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 화
준비를 다 마친 현우는 그의 방으 로 돌아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의 앞 에 섰다.
그 순간 케일이 현우의 옆에 나타 났다.
“미스터 강, 혹시 한국에서 지금 크게 이슈가 된 일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현우는 옆에 선 케일에게 고개를 돌렸다.
현우의 표정은 무척 평온했다.
마치 전혀 관심이 없는 얘기를 하 는 듯했다.
“그 이슈라는 게 금강투자금융, 정 철호 이사의 검찰 소환을 말하는 건 가요?”
“알고 계셨습니까?”
케일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현우가 그것을 알고 있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 평소 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예, 아침에 들었습니다. 저도 처음 에는 놀랐지만…. 저와 크게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관심을 두지 는 않고 있습니다.”
현우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목소리 로 말했다.
“미스터 강은 본인과 상관이 없는 얘기라고 말씀하셔도…. 다른 사람 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특히 가십거리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말이죠.”
케일이 우려하는 말투로 말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한국 커뮤니티에서 흘러들어온 정 철호의 구속 소식은 이미 세계 각국 의 커뮤니티로 퍼지고 있었다.
오늘 아레나 위크에서도 그와 관련 된 질문이 무조건 나올 터였다.
물론 캐스터나 중계진들이 직접적 으로 묻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들이 물었다가는 후폭풍을 감당 하기가 힘들 테니까.
‘민감한 질문은 기자들이 하겠지.’
그러한 질문들은 일부 기자들이 할 것이 분명했다.
‘굳이 이 일에 대해 내가 뭐라고 더 할 필요는 없겠지.’
현우는 이전에도 그랬고 김석중에 게 그 얘기를 들은 후에도 같은 생 각이었다.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일은 저와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끝이고요.”
인제 와서 갑자기 이러쿵저러쿵 얘 기를 더 하는 것은 굉장히 꼴사납다 고 생각했다.
현우가 굳이 손을 직접 더럽히지 않아도 정철호는 몰락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말했는데도 굳이 논란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니케 매 니지먼트 차원에서 단호한 대처 부 탁드립니다.”
케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속된 선수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 은 니케 매니지먼트의 당연한 의무 였다.
“알겠습니다, 그런 내용을 담은 홍 보문을 작성해두겠습니다.”
“케일이 잘해줄 거라 믿고 있을게 요.”
띵
대화가 끝이 나고 닫혀 있던 엘리 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현우의 방이 있는 층에 도착한 것 이었다.
“잠시 후, 로비에서 뵙겠습니다. 미 스터 강.”
엘리베이터를 나가는 현우의 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크레센트문의 선수들이 하나둘씩 호텔 정문에 있는 버스에 몸을 실었 다.
지난 며칠과는 다르게 다들 무언가 짐이 있었다.
‘다들 한 보따리씩 들고 탔네.’
심지어 드웨인마저도 무언가를 챙 겨 왔다.
‘나만 안 가져왔나….’
“그게 다 뭐야?”
그것을 본 현우가 크레센트문의 선 수들에게 물었다.
“이거? 그냥 혹시 필요할까 싶어 서.”
“팬 미팅에 내 팬이 올지도 모르잖 아.”
이훈과 메이슨이 현우를 보며 머쓱 하게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왠지 모르게 창피한 기 분이 들었다.
“드웨인은요?”
“아, 이건 제니퍼를 위한 선물입니 다. 이런 날 한번 하는 이벤트는 평 생 기억에 남을 테니까요. 단단히 준비해야죠.”
드웨인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답 했다.
그의 선물은 이훈과 메이슨, 두 사 람과는 다른 종류였다.
오늘은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벼르 고 벼른 날이었다.
드웨인은 그의 여자 친구인 제니퍼 에게 작지만 큰 이벤트를 준비해 두 었다.
“마지막 인터뷰 때 하실 생각인가 보죠?”
현우의 머릿속에 이벤트를 하기 딱 좋은 순간을 떠올랐다.
아레나 위크가 막 내리기 직전.
우승팀에게 상금과 상품을 주고 인 터뷰를 하는 그때.
그때가 적기였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쏠리고 관심이 집중되는 순간.
드웨인은 제니퍼의 이름을 부를 터 였다.
