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7화
현우와 파이오니어 길드의 눈앞에 나타난 첫 몬스터는 검붉은 색의 소 였다.
놈의 이름은 지배당한 블랙 카우.
머리부터 발끝까지는 대략 2미터 30센티에 달해 보였고.
꼬리까지 합친 몸길이는 대략 5미 터.
특히 이마에 난 짙은 잿빛 뿔이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일단 정면으로 맞서지는 말고 살 살 흘리면서 싸우죠.”
현우가 콧방귀를 거칠게 내뿜으며 달려오는 블랙 카우를 보며 말했다.
저런 괴물에 무식하게 대응했다가 는 괜한 피를 보기 십상이었다.
‘나는 괜찮겠지만….’
특히 현우라면 몰라도 파이오니어 의 두 근접 플레이어들은 불가능할 것이었다.
“사제랑 마법사분들은 케트 님과 쥬얼 님 그리고 제 뒤에 숨으세요.”
근접 클래스도 충돌했을 때의 승산 이 희박했다.
마법사나 사제가 버텨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걸리면 한 방이었다.
블랙 카우는 거칠게 뛰었다.
지나가는 곳마다 땅이 한 움큼씩 파였다.
종국에는 어지간한 자동차가 달리 는 것만 같은 속도로 다가왔다.
“꼭 잡아.”
쥬얼이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마법 사, 아스에게 말했다.
저런 속도라면 혼자 피하는 것도 벅찰 것 같았다.
거기에 마법사라는 짐까지 딸려 있 으니….
새삼 긴장됐다.
그런데 블랙 카우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졌다.
다가올수록 느려졌다.
원래라면 충돌 직전이 블랙 카우가 낼 수 있는 최고점이었다.
‘나야 좋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쥬얼은 좋은 게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는 검 과 방패를 들었다.
쥬크가 검과 방패를 휘두를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에게까지 오기 전에 블랙 카우가
고꾸라졌다.
커다란 덩치에 비하면 여리다고 할 수 있는 무릎 밑쪽이 그대로 잘려나 간 것이었다.
이런 일을 벌일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누군지 보지 않아도 뻔했다.
“역시 무릎이 약점인 것 같네요.”
골목대장이 옅은 푸른빛이 감도는 그의 무기를 털며 말했다.
블랙 카우는 바닥에 쓰러진 채 푸 들푸들 몸을 떨었다.
잘려나간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분 수처럼 솟아올랐다.
“마무리하시죠.”
현우는 멍하니 쓰러진 블랙 카우를 쳐다보는 파이오니어 길드원들을 쳐 다봤다.
“네…? 네. 다들 공격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아스 였다.
그가 먼저 얼음 마법을 사용해 누 워 있는 블랙 카우를 공격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길드원들 역 시 공격에 참여했다.
- 지배당한 블랙 카우를 처치했습니 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블랙 카우는 허무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새 더 강해지셨군요….”
케트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 했다.
현우는 마력을 주입하지 않아도 옅 은 푸른빛을 띠는 현천도를 흔들었 다.
“12강이 세기는 셉니다. 가져다만 대도 툭툭 썰리네요.”
현우가 익살스러운 목소리로 대답 했다.
그 모습에 케트는 웃음이 터져 나 왔다.
‘변한 게 없네.’
그 예전 얼음 협곡에서 봤을 때도 그랬고 메인 시나리오 때도 그러했 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게요. 12강이 세기는 세군 요.”
케트가 웃으며 말했다.
***
“고약하게 됐네.”
“하여간 씨…. 그냥 동대륙이나 가 지.”
“완전히 조졌네, 또. 쟤 말 들어서 제대로 되는 게 없다니까.”
파이오니어 길드원들은 케트를 둘 러싼 채로 그에게 무차별 폭격을 가 했다.
그들은 당면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진짜 나는 이제 못 참아. 나도 정 상적인 필드 좀 가보자.”
파이오니어 길드의 유일한 사제, 마하가 절규했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그럴 만했다.
인스턴스 던전의 환경은 극악이었 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해가 뜨지 않았다.
오로지 달만 떠 있었다.
옅은 달빛에 의지해 움직여야만 했 다.
당연히 정상적이라 할 수 없는 필 드였다.
“왜 이런 곳만 돌아다니는데!!!”
