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1 화
현우의 갑작스러운 질문은 많은 이 들을 당황하게 했다.
멀리서 가만히 있던 탱이부터 현우 에게 다가온 레이나.
그리고 그 질문을 받은 당사자인 마령까지.
모두가 제대로 대답을 못 한 채로 멍하니 현우를 응시했다.
개중에 가장 먼저 정신차린 탱이가 마령과 똑같이 생긴 원래의 형태로 돌아와 현우의 앞에 섰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냐, 주인 놈아. 정체가 뭐냐니.”
탱이가 현우에게 한심한 눈빛을 보 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레이나 역시 현우에게 다급하게 달 려와 물었다.
마령은 귀여운 아이였다.
현우에게 저런 말을 들을 녀석이 아니었다.
“얼른 대답 안 해?”
현우는 탱이와 레이나의 말을 무시 하고는 계속해서 마령에게 물었다. 마령은 현우의 계속된 물음에도 두 눈만 끔뻑일 뿐 어떠한 답도 내놓지 않았다.
‘혹시….’
“너 말 못 해‘?”
현우는 한참을 마령을 쳐다보다 굳 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혹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게 말을 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끄덕끄덕.
마령은 고개를 위아래로 격하게 흔 들었다.
현우의 말대로 마령은 말을 하지 못했다.
아직은.
“그럼 글은 쓸 수 있어?” 도리도리.
이번에는 마령이 고개를 좌우로 저 었다.
입술을 삐쭉 내민 채로.
“흠…. 이게 무슨 일이지 도대 체….”
현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도대체 어떻게 마령에게 자아가 생 성 되었는가.
‘요한 블레이크에게 이런 현상이 생길 거라는 얘기는 듣지 못했는 데….’
고민을 해봐도 영 짚이는 게 없었 다.
예전에 확인했던 마령의 스킬 설명 에서도 숙련도에 따라 마령에 변화 가 생긴다는 말은 없었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그 순간 레이나가 현우의 상념을 흩뜨렸다.
“그게…. 조금 당황스러워서요. 원 래 저 녀석이 저러면 안 되는 녀석 인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러면 안 된다니?”
레이나는 현우의 대답에 고개를 갸 웃거렸다.
그녀는 현우의 대답이 가진 정확한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니까... 저 녀석은 제 마력으로 만든 건데…. 제가 의식적으로 제어 하지 않으면 원래 안 움직이거든 요... 근데 본 것처럼…. 자기 혼자 움직이네요?”
현우의 말을 들은 레이나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러고는 탱이와 마령을 한 번씩 번갈아가면서 쳐다봤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다시 한번 스킬 설명을 살펴보는 게 어때요? 그때 잘못 봤을 수도 있잖아요.”
레이나가 다시금 현우의 얼굴을 쳐 다보고 말했다.
“그럴 리가 있나요. 스킬 설명이 바뀌다니.”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레이나의 말대로 스킬 창을 열었다.
‘스킬창.’
[마령 생성]
마력을 이용해 형상을 만든다. 형상이 유지되는 동안 여러 이득이 생긴다.
유형 : 지속형
등급 : 에픽
숙련도 : C-
마령이 유지되는 동안 모든 스탯이 45% 상승합니다. 마령이 유지되는 동안 마력과 관련된 모든 효과가 45% 증가 합니다. 마령이 유지되는 동안 마력 회 복 속도가 325% 증가합니다. 숙련도가 오를수록 마령의 자아가 뚜렷해집니다.
“어? 변했어?”
현우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스킬 효과가 추가됐다.
분명히 없었던 것이 새롭게 나타 났다.
“뭐가 변했어요?”
레이나는 현우의 혼잣말을 듣고 잽 싸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녀도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현우가 저렇게 놀라는 이유에 대 해.
“스킬 설명이 추가됐어요. 숙련도 가 올라갈 때마다 녀석의 자아가 확 실해진다네요.”
“좋은 거네요?”
“그렇죠, 좋은 거죠.”
좋은 일이었다.
마령이 자아를 갖추게 되면 현우가 신경을 따로 쓰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전력 상승이 었다.