“제니퍼 씨가 많이 좋아하시겠네 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타 박이나 안 들으면 다행일지도 모르 겠습니다.”
드웨인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현우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 다.
‘저건…. 유리 쇼핑백인가?’
현우의 눈에 커다란 쇼핑백들이 들 어왔다.
유리가 앉아 있는 좌석 뒤쪽에 쇼 핑백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뭐가 들어 있는 거지?’
현우는 유리의 옆 좌석으로 자리로 옮겼다.
“유리야, 뒤에 쇼핑백은 뭐야?”
“아, 저거요? 저거 쿠키예요. 어젯 밤에 만들었어요.”
“저걸 다? 혼자서?”
현우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되물었 다.
쇼핑백의 크기와 숫자로 봤을 때 그 안에 담긴 쿠키의 양은 결코 적 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는데…. 재 료 계량은 훈이랑 메이슨이 도와줬 어요.”
유리가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젯밤 저녁 식사가 끝이 나고 현 우가 마계를 휘젓고 다니는 사이, 유리를 비롯한 세 명은 제과에 한창 이었다.
정확히는 유리의 지시에 따라 재료 준비만 도와줬을 뿐이었다.
나머지는 호텔 직원의 안내를 받아 기계를 사용한 유리가 모든 것을 혼 자 끝냈다.
“대단하네…. 오늘 팬 미팅에서 전 부 줄 거지?”
현우는 유리의 노력에 정말로 감탄 했다.
‘내가 아레나를 하고 있을 때 유리 는 저런 준비까지….’
자신은 평생이 가도 하지 못할 행 동이었다.
“다들 좋아하겠네….” 다른 선수들의 준비에 감탄할수록 부담감이 커져왔다.
팬들에게 무언가라도 해줘야 한다 는 부담감이 현우의 마음을 짓누르 기 시작했다.
뉴욕 아레나 스타디움에 도착한 크 레센트문의 선수들은 입구에 서 있 는 수많은 인파에 손을 흔들고는 빠 르게 대기실로 입장했다.
“응? 이게 뭐야?”
가장 먼저 대기실에 들어온 메이슨 이 대기실에 놓인 종이 더미를 집어 들었다.
“뭐냐고 묻기 전에 일단 좀 읽는 게 어때?”
이훈은 메이슨을 타박하고는 메이 슨의 손에 들린 종이를 빼앗아 들었 다.
“음…. 이건 형이 좀 보셔야 하는 것 같은데요?”
이훈이 현우의 앞에 종이를 내밀었 다.
“뭔데? 말은 좀 먼저 해줘도 되잖 아.”
현우는 이훈이 내민 종이를 받아들 었다.
‘뭐가 쓰여 있길래 그런 거지?’ 현우는 천천히 종이를 살폈다. 종이에는 한글이 빼곡하게 적혀 있 었다.
- 금일 레이드 타임 어택은 윈터 리그 와 마찬가지로 세 가지 유형의 보스 몬 스터를 상대합니다. 유형은 각각 인간 형. 짐승형, 특수형입니다. 레이드 타임 어택 사이마다 30분의 휴식 시간이 주 어지며 순위는 클리어 타임의 평균으로 정해집니다.
‘시작하기 직전에서야 설명을 해주 다니….’
종이의 앞부분을 읽은 현우가 종이 에서 눈을 뗐다.
종이에 적힌 것은 오늘 있을 레이 드 타임 어택에 대한 정보였다.
이것은 현우 혼자 볼 게 아니라 다른 선수들과도 나눠봐야 했다.
‘그러라고 종이도 많이도 줬네.’
메이슨과 이훈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도 현우의 손에는 열 장도 넘는 숫자의 종이가 들려 있었 다.
“다들 종이를 하나씩 받으세요.”
현우가 종이를 갖지 못한 선수들에 게 다가가 종이를 배부했다.
“오늘 있을 레이드 타임 어택에 대 한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다들 한 번씩 읽어보세요. 연습할 시간은 없 어도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도는 알 고 가야 하니까요.”
