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3화
띡…띡…띡…띡[]]
현우의 운명이 걸린 슬롯머신이 천 천히 멈추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제발!!!’
현우는 레버를 놓지 못했다.
레버를 놓는다면 덜덜 떨리는 그의 손을 모두가 볼 것이기 때문이었다.
현우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슬 롯머신을 쳐다봤다.
- 슬롯머신 결과 : GGG
- 당첨되셨습니다.
- 결과에 따라 보상, 골드를 지급합니다.
- 지급된 골드 : 500골드
- 현재 남은 횟수 0/10
당첨이 었다.
영찬과 같이 두 번 당첨에 성공했 다.
당첨된 보상도 같았다.
골드였다.
“우어어어어!!!! 떴다!!!!”
현우가 울부짖었다.
이제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됐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이기는 것까지 는 바라지도 않았다.
레버를 당길 때마다 마음이 황폐해 졌다.
초조해지고 울적해졌다.
좌절은 점점 심해졌다.
하지만 현우는 마지막에 그 모든 것을 극복해냈다.
정확히는 운이 좋은 것이지만.
‘근데…. 이건 시나리오에 없던 건 데….’ 다만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두 명 이 모두 같은 상품에 여러 번 당첨 이 되고 횟수까지 같은 상황을 가정 하지는 않았다.
그럴 일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었다.
괜한 시간 낭비라 여겼던 일이 이 렇게 현실이 되어 다가올 줄은 꿈에 도 몰랐다.
이제부터는 모든 것이 자유였다.
애드리브.
사전에 짜놓은 것이 아니라 지금부 터 만들어가야 했다.
“결과는 보시는 것처럼 저와 아르 곤이 모두 골드에 각각 두 번씩 당 첨되었으므로 내기는 무승부. 벌칙 은 없는 것으로 하도록 하겠습니 다.”
현우의 첫 말은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우선 당사자인 영찬에게는 격한 동 의를 받았다.
“무릎을 꿇은 모습을 보지 못하는 건 안타깝지만…. 그렇게 해. 둘 다 슬롯머신을 돌릴 기회가 없으니까.”
영찬은 현우의 제안을 기꺼워하며 받았다.
그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졌기 때 문이었다.
대충 수습하고 다음 콘텐츠로 넘어 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예상하지 못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시청자들의 반응.
진짜로 예측하지 못한 건 바로 이 것이었다.
- 이렇게 허무하게 넘어가는 게 어디 있나.
- 맞다, 둘 중 한 명은 무릎을 꿇어야 한다.
- 골드 액수로 패자를 정하자.
- 세상에 무승부가 웬 말인가. 언제나 패자와 승자만이 존재한다.
시청자들은 두 사람의 결정에 반기 를 들고 일어섰다.
채팅창은 제대로 된 채팅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온갖 채팅들로 도배됐다.
‘어떻게 하지?’
영찬의 머릿속은 이미 뒤죽박죽이 었다.
뇌가 멈춘 것처럼 어떤 생각도 들 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서서 채팅창을 응시할 뿐이었다.
‘저 새끼 정신 나갔네.’
현우는 그런 영찬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봐온 친구 였다.
눈빛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여러분 정말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현우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시청자 들에게 말을 걸었다.
정확히는 협상이었다.
현우는 그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혔 다.
- 당연히.
-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지?
-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는 법.
- 어물쩍 넘어갈 생각하지 마시죠?
시청자들의 태도는 강경했다.
누군가의 무릎이 바닥에 닿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이것은 모두 현우와 영찬의 업보였 다.
극적인 상황을 보여주기 위한 연기 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어쩔 수 없지.’
현우는 어떠한 타협도 불허할 듯한 기세를 보이는 시청자들의 채팅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설득은 이미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것이었다.
현우는 영찬에게 다가가 손가락으 로 그의 어깨를 툭툭 찔렀다.
“그럼 이렇게 하자. 어떤 시청자분 이 말씀해주신 대로 얻은 골드의 양 이 적은 사람이 진 거로 해. 어때?” 현우의 말을 들은 영찬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아직 제정신은 아닌 듯 말 을 하지 않고 고개만 세차게 끄덕였 다.
“그럼 바로 계산해. 첫 번째에 얼 마 나왔어?”
