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의 귀환-323화 (324/939)

제 322화

역천대 부대주인 수찬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예정됐던 훈련을 모두 마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귀환 명령이 떨어진 이상 돌아가야 했다.

‘빌어먹을. 하필 왜 지금….’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졌으면 좋았 을 터였다.

그랬다면 부대주 자리를 벗어나 대 주 자리에 도전했을 텐데.

아쉬웠다.

그러나 그것을 겉으로 티를 낼 수 는 없었다.

‘무르익기 전까지는….’

현재의 자신은 대체 가능한 소모품 이었다.

그러나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른 뒤 에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었다.

“뭐야?!!”

그 순간 수찬의 앞으로 두 인영이 나타났다.

어린아이의 가면을 쓴 남녀.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성별 정도는 몸의 실루엣만 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뭐긴 뭐야. 지나가던 악마지.”

수찬은 사내의 말을 듣고 피식 웃 었다.

악마라니.

다섯 살 애도 믿지 않을 소리 아 닌가.

정확히 10분 후.

수찬은 10분 전의 자신을 처절하 게 원망했다.

사내의 말을 가볍게 넘긴 것을 후 회했다.

***

“어떻게 같이 싸우실까요? 제가 맞 춰드릴게요.”

현우가 앞을 보고 중얼거렸다.

“네, 그러면 저야 좋죠.”

레이나 역시 앞을 보고 중얼거렸 다.

반대편에서 보는 두 사람은 그냥 우두커니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은 전 혀 들지 않았다.

“그럼 마음대로 싸우세요. 백업은 확실히 할 테니.” 현우의 말을 들은 레이나가 세검을 뽑아 들었다.

그녀는 거침없이 달려나갔다. 프로 리그에서도 보기 힘든 질주였다.

이런 모습이 나오는 이유는 단 하 나.

골목대장이 뒤를 받쳐준다.

이보다 더 든든할 수가 없었다.

레이나의 주변에서 푸른 기운이 맴 돌았다.

갑작스럽게 주변 환경이 변했다.

협곡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바위만 가득했던 협곡에 빙하가 생 겨났다.

미지는 언제나 공포를 동반했다.

“피해!!!”

수찬이 소리를 질렀다.

저런 기술은 들어본 적도 없었고 본 적도 없었다.

당연히 휘하의 역천대원들에게 피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어딜 가시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우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제는 현우의 전매특허가 된 기술 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투기 발산과 권역 선포의 조합.

상대의 움직임을 극한으로 제한하 는 공포의 CC(군중제어)기.

[역천대 부대주, 수찬이 상태 이상‘둔 화’에 걸렸습니다.]

[역천대원, 제누가 상태 이상 ‘둔화’에 걸렸습니다.]

현우의 투기와 마력은 빠르게 얼어 가는 지역을 피하려던 역천대 모두 의 발을 묶었다.

“이건 또 뭐야!!!”

당혹스러운 비명이 터졌다.

그러나 이미 그때는 늦은 상태였다.

레이나가 펼친 아이스 필드가 협곡 을 지배했다.

[역천대원, 제누가 상태 이상 ‘빙결’에 걸렸습니다.]

[역천대원, 파나가 상태 이상 ‘빙결’에 걸렸습니다.]

역천대원들이 서서히 얼어붙었다.

몸에 하얀 서리가 끼고 발과 땅이 일체화되기 시작했다.

‘아이스 플라워!’

레이나의 세검에서 푸른빛 강기가 쏟아져 나왔다.

강기의 모양이 점점 갖춰졌다.

화려한 장미를 닮은 꽃이었다.

얼음의 꽃이 역천대를 덮쳤다.

그들은 대응하지 못했다.

움직일 수가 없는데 어떻게 강력한 스킬을 막아내겠는가.

레이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역천대를 덮친 얼음의 꽃이 산산이 흩날렸다.

각각이 수백 개의 조각이 되어 주 변을 덮쳤다.

“크아아아!!!”

단련된 무사들인 역천대원들의 입 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졌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온몸이 강기 조각으로 들쑤셔진 고 통은 당해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감각이었다.

‘전투가 이렇게 쉽던가…?’

레이나는 자신이 만든 광경에 놀랐 다.

처음이었다.