‘아까 싸우는 거로 봐서는 탱이처 럼 모자란 상태도 아닌 것 같고….’
마령의 자아.
즉, 인공지능이 어떤 식으로 형성 되는지는 몰라도 당장 마령의 전투 는 꽤 괜찮은 편이었다.
단독 전투뿐만이 아니라 순간적인 상황 판단이나 합공 시에 보이는 행 동 등이 썩 만족스러웠다.
‘가르치는 거야 탱이랑 같이하면 되니까.’
물론 완벽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 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차차 가르치면 될 일이었다.
“알았어, 그럼 됐다. 가서 탱이랑 놀아.”
현우가 탱이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턱짓을 하자 마령이 쪼르르 뛰어가 탱이에게 엉겨 붙었다.
“에잇, 망할 보라돌이. 그만 붙어 라.”
탱이와 마령은 한 치의 오차도 없 이 똑같았다.
같은 크기의 덩치가 달라붙자 탱이 가 짜증을 내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마령은 탱이의 몸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탱이의 얼굴을 만 지는 둥 계속해서 탱이의 옆에 바짝 달라붙었다.
“주인 놈아, 이것 좀 어떻게 해라. 자꾸 귀찮게 한다.”
결국 탱이는 현우에게 지원을 요청 했다.
하지만 그것을 현우가 들어줄 리 만무했다.
마령을 탱이에게 보낸 게 현우였 다.
“응, 네가 알아서 해.”
현우는 한쪽 입꼬리를 잔뜩 말아 올렸다.
그러고는 레이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같이 아이템 확인할래요? 세 개나 나왔는데.”
갑작스러운 현우의 말에 레이나는 잠깐 두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레이나의 말을 들은 현우는 인벤토 리에서 세 후작이 떨어트린 아이템 을 주섬주섬 꺼냈다.
물론 반지는 제외한 상태였다.
그렇게 바닥에는 고급스러운 장검 과 책 한 권 그리고 구슬 하나가 놓였다.
“뭐부터 볼래요?”
현우는 레이나에게 선택권을 넘겼 다.
솔직히 크게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냥저냥 궁금할 뿐이었다.
‘뭐가 좋을까?’
레이나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닥에 놓인 아이템들을 살폈다.
장검, 구슬, 책.
셋 모두 궁금했다.
‘그래도 무기가 제일 중요하니 까….’
한참을 고민한 레이나가 선택한 것 은 장검이었다.
아무래도 그녀의 무기가 검인 만큼 관심이 그쪽에 더 쏠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럼 장검부터 확인해 보세요.”
현우는 레이나의 시선이 한참 동안 장검에 머물러 있는 것을 깨닫고는 장검을 레이나 쪽으로 밀었다.
“그럼 확인해볼게요.”
레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우가 민 장검을 들어 올렸다.
‘아이템 정보J
[투쟁하는 자의 장검]
검 한 자루로 마계 후작까지 올랐던 이의 애검. 수많은 마족과 마수들의 피 를 머금고 있다.
등급 : 유니크
조건 : 힘 2,200 이상, 민첩 1,500 이 상, 체력 1,500 이상
내구도 : 5,500/5,500
공격력 : 4,300
효과 : 방어력 관통 25% 증가합니다. ‘승자의 권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168시간)
승자의 권리 : 보스 몬스터를 처치할
경우, 일부 스탯이 무작위로 상승합니 다. 상승한 스탯은 투쟁하는 자의 장검 을 착용하지 않아도 영구적으로 유지됩 니다.
“와... 대박인데요?”
레이나가 두 눈을 똥그랗게 뜬 얼 굴로 현우와 장검을 번갈아 쳐다봤 다.
현우는 레이나의 그런 모습에 귀엽 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요? 저도 한 번만 볼게요.”
현우는 레이나에게 장검을 받아 들 고는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나쁘지 않은데?’
에픽 아이템인 현천도에는 비할 바 가 못 됐지만, 충분히 좋은 아이템 이었다.
아니, 현재 공개된 장검 중에서는 가히 최고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근데 이거 착용 제한 맞출 수는 있겠어요?”
