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의 귀환-374화 (375/939)

제 373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되물 었다.

그러나 그의 이마에서 홍수라도 난 듯 흘러내리는 땀은 그가 긴장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못 들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 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인 사람 이니까요. 연합. 분명 당신은 연합이 라고 했습니다.” 현우는 그런 사내를 뚫어지게 쳐다 봤다.

그런 현우의 옆에 어느새 탱이가 서 있었다.

“나도 들었다. 분명 ‘연합에서 탈 퇴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탱이는 얄밉게도 사내가 그의 길드 마스터에게 보낸 귓속말을 그대로 재현했다.

다급한 표정과 그의 제스처까지 완 벽하게 모방했다.

사내의 이마에는 땀이 더욱 빠르게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뒤쪽의 다른 플레 이어들의 표정도 대동소이했다.

낭패했다는 게 표정에 그대로 드러 났다.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다음부터는 조심해야 할 겁니다.”

현우는 엄포를 놓았다.

다음에 다시 만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이었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뉘앙스 라는 것이 분명 그것을 뜻하고 있었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신 저희 길드에게는 아무런 감정을 갖지 않 겠다 약속해주십시오.”

결국 사내가 굴복했다.

자신들 그리고 자신들의 길드만이 라도 살아보겠다는 발버둥이었다.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피해를 받은 바가 없었다.

정보를 받는 대가로 그 정도 조건 이면 괜찮았다.

‘적은 적을수록 좋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적이 많은 것은 좋지 않았다.

현우의 반응을 본 사내가 조심스럽 게 말을 이었다.

“사쿠라 길드입니다.”

“사쿠라? 일본의 그 사쿠라 길드 말입니까?”

사쿠라 길드.

현우도 익히 아는 이름이었다.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인 지도가 있는 대형 길드였다.

특히 길드 마스터인 요리시게는 일 본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기 스트리 머 였다.

“네, 그 사쿠라 길드가 맞습니다.”

사내의 답을 듣자 현우는 연합의 정체가 더 궁금해졌다.

‘탈퇴 운운한 걸 보면 분명 날 노 리고 있던 건데….’ 사쿠라 길드는 현우와 일면식도 없 었다.

무슨 연합이라는 걸 만들어서 대항 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는 소리였다.

“그럼 연합이 도대체 뭡니까?”

“연합은 말 그대로 연합입니다. 대 형 길드 열일곱 개가 모인 세력입니 다. 그들의 면면은 대단합니다. 쟁쟁 한 길드들만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목적은요? 연합의 목적은 뭡니 까?”

“골목대장 님을 견제하는 겁니다.”

“ 견제요?” 현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되물었다.

“정확히는 퀘스트를 방해하는 것이 었습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무력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방해하겠다는 생 각을 한 겁니다.”

“연합에는 어느 길드들이 속해 있 습니까?”

“피닉스, 마노, 두지엥, 사쿠라….”

사내의 입에서 대형 길드들의 이름 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장장 열일곱 개였다.

‘오면서 만났던 이들이 속한 길드 도 있네.’

현우는 사내의 말에 머릿속의 퍼즐 이 맞춰지는 것을 느꼈다.

그를 보고 달려들던 랭커들.

‘인기 있어서가 아니었네.’

그것도 모르고 랭커들마저도 자신 을 좋아한다 여겼던 한 시간 전의 자신이 매우 한심했다.

‘참자, 참아.’

현우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주인 놈이 화가 났나 보다.’

탱이는 현우의 심호흡을 보고서는 조심스럽게 자리를 피했다.

주변 나무로 걸어가 꼬물거리며 나 무를 타고 올라갔다.

혹시 모를 위험 사태를 피하기 위 해.

하지만 탱이가 상상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우가 마음을 잘 다스린 덕분이었 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다만 이 대 화가 녹화되었음을 알려드리겠습니 다. 그리고 가서 전하세요. 골목대장 의 시간은 정말 비싸다고. 시답잖은 용건이라면,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라고.”

현우는 그 말을 남긴 후, 자리를 떴다.

