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의 귀환-365화 (366/939)

제 364화

인천 국제공항.

수많은 사람이 캐리어를 끌고 출국 을 하고 또 입국하고 있었다.

옷차림도 가지각색이었다.

각자의 목적지가 다양했기에.

그중에서도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입국 심사대를 통과한 두 남자가 있 었다.

“병진이 너 이 새끼. 내가 아침 비 행기냐고 몇 번 물었냐.”

“형! 잘못 봤을 수도 있지. 그런 거 로 몇 시간째야, 벌써? 어제부터 꼬 박 열두 시간은 그 소리야 지금!!!”

정병진과 강우종.

이제는 전(前) 감독과 코치였다.

그들은 JT 텔레콤을 그만두고 힐 링을 위한 여행을 떠났다.

아레나 한국 리그의 개막날 아침에 돌아오려 했으나 정병진의 실수로 비행기 시간을 잘못 예약해 오후 다 섯 시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누가 제대로 확인 안 하 래? 경기장 못 들어가면 네가 책임 질 거야?”

강우종이 계속해서 정병진을 압박 했다.

그만큼 중요했다.

윈터 리그의 개막전.

표를 구하는 것도 힘들었다.

겨우겨우 예매에 성공했는데 그곳 을 가지 못한다면 천추의 한으로 남 을 수도 있었다.

“실수라니까, 그만 좀 해.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골목대장 아니, 밀리갓이 프로 데 뷔를 하는 날인데 어? 실수?”

강우종은 끌고 있던 캐리어를 놓고 정병진의 멱살이라도 잡을 것처럼 달려들었다.

그에 정병진은 화들짝 놀라는 척을 하며 다급하게 손목에 찬 시계를 두 들겼다.

“형, 30분에 오는 공항철도 놓치면 경기장 안에 못 들어가. 빨리 가자.”

연기의 효과는 확실했다.

강우종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미 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으니까.

“뭐해? 안 뛰고?”

한참을 뛰어간 강우종이 뒤쪽에서 멍하니 서 있는 정병진에게 몸을 돌 려 소리쳤다.

정병진도 캐리어를 들다시피 한 채

로 달리기 시작했다.

목표는 공항철도 승강장이었다.

아레나 스타디움.

본래 이름은 E-스타디움이었으나 아레나의 개발회사인 퀀시 사에서 돈을 추가로 투입해 증축한 뒤부터 는 아레나 스타디움으로 이름을 바 꾼 E-스포츠 전용 경기장이었다.

상암에 있는 아레나 스타디움에 도 착한 정병진과 강우종의 머리는 산 발에 가까웠다.

날씨가 날씨인 탓에 땀은 나지 않 았다.

거친 바람 사이를 달려 머리가 헝 클어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의 눈에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줄을 보자 마음에 안도감이 들었 다.

늦지 않았다.

줄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출입구가 워낙에 많았기 때문이었 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사람이 게 이트를 통과해 경기장 안으로 들어 섰다.

마침내 정병진과 강우종의 차례가 왔다.

두 사람은 게이트에 붙어 있는 부 스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원반 위에 가지고 오 신 티켓을 올려주시면 됩니다.”

맑은 여성의 목소리가 부스 안에서 들려왔다.

강우종은 티켓 어플을 실행시키고 는 그의 스마트폰을 눈앞에 보이는 원반의 위에 올렸다.

삑!!!

원반이 녹색으로 물들며 경쾌한 소 리를 냈다.

“티켓 확인되셨습니다. 좌석은 R-13, R-14. 두 자리입니다. 3번 게이트로 입장하시기 바랍니다.”

정병진과 강우종은 캐리어를 질질 끌며 아레나 스타디움의 내부에 들 어 섰다.

R석은 R0ya1의 줄임말로 아레나 스타디움에서 가장 좋은 자리였다.

당연히 그만큼 가격도 비쌌다.

그러나 강우종은 그런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무려 골목대장이 나오는 날이었다.

그것도 첫 경기.

데뷔전.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티켓팅에 실패했다면, 돈을 더 주고서라도 암표라도 구할 생각 도 있었다.

‘평소 말하는 것과 성격을 생각했 을 때는….’

오늘의 개막전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다.

골목대장에게 다음 개막전은 없었 다.

올해 윈터 리그가 최초이자 최후였 다.

그것만으로도 푯값은 제값을 했다.

강우종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 때나 소리 지르시면 안 됩니 다. 짧게 응원하시는 시간 드릴 때 그때만 말씀하셔야 돼요. 응원은 가 져오신 플래카드로 해주시면 감사하 겠습니다.”