“1,994골드.”
“나는 2,416골드.”
“뭐? 2,416골드?”
영찬은 정신이 확 드는 것을 깨달 았다.
정수리에 차가운 얼음물이라도 쏟 은 것처럼 머리가 맑아졌다.
2,416골드.
엄청난 위력이었다.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돼‘? 아까 다 봤어. 시 청자들한테 물어보든가.”
현우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기에 당 당했다.
영찬은 현우의 모습에서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아챘지만, 그래 도 확인 차 시청자들에게 현우의 결 과를 물었다.
“정말 첫 번째 당첨됐을 때 2,416 골드가 나왔나요‘?”
- oo. 나옴
- 2.416골드 맞습니다.
- 제가 아까 봄. 기억함.
- 두 번째는 아르곤님이 조금 더 높았 던 듯.
‘두 번째는 내가 더 높다고?’
영찬은 그제야 마음이 살짝 놓였 다.
생각보다 차이가 커서 당황스러웠 었다.
하지만 그다음은 자신이 높다는 것 을 알자 조금이나마 그런 마음을 없 앨 수 있었다.
“그다음은 몇인데?”
이번에는 영찬이 현우에게 물었다.
“나? 500골드.”
“500? 난 922골드. 이번에는 내가 이겼네?”
현우의 액수는 당첨 액수의 턱걸이 인 500골드였다.
‘400골드 이상 앞섰으니까….’
대충 계산해보던 영찬이 고개를 갸 웃 흔들었다.
액수가 비슷했다.
“이거 비슷한데?”
그 순간 이미 계산을 마친 시청자
들이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 1,994+922 = 2,916
- 2.416+500 = 2,916
- 똑같네?
- 똑같아?
-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야….
시청자들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기겁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 다.
동률. 현우와 영찬이 얻은 골드의 양이 동일했다.
1골드의 차이도 없이 2.916골드로 똑같았다.
“자, 이제 정말 끝입니다. 다들 보 셨죠? 무승부.”
“그럼 바로 다음 콘텐츠로 넘어가 보죠. 다음은….”
영찬과 현우는 구렁이가 담을 넘듯 이 부드럽게 스트리밍을 진행했다.
마치 지금까지 벌였던 설전과 내기 는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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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스트리밍은 다들 즐거우셨습 니까?”
영찬이 매끄럽게 클로징 멘트를 시 작했다.
벌써 스트리밍이 시작한 후로 몇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모두가 지금쯤 끝날 것이라 예상하 였기에 별다른 반발은 없었다.
“네, 다들 즐거우셨다니 다행입니 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간간이 출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요게 맞 아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문제는 현우였다.
영찬의 멘트를 싹둑 자르고 들어온 그가 클로징 멘트를 아예 끝내버렸 다.
시청자들이 영찬의 말에 딱히 반응 을 제대로 내보이기도 전에 종을 쳐 버렸으니 반발이 나오는 것이 무리 도 아니었다.
- 무슨 채팅은 쳐다보지도 않고 혼자 멘트를 치네.
- 불통도 이런 불통이 없을 듯.
- 자기 스트리밍에서만 채팅을 보는 건가.
- 게스트로 나와서 이렇게 깽판 쳐도 되는 거야? 당연히 되지. 시청자들은 현우의 어이없는 진행 에 짜증을 내려다가 멈칫했다.
현우가 추후에도 나올 수 있다는 뉘앙스의 말을 흘리자마자 돌변했 다.
“그럼 모두 다음에 뵙겠습니다.”
채팅창을 훑어보던 영찬은 대충 끝 내는 분위기가 완성된 것을 보고는 스트리밍을 종료했다.
영찬과 현우는 스트리밍을 종료하 자마자 아레나를 종료했다.
그러고는 곧장 거실로 달려 나왔 다.
거실로 튀어나오는 영찬의 손에는 하얀색 노트북이 들려 있었다.
“야, 얼른 켜보}. 정산 시작해야지.”
현우는 소파에 누워 영찬을 재촉했 다.