동료 선수들과 사냥했을 때와는 비 교도 되지 않는 난이도였다.

저레벨의 사냥터에 온 느낌이었다.

‘아이템과 스킬을 얻은 차이도 확 실히 있어.’

현우에게 받은 두 가지 선물 덕분 인지 스킬의 위력이 아예 달라졌다.

체감 수준이 아니라 눈으로 보일 정도로 위력이 상승했다.

“레이나 님, 엄청 강하시네요. 이 정도면 다음 시즌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는데요?”

그때 레이나의 귀에 듣기 좋은 중 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골목대장 님 덕분이죠. 반지와 스킬 덕에 한결 강해졌으니까요.”

레이나가 전투 상황과는 맞지 않는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무서 워해도 될 정도였다.

수십의 사람을 폭사시켜 놓고 나긋 한 말투를 쓰는 광경이라니.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그럼 홀리기 전에 얼른 처리하죠. 탱이도 있고 저도 있고 하니까…. 마음껏 싸우셔도 됩니다. 뒤 생각하 지 마세요. 그냥 공격만 하시면 됩 니다.”

- 강중구 님으로부터 : 네가 말한 다 섯 명 잡았다. 이제 끝난 거냐?

- 강중구 님에게 : 네, 도망간 녀석들 은 전부 끝났네요. 이제 딱 한 명 남았 습니다.

현우는 느긋하게 강중구와 귓속말 을 주고받았다.

전투는 이미 막바지였다.

땅 위에 두 발을 붙이고 있는 사 람은 단 세 명뿐이었다.

역천대 부대주, 수찬.

현우와 레이나.

역천대는 도망치기 위해 부단히 노 력 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는 현우가 그것 을 막았고 다음에는 탱이가 막았다.

그것을 뚫고 나간 다섯 명은 이미 기다리고 있던 네 사람을 뚫지 못했 다.

‘부대주가 있는 줄은 몰랐지.’

투기 발산을 사용했을 때 분명 메 시지가 떴을 터였다.

그러나 늘 나타나는 메시지라 눈여 겨보지 않아 몰랐을 뿐이었다.

현우가 알아챘을 때는 퀘스트가 갱 신되었을 때였다.

-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클리어 조건에 역천대 부대주 처치

0/1이 추가됩니다.]

“마무리는 어떻게 하실래요? 직접 싸워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할 까요?”

현우가 레이나를 향해 물었다.

레이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력이 없어.’

싸워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저 정도 수준의 인간형 몬스터와 싸우는 것은 상당한 경험이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여건이 받쳐주지 않았다.

“골목대장 님이 마무리하세요. 마 력이 없어서 못 싸울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제가 싸울 테니 탱이 랑 같이 구경이라도 하세요.”

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탱이를 가 리 켰다.

레이나는 즉시 뒤로 물러났다.

“예쁜 인간이다. 여기, 여기 앉아 라.”

탱이는 자신에게 다가온 레이나를 반겼다.

레이나가 바닥에 앉자 탱이가 레이 나의 무릎 위로 뛰어올랐다.

“자, 이거 받아라. 맛있는 거다.”

탱이가 레이나에게 갈색빛의 길쭉 한 뭔가를 한 움큼 내밀었다.

레이나는 반사적으로 탱이가 내미 는 것을 받았다.

‘ 육포?’

그것의 정체는 육포였다.

“주인 놈이 만들어준 거다. 정말 맛있다.”

“잘 먹을게. 고마워, 탱이야.”

레이나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탱이 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헤….”

탱이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감돌 았다.

***

둘의 상황을 꿈에도 모르는 현우는 탱이가 레이나에게 평소 자신을 대 하듯 막 대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설마 그러겠어.’

현우는 걱정을 뒤로하고 수찬을 향 해 다가갔다.

“어떻게 알고 기다린 거지?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텐데….”

수찬이 이를 갈며 말했다.

수찬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 았다.

어떻게 역천대가 천산 산맥에 있는 지를 알았는가.

복귀가 지금인 것은 또 어떻게 알 았는가.

“내가 누구인지는 궁금하지 않고?”

현우는 수찬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았다.

도리어 다른 질문을 던져 그의 머 릿속을 더욱 헤집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누가 네게 정보를 줬지?”

