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7화
“음…. 크레센트문에 뛸 선수를 말 입니까?”
강우종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현우는 굉장히 쉬운 것처럼 말했지 만, 이것은 굉장히 까다로운 것이었 다.
크레센트문의 새로운 선수.
그 자격은 너무나 높은 것들을 요 구했다.
실력과 인성.
둘 모두를 가진 자만이 가질 수 있었다.
“글쎄요…. 그런 선수가 남아 있을 리가….”
정병진이 중얼거렸다.
솔직히 이미 선수로 쓸 만한 이들 은 모두 현역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만큼 프로게이머가 되는 랭커들 은 숫자가 적었다.
“JT 텔레콤 시절에 봐둔 후보들이 한 명도 없습니까?”
현우가 안타깝다는 얼굴로 다시금 물어왔다.
이 두 사람에게서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선수를 충원해야 했다.
그래야 다른 지인들에게 몇 명을 더 추천받고 오디션을 통해 서너 명 만 뽑는 게 현우가 생각했던 계획이 었다.
‘여기서 없으면 안 되는데?’
현우의 그런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 지 강우종과 정병진은 서로를 보며 얘기를 나눴다.
“현준이 녀석은 어때?”
“걔 한백이한테 밀리고 나서 바로 대리 쪽으로 빠졌을걸? 돈이 급하다 고 했잖아.”
“그럼 종훈이는?”
“걔는 이미 스트리밍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하겠어? 스트리밍 포기하 기에는 버는 돈이 제법 될 텐데?”
두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린 이들 은 다름이 아니라 JT 텔레콤에서 선수를 뽑을 때 지원했던 이들이었 다.
JT 텔레콤 역시 굉장히 깐깐한 기 준을 가지고 선수를 선발했기에 크 레센트문이 원하는 기준에도 부합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너무 오래 전의 얘기 였다.
시간이 흘렀고 그에 따라 상황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성실했던 녀석은 눈앞에 닥친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해 어둠의 길로 빠졌 고 누군가는 선수가 아닌 스트리머 라는 또 다른 길에 들어섰다.
“진짜 없어?”
강우종 역시 당황한 얼굴로 물었 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얼굴들 이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전부 결격 사유를 하나씩은 갖고 있었다.
“주변에도 물어봐야지. 그리고 예 전에 써 놓은 스카우팅 리포트에 적 힌 애들 다시 찾아보고.”
정병진은 강우종과는 다르게 침착 하게 그가 해야 할 것들을 떠올렸 다.
“아, 그러면 은퇴하거나 다른 팀들 에서 방출된 애들도 후보에 넣자 고.”
그런 정병진의 말을 듣고 강우종 역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크레센트문의 선수로 뽑을 만한 이 들을 찾을 수 있을.
“실력은 조금 부족해도 괜찮으니 인성 위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 다. 절대 뒷말이 나오지 않을 만한 선수들이 었으면 좋겠습니 다.”
현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당부했다.
그런 현우의 말에 강우종과 정병진 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 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합니다. 두 번은 하지 않을 겁니다.”
강우종이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JT 텔레콤의 선수들은 대부분이 순수했다.
딱히 모난 구석이 없었다.
그냥 게임을 잘하고 사람들의 관심 을 받고 싶은 20대 청년들이었다.
한 명만 빼면.
“저도 믿습니다, 두 분의 안목을.”
현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 였다.
현우는 저들의 안목을 믿고 있었 다.
그리고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럼 내가 전부 다 찾아야 하잖 아.’
그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저들은 뉴 문 때도 큰 역 할을 맡을 것이었다.
“앞으로 정말 잘 부탁드립니다.”
아레나에 접속한 현우는 친구창을 열어 접속 중인 플레이어들의 이름 을 살폈다.
현우는 유심히 친구창을 살피고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좋다.’
믿을 만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현우는 개중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인 김석중에게 귓속말을 보냈 다.
- 김석중 님에게 : 형님, 뭐하고 계십 니까?
김석중의 반응은 빨랐다.
누가 보면 현우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 김석중 님으로부터 : 어어, 사냥 중이었제. 무슨 일 있나?
- 김석중 님에게 :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고요. 그냥 부탁드릴 게 있어서 연 락했습니다.