두 사람이 좌석을 찾아 앉았을 때 는 이미 스태프들이 사람들을 향해 여러 가지 안내 사항을 전달하고 있 었다.

이것은 곧 개막전이 시작한다는 뜻 과도 같았다.

“병진아, 리그가 원래 이렇게 빨리 시작했냐?”

강우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병 진에게 물었다.

그가 감독을 맡았던 썸머 리그만 해도 일곱 시에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은 여섯 시가 채 되지 않은 지금 오프닝을 준비하고 있었 다.

“아, 이번 개막전은 꽤 이벤트가 많아서요. 일단 대진표부터가 현장 추첨이고....”

“뭐? 추첨? 무슨 운영을 이따위로 해?”

정병진의 말을 들은 강우종이 코웃 음을 치며 되물었다.

하지만 정병진은 그게 어떠냐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반응은 엄청 좋던데? 저런 거 되 게 좋잖아. 신선하고 좋은데 왜. 그 리고 아마 그것 때문에 기획한 거겠 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마, 우종이 형.”

‘승부 조작.’

그래 그게 있었다.

승부 조작.

한국 아레나 씬을 휩쓸고 지나간 쓰나미.

“그래, 이런 식으로라도 노력해서 나쁜 이미지를 지우는 건 잘하는 일 이지.”

강우종이 자리에 앉았다.

그걸 본 정병진 역시 자리에 털썩 몸을 던졌다.

피곤했다.

수 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곧장 지하철을 타고 이후에는 택시 를 탔다.

피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두 눈만큼은 시퍼렇게 떴 다.

그것은 잠을 자지 않기 위한 최대 한의 노력이었다.

“오랜만입니다. 강 감독님, 정 코치님.”

그때 두 사람에게 말을 건 남자가 있었다.

말쑥한 얼굴에 정장을 입은 젊은 사내였다.

그는 두 사람을 잘 아는지 친근하 게 다가왔다.

그를 본 정병진과 강우종이 자리에 서 벌떡 일어났다.

“사장님….”

그는 JT 텔레콤의 E-스포츠 부문 총괄 사장인 최현성이었다.

비단 아레나뿐만 아니라 다른 가상 현실 게임도 포함한 모든 부문이 그 의 손아래에 있었다.

“휴식은 잘 취하셨나요? 솔직히 지 금도 모셔오고 싶지만…. 한 시즌 만에 감독과 수석 코치를 물갈이하 는 것은 조금 힘드네요.”

최현성의 말을 들은 정병진이 두 손을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복귀를 한다 면, 그 팀은 JT 텔레콤은 아닐 것 같습니다. 물론 UK 하이츠도 아니 고요. 아예 약팀으로 갈 것 같습니 다. 그게 제 적성에 맞아서요.”

최현성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두 눈이 휘어지는 것으로 보 아 연기나 거짓이 아니었다.

“JT 텔레콤처럼 그렇게 만들어보시 겠다는 거군요. 저희도 긴장해야겠 습니다.”

그의 미소를 본 강우종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JT 텔레콤은 아직도 미완성이었다.

그것은 작년 아레나 위크의 처절한 패배가 증명했다.

“그런데 여기 계실 시간이 있으십 니까? 요새 더 바빠지신 것으로 알 고 있는데….”

“아무리 바빠도 골목대장이 나오는 데 한 번쯤은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일부터는 밤을 새워야 하겠지만.”

최현성은 유쾌하게 웃었다.

기대가 컸다.

한국 최고 아니, 세계 최고의 아레 나 플레이어.

그의 데뷔는 관심이 갔다.

그렇기에 바쁜 일을 뒤로 미루고 이 자리에 왔다.

“골목대장의 데뷔면…. 그 선택을 후회할 일이 없으실 것으로 생각합 니다.”

정병진의 말을 끝으로 이들의 대화 가 잠시 끊겼다.

“아레나 윈터 리그를 시작합니 다!!!”

캐스터가 우렁찬 목소리로 윈터 리 그의 개막을 알렸다.

우와아아아아!!!

그것에 화답하는 관객들의 환호성 도 엄청났다.

아레나 스타디움은 증축으로 인해 최고 2만 명까지 수용이 가능했다.

그리고 경기 때면 언제나 가득 차 있었다.

“저도 병진이 말에 동의합니다. 오 늘 사장님이 오신 것. 절대 후회하 지 않으실 겁니다. 1그… 골목대장….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 다.”

강우종은 순간 튀어나오려던 ‘밀리 갓’이라는 단어를 겨우 삼켰다.

목 끝까지 차올랐던 말을 다시 가 슴 깊숙한 곳으로 끌어내렸다.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지. 경기할 때 얘기를 해줘야지.’

