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의 귀환-345화 (346/939)

제 344화

다시 찾아간 에드찬의 공방은 차게 식어 있었다.

언제나 후끈한 열기를 방출하던 화 로는 일반적인 온기만을 가지고 있 었다.

“에드찬 님, 일어나세요. 이런 곳에 서 주무시면 입 돌아갑니다.”

현우는 공방 한쪽에 쌓인 나무 위 에서 자는 에드찬을 흔들어 깨웠다.

“왔나? 원래 튼튼한 드워프는 이런 곳에서 자도 아무렇…치! 않아.”

에드찬은 기침을 토해냈다.

그가 한 말과는 전혀 다르게.

“한창 때도 아니실 텐데 조심하세 요.”

현우의 염려에 에드찬이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러고는 공방 한편에 놓인 검은 천 옷을 내밀었다.

“붉은 모루 일족 특제 비법으로 가 공해 만들었다. 누구도 드레이크의 가죽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할 거다.”

현우는 조심스럽게 검은 옷을 받아 들었다.

‘아이템 정보.’

[피로 물든 밤]

현천마존이 즐겨 입던 외투. 드워프 일 족의 황금망치가 부족 특별 비법을 활 용해 수선했다. 본래의 특성을 찾을 수 는 없다.

등급 : 유니크

제한 : 힘 1,300, 민첩 1,700 이상.

내구도 : 3,000/3,000

방어력 : 1,250

효과 : 모든 스탯 + 50, ‘유영하는 푸 른 날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유영하는 푸른 날개 : 마력을 주입하 면, 낙하 속도를 줄입니다. 허공에서 의 지에 따라 느리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좋네. 효과는 뭔가 애매하긴 한 데….’

크게 쓸모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낙하 속도를 줄이는 것.

‘허공에서 움직이는 건 괜찮네.’

그다음에 적힌 효과는 꽤 쓸 만한 것 같았다.

허공에서 움직임이 가능하다는 건 변수 창출이 가능했다.

‘쓰지도 않는 망령화보다 훨씬 낫 지.’

망령화의 사용 빈도는 극히 낮았 다.

기본적으로 달린 방어력이나 스탯 증가량도 ‘피로 물든 밤’이 훨씬 좋 았고.

현우는 곧장 로톤의 예식 코트를 벗고 피로 물든 밤을 입었다.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도 좋은 게 있으면 들고 오겠습니다. 트레샤 님이 걱정되시면 ‘프니스’라 는 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에드찬 님.”

에드찬에게 온 목적을 모두 달성한 현우가 작별의 말을 꺼냈다.

“그래, 궁금하면 가지. 프니스….”

현우가 에드찬과 물물교환에 한창 일 때 크루즈 산에는 드레이크를 잡 기 위한 플레이어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모두 프로게이머들이었다.

소속은 가지각색이지만, 목적은 같 았다.

‘동대륙으로 넘어가 황실 기여도를 획득하는 것.’

이미 그에 관련된 퀘스트는 모두 받은 상태였다.

동대륙에 넘어가 물품만 가져오면 됐다.

“다들 공략은 숙지했지?”

김진용이 같은 팀의 선수들을 바라 보며 물었다.

선수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과 양의 루트로 드레이크와 관련 된 정보를 모으고 분석한 시간이 하 루 이틀이 아니었다.

모르면 프로게이머의 자질이 의심 되는 상황이었다.

“당연하죠, 형.”

“지금도 머릿속에서 영상 재생 중 입니다.”

선수들의 개성 넘치는 답을 들은 김진용이 웃었다.

“그래, 오늘 말조심들 하고. 우리끼 리면 괜찮은데. 다른 팀들도 있잖아. 그것도 전부 국내 팀이니까 더 조심 해. 대형 길드하고 부딪치는 거랑은 차원이 다른 문제야.”

김진용이 신신당부했다.

평소에도 조심해야 했지만, 오늘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같은 업계 사람들의 평판은 그 누 구의 평가보다 냉철하고 중요했다.

“다시 한 번 설명하면, 오늘은 총 네 개의 팀이 모였다. UK 하이츠, 발렛 파이터즈, 샤롯 드래곤즈까지. 한국 리그 4강이 전부 온 셈이지. 드레이크를 잡기 위해서.”

김진용의 말에 정한백이 덧붙였다.

“사실 두 팀이면 충분하죠. 우리가 드레이크 분석에 들인 시간이 얼만 데요. 네 팀이면 금세 잡을 겁니다.”

“방심하지 마, 정한백. 이제 처음이 야. 우리가 직접 겪어본 게 아니야. 자신감은 좋지만, 자만은 금물이다.”

김진용이 정한백에게 쏘아붙였다.