- 김석중 님으로부터 : 부탁? 네가 내 한테 부탁을 한다고? 뭔데? 싸게 말혀 보E
김석중은 부탁이라는 현우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현우에게 부탁을 받을 수 있는 사 람이 몇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 다.
그만큼 현우가 자신을 믿고 있다는 것이기도 했고.
- 김석중 님에게 : 혹시 주변에 프로 게이머를 할 만한 사람 없습니까? 아주 깨끗한 1급수 같은 사람이요.
현우는 김석중에게 그가 원하는 조 건을 말했다.
완전무결은 아니어도 그에 가까운 조건.
현우는 그것을 원했다.
- 김석중 님으로부터 : 음…. 글쎄…. 그런 아가 남아 있는지는 모르겄는디…. 아마 없을 것이다.
김석중은 현우의 물음에 부정적인 답을 내놓았다.
현우가 말하는 조건은 너무 까다로 웠다.
청정수 같은 사람이라니.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김석중이 아는 사람 중에서 프로게 이머로 데뷔할 정도로 실력을 갖춘 것과 동시에 인성까지 겸비한 사람 은 현우가 유일하다시피 했다.
- 김석중 님에게 : 에이, 장난치지 마 세요. 형님.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는 제 말이 됩니까?
현우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 었다.
김석중은 현우가 아는 사람 중에서 는 가장 발이 넓은 남자였다.
- 김석중 님으로부터 :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생각은 안 드냐? 누가 프로 게이머가 되고 싶어 하누? 스트리머가 되고 싶어 하제.
아레나의 인기가 높아지고 A-월드 가 점점 더 활성화될수록 스트리머 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점점 높아 졌다.
그러나 프로게이머에 관한 관심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의 관심은 늘 었다.
실력이 좋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 는 것은 좋아했다.
그러나 프로게이머를 목표로 삼는 이들은 점점 줄어갔다.
이유는 하나였다.
프로게이머로 데뷔가 불가능하다는 것.
흔히들 말하는 고인 물들의 세계가 바로 프로씬이었다.
레벨, 아이템, 실력.
심지어 거기에 잡음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인성은 필수였다.
그에 반해 스트리머가 되는 것은 훨씬 쉬웠다.
독특한 콘텐츠만 있다면, 레벨이 낮아도 아이템이 좋지 못해도 실력
이 없어도.
스트리머가 될 수 있었다.
- 김석중 님으로부터 : 어지간혀서는 프로를 할 생각이 없을 거시다. 스트리 밍이 돈이 되는디 굳이 그것을 하겄냐.
현우는 계속된 김석중의 말에 한숨 을 내쉬었다.
너무 단호했다.
철벽도 이런 철벽이 없었다.
‘팀을 꾸리는 게 이렇게 힘든가.’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인 찬스는 무조건 잡아야 했다.
- 김석중 님에게 : 그래도 한 번만 찾 아봐 주시면 안 됩니까?
- 김석중 님으로부터 : 글씨…. 일단 한국인이어야 할 텐디…. 일단 찾아는 볼 테니께 기다려 보}.
현우는 그나마 긍정적인 김석중의 대답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 다.
‘맞아, 국적 문제가 있었지….’
그제야 깨달았다.
선수를 추천받는다고 해도 한국인 이 아니면 뽑을 수가 없었다.
이전에야 이훈을 제외하면 영어를 전부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었고 또 현우라는 거목이 있어 의사소통 이 완벽하지 않아도 압도적인 성적 을 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크레센트문에는 현우가 없었다.
그 말은 곧 크레센트문의 전력이 다른 팀들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는 소리였다.
비슷한 수준에서 의사소통이 삐걱 대는 것은 굉장한 약점이었다.
- 김석중 님에게 : 감사합니다, 형님. 한국에 오시면 연락해주세요. 꼭 나가겠
습니다.
현우는 예상치 못한 화두를 던져준 김석중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비록 그가 볼 수 없을지라도.
코뿔소 형상의 마수는 육중한 몸으 로 경쾌하게 벌판을 질주했다.
“곧 알포레에 도착할 거예요.”
현우는 발레르의 지도를 보며 레이 나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할 거예요? 또 저번처럼?”
레이나의 대답에 현우가 고개를 저 었다.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었 다.