나름의 속셈이었다.

지금 얘기하는 것은 약간 그 가치 가 떨어졌다.

골목대장이 직접 나왔을 때.

그의 경기가 시작되었을 때.

그때가 최현성에게 말할 적기였다.

‘놀라는 모습이라도 봐야지.’

그게 야인이 된 강우종이 최현성에 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현우는 제집처럼 대기실에서 누워 있었다.

긴장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 었다.

“형, 긴장 안 돼?”

“내가 왜 긴장을 해? 오늘 모인 사람들이 고작해야 2만 명이라며? 얼굴에 가면 썼지. 평소 시청자들 수백만 명씩 데리고 스트리밍하는 데. 떨면 안 되지.”

현우는 평온하게 답했다.

그간 스트리밍했던 경험은 도움이 됐다.

많은 사람 앞에 나선다고 생각해도 긴장되지 않았다.

‘가면도 도움이 되고.’

끼익

그 순간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덥 수룩한 머리를 한 청년이 들어왔다.

“주장 나와주세요. 사다리 타기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갔다 올게. 너무 긴장들 하지 마. 그냥 즐기러 왔다고 생각해. 만약에 나 돌아왔을 때까지 그대로면, 그 사람들 내일부터 스트리밍 시작이 다.”

현우는 그 말만 남긴 채 스태프를 따라 대기실을 떠났다.

‘근데 진짜 이런 거는 누가 생각한 거지?’

현우는 스태프의 뒤를 졸졸 따라가 면서 생각했다.

굉장히 흥미로운 아이디어였다.

대진을 미리 짜지 않고 즉석에서 사다리 타기로 한다니.

“저도 개인적으로 골목대장 님 팬 입니다. 오늘… 가면 벗으시는 건가 요‘?”

스태프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현우 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러고는 친절하게 답해줬다.

“당연히요. 몇 달 전부터 한 약속 이니까요. 오늘 제가 어떻게 생겼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스태프는 현우의 대답이 만족스러 운 듯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큐브들이 늘어선 스테이지까지는 금방이었다.

“새롭게 리그에 합류한 팀입니다. 크레센트 문의 캡틴 골목대장입니 다!!!”

와아아아아!!!

캐스터의 소개와 함께 현우가 스테 이지에 나타나자 우레와 같은 함성 이 터져 나왔다.

아레나 스타디움에 모인 사람들 모 두가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질렀다.

‘어차피 한 번뿐인 경험이니까…. 즐기자.’

현우는 스테이지에 오르자마자 양 손을 머리 위로 들고 힘차게 흔들었 다.

골목대장!!!!

사람들은 계속해서 현우의 닉네임 인 골목대장을 연호했다.

환호성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 다.

손을 흔들던 현우가 돌연 멈췄다.

그러고는 오른손의 검지만 편 채로 가면의 입 쪽으로 가져다 댔다.

현우의 행동을 본 사람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순간적으로 아레나 스타디움에 정 적이 흘렀다.

“모두 감사합니다. 이제 사다리 타 기를 해야 하니까 조금만 조용히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우의 목소리가 아레나 스타디움 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정적이 흐른 탓도 있지만, 현우의 목소리가 워낙 컸다.

“여덟 팀의 주장이 전부 나오셨으 니 사다리 타기를 진행하겠습니다. 룰은 간단합니다. 각 팀의 주장분들 은 원하는 번호 앞에 서시면 됩니 다. 경쟁이 붙은 번호는 가위바위보 를 통해 주인을 가리겠습니다.”

캐스터의 말이 끝나자 선수들은 1 번부터 8번까지의 숫자를 향해 천천 히 걸어갔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마치 짠 것처럼 겹치는 번호를 선 택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음…. 예상외로 번호가 한 번에 모두 주인을 찾았습니다. 그럼 사다 리를 공개합니다. 그리고 경기는 연 속된 번호끼리 치릅니다. 1번과 2 번, 3번과 4번이 경기를 치는 것입 니다.”

캐스터의 말과 함께 스크린에 가려 졌던 사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굉장히 이상했 다.

사다리가 전부 젓가락이었다.

연결고리가 하나도 없었다.

1번은 1번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 게 8번까지 동일했다.

즉, 현재 서 있는 순서대로 두 명 씩 짝이 되어 경기를 치른다는 말이 었다.

그리고 1번과 2번의 주인은.

“숫자 1번의 주인은 JT 텔레콤입 니다. 그리고 2번의 주인은… 크레 센트 문입니다!!!”

JT 텔레콤과 크레센트 문이었다.

운명의 장난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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