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의 귀환-601화 (602/939)

제598화

“저것은 하늘의 지혜? 그것을 어떻 게…. 어떻게 라레닉스 님을 아십니 까? 혹시 라레닉스 님이 아직 살아 계십니까?”

칼루이가 현우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절박했다.

현우에게 대답할 시간을 주지 않고 연달아 질문을 쏟아냈다.

“우연처럼 인연이 닿아 만나 뵈었 습니다. 성물의 힘으로 형상을 유지 하고 계셨습니다만…. 제게 이 성물 을 넘겨주시고는 사라지셨습니다.”

현우는 과거에 빙하지대에서 고대 루오스 제국의 수도, 레필을 발견해 루오스 제국 최후의 황제인 라레닉 스와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탱이의 앞발에 끼워 진 하얀 팔찌, 하늘의 지혜와 현우 가 익힌 스킬인 거인의 긍지를 받았 다.

“으으…!!! 라레닉스 님…. 결국 버 티지 못하셨군요….”

현우의 대답을 들은 칼루이는 눈물 을 흘렸다.

라레닉스가 사라졌다는 것.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 었다.

칼루이는 숨죽여 울었다.

그에게 있어서 라레닉스는 하나의 신앙이었다.

끝없는 시간을 버틴 이유였다.

라레닉스가 명령했기에.

그의 부탁이기에 아직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참을 오열하던 칼루이가 고개를 몇 번 흔들고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몇 번 훔쳤다.

그러고는 현우에게 자초지종을 설 명했다.

“이곳은 외부와 격리된 공간입니 다. 의지만 있다면, 시간의 흐름에서 빗겨나갈 수 있습니다. 루오스 제국 에 몇 남지 않은, 특별한 아티팩트 로 구현된 공간입니다.”

“그 말은….”

현우는 칼루이의 설명에서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굳이 저 말을 하는 것은 곧 칼루 이 자신이 루오스 제국 시대의 사람 이라는 뜻이었다.

“맞습니다. 저는 이곳에 남은 유일 한 루오스의 제국민입니다. 다른 이 들은 모두 그들의 후예들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되 었습니까?”

“그들은 모두 영겁과도 같은 시간 속에서 자살을 택했습니다. 정확히 는 시간에 순응한 것입니다. 정신력 의 한계에 부딪힌 채로.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후손들입니 다.”

진실은 놀라웠다.

칼루이는 루오스 제국의 후예가 아 니라 제국민 그 자체였다.

‘도대체 라레닉스가 무슨 말을 했 길래….’

가족이, 친구가 하나둘씩 사라지는 고통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만들었 을까.

“그럼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는 라 레닉스 님의 명령 때문입니까?”

칼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레닉스의 명령이 아니면 이런 곳 에 숨어 있을 리가 없었다.

그의 곁에서 평생을 보냈을 터였 다.

“예, 라레닉스 님의 명령이었습니 다. 아티팩트를 들고 마계로 숨어들 라 하셨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수호 자가 찾아올 거라 하셨습니다. 그리 고 긴 시간이 흘러 당신께서 이곳에 오신 겁니다.” 칼루이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 했다.

“나머지 궁금증은 마을에 가서 풀 어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수 호자께서 오신 것을 알아야 하니까 요. 다들 기뻐할 겁니다. 이곳을 벗 어날 수 있을 테니.”

현우는 칼루이의 뒤를 빠르게 쫓았 다.

왠지 모를 찝찝함을 간직한 채.

‘안 머네?’

마을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현우가 칼루이를 만난 곳에서부터 대략 30분 정도의 거리였다.

마을은 중간계의 도시와 똑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검푸른 하늘과 대 지만이 중간계의 도시와 다를 뿐이 었다.

칼루이와 현우가 마을에 들어서자 마을 곳곳에서 시선이 몰려들었다.

새롭게 나타난 외부인에 대해 관심 을 두는 것은 당연했다.

그들이 이곳에 태어나고 자라고 시 간을 보낸 이후로 처음 보는 외부인 이었으니까.

“얼굴이 따갑군요.”

