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5화
“이제 남은 건 데스나이트 둘과 성 기사 한 명뿐이네요.”
“사제와 마법사 둘도 아직 남아 있 잖아, 샤오 바오.”
“어차피 성기사가 죽으면 끝인데 있으나 마나지 뭐.”
리우 쉐이와 샤오 바오가 눈앞의 전투를 지켜보며 평을 남겼다.
전투는 누구나 예상한 것과 같이 흘러갔다.
레인의 압도적인 우세.
그의 검에서 온갖 동물들이 튀어나 올 때마다 데스나이트를 비롯한 크 레센트문의 근접 클래스들은 헛숨을 들이켜야만 했다.
- 곧 끝나겠네.
- 살짝 아쉬운데. 너무 무력하게 지는 거 아닌가?
- 근데 상대가 레인인데?
- 어차피 아레나 위크 나가면 상대가 전부 쟁쟁하잖아.
- 그래도 상대가 레인은 아니지.
시청자 의견은 반반이었다.
이 정도면 선전했다는 것과 너무 못한다는 이들.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그들은 팽팽하게 맞섰다.
“이 정도면 잘 버텼지. 실력이 어 마어마하게 늘었는데?”
“그러게요. 그간 훈련한 보람이 있 습니다.”
강중구와 김석중은 명백히 크레센 트문이 성장했다고 여겼다.
테이카와 처음 대련했던 당시와 비 교하면 괄목할 정도의 성장이었다.
스탯의 제한을 두고 싸우는 지금이
그 당시보다 훨씬 좋은 전투를 펼치 고 있었다.
“근데 곧 끝날 것 같네요.”
“큰 거 한 방 맞을 거 같은데….”
김석중과 강중구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감이 경종을 울리는 것을 느 꼈다.
레인이 곧 강력한 스킬을 사용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니나 다를까 레인이 검을 흔들자 바닥을 찢고 푸른빛의 상어가 모습 을 드러냈다.
상어는 그대로 데스나이트를 집어 삼켰다.
상어의 아가리 속으로 사라진 데스 나이트는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홀로 남은 이훈은 검과 방패를 집 어 넣었다.
그러고는 양손을 하늘을 향해 번쩍 들어 올렸다.
“항복하겠습니다.”
그것을 본 현우가 빠르게 달려나가 이훈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연습에 항복이 어디 있어? 지금 이게 장난으로 보여?”
이훈은 아릿한 통증이 퍼져오는 뒤 통수를 빠르게 문지르며 현우에게 도리어 성질을 냈다.
“어차피 질 건데? 차라리 그 시간 에 다시 싸우는 게 낫지. 어차피 오 늘 계속 싸워야 할 거 같은데.”
이훈의 열변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 었다.
어차피 지금은 연습하는 시간이었 다.
연습을 실전처럼 하기는 했지만, 결국 본질은 연습이었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 했다.
“그래? 그것도 그렇네. 그럼 빨리 다시 시작해. 이번에는…. 리우 쉐이 랑 샤오 바오 님을 상대로 싸우면 되겠다.”
현우는 이훈의 말이 괜찮다는 생각 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다음 경기를 주선했 다.
쉬는 시간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왜?
“끝까지 안 했으니까, 쉬는 시간은 필요 없겠지?”
현우는 빙긋 웃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현우의 행동에 이훈의 얼굴이 구겨진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
었다.
샤오 바오와 리우 췌이.
구룡 충 두 명과의 대련은 앞선 레인과의 대련보다 더욱 일방적이었 다.
한 명이라는 숫자 차이는 그만큼 강력했다.
두 명을 상대하는 것과 한 명을 상대하는 것은 차이가 컸다.
“역시 쉽지가 않죠?”
테이카와 레인은 꽤 친한 듯 자연 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주제는 물론 눈앞에 펼쳐지는 전투 였다.
“그래도 생각보다 크레센트문의 선 수들이 잘해서…. 저 정도면 어디 가서 부족할 것 같지는 않네요.”
레인은 종전의 경험을 토대로 솔직 한 감상을 내놓았다.
실제로 레인은 크레센트문 정도면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가 아는 프로게이머들이나 크레 센트문의 선수들이나 큰 차이가 없 었다.