사막, 얼음 지대, 화산, 늪지, 정글, 습지, 고산.
최악이라 불리는 필드들은 전부 겪 었다.
“다들 동의했잖아?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이야. 동대륙은 그냥 돌아만 다녀도 재밌을 거라고.”
케트는 조곤조곤 소리 지르는 길드 원들의 멘탈을 다독였다.
“어차피 들어왔으니 깨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고생했으면 그에 대 한 보상은 받아야죠.”
현우가 케트를 뒷받침하는 말을 덧 붙였다.
그에 힘을 얻은 케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맞아, 보상만 받고 얼른 가자. 고 생한 보람이 있어야지.”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성이야?’
이제는 현우도 의문을 품었다.
던전을 입장했을 때 봤던 메시지에 는 분명 이름이 ‘사우스락의 성’이 라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겪었던 것.
그리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절대 성의 내부가 아니었다.
끝없이 거뭇한 풀들과 나무만 자라 있는 길.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몬스터.
그냥 평야였다.
아니면 산이라 해도 좋을 것 같았 다.
절대 성의 안은 아니었다.
지금 현우와 파이오니어 길드가 있 는 곳이 사우스락의 성이라면, 서너 시간을 움직인 지금 뭐라도 보여야 했으니까.
“저기 뭔가가 보이는데요?”
그 순간이었다.
현우의 눈에 거대한 어떤 것이 보 였다.
회색빛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정 확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던 시야에 무언 가 보인다는 것은 분명 호재였다.
“정말이야. 저쪽에 뭐가 있어!!”
“제발 저곳에 보스 몬스터가 있었 으면 좋겠어.”
닉스와 마하가 환호했다.
몸에 힘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버프라도 받은 것처럼 활력이 솟구 쳤다.
“얼른 저쪽으로 갑시다. 이러다 여 기서 레벨 또 오르겠어.”
닉스가 재촉했다.
이미 1레벨을 올린 상황이었다.
레벨이 레벨인 만큼 1레벨을 올리 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었다.
“골목대장님을 데리고 던전에 오래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대외적으로 현우는 던전에서 하루 이상을 머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질질 끌려도 하루 안에는 던전을 클리어했다.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보통은 며칠씩 걸렸다.
특히 처음 깨는 인스턴스 던전의 경우에는 오래 걸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근데 보스 몬스터가 뭔지 감이 안 온다.”
“사우스락의 성이랬으니까, 사우스 락이 보스 몬스터겠지.”
“그니까 사우스락이 뭐냐고. 사람 인지 몬스터인지. 몬스터면 종족이 뭔지. 사람이면 직업이 뭔지. 기사인 지 아니면 마법사인지.”
아스가 쥬얼에게 폭풍 같은 말을 쏟아냈다.
쥬얼은 졸지에 말 한마디 잘못 꺼 냈다가 잔뜩 두들겨 맞은 셈이었다.
아스의 신경은 그만큼 날카롭게 선 상태였다.
두들겨 맞은 쥬얼도 참지 않았다.
그도 아스에게 쏘아붙이려 입을 열 려고 했다.
현우가 먼저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목적지가 보이니까 얼른 가보죠.”
현우는 분위기가 더 과열되기 전에 끼어들었다.
“그래, 골목대장 님 앞에서 싸울 생각은 아니겠지?” 케트가 두 사람 사이에 들어가 양 팔로 두 사람의 어깨를 붙들었다.
이렇게까지 말리는데 화를 낼 정도 로 쥬얼의 성격이 과격하지는 않았 다.
그것은 아스 역시 마찬가지였고.
“미안, 내가 조금 심했네.”
아스가 사과했다.
그는 자신이 날카로웠음을 인정했 다.
이번에도 쥬얼은 입만 벙긋거렸다.
그가 입을 열려는 찰나에 대지를 울리며 나타난 존재가 있었다.
블랙 카우가 아니었다.
그보다 한층 더 까다로운 녀석들이 었다.
블랙 카우만큼의 덩치를 자랑하지 만, 두 배는 날카롭고 날쌘 늑대들 이었다.
블러드 울프의 등장이었다.
거기에 허공에 유영하는 검붉은 커 다란 날개를 지닌 몬스터가 있었다.
블랙 배트.
거대한 박쥐.
날카로운 발톱과 검은 마력포를 쏘 아내는 몬스터였다.