냉정한 말이었다.

현재 상황에 필요한 말이기도 했 다.

“형, 한백이 형 말도 틀린 게 아닌 데 너무 그러지 마요. 솔직히 우리 만으로는 벅차도 UK 하이츠까지만 있어도 잡을 수 있잖아요.”

JT 텔레콤의 막내, 유빈이 정한백 을 두둔했다.

그러나 김진용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이럴 때 더 신중해야 돼. 삐끗하면 안 되는 순간이다. 리그 중이라고 생각해.”

김진용의 말로 인해 JT 텔레콤의 분위기가 경직됐다.

정확히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런 분위기 그대로 다른 팀의 선수들과 크루즈 산꼭대기의 비석을 향해 이동했다.

“진용아, 준비 잘했냐? 어설프면 안 돼. 실수하면 큰일 난다.”

UK 하이츠의 에이스이자 주장인 정진남이 김진용에게 반갑게 인사했 다.

하지만 말 속에 뼈가 있었다.

“우리야 언제든 완벽하지. 직전 한 국 리그 1위 팀 아니냐.”

김진용은 되로 받고 말로 돌려줬 다.

웃음 뒤에 칼을 숨겼다.

“그래, 그래야지. 근데 윈터 리그 때는 힘들 걸?”

정진남은 화를 내지 않고 덤덤하게 맞받아쳤다.

오늘은 싸우기 위해 모인 날이 아 니었다.

“얼른 잡고 헤어지자. 피차 바쁘잖 아. 한 달 사이에 영지 구하려면, 잠 잘 시간도 부족할 텐데. 밥은 먹 고 잠은 자야지. 안 그래?”

두 사람의 살벌한 대화에 두 팀의 선수들은 물론이고 다른 두 팀의 선 수들까지도 입을 다물었다.

김진용과 정진남은 한국 아레나 리 그에서 가장 나이도 많고 경력도 길 었다.

거기에 가진 실력도 최고라 두 사 람을 제지할 위치에 있는 선수가 없 었다.

“그래, 여기서 더 말해봐야 시간 낭비지. 그럼 말한 대로 자리 잡고 드레이크 레이드 시작합시다.”

김진용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48명의 프로게이머가 움직이기 시 작했다.

사제와 마법사들이 뒤로 물러나고 근접 계열들이 앞으로 나섰다.

“리그만큼만 합시다!” 정진남이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갔 다.

“저 병신….”

그걸 본 김진용이 눈살을 찌푸렸 다.

그러면서도 이미 김진용은 정진남 에게 버프를 걸고 있었다.

프로의 레이드 아니, 체계적인 레 이드에서 오더는 대부분 두 명이 내 렸다.

근접 계열에서 한 명.

후방 지원에서 한 명.

이는 오랜 경험으로 인해 굳어진 형태였다.

마법사 혹은 사제 그것도 아니면 원거리 공격 클래스가 전장을 전체 적으로 살펴 굵직한 오더를 내린다.

반면 근접 클래스는 최전방에서 전 투를 펼치며 때때로 사소한 오더를 내렸다.

“버스 승객 한 명 있다고 생각하고 다들 집중합시다. 일단 본인 팀 선 수들에게 버프 순차적으로 시전 하 세요.”

당연히 후방 오더는 김진용이 맡았 다.

국내 프로게이머 중에서 그를 제칠 만한 실력을 갖춘 사람은 없었다.

“마법은 얼음 계열 위주로 쓰세요. 정 안 되면 불까지는 됩니다. 그 외 에는 쓰지 마세요. 마력 낭비니까.”

김진용은 사전에 파악한 정보에 따 라 정확한 지시를 내렸다.

드레이크의 외피 색은 노란색이었 다.

노란색 드레이크는 번개 속성이었 다.

전방에서는 정진남이 목소리를 쩌 렁쩌렁하게 울리며 프로게이머들을 지휘했다.

“버프 받으신 분부터 깔끔하게 칼 질 들어갑시다. 오늘 드레이크 못 잡으면, 저희 프론트에서 저 잡으러 옵니다. 한 번만 살려주이소.”

정진남의 유쾌한 말에 곳곳에서 웃 음이 터져 나왔다.

정진남의 이런 성격은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또 달 랐다.

“그럼 제가 제일 먼저 가겠습니 다.”

정진남은 겁도 없는지 수십 미터 덩치의 드레이크에게 아무렇지 않게 달려들었다.

그는 환하게 빛을 내뿜는 강기를 빠르게 휘둘렀다.

깔끔한 궤적의 일검이었다.

카아앙!

드레이크의 두꺼운 외피와 부딪치 자 칠판을 긁는 듯한 기괴한 소리가 터졌다.