현우는 얼굴이 찢어질 듯한 시선에 피식 웃었다.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난 생처음으로 보는 새로운 얼굴일 테 니까요.”

칼루이는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현 우에게 말했다.

현우는 그런 칼루이에게 손을 흔들 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이방인에 대한 호기 심이겠지요.”

현우는 저들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었기에 흔쾌히 넘어갔다.

솔직히 불쾌하다거나 새롭지도 않 았다.

평소 받는 관심에 비하면 이 정도 는 약과였다.

스트리머와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 작한 이후로 시선을 받지 못한 적이 없었다.

“근데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따로 모이는 곳이 있습니까?”

현우는 마을에 들어왔지만, 멈출 줄을 모르는 칼루이에게 질문을 던 졌다.

“예,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는 공터 가 있습니다. 그곳이라면 마을의 모 든 이들이 모두 모일 수 있습니다.”

칼루이는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건축물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콜로세움인가?’

마치 축구 경기장이나 야구 경기장 을 연상케 하는 건축물이었다.

저 정도 크기라면 수천 명 정도는 가뿐하게 수용할 수 있어 보였다.

“근데 미리 무슨 말씀이라도 해놓 으셨습니까? 사람들이 잘도 따라오 네요?”

“호기심이겠지요. 아마 따로 말하 지 않아도 몰려들 것 같습니다.”

현우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갔다.

마치 행진이라도 하듯 사람들이 인 도를 가득 메웠다.

“수호자님, 이곳입니다.”

현우는 칼루이를 따라 콜로세움이 연상되는 건물에 들어갔다.

건물의 내부는 현우가 예상했던 그 대로였다.

스타디움과 같은 구조였다.

중앙에 무대가 있고 사방에는 일정 높이마다 의자가 있어 무대를 내려 다볼 수 있는.

“그런데 이곳에서 굳이 만날 필요 가 있습니까? 제가 저들 모두와 만 나야 할 이유라도….”

현우는 저들 앞에 왜 서야 하는지 궁금했다.

사실 여기까지 온 이유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현우는 칼루이가 그를 낚으려는 것 인지 아니면 정말 진심인지 판단했 을 뿐이었다.

그 뒷이야기는 전혀 해보지 못했 다.

“예, 만나셔야 합니다. 그게 수호자 님의 역할이니까요. 그리고 이 만남 은 결코 수호자님께 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칼루이가 단호한 얼굴로 대답했다.

지금 이 만남은 이곳에 남아 있는 루오스 제국 후예들에게도 그리고 현우에게도 필수적인 만남이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기다리 겠습니다.”

현우는 무대에 놓인 의자에 그대로 앉았다.

그러고는 빠르게 채워지는 좌석을 살폈다.

각기 다른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했다.

‘보이는 외모가 곧 나이는 아니라 고….’

의지만 있다면, 시간의 흐름에서 빗겨나갈 수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칼루이가 아직까지 목숨 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고.

‘금세 다 차겠어.’

넓어 느껴졌던 공간은 순식간에 사 람들로 반 이상 채워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물밀듯 쏟아지고 있었다.

잠시 후, 빈 의자들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칼루이가 무대에 놓 인 단상에 올라섰다.

“모두 모였나?”

칼루이가 작게 말했다.

하지만 단상 위에 놓인 작은 구슬 이 진동하며 그의 목소리를 증폭해 공간 전체에 울려 퍼지게 만들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였습니 다!!!”

칼루이의 물음에 대다수의 인원들 이 크게 소리쳐 답했다.

“다들 궁금할 것이다, 나와 함께 온 사람이 누군지.”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했다.

그렇기에 이곳에 모인 것이기도 했 다.

“이분은 우리가 기다리던 그분이 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칼루이가 말한 사람.

그것은 제국의 수호자였다.

그리고 제국 수호자가 나타났다는 것은 곧 그들이 이 빌어먹을 공간을 벗어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제국 수호자?”

“우리도 드디어 나가는 거야?”

“부모님의 소원을 드디어….”

후예들의 동요를 느낀 현우가 칼루 이를 쳐다봤다.

