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1 화
“그건 이미 없어진 상태다. 네가 저기 저 드레이크를 잡은 순간에 말 이야.”
요하네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말을 들은 현우가 곰곰이 생각 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것이 있었다.
‘동대륙으로 넘어갈 권한을 주지 않았지.’
원래라면 나타난 즉시 비석을 부수 고 권한을 주는 것이 정해진 순서였 다.
그런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요하네스는 그런 말을 전혀 꺼내지 않았다.
‘빠르긴 하지만…. 예상한 거니까.’
가면 뒤 현우의 표정은 놀라움은 전혀 없었다.
그냥 기쁘기만 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추가로 250명이 동대륙으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속도가 현우의 예상보다 조금 빨랐을 뿐.
‘프로게이머들이 급하긴 급했나 보 네.’
250명은 아마 프로게이머들일 것 이었다.
그중 일부는 프로게이머들과 모종 의 거래나 친분이 있는 대형 길드일 것이고.
“그럼 모두가 동대륙에 갈 수 있는 것입니까?”
현우는 다시 한 번 확인하려는 듯 요하네스에게 물었다.
“모두는 아니겠지. 발터 산맥을 지나 다닐 실력이 있어야 가지 않겠어? 아 니면 그 이상의 다른 것들이 있든지.” 요하네스가 말하는 것은 아마 돈이 나 권력을 뜻하는 것일 터였다.
그러나 그런 것은 현우의 생각 속 에는 이미 없는 단어였다.
‘흔히 아웃 오브 안중이라고 하던 가?’
누군가 돈을 써서 동대륙을 가든지 말든지.
관심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지금 현우에게 중요한 것은 황제에 게 달려가 결계가 사라졌음을 알리 고 가장 달콤한 꿀을 빨아야 하는 것이었다.
누구도 입에 대지 못한 귀한 꿀을.
아무도 알지 못할 때 단숨에 삼킬 생각이었다.
황제를 만나러 가던 현우는 황궁의 한적한 정원에서 멈췄다.
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고 연못은 파랗다 못해 하얗게 보일 정도로 맑 았다.
현우는 정원의 한쪽에 자연스럽게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정원을 마치 자신의 집 안방처럼 사용했다.
‘스킬 북 좀 보고 가야지.’
정산의 시간이었다.
인스턴스 던전을 클리어하고 보스 몬스터를 잡았으면, 당연히 와야 할 시간이었다.
현우는 인벤토리에서 책 두 권을 조심스럽게 꺼내 바닥에 내려놨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 작했다.
‘제발 레어 이상의 필요한 스킬이 나오게 해주시옵고…. 또 즉발형 보 다는 지속형 스킬이 나오게 해주시 옵고…. 유니크면 더더욱 좋습니다.’
누구한테 비는 것인지 모를 짤막한 기도가 끝나고 현우는 성호까지 그 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첫 번째 스킬 북 을 펼쳤다.
[피의 저주]
피의 저주는 강력하다.
강력한 피의 저주.
유형 : 즉발형
등급 : 레어
제한 : 흑마법사', 네크로맨서 클래스, 마력 1,800 이상
효과 : 최대 3명에게 초당 0.05%의 체력이 감소하고 랜덤하게 상태 이상을 효과를 주는 저주를 시전합니다.
지속 시간 : 3분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 : 5분
현우의 입에서 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온 진심 이었다.
‘그래, 이건 써니를 주면 되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금세라도 멘탈에 금 이 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생각과 몸은 달랐다.
스킬 북을 인벤토리에 집어넣는 현 우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쉬움과 분노가 섞인 오묘한 행동 이었다.
‘그래, 한 개가 더 있어.’
현우가 사라진 스킬 북 아래로 보 이는 새로운 책을 보며 행복 회로를 가동했다.
“유니크, 유니크, 유니크, 유니 크….”
현우가 미친놈처럼 연신 같은 단어 를 중얼거렸다.
한참을 그렇게 중얼대던 현우가 덜 덜 떠는 손으로 스킬 북을 펼쳤다.
[피의 마력]
피에 마력이 돕니다.
전신에 활력이 돌기 시작합니다.
