스타
의 PK 전문 부대인 팀 헬리의 팀원 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프레비를 비롯한 나머지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골목대장과의 전투를 준비한 모토는 레이드였다.
골목대장을 보스 몬스터 삼아 준비 했다.
레이드에서 탱커가 없는 것은 실패 나 다름없었다.
“제니스, 파이브 스타 연합은 전멸 이군. 우리를 제외하고는.”
팀 헬리에게 지시를 마친 비욘이 몸을 돌려 프레비와 마쓰모토 그리 고 토니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다른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는 모두 그에게 한 번씩 패배했습니 다. 그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비욘과 프레비를 비롯한 이들이 전 장에 합류했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길드원들이 현실로 쫓겨난 이후였 다.
전투가 시작된 지 채 5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 대부분 골목대장이 얼마나 ‘놀이’를 즐기고 있었는지 알 수 있 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수많은 길 드원들이 도축장의 소처럼 도살을 당했다.
차마 두 눈으로 보기 힘들 지경이 었다.
나무 밑에 몸이 두 동강이 난 채 쓰러진 녀석은 불과 30분 전 자신 과 웃고 떠들던 동생이었고.
몸은 어디로 갔는지 머리만 남아 굴러다니는 녀석은 자신만 보면 존 경한다며 고개를 숙이던 길드원이었 다.
“내가 그랬지. 감당할 수 있겠냐고. 내 스트리밍 방해하고 아레나 방해 하고. 언제까지 참아줄 거 같았어? 나 탱이랑 밥 먹으러 가야 하거든.
얼른 덤벼.”
뚜득.
비욘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끊어지 는 소리가 들렸다.
실제로는 나지 않았다.
그러나 비욘은 확실히 들었다.
“그래, 덤벼주마.”
비욘은 새파란 빛을 흩뿌리는 검을 뽑아 들고 땅을 힘차게 박찼다.
피로 질척이는 홁바닥을 찰박이며 빠르게 달렸다.
비욘의 검이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푸른 강기가 파도처럼 현우를 덮쳤 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파도였다.
현우는 비욘의 공격을 그대로 모방 해 현천도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현천도에서 검은 강기가 뿜어진 강 기가 파도처럼 허공을 수놓았다.
펑!!!
강기는 서로 공멸했다.
비욘은 그것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이미 후속 공격을 시작한 상태였다.
거대한 초승달 모양의 강기.
초승달 베기였다.
그러나 숙련도와 전체적인 스탯의 차이 때문에 현우의 그것보다는 월 등히 작았다.
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크기 였다.
쌔애애액!!!
하지만 강기는 강기였고 초승달 베 기는 초승달 베기였다.
강렬한 기세와 함께 현우를 향해 쏘아졌다.
쌔애애액!!!
그러나 초승달 베기는 비욘만의 전 유물이 아니었다.
현우도 초승달 베기를 익히고 있었 다.
펑!!!
그러나 이번에는 처음처럼 공멸이 아니었다.
현우의 초승달이 비욘의 초승달을 완벽히 부수고 비욘을 향해 날아갔 다.
쩌저정!!!
꼼짝없이 당할 위기였던 비욘의 앞 에 하얀 방어막이 생겨났다.
방어막이 비욘 대신 쪼개졌다.
“혼자 가면 어떡해? 계획대로 해야 지.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해.” 프레비가 비욘에게 핀잔을 줬다. 비욘은 그제야 현실을 파악했다.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무슨 짓을 벌였는지.
어떤 위기를 자초했는지.
“미안,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할게.”
“알면 됐고. 다들 전투에 돌입 해!!!”
프레비의 고함에 일련의 플레이어 들이 현우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 수는 대략 마흔.
파이브 스타의 마스터 다섯과 팀 헬리.
제니스의 마스터 마쓰모토와 그가 고르고 고른 정예들.
마지막으로 팀 쉐도우.
이들은 한껏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피로 물든 공간에서 싸운다 는 것은 언제나 긴장되는 일이었다-
이 모습을 만든 사람이 한 명이라 면 더욱 긴장될 터였다.
수는 이전의 플레이어들에 비하면 반절도 되지 않았지만, 압박감만큼 은 이쪽이 훨씬 위였다.
이들에게 특이점이 있다면, PVP가 사냥보다 익숙한 이들이 많은 탓인 지 방패를 들고 있는 플레이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제나 마법사도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서너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오로지 근접 클래스로만 이뤄져 있었다.
마흔에 가까운 근접 클래스 플레이 어들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였 다.
차례대로 한 명씩 돌아가며 스킬을 사용했다.
철저한 차륜전이었다.
한 사람이 절대 두 번 이상 현우 와 공방을 나누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시청자 중 한 명이 의문을 표했다.
- 좀 이상하지 않냐?
- 뭐가? 이상해?
- 그냥 되게 봐주는 느낌이 든다. 반 격을 안 해.
- 잠깐만…. 진짜네?
현우의 행동이 이상했다.
본래라면 스킬을 맞받아치거나 막 고 반격을 하는 게 정상이었다.
실력 이전에 월등한 캐릭터의 스펙 차이가 그것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줬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런 게 없었 다.
묵묵히 상대방의 스킬들을 막아내 기만 했다.
마치 상대의 스킬을 소모하려는 것 처럼.
- 그러고 보니까 붉박꼼도 안 씀.
- J 느려지게 하는 검은 그것도 안 쓰스
- 왜 이렇게 스킬을 아껴? 재사용 대 기 시간은 진작에 돈 거 같은데.
보면 볼수록 이해가 안 됐다.
사실 이것은 제삼자로서 전투를 지 켜보는 시청자들이기 때문에 알아챈 것이었다.
실제로 전투를 치르는 이들은 현우 의 그런 행태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 다.
그 순간이었다.
시청자들이 말한 스킬들을 현우가 사용했다.
투기 발산으로 인하여 생성된 붉은 기운이 실처럼 수십 명의 플레이어 를 잠식했고 권역 선포의 검은 기운 이 이들의 발을 묶었다.
“뭐야?”
“스킬을 쓸까요?”
여기저기서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 다.
지시를 가만히 기다리기에는 디버 프가 너무 강력했다.
움직임이 굼뜨다 못해 기는 것 같 은 느낌이었다.
“풀…!!!”
비욘을 비롯해 각 길드의 오더가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허공에 청백색의 결정들이 생겨나 기 시작했다.
“주인 놈은 내가 구한다!!!”
저 멀리 통나무집의 꼭대기에 작은 인형이 나타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