“기다려봐. 무슨 노트북이 눈만 딱 감았다가 뜨면 켜지는 거냐? 그리고 켜지면 또 끝이야? A-월드에 들어 가야지. 거기서 또 로그인도 해야 돼. 그다음에서야 비로소 정산 페이 지에 들어간다 아니냐. 잘 아는 놈 이 왜 그렇게 재촉을 해?”
영찬은 가만히 누워 입만 나불대는 현우를 향해 촉새처럼 말을 쏟아냈 다.
“야, 그러고 있을 시간이면 벌써 정산 페이지 켰다. 잔말 말고 켜기 나 해. 화면에 불 들어왔어, 새끼 야.”
현우는 영찬이 독이 잔뜩 오른 뱀 처럼 쏘아붙이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뻔뻔하게 하고 싶은 말만 했 다.
“ 어휴….”
영찬이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몸을 돌려 다시 노트북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빠르게 무선 마우스를 움 직여 A-월드를 켰다.
‘정산 페이지가…. 이게 뭐야?’
“와…!!!”
정산 페이지를 본 영찬이 말없이 탄성만 내질렀다.
그동안 그가 봐왔던 수치와는 너무 다른 숫자들이 나와 있었다.
“왜? 스트리밍 좀 잘 됐나? 뭔 데?”
현우는 감탄한 표정으로 연신 노트 북을 보고 있는 영찬의 어깨 위로 머리를 쑥 들이밀었다.
‘높은데?’
“이야, 높다. 1,000만 명 넘겼네?”
11,382,719명
방금 전 스트리밍에서 기록한 최고 시청자 수였다.
영찬이 지금까지 해온 스트리밍 중 에서 가장 많은 시청자 수였다.
그러나 현우에게는 썩 마음에 드는 수치가 아니었다.
‘그래도 평소 내 스트리밍보다 안 나왔네. 왜 그랬지?’
현우는 짐짓 감탄한 표정을 지었 다.
하지만 속으로는 착잡한 마음을 감 추지 못했다.
그로서는 도와준다고 도와줬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나오지 않았다.
“금화는 얼마나 받았어?” 현우의 관심은 시청자 수에서 금화 로 옮겨졌다.
시청자 수는 예상처럼 나오지 않았 지만, 금화라면 얘기가 또 달랐다.
오늘 스트리밍의 분위기가 좋았으 니 당연히 그 금액도 무척 클 것이 라 예상했다.
‘최소 5만 개는 되겠지?’
현우는 스트리밍 시작 부분에 금화 8,282개가 터진 것을 기억하고 있었 다.
그 분위기가 조금만 이어졌더라도 5만 개는 수월했다.
그게 현우의 평소 스트리밍이었다.
“엄청 받았네. 2만 5천 개쯤 돼.”
영찬이 기쁜 감정을 감추지 못하며 잔뜩 톤이 올라간 목소리로 말했다.
흥이 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영찬이 스트 리밍을 하며 받는 금화의 개수는 대 략 5천에서 6천 개였다.
금화가 2만 5천 개면 4배에서 5배 는 되는 수입이었다.
‘반밖에 안 되네?’
그에 반해 현우는 그다지 기쁜 표 정이 아니었다.
예상치의 절반밖에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
기껏 나가서는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해, 평소만큼도 안 나왔네. 저 번 스트리밍 때 예고라도 할 걸 그 랬다.”
현우는 영찬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그게? 이 정도면 어 마어마한 건데? 헛소리하지 말고 저 녁 메뉴나 생각해.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네 덕분에 이만큼 벌었는데 한턱내야지.”
영찬은 이상한 소리를 하는 현우의 얼굴을 밀어내고는 히히거리는 웃음 소리를 내며 연신 마우스를 눌러 화 면을 움직였다.
난생처음 보는 숫자들의 향연에 깊 이 감동하고 있었다.
“응? 그래? 알았어. 그럼 오늘은 최소 10만 원이다.”
현우는 예상외의 반응을 보이는 영 찬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니 미안했던 마음이 쏙 사라져버렸다.
이제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 은 잠시 후에 차려질 각종 배달음식 들이었다.
‘일단 치킨부터 시키고…. 보쌈도 먹어야지. 매운 게 당기니까, 떡볶이 도 시키고….’
영찬에게 말해두었던 10만 원은 가볍게 넘길 것 같았다.
“무르기 없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