유형 : 지속형
등급 : 레어
제한 : 전사, 기사, 격투가 클래스
효과 : 체력과 마력의 재생 속도가 10% 증가합니다. 이동 속도가 10% 증 가합니다.
“음….”
떠오른 메시지를 본 현우가 옅은 신음을 흘렸다.
마냥 좋아하기에는 약간은 애매했 다.
원했던 유니크는 아니었지만, 지속 형 스킬에 효과도 괜찮았다.
‘재생은 별론데…. 이동 속도는 상 당히 좋고.’
“이득이야, 이득.”
이 정도면 대박은 아니더라도 중박 이상은 됐다.
예상치 못한 소득이었기에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현우는 엉덩이에 묻은 녹색 풀을 탈탈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괴물만 만나면 된다.’
***
“너무 늦게 오는군…. 왜 이제 온 거지?”
황제가 묘한 눈으로 현우를 바라봤 다.
그것이 나른한 표정과 합쳐지자 정 말 이상했다.
그러나 그걸 쳐다보고 있는 현우는 죽을 맛이었다.
‘누가 또 보고했나?’
황제의 표정에서 압박감이 느껴졌 다.
현우는 애써 황제의 시선을 피하고 는 입을 열었다.
“급한 일이 생각나서… 잠시, 아주 잠시 가만히 서서 고민을 했습니 다.”
“그래? 우리 강현우 백작이 그렇게 말하면 내가 믿어야지.”
거기까지 말한 황제가 말을 잠시 멈췄다.
거대한 대전에 적막이 흘렀다.
황제의 두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흥미로운 눈빛을 한 황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오늘은 왜 왔는지 들어볼 까?”
“드디어 결계가 사라졌습니다, 황 제 폐하.”
현우는 이제야 황제를 만나러 온 이유를 말할 수 있었다.
현우의 말을 들은 황제의 입꼬리가 살짝 움직였다.
“원정대를 준비하지. 아니, 정정한 다. 도마뱀들과 한 약속이 있으니… 사절단을 꾸린다.”
황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공 에 검은 인영이 뚝 하고 떨어져 내 렸다.
검은 인영은 아무런 기척도 없이 나타나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 던 것 같았다.
“사절단의 책임자는 누구에게 맡기 실 생각이시옵니까, 폐하.”
검은 인영이 무릎을 꿇은 상태로 물었다.
“당연히 소식을 가져온 강현우 백 작이 맡아야지. 그게 공평하지 않 나.”
“하지만 폐하 다른 귀족들이 반발 할 것이 분명하옵니다.”
“글쎄…. 자네를 제외하면 그럴 말 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 보이는 데?”
“정 그러시다면 명목상으로라도 사 절단의 책임자에 르브론 공작을 임 명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그것도 역시 좋은 생각이다. 그럼 그렇게 하지. 책임자에는 르브론 공 작을 임명하도록 하라.”
현우는 마치 만담처럼 진행되는 검 은 인영과 황제의 대화를 들으며 얼 굴을 구겼다.
저 소식을 듣고 화를 낼 르브론의 얼굴이 그려진 것이었다.
‘귀찮게 만들었다고 뭐라고 할 텐 데….’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자신은 퀘스트를 얻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르브론이 휘말린 것이었으니까.
‘황제가 시켰다고 하면 나한테는 뭐라고 하지 않겠지.’
현우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가 르브론을 물고 늘어진 것이 아니라 황제와 저 검은 인간이 르브 론을 끌어들인 것이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사옵니 다.”
검은 인영의 사내가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황제는 고개를 돌려 현우를 응시 했다.
“르브론에게 전해라. 동대륙에 갈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황제의 말이 끝나자 현우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동대륙과의 교류]
동대륙과 서대륙을 가로막고 있던 결 계가 사라졌다.
동대륙과의 교류를 성공시키자.
등급 : MS
조건 : 유스마 제국 사절단의 유신 황 궁 도착 0/1
보상 : 황실 기여도, 경험치.
‘메인 시나리오겠지. 이건 메인 시 나리오가 딱이야.’
딱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대륙 간의 퀘스트.
7차 메인 시나리오의 서막이 될 것이라는 현우의 예상대로 들어맞았 다.