현우의 시선을 느낀 칼루이가 고개 를 돌려 현우와 잠시 눈을 맞추고는 다시금 고개를 틀어 후예들을 바라 봤다.

“조용. 조용히 해. 이분은 수호자가 확실하다. 증거는 여러 가지다. 수호 자를 뜻하는 반지를 소유하고 있으 며 수호자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성공한 마리오네뜨 베어와의 교감에 도 성공하신 것 같다.”

칼루이는 현우에게는 말하지 않았 던 사실 한 가지를 루오스 제국 후 예들에게 말했다.

‘탱이를 알아봤어?’

그것은 바로 탱이를 알아본 것.

마리오네뜨 베어는 루오스 제국 시 절 수호자나 황족들과 함께 움직였 던 역사가 있었다.

‘당시 사람이라고 했으니 몰라보는 게 더 이상하기는 하네.’

그러한 칼루이의 행동은 아이러니 하게도 현우의 신뢰를 사는 데에 조 금 더 보탬이 됐다.

“그때 나는 알았다. 저분이 황제 폐하께서 말씀하신 수호자라는 것 을. 그래서 그대들에게 묻겠다. 따라 가겠는가.”

칼루이가 입을 열자 귀신같이 웅성 거림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칼루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간의 적막을 보상이라도 받아야 했는지 몇 배는 더 시끄럽게 여기저 기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저분이 수호자이신 것은 확실합니 까?”

“확실하다. 내가 보장하지.”

“그럼 당장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걸 정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다. 따르겠느냐? 아니면 남겠느 냐.”

칼루이의 마지막 물음을 끝으로 사 위가 조용해졌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였다.

그들에게는 자유란 없었다.

오로지 복종과 낙오.

두 가지만이 주어져 있었다.

수호자에게 복종해 외부로 나갈 것 이냐 아니면 그에 불복하고 이곳에 낙오할 것이냐.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 순간 후예들 중 한 명이 자리 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무슨 뜻이지? 인정할 수가 없다 니.”

칼루이가 일어선 남자를 향해 물었 다.

“수호자라는 이름만으로 무작정 저 희가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호자라는 이름이 곧 자격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남자가 소리쳤다.

그의 얼굴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그의 부모 그리고 조부모.

그들이 이렇게 밀폐된 세계에 갇혀 애꿎은 목숨을 버렸고 지금은 그 자 신까지 백 년도 넘는, 채 헤아리기 어려운 시간을 버텨왔다.

그걸 어느 날 대뜸 나타난 남자가 수호자라는 이유만으로 따라야 한다 고 말하면….

그간의 시간과 버린 목숨들이 너무 도 아깝지 않은가.

“시험해 봐야겠습니다. 저 사람이 우리를 아니, 저를 이끌 자격이 있 는지.”

사내는 울분을 토해내는 것처럼 보 였다.

“맞습니다.”

“검증을 해야 합니다.”

사내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칼루이는 굳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응시했다.

“ 검증이라….”

칼루이가 고개를 돌려 현우를 슬쩍 살폈다.

현우가 혹시라도 기분 나빠 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했다.

“전 괜찮습니다. 당연한 수순 아니 겠습니까? 저라도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현우가 칼루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현우는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 다.

남자가 저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인정하지 못하는 게 당연해.’

지금 현우는 흔히 말해서 낙하산이 나 다름없었다.

수호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충성 을 바치라는 것은 충분히 억울할 만 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 까?”

현우의 말이 공간 전체에 울려 퍼 졌다.

칼루이처럼 어떤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저보다 강하다면…. 그때는 군말 없이 따르겠습니다.”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칼루이 님, 그럼 이 무대 위에 있 는 것들을 잠시만 치워주시겠습니 까?”

칼루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무대에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이들이 나와 무대 위에 있던 것들을 하나둘 씩 치워냈다.

의자, 책상, 단상 등.

모든 것이 치워졌다.

현우는 마치 연무대를 연상시키는 무대 위에 서서 남자를 쳐다봤다.

“한번 붙어봅시다.”

현우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떠올랐 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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