“하지만 레벨이 살짝 아쉽죠? 숫자 가 적으니 그만큼 레벨이 높아야 하 는데 말이죠….”
“그거야 뭐, 어쩔 수가 없는 거니 까요. 단시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 니…. 하지만 분명 평균적인 스펙이 조금 더 높았다면…. 굉장한 조합일 겁니다.”
레인은 어떻게 저런 이들을 모았는 지가 신기했다.
그도 찾을 수만 있다면, 그의 길드 인 베히모스에 꼭 만들고 싶은 조합 이었다.
그 순간 테이카가 레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슬쩍 한번 부탁해보세요. 의외로 골목대장님은 대련에 거부감을 느끼 지 않으시더라고요. 마치 그런 경험 이 무척 많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 고요.”
레인이 오늘 현우의 스트리밍에 나 온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 다.
테이카가 지나가듯 말했던 현우와 의 대련.
그것을 듣고 난 후, 때마침 마스체 라노의 부탁이 있기에 흔쾌히 현우 의 스트리밍에 이렇게 게스트로 출 연한 것이었다.
“그렇습니까? 일단 스트리밍이 끝 나고 난 후에 부탁해봐야겠네요.” 레인이 작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 였다.
‘많은 걸 배웠다고 했지.’
테이카는 골목대장과 겨룬 뒤에 많 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정확히는 다시금 달려나갈 원동력 이 생겼다고 말했다.
식었던 열정이 활활 타오른다던….
“이번 경기도 거의 끝나가네요.”
그 순간 샤오 바오의 대도에서 강 기 세례가 묵직하게 쏟아져 내렸다.
이훈은 자세가 흐트러진 채로 애써 방패를 내밀었지만, 제대로 된 자세 를 취한다 해도 방어하지 못할 공격 을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콰아아아앙!!!
이훈의 몸이 바닥에 깊숙하게 처박 혔다. 못해도 10센티 이상은 파고든 것 같았다.
힘을 줘도 빠지지 않을 만큼 제대 로 박혔다. 이훈이 아등바등해도 몸 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리우 쉐이와 샤오 바오가 현우를 쳐다봤다.
이 정도면 끝난 게 아니냐는 얼굴 이었다.
“이번 경기도 그럼 이쯤 하겠습니 다. 갈수록 발전하는 모습이 아주 좋네요. 다음 연습은 30분 정도 휴 식을 취한 뒤에 이어서 하도록 하겠 습니다.”
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련을 중지 시 켰다.
그러고는 잠깐의 휴식을 선언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우는 것은 상당한 집중력이 소모되는 일이었 다.
- 30분 동안 그럼 뭐함?
- 그러게.
- 근데 그냥 게스트들하고 얘기만 해 도 재밌을 듯.
- 그건 그럼. 이 조합 어디서 또 보냐.
- 여기 지금 그랜드 마스터가 네 명 임….
시청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 식 시간도 마냥 좋았다.
그 시간 동안 그들과 얘기를 나누 면 그걸로 족했다.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니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테이카가 갑자기 일어서서 말했다.
“그럼 하고 싶으신 거라고 있으십 니까, 테이카 님?”
현우가 고개를 돌려 테이카를 쳐다 봤다.
“저희도 싸워 보는 게 어떻습니 까?”
“저희요?”
현우는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희도’라니.
“오늘 나온 게스트들 여섯 명과 골 목대장님이 싸우는 거죠. 저희가 크 레센트문의 역할을 하고 골목대장님 께서 저희 역할을 하고. 어떻습니 까?” 이어지는 테이카의 말에 현우의 두 눈이 흔들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었다.
‘오늘도 날로 먹으려고 했는데….’
게스트를 초대하고 크레센트문의 선수들을 부른 가장 큰 이유는 오늘 의 스트리밍을 편하게 넘기기 위해 서였다.
하지만 이런 깜짝 이벤트가 열린다 면….
이건 괜한 헛수고가 되는 것이었 다.
“음…. 이게 가능할까요? 그리고 여섯 분의 조합이 썩 좋은 조합이 아니라…. 마법사도 없고 사제도 없 지 않습니까?”
현우는 최대한 내뺐다.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된다면 싸우지 않는 편이 나았다.
몸을 굳이 움직일 필요는 없었으니 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현우의 전투를 보고 싶어 했다.