이곳 사우스락의 성에서 만난 세 번째 몬스터이기도 했다.
“블랙 배트와 블러드 울프입니다. 조심하세요.”
현우가 경고했다.
그와 동시에 탱이를 소환했다.
현우 혼자라면 모를까 다른 다섯 명을 모두 신경 쓸 자신이 없었다.
‘마법사나 사제가 제대로 맞으면 한 방이면 간다.’
어두운 세상에 환한 빛이 강림했 다.
황금빛 마법진 위에서 탱이가 나타 났다.
“야, 이씨… 눈뽕 맞았네.”
현우가 왼팔을 들어 가면의 눈 부 분을 가렸다.
어두운 시야에 적응해 갑작스럽게 터진 밝은 빛에 눈에 부심을 느꼈 다.
“주인 놈아, 여기는 어딘가? 기분 나쁜 곳이다.”
화려한 빛과 함께 나타난 탱이가 현우의 다리에 매달리며 물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일단 쟤네부터 좀 잡자. 평소처럼 마법 잘 좀 써줘.”
현우는 다급한 표정으로 탱이를 떼 어 놓으며 말했다.
블러드 울프와 블랙 배트는 이 순 간에도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알았다, 주인 놈아.”
탱이 역시 무섭게 돌격하는 몬스터 들을 보고는 앞발 위에 화려한 색의 구슬을 만들어냈다.
“버프나 받고 가라. 주인 놈아.”
탱이는 달려나가는 현우에게 삼색 의 빛을 쏘아냈다.
빛의 정체는 탱이가 가진 세 개의 버프였다.
현우가 멀어지는 것을 본 탱이가 주변을 살피더니 슬금슬금 움직였 다.
“어이, 인간. 어깨가 제법 넓어 보 이는데?”
탱이는 비교적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하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뭐... 뭐야?”
케트에게 버프를 시전한 마하는 갑 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주변을 살폈다.
‘몬스터인가?’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거기다 목소리의 주인이 보이지 않 았다.
“어이, 인간. 여기다, 여기.”
그때 의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 다.
마하는 그제야 목소리의 근원을 찾 았다.
황금색 털을 가진 작은 곰.
골목대장의 펫.
탱이 였다.
“인간, 어서 나를 어깨 위로 올려 라.”
마하는 탱이의 말에 홀린 듯 탱이 를 들어 올렸다.
“주인 놈 정도는 아니지만 만족스 럽군.”
*** 현우는 케트와 쥬얼에게 오더를 내 렸다.
“제가 일단 앞에서 싸울 테니까 뒤 쪽으로 빠져나가는 것들만 처리해 주세요.”
그러고는 두 사람의 답을 듣지도 않고 현천도를 뽑아서 블러드 울프 를 향해 휘둘렀다.
쐐애애액!!!
검은 강기가 쏘아졌다.
던전 내의 검은 풍경에 동화된 탓 인지 현우의 강기는 평소보다 그 존 재감이 희미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너무 컸다.
그것은 블랙 배트에게도 같았다.
블랙 배트는 세상과 비슷한 색인 현우의 강기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 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캬아아!!!”
블랙 배트의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블랙 배트 몇 마리가 현우의 강기 에 난도질을 당한 채로 땅에 떨어졌 다.
현우는 바닥에 떨어진 녀석들을 뒤 처리하기보다는 일단 달려드는 블러 드 울프에 집중했다.
중형 SUV가 덮쳐드는 것만 같았 다.
방심할 상대가 아니었다.
블러드 울프는 상당히 입체적인 움 직임을 보였다.
특히 여럿이 동시에 합공을 펼치는 것은 대응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웠 다.
캉!!!
블러드 울프의 새하얀 이빨 사이로 현천도가 끼워졌다.
블러드 울프의 입가로 누런 침이 질질 홀렀다.
현우는 현천도에 마력을 순식간에 가득 불어넣었다.
그러고는 발바닥을 힘을 줘 땅을 힘차게 밀었다.
현천도가 힘차게 움직였다.
촤아아!!!
블러드 울프의 몸이 그대로 절단됐 다.
아가리를 중심으로 위쪽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 블러드 울프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그런 현우의 뒤통수를 노리고 또 다른 블러드 울프가 입을 한껏 벌리 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콰득!!!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