물론 나무 위에 있던 탱이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내려와 쫄랑거리 며 따라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 다.

연합에 대해 알게 된 이후.

현우는 많은 고민을 떠안았다.

과연 그들을 엿 먹이기 위해 퀘스 트에 참여해야 하는가.

아니 면….

그냥 무시하고 원래의 계획대로 론 달을 찾아 헤맬 것인가.

둘 다 하고 싶었다.

론달도 가보고 싶었고 자신의 기분 을 망친 연합에게 크고 아름다운 엿 을 먹이고도 싶었다.

다만 문제는 하나였다.

동시에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 다.

“탱이야,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고민이 크다.”

현우가 탱이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이런 고민을 터놓을 곳은 탱이밖에 없었다.

“주인 놈'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라. 복수야 남이 해줄 수가 있지만, 지 금 가는 곳은 주인 놈밖에 못 가는 곳이 아닌가.”

탱이는 발바닥에 묻은 흙을 털며 대답했다.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그대로 내뱉었다.

“그래, 그래야겠다.”

현우는 탱이의 말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가 굳이 직접 시간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어차피 놈들의 목적은 황제가 내 건 퀘스트.’

그것만 깨지 못하게 방해하면 됐 다.

굳이 현우가 할 필요가 없었다.

현우를 대신해서 방해할 사람들은 많았다.

‘일단 저놈들은 길을 잘 몰라.’

연합에 속한 길드 중에서 동대륙에 빨리 넘어간 길드는 거의 없었다.

아예 없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말이야 거창하게 나를 방해한다고 했지만….’

결국에는 각 길드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게 뻔했다.

당연히 단합이라고는 조금도 되지 않을 터였다.

‘이쪽에서 제대로 밀어붙이면 지금 부터 해도 역전할 수 있을 것 같기 도 한데….’

누가 뭐래도 아레나에서 발터 산맥 을 가장 많이 넘은 플레이어는 현우 였다.

독보적이 었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동 대륙과 서대륙을 넘나들었다.

‘길만 잘 설명해주면….’

“충분히 가능해.”

각이 나왔다.

연합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칠 각 이.

“아이고, 예쁜 것. 귀여운 것. 어찌 이리 귀엽누….”

현우가 탱이를 안은 팔에 힘을 꼬 옥 주었다.

계획의 실마리를 제공한 탱이가 마 냥 사랑스러웠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으악, 숨 막힌다. 주인 놈아, 놔 라!!!”

물론 받아들이는 탱이는 다르게 받 아들였지만.

***

현우는 곧장 계획을 실행에 옮겼 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이제부터는 속도 싸움이었다.

“여보세요?”

- 골목대장 님께서 전화를 다 주 시네요. 완전히 잊힌 줄 알았는데.

느릿한 영어가 스마트폰 너머로 전 달됐다.

통화 상대는 시작부터 까칠했다.

“왜 그러십니까? 다 기억하고 있으 니 제가 지금 연락을 드린 게 아니 겠습니까? 리우 쉐이 씨.”

통화 상대는 리우 쉐이였다.

같은 니케 매니지먼트 소속이자 구 룡 길드의 일룡.

- 그래서 이번에는 또 왜 연락하 셨습니까? 제가 지금 살짝 바쁩니 다. 물론 골목대장 님만큼은 아니겠 지만 말이죠.

“그러시다고 하니…. 단도직입적으 로 묻겠습니다. 퀘스트 하나 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유스마온 제국과 관련된 퀘스트입니다. 황제가 직접 내린 것이기도 하고요.”

리우 쉐이가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현우의 제안을 곱씹었 다.

이걸 지금 왜 주룡에 넘기는지 생 각했다.

그게 일룡의 역할이었다.

덥석덥석 무는 것은 다른 여덟 명 으로 족했다.

- 이걸 왜 저희에게 주십니까? 직 접 하시지 않고.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요. 모든 걸 제가 손에 쥐고 흔들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나눌 것은 나눠야지요.”

- 그런데 그 퀘스트…. 다른 길드 들이 이미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 니다만?