정진남의 검이 드레이크의 가죽을 꿰뚫고 상처를 남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외피에 그의 흔적을 남기는 것에는 성공했다.

‘리그 레이드 몬스터보다는 확실히 어렵네.’

정진남은 평소와는 다른 둔탁한 느 낌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까지 막히는 느낌은 또 처음 이었다.

‘두 시간쯤 걸리겠는데?’

그러나 드레이크 레이드는 정진남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막혀도 다른 플레이어가 있고 마법사들도 있었다.

시간이 걸릴 뿐 레이드 성공이 불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20초 뒤에 얼음 마법 들어갑니 다!!!”

그 순간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김진용의 브리핑이었다.

“우리는 10초 동안 딜합니다. 가벼 운 것들로 한 방씩 먹이세요!!!” 정진남이 소리치며 검을 휘둘렀다.

일단 그부터 스킬을 사용했다.

다른 사람들이 스킬을 사용하든 말 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지들이 프로게이머면 알아서 하겠 지.’

정진남의 생각은 맞았다.

서른에 가까운 이들이 일사불란하 게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며 스킬을 사용했다.

프로게이머다운 면목을 보였다.

펑!!! 쾅!!!

형형색색의 강기가 드레이크의 전 신을 두들겼다.

변변한 상처는 없었지만, 어느 정 도 충격을 주는 데는 성공했다.

근접 클래스들 모두가 드레이크에 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예고된 마법이 날아올 타이밍이었 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뒤로 물러나자마자 드레이 크의 머리 위에는 거대한 푸른 공이 생겨났고 곳곳에서는 날카로운 얼음 창이 허공을 찢어발기며 드레이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캬오오!!!”

드레이크도 멍청이는 아니었다.

가만히 서서 당해주지 않았다.

마력을 잔뜩 품은 날개를 휘둘러 날아오는 얼음 창을 튕겨냈다.

그러고는 머리 위에서 낙하하는 얼 음 덩어리를 앞발로 낚아채 그대로 부숴버렸다.

‘세 시간은 걸리겠는데?’

그 광경을 본 정진남이 속으로 중 얼거렸다.

두 시간은 살짝 힘들 것 같았다.

그렇게 괴물을 잡는 데는 세 시간 은 필요했다.

*♦*

“그대들도 동대륙으로 갈 권한을 얻었다.”

요하네스가 수십 명의 인간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무표정한 표정과 달리 그의 속은 바짝 타들어 가고 있었다.

‘괜히 숫자를 줄여준 거 같은데…. 이번까지 합치면 100명 가까이 되 는 수….’

현우의 말도 안 되는 협박에 넘어 가 250명을 줄인 것이 미친 듯이 후회됐다.

‘로드께는 뭐라 말하지? 아… 미치 겠네.’

그런 요하네스를 향해 누군가가 입 을 열었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가슴에 JT라는 글자가 새겨진 사 내, 정한백이었다.

“그래, 한 개 정도는 들어주지. 뭐 가 궁금하지?”

“현재 동대륙에 넘어간 모험가들의 수가 얼마나 됩니까?”

“얼마나 되더라.... 500은 확실히 넘는다. 하지만 1,000명은 절대 안 돼.”

요하네스의 단언을 들은 프로게이 머들의 표정이 다들 묘하게 변했다.

생각보다 동대륙으로 넘어간 플레 이어의 수가 많았다.

“감사합니다, 요하네스 님.”

정한백이 고개를 숙이고는 뒤로 빠 져 JT 텔레콤의 선수가 모여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정한백과의 문답이 끝난 후, 요하 네스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네 팀의 선수들은 각 자 정해진 계획에 따라 움직이기 시 작했다.

“나 아까 한백이 형이 말할 때 식 겁했다니까. 드래곤이 손가락만 움 직여도 끔살인데. 미쳤나 싶었어.”

유빈이 정한백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었다.

“근데 지금 조금 심각한 상황 같은 데….”

도정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 었다.

“1,000명이 넘어가면 아무래도 황 실 기여도 얻기가 힘들어지겠지. 황 실에서 직접 무역에 뛰어들면 보상 자체가 줄어들 테니까.”

당연한 얘기였다.

사람 수가 늘어날수록 한 명이 가져 가는 보상의 크기가 작아지는 것은.

“어쩌면 동대륙에서도 오늘처럼 연 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요? 쟤네 얼굴을 또 봐요?”

유빈이 김진용에게 물었다.

“아니. 그 녀석들이랑 할 필요는 없지. 우리는 대형 길드들에게 붙는 다. 영지가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영지의 필요성이 적은 대형 길드와의 연합.

그게 김진용이 생각한 최선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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