수찬은 현우의 수작에 넘어가지 않 았다.

그러나 현우도 만만치 않았다.

수찬이 원하는 답을 내놓지 않았 다.

스르릉.

현천도가 수찬을 겨눴다.

이것이 현우가 내놓은 답이었다.

문답무용.

“널 죽이고 돌아가서 내가 직접 알 아보겠다.”

뽑힌 현천도를 본 수찬이 손에 쥐 고 있던 검으로 현우에게 뻗었다.

수찬은 그 즉시 땅을 박차고 현우 에게 달려들었다.

틈을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속전속결 이다.’

역천대원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수 없이 봤다.

붉은 기운이 나오면 제 실력을 발 휘하지 못한다.

그것이 나오기 전에 승부를 봐야 했다.

‘이게 웬 떡이지.’

현우는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수찬 이 마냥 고마웠다.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잘 먹겠습니다.”

현우가 현천도를 수평으로 그었다.

허공이 잘리며 그 자리에 검은 강 기가 생성됐다.

쐐애애액!!!

검은 초승달이 수찬을 향해 쏘아졌 다.

수찬의 발걸음이 순간 멈칫했다.

난생처음 보는 크기의 강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잠시였다.

수찬의 검에 암녹색의 강기가 솟아 났다.

암녹색 빛이 감싼 검이 빠르게 휘 둘러졌다.

쾅!!!

암녹색 검과 검은색 강기와 충돌하 자 폭음이 터졌다.

한 치의 밀림도 없는 치열한 힘 겨루기 였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치명적인 빈틈이 있었다.

검은 강기는 현천도가 아니다.

이 말은 곧, 현우는 자유의 몸이라 는 뜻이었다.

수찬이 힘겹게 검은 강기를 걷어냈 다.

현우가 쏘아낸 초승달 베기는 하늘 높은 곳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수찬의 전진은 다시 시작되 지 못했다.

수찬의 앞에 가면을 쓴 사내가 도 를 어깨에 걸친 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우는 현천도를 마치 도끼처럼 내 리 찍었다.

쾅!!!

수찬이 검을 들어 막았으나 현우의 강력한 힘에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 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크읍….”

신음마저 흘러나왔다.

현우는 현천도를 양손으로 잡아 정 말 도끼처럼 썼다.

연신 찍어댔다.

수찬을 장작처럼 쪼개버릴 기세였 다.

“주인 놈이 참 강하지 않나? 항상 봐도 항상 놀랍다.”

탱이가 육포를 우물거리며 웅얼거 렸다.

“그러게. 정말 잘 싸우네.”

‘정말 영리해.’

현우의 전투를 지켜보는 레이나는 감탄에 감탄을 연발했다.

정말 전투 하나는 완벽했다.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했고 상대의 약점을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아레나 위크에 오는 건 골목대장 이겠네. JT는 안타깝지만… 와일드 카드를 노려야 할 것 같네.’

레이나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도 탱이는 계속해서 현우에 대한 칭 찬을 늘어놨다.

“싸움만 잘하는 게 아니다. 얼굴도 얼마나 잘생겼는지 막막 시장에서 꼬치를 한 개만 사도 하나를 더 준 다. 엄청나다.”

심지어는 외모까지도 칭찬했다.

이미 이야기의 논점은 잔뜩 흐려진 상태였다.

“그래, 잘생겼지. 얼굴이….”

그때 였다.

수찬이 현우의 공격을 튕겨내는 데 성공했다.

수찬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현우 에게 검을 휘둘렀다.

촤아!!!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물론 수찬의 몸에서였다.

튕겨낸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현 우가 뒤로 빼낸 것이었다.

반동을 이용해 한 박자 빠르게 현 천도를 휘두른 것이었다.

상대의 심리를 역이용한 영리한 한 수였다.

역천대 부대주, 수찬을 처치했습니 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 업을 했습니다.]

[체력과 마력이 전부 회복됩니다.]

역천대 부대주 처치 1/1.

현우는 눈앞을 메우는 기분 좋은 메시지를 보며 옅게 웃었다.

‘얼마 남지 않았어.’

퀘스트도.

그리고 복수도.

프로 데뷔도.

모든 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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