“그럼 제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 까, 폐하?”
“백작은 당연히 르브론에게 이 소 식을 전해야지? 안내도 하고. 동대 륙에 대해 아는 사람은 백작뿐이지 않나.”
다시 한 번 퀘스트가 생성됐다.
-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소식 전달]
르브론이 동대륙 사절단의 대표로 뽑 혔다는 것을 그에게 전하자.
매우 낮은 확률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등급 : SS+
조건 : 르브론에게 황제의 말 전하기 0/1
보상 : 황실 기여도, 경험치.
퀘스트를 본 현우는 기겁했다.
황제의 앞이라는 것도 잊고 입을 벌리며 놀랐다.
놀란 이유는 간단했다.
퀘스트창에 난생처음 보는 퀘스트 등급이 적혀 있었다.
SS+.
S+ 다음 등급이 있을 거라고는 생 각했지만, 이렇게 한순간에 난이도 가 올라갈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 이 없었다.
‘돌겠네.’
“알겠습니다, 폐하. 제가 스승님께 이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
현우는 르브론이 앉아 있을 연무장 의 입구에서 우두커니 서 한숨을 내 쉬었다.
도저히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아, 오늘은 그냥 쉬고 내일 들릴 까?’
피로가 갑자기 몰려드는 기분이었 다.
고개를 세게 턴 현우가 연무장에 들어섰다.
마음을 먹은 것이다.
“스승님!!! 제가 왔습니다!!!”
현우는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평소와 같이 쾌활하게 르브론에게로 달려갔다.
“왜 또 왔느냐. 이번에는 감이 좋 지 않으니 얼른 돌아가라. 아무런 말하지 말고 그냥 가.”
르브론은 며칠 만에 다시 나타난 현우를 보고 불안감을 느꼈다.
그랬기에 다가오는 현우에게 손을 휘저으며 축객령을 내렸다.
“안 됩니다, 오늘은 정말 중요한 얘기를 하러 왔습니다.”
현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르브론에 게 다가갔다.
정좌하고 있던 르브론이 갑자기 일 어섰다.
“발터 산맥 최동단에 있던 결계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걸 나한테 굳이 말하는 이유는?”
현우는 까칠한 르브론의 답에도 아 랑곳하지 않고 그가 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동대륙으로 사절단이 꾸려 지게 되었습니다. 꽤나 어마어마한 규모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 거
냐고!!!”
결국 르브론이 언성을 높였다.
과거 황제와의 말싸움 이후로는 정 말 오랜만에 보는 르브론의 진심이 담긴 분노였다.
“그 사절단의 대표로 스승님이 거 론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이름을 꺼 낸 건 아닙니다. 새카만 옷을 입은 이상한 놈이 그랬습니다.”
현우는 진실만을 말했다.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그러나 르브론은 그걸 알고도 무시 했다.
당장 자신이 움직여야 하는 귀찮음 에 짜증이 났다.
그리고 그것을 해소하고 싶었다.
“하…. 내가 이 나이에 사절단이라 니.... 공작이나 돼서 실무에 뛰어들 다니!!!”
르브론이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르브론의 주변에 새카만 기류가 생 성됐다.
나타난 검은 기류는 빛을 좀먹었 다.
꿀렁이며 연무장을 어둠으로 물들 였다.
‘미친! 이게 뭐야!!!’
현우가 식겁했다.
정체불명의 기운은 공포 그 자체였 다.
‘현천마공인가? 아니면 권역 선포 인가?’
현우는 검은 기운의 정체를 추측했 다.
그러나 딱히 이거다 싶은 건 없었 다.
거기에 그 기운이 현우를 향해 다 가왔기 때문에 더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스승님, 정신 차리세요!!! 화는 황 궁에 가서 푸셔야 합니다!!! 제가 아니라요!!!”
현우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와 동시에 발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마력을 잔뜩 사용해 현천보를 사용 해 도망갔다.
그것을 본 르브론이 팔을 휘젓자 검은 기류가 현우를 향해 덮쳐왔다.
‘어?’
현우의 시야가 암전됐다.
정신을 잃기 직전 현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 은 바로 이것이었다.
- 르브론에게 황제의 말 전하기 1/1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