종이를 모든 선수들에게 나눠준 현 우 역시 아직 읽지 못한 뒷부분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 인간형 보스 몬스터는 아레나 위크 에 참여한 선수들의 평소 데이터를 섞 어 만든 보스 몬스터입니다. 스탯은 윈 터 리그 때보다 대략 50레벨에서 100레 벨 정도 올라간 상태입니다.
‘시작부터 좀 까다롭겠는데.’
첫 보스 몬스터부터 아주 까다로웠 다.
데이터들을 모으고 모아 만든 인간 형 보스 몬스터.
그 말은 곧 거의 무한에 가까운 경험이 있는 랭커를 상대하라는 소 리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스탯은 현존하는 그 어떤 플레이어보다 높은.
“우리는 그냥 현우 형이 상대하면 되겠네.”
“다른 팀들은 엄청 고생하겠어.”
“피해가 꽤 심하겠는데?”
“휴식 시간이 왜 30분이나 되나 했더니…. 이 정도면 30분 정도 쉬 어서는 턱도 없겠는데?”
인간형 보스 몬스터의 설명을 본 크레센트문의 선수들은 제각각 한마 디씩을 내놓았다.
그들은 걱정이 없었다.
부담감도 없었다.
오히려 정보를 확인하고는 마음이 편해졌다.
“넌 안 싸우냐?”
현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 로 메이슨에게 말을 쏘아붙였다.
“데이터를 모아봐야 골목대장 하나 만 못 할 텐데 뭐가 문제야.”
메이슨은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현우의 말을 맞받아쳤다.
“그리고 내가 왜 안 싸워. 마법 견 제는 딱딱 해줄게.”
“ 어휴….”
현우가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는 못했다.
현우도 인간형 보스 몬스터에 대한 설명을 보고는 가장 먼저 떠올린 생 각이 혼자 싸워야겠다는 것이었다.
‘짐이 될 수도 있어.’
온갖 데이터를 짜깁기해서 만든 보 스 몬스터는 분명 굉장히 노련한 전 투를 선보일 게 분명했다.
그런 막대한 경험을 내세운 보스 몬스터의 앞에서 크레센트문의 선수 들은 금세 무릎을 꿇을 것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혼자 싸우는 게 편했다.
몸도 마음도.
- 짐승형 보스 몬스터의 이름은 엘레 멘탈 히드라입니다. 아홉 개의 머리를 가졌으며 아홉 개의 속성을 다룹니다. 대형 보스 몬스터답게 체력과 방어력이 무척 뛰어납니다.
짐승형 보스 몬스터는 히드라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 히드라가 맞았다.
“속성으로 이득 볼 수 있는 팀이 없게 만든 건가?”
“나름대로 형평성을 맞춘 거 같기 는 한데….”
“밸런스부터 맞췄어야지, 멍청이 들.”
크레센트문의 선수들이 불만을 내 뱉었다.
보스 몬스터가 까다로워도 너무 까 다로웠다.
아홉 개의 속성을 가졌다는 것은 속성으로 인한 밸런스를 조절했다는 픗이었다.
누구 하나 제대로 유리하다고 말할 수가 없게.
하지만 그것은 곧 그만큼 공략이 어렵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근데 현우 형은 일반적인 속성이 아니니까 괜찮겠네.”
“그래, 형이 잡으면 돼.”
“우리는 견제나 하면 된다고. 후방 지원.”
“그렇지, 우리 역할은 그거지. 서포 터.”
이훈과 메이슨이 마치 만담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을 주고받았다.
그걸 본 현우는 어이가 없어 헛웃 음을 터트렸다.
‘말을 말아야지.’
현우는 고개를 수차례 흔들고는 다 시 종이에 눈을 옮겼다.
아직 마지막 보스 몬스터에 대한 설명이 남아 있었다.
- 마지막 특수형 보스 몬스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나올지는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보스 몬스터가 무작위로 소환이 됩니다. 그것은 인간형 일 수도 있고 대형 보스 몬스터일 수도
있습니다.
“뭐야 이게?”
“아레나 위크에서 이래도 돼?”
현우가 종전에 지었던 헛웃음이 이 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럴 만도 했다.
마지막 특수형 보스 몬스터는 말 그대로 랜덤이었다.
뭐가 나올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 다.
‘근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않 지.’ 다만 현우는 다른 선수들처럼 웃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등골이 차갑게 식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