현우가 아는 레이나는 힘보다는 민 첩과 마력에 집중된 스탯을 지니고 있었다.
“그 정도 스탯은 돼요. 근데 이걸 저한테 넘기게요?”
레이나의 스탯은 현우의 생각처럼 낮지 않았다.
오히려 현우가 준 아이템들 덕분에 상당히 높다고 봐야 했다.
여느 최상위 랭커들에게도 전혀 밀 리지 않을 만큼.
“저한테는 쓸모가 없는 아이템이니 까요. 끽해 봐야 나중에 누굴 주거 나 스트리밍에서 뿌리기나 하겠죠. 그럴 바에는 지금 같이 사냥한 레이 나한테 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현우의 말에 레이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냥 받고 싶었 다.
‘근데 너무 받기만 하잖아….’
하지만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현우는 레이나에게 그동안 많은 아 이템을 줬다.
스킬북도 줬다.
그런데 레이나는 현우에게 줄 게 없었다.
그녀가 줄 수 있는 것들은 현우에 게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게 대부분이 었으니까.
“그럼 나머지 두 개는 무조건 현우 가 가져요. 그리고….”
레이나가 구슬과 책을 현우의 앞으 로 밀었다.
“소원 하나 들어줄게요. 내가 들어 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레이나는 남은 두 개의 아이템과 더불어 소원권 하나를 현우에게 줬 다.
“소원이요?”
현우는 소원이라는 레이나의 말에 웃긴 상상을 떠올렸다.
‘크레센트문으로 이적해달라고 할 까?’
“턱도 없는 소리겠지….”
현우가 고개를 휘휘 젓고는 레이나 와 눈을 마주쳤다.
‘나중에 스트리밍에나 나와달라고 해야겠다. 명색이 소원인데 그 정도 는 되겠지.’
현우는 소원권의 용도를 레이나의 스트리밍 출연으로 정했다.
딱히 다른 용도가 생각나지는 않았 다.
“말만으로도 고마워요.”
현우는 짧은 감사 인사 후에 곧장 구슬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레이나가 손을 뻗어 구슬을 잡은 현우의 손을 눌렀다.
“아이템은 잠깐만 이따가 확인해 요. 괜히 알면 가지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까.”
레이나의 말에 현우는 별다른 대꾸 를 하지 않고 인벤토리에 구슬과 책 을 집어넣었다.
‘사냥이 그렇게 하고 싶은가?’
현우는 레이나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레이나는 그렇게 아이템에 대한 욕 심이 크지 않았다.
조금 전에 장검을 받고 다른 두 아이템을 내민 것만 봐도 알 수 있 었다.
그런 그녀가 저런 핑계를 대는 이 유는 하나뿐이었다.
사냥.
레벨을 더 올리고 싶어서 그런 게 분명했다.
“그럼 우리 사냥하러 가죠.”
그런 현우의 추측을 확인이라도 해 주듯 레이나가 입을 다시금 열었다.
“그래요, 사냥하러 가요.”
사냥이 끝난 후 레이나와 현우는 헤어졌다.
현우는 다른 할 일이 있는 듯 아 레나 속에 남았고 레이나는 로그아 웃을 했다.
푸스스스
바람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큐브에 서 레이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얼굴은 붉게 상기된 상태였 다.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해서는“.’
레이나는 스스로조차 왜 그랬는지 모를 행동을 한 것을 자책했다.
소원이라니.
거기다 현우의 혼잣말이 결정적으 로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때 고개를 저으면서….’
“턱도 없는 소리겠지….”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뻔했다.
혈기왕성한 20대의 남자가 아름다 운 미녀를 보고 생각할 수 있는 부 탁
‘사귀어 달라는 것….’
“어쩌면 좋아....”
그녀는 그런 상상을 이어 나갈수록 더욱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 다.
말 그대로 낯이 뜨거워지는 상상이 었다.
‘혹시 그 말을 그대로 했다면….’
레이나는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거기서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갔다.
“제발 그런 부탁을 해줬으면 좋았 을 텐데….”
레이나의 속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미쳤어....”
레이나는 아무도 없는 집을 수차례 둘러보고는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기 위해 세안대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