그건 무척 위험한 짓이었다.
“아니, 그렇게는 못 하죠. 저번에 우리가 깽판을 쳤잖아요?”
현우의 말에 레이나가 웃었다.
깽판이라….
‘우리에서 나는 빼야지….’
깽판은 현우와 탱이가 쳤지 레이나 는 정말 숟가락만 살짝 얹은 것에 불과했다.
“아마 마족들 사이에도 소문이 퍼 졌을 거예요. 어쩌면 귀족들이 이미 모여 있을 수도 있고요.”
현우는 아마 그럴 것이라 예상했 다.
인간이 에토노를 벗어나 텐드몰에 나타난 것도 마족들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아예 도시 하나를 박살을 냈다.
인간에게 텐드몰의 지배자가 죽었 으며 주인임을 상징하는 반지를 빼 앗겼다.
말도 안 되는 피해였다.
‘반지 때문이라도 아마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거야.’
현우를 죽이면 반지를 얻을 수 있 다.
그것은 곧 개인의 성공이며 세력의 성장이었다.
마왕과 마족들이 기를 쓰고 현우를 잡기 위해 노력할 것은 불 보듯 뻔 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주변에서 슬 금슬금 사냥만 할 예정입니다. 그러 다 저만 슬쩍 도시 안에 갔다가 돌 아올게요. 그게 제일 편할 것 같아
요.”
현우가 내놓은 방법을 들은 레이나 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의 방법은 무척 깔끔했다.
현우 혼자서는 도시에 들락거릴 능 력이 충분히 있었다.
“그렇게 해요, 그럼.”
레이나의 대답을 들은 현우는 코뿔 소 형상의 마수의 등을 탁탁 두들겼 다.
그러자 코뿔소 형상의 마수의 움직 임이 점점 느려졌다.
“사냥은 여기서 해야겠네요. 조금 더 가면 도시에서 너무 가까워요.” 현우는 코뿔소 마수가 멈추자 그대 로 바닥으로 뛰어 내렸다.
현우가 뛰어내리자 탱이와 레이나 역시 함께 뛰었다.
그 순간이었다.
저 멀리에서 자욱하게 흙먼지가 피 어나기 시작했다.
흙먼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선 명해졌다.
현우와 거리가 가까워지는 중이었 다.
‘셋?’
크게 느껴지는 마력이 세 덩이였 다.
현우는 고개를 돌려 레이나와 탱이 에게 적의 출현을 알렸다.
“흙먼지 쪽에서 몬스터 출현. 최소 셋으로 예상됩니다. 탱이는 레이나 한테 버프 주고.”
현우의 지시에 따라 탱이가 착실하 게 움직였다.
레이나에게 버프를 주고 언제라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여의주를 소 환해 앞발로 쥐었다.
레이나는 새하얀 세검을 뽑아 전투 를 준비했다.
탱이의 버프는 그런 그녀의 몸을 한결 가볍게 했다.
이제는 익숙한 감각이었다.
그러는 사이 흙먼지의 주인이 나타 났다.
현우가 타고 있는 코뿔소와 비슷하 게 생긴 마수 셋이 그 주인공이었 다.
‘저놈들이군.’
현우는 마수의 등에 타고 있는 세 명의 마족을 쳐다봤다.
저들이 바로 현우가 느낀 마력의 정체였다.
“저놈인가?”
“여자 하나에 남자 하나. 그리고 곰…. 맞는 거 같은데?”
“방심하지 마라. 무려 백작을 죽인 인간이다.”
“백작은 무슨! 주둥이로 얻어낸 작 위 따위는 인정하지 못해.”
갑작스럽게 나타난 세 마족이 현우 를 보고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의 대화는 현우의 귀에도 들렸 다.
‘나를 안다…. 반지 회수를 위해 찾아온 건가?’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현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현 천도를 뽑아 휘둘렀다.
군더더기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
는 깔끔한 베기였다.
쐐애애애애액!!!
아직도 서로를 향해 말을 하던 마 족들에게로 현우의 강기가 쏘아졌 다.
‘그럼 죽이면 되지.’
현우는 결과를 보지 않고 바로 땅 을 박차고 마족들에게 달려들었다.
어차피 죽여야 할 적이라면 얼른 싸우는 게 이득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