- 골목대장과 진짜 랭커들의 싸움이 라….
- 이만한 볼거리가 또 어디 있을까.
- 刀-워드 조회 수 역대 1위 도전 가 능할듯.
- 간만에 대박 영상 하나 건질 듯.
시청자들은 이미 기대 만발이었다.
레인, 테이카, 김석중을 위시한 세 명의 그랜드 마스터.
그리고 리우 쉐이, 샤오 바오, 강 중구 등 세 명의 마스터.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호화로운 라인업이 었다.
저 멤버로 프로팀이라도 꾸린다 면….
단숨에 리그를 휩쓸 터였다.
그게 지역 리그든 아니면, 아레나 위크든 상관없이.
“그려, 드잡이질 한번 해보드라고. 한번 할 때 안됐나.”
“일대일이 아니라서 아쉽기는 하지 만, 한번 붙을 때는 됐지.”
김석중과 강중구가 시청자들의 말 을 거들었다.
두 사람이 추임새를 넣자 현우도 더 이상 뒤로 빼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어쩔 수 없나….’
“나머지 분들도 동의하십니까?”
현우는 마지막 보루라도 확인해 보 자는 마음으로 레인과 리우 쉐이 그 리고 샤오 바오를 한 번씩 훑었다.
샤오 바오는 재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리우 쉐이는 말없 이 현우를 응시했다.
“전 괜찮습니다.”
레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와 싸우는 건 오히려 그가 바 라는 바였다.
“그럼 리우 쉐이 님께서 하고 싶어 하지 않으신 것 같….”
현우는 가만히 있던 리우 쉐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채 3초도 가지 못 했다.
김석중의 강력한 눈빛 세례를 받은 리우 쉐이가 재빨리 입을 열었기 때 문이었다.
“아니요, 저도 괜찮습니다. 골목대 장님. 사제가 없으면 크레센트문의 사제 분을 데려오면 되는 것 아니겠 습니까? 그게 아니면 여기 몽크가 두 분이나 계시니 딱히 없어도 될 것 같습니다.”
리우 쉐이의 배신에 현우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되찾은 현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 다.
“다들 원하시면 해야죠.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안 하겠습니까. 오 랜만에 몸 한번 제대로 풀겠네요.”
현우는 인벤토리에서 현천도를 꺼 내 들었다.
그러고는 투기장의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다들 준비하고 오세요. 저야 언제 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말을 마친 현우는 탱이를 소환했 다.
“반갑다, 주인 놈아! 응?”
현우에게 달려든 탱이는 주변 분위 기에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인간 몇 명이 주인 놈을 향해 무 기를 들고 겨누고 있었다.
“그냥 대련이야, 대련. 그렇게 안 쳐다봐도 돼.”
그런 탱이의 마음을 눈치챈 현우가 탱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정시켰 다.
“그러냐, 주인 놈아? 그럼 내가 도 와줘야 하나?”
탱이는 한결 안심한 표정으로 물었 다.
“괜찮아, 그냥 가서 구경이나 해. 내가 지는 거 봤어?”
“그래도 돕겠다, 주인 놈아.”
“그럼 내 뒤에서 마법이나 한번 쓰 고 도망가. 걔도 붙여줄게.”
“그런가? 좋다. 그럼 뒤에서 돕겠 다, 주인 놈아.”
탱이는 마령을 소환해준다는 현우 의 말에 환하게 웃었다.
현우는 탱이의 환한 미소에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것을 느꼈다.
뒤로 물러난 탱이는 당연하다는 듯 현우에게 버프를 시전했다.
삼색의 빛이 현우의 몸에 깃들었 다.
‘이제 마령을 소환해야지.’
현우는 마력을 끌어올려 마령을 소 환했다.
탱이와 똑같이 생겼지만, 털 색깔 이 검붉은 곰이 나타났다.
그렇게 온갖 버프까지 사용을 마친 현우가 고개를 들고 여섯 명의 플레 이어가 서 있는 쪽을 쳐다봤다.
“자, 이제 시작하시죠. 숨기는 게 있어서는 곤란할지도 모릅니다. 너 무 빨리 끝날 수가 있으니까요.”
현우의 선전포고는 무척이나 광오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