그 말을 들은 현우의 입꼬리가 슬 쩍 올라갔다.

“구룡이 저런 길드들도 못 제칩니 까? 천하의 구룡이?”

현우는 리우 쉐이의 자존심을 살살 긁었다.

- 물론 구룡은 저들과 수준이 다 릅니다. 다만 귀찮음을 무릅쓰고 저 런 시궁창에 손을 담글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리우 쉐이는 현우의 떡밥을 물지 않았다.

과거와는 달랐다.

그는 이제 대형 길드의 주인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구룡 혼자뿐이라면 시궁창이 겠지만.... 도와줄 동료와 해답이 있 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현우는 준비한 진짜 떡밥을 던졌 다.

이건 고양이 앞에 놓인 생선이었 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놓치지 않을 기회였다.

- 이렇게까지 해주셨는데 더 이상 거절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습 니다. 말씀하신 것들만 있으면, 바로 시 작하겠습니 다.

리우 쉐이는 현우의 제안을 곧장 받아들였다.

저런 조건이면 무릎 꿇고 빌어서라 도 받아내야 했다.

“퀘스트에 도움이 될 영상을 이미 메일로 보내놨습니다. 그리고 동료 는…. 마노 길드입니다. 데릭 성에 가면 만나실 수 있으실 겁니다.”

현우가 준비한 패는 마노 길드였 다.

현우는 아레나를 종료하기 전, 마 노 길드의 패트릭에게 귓속말을 보 내 섭외를 마친 상태였다. 마노 길드가 현재는 주춤한 상태였 지만, 그것은 지금 잠깐일 뿐이었다.

과거에는 최고라 불린 길드 중 하 나였다.

- 마노면…. 괜찮네요. 충분합니다. 그 정도면 저희가 가져갑니다. 이 퀘스트.

리우 쉐이가 말을 잠깐 멈췄다.

숨을 한번 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 근데 정말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비밀입니다, 비밀.”

현우의 두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오케이. 끝났다.’

리우 쉐이에게 제안을 건넨 이후 곧장 아레나에 다시 접속해 보스 몬 스터 사냥을 마쳤다.

발터 산맥을 미친놈처럼 뛰어다니 며 보스 몬스터를 찾았다.

그 결과 새로운 보스 몬스터를 찾 을 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절벽 거 인, 호카리였다.

주황빛 돌덩이가 몸 곳곳에 박혀 있는 거인은 무척 강력했다.

그러나 현우와 탱이의 합공을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 절벽 거인, 호카리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 현재 봉인 해제율: 100%

현우가 현천도를 칼집에 도로 집어 넣었다.

그의 앞에는 바스러진 주황빛 돌덩 이들이 잔뜩 흩어져 있었다.

- 아이템 정보가 갱신됩니다.

현우는 눈앞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인벤토리의 지도를 꺼내 펼쳤다.

지도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양피지에 그 림이 나타나 있었다.

‘어우”.’

“이렇게 그리면 어떻게 알아봐?”

문제는 현우가 그 지도를 보고서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를 전혀 모 른다는 것이었다.

지도는 과거의 지명이 적혀 있었 다.

당연히 못 알아보는 게 정상이었 다.

‘비교해보면 알겠지.’

현우는 인벤토리에서 서대륙의 대 부분이 그려진 지도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두 지도를 나란히 바닥에 내려놓고 비교하기 시작했다.

현우의 두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양피지에 그려진 지형과 비슷한 곳 을 찾았다.

‘여기다!’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위치가 현우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하필…. 유스마지?”

유스마.

제국 유스마온의 수도.

그곳에 론달의 이름이 적혀 있었 다.

현우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는 지 도와 양피지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 다.

그 행동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러고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저기… 황궁 같은데…?”

양피지의 론달과 동일한 위치에는 황궁이 그려져 있었다.

현우는 인벤토리에 양피지와 지도 를 넣고 두 눈을 감았다.

‘제발 대전 근처에만 없어라.’ 바닥에 쓰러지듯 드러누운 현우는 간절히 빌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