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의 귀환-702화 (703/939)

제700화

현우와 영찬의 모험은 시작부터 난 관에 부딪혔다.

대형마트가 영찬의 오피스텔에서 가 까운 곳에 있는 게 아니기에 당연히 자동차를 타고 움직여야 했다.

“차 키가 없어?”

“당연히 없지.”

영찬과 현우 둘 다 자동차 키를 가 져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지하 주차장에 내 려와서야 깨달았다.

“왜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없다니? 핸드폰하고 지갑 은 챙겼는데?”

현우가 패딩의 주머니에서 지갑과 핸 드폰을 꺼내 영찬이 잘 볼 수 있게 흔들어 댔다.

“그건 내가 패딩에 넣어놓은 거잖아. 넌 아무것도 안 챙겼지.”

“그럼 챙길 시간을 주던가. 어차피 차 키 안 챙긴 건 자기도 똑같으면 서. 나한테만 뭐라고 하네.”

영찬도 현우도 모두 차 키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에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영찬은 현우의 패딩을 챙기고 대형 마트에 가서 사야 할 것들을 정리하 느라 정작 차 키를 챙기는 것을 잊었 다.

현우는 큐브 밖으로 나오자마자 영 찬에게 납치되듯 끌려왔다.

당연히 자동차 키를 챙길 여유가 없 었다.

“가위바위보 해.”

“그냥 네가 갔다 오면 안 돼?”

현우와 영찬은 오피스텔로 돌아가 차 키를 가져올 것을 서로에게 요구했다.

“그럼 택시 타고 가든가.”

영찬은 그런 현우에게 자동차를 포 기하고 택시를 탈 것을 권유했다.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그러자 현우는 빠르게 포기하고 주

먹을 앞으로 내밀며 외쳤다.

영찬이 내민 것은 손바닥을 활짝 편 보자기 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바위처럼 단단한 현우의 주먹이 놓여 있었다.

“아무 키나 들고 와라.”

영찬은 만면에 차오르는 미소를 한 껏 자랑하며 현우의 어깨를 두들겼다.

승자의 여유였다.

“어? 현우?”

그 순간이었다.

약간은 어설픈 한국말이 들렸다.

현우와 영찬의 고개가 동시에 그쪽 을 향해 돌아갔다.

“레이나?”

목소리의 주인은 현우도 영찬도 아 는 얼굴이었다.

바로 앞집의 주인.

레이나였다.

“어디 가나 봐요?”

레이나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네, 레이나도 어디 가나 봐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레이나에 게 되물었다.

레이나는 가벼운 평상복 차림에 손 에는 자동차 키를 들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사실 이 오피스텔 에 살면서 지하 주차장에 오는 경우 는단 한 가지였다.

주차장에 주차한 차나 오토바이를 탈 때.

그때가 아니면 올 일이 없었다.

“베이커리에 예약해둔 게 있어서…. 그걸 찾으러 가려고요.”

“아, 그래요? 혹시 베이커리가 어디 에 있는지 물어도 돼요?” 현우가 계속해서 물었다.

옆에 서 있는 영찬은 현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듯 보 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었다.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논현동에 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이쯤 되자 레이나도 현우가 무슨 의 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혹시 논현동까지만 태워줄 수 있 나요?”

현우가 목적을 드러냈다.

빌붙기 위함이었다.

‘시간은 금이다, 금.’ 지금 레이나에게는 차 키가 있었다.

그리고 현우와 영찬에게는 차 키가 없었다.

현우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영찬의 오피스텔로 돌아갔다가 키를 챙기고 다시 지하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시간 이면, 레이나의 차를 얻어 타고 근처 대형마트에 도착하는 시간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얼른 타요. 데려다줄게요.”

레이나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 였다.

그것을 본 현우와 영찬이 서로를 향 해 손을 휘둘렀다.

짝!

두 사람의 손바닥이 부딪치며 경쾌 한 소리가 나왔다.

“됐어.”

“택시는 올 때만 타는 거로.”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연신 낄낄댔 다.

스물네 살이 아니라 마치 네 살처럼 보일 정도였다.

“안 타요?”

빠앙!!!

어느새 주차된 자동차를 끌고 온 레 이나가 클락션을 울렸다.

영찬과 현우는 그때까지도 아옹다 옹하는 중이었다.

“얼른 타자.”

“이거 못 타면 택시야.”

현우와 영찬은 레이나의 차에 빠르 게 몸을 실었다.

택시보다는 레이나의 차가 훨씬 나 은 선택지였으니까.

레이나의 차는 4인승이었다.

자연스럽게 현우가 조수석에 탔고 영찬이 현우의 뒷자리에 앉았다.

“고마워요, 레이나.”

현우는 안전띠를 매며 말했다.

“고맙기는요. 이웃끼리 돕는 게 한 국의 문화 아닌가요?”

레이나는 운전 중이기에 고개를 돌 리지는 못했지만, 대화는 할 수 있었 다.

“근데 우리 뭘 사야 하냐, 영찬아.”

현우는 레이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룸미러를 통해 영찬과 눈을 마주쳤다.

“집에 있는 게 쌀밖에 없거든? 급한 것부터 사야지.”

영찬은 그가 사전에 생각해둔 목록 들을 되새겼다.

모든 게 필요했다.

말 그대로 생필품이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급한 것은 먹을 것이었다.

오피스텔에 먹을 수 있는 거라고는 쌀이 전부였다.

“그렇게 뭐가 없어?”

현우는 영찬의 말에 놀랍다는 표정 을 지었다.

근래에는 거의 매일 외출을 하다 보 니 집에서 밥을 먹는 경우가 드물었 다.

아침으로 간단하게 빵과 계란 혹은 프로틴 쉐이크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너 이 새…. 자랑스러운 강현우 씨 께서 장을 한 달씩이나 보지 않고 미 루셨으니 집안에 살림이 남아나 있겠 습니까? 오늘은 먹을 것만 대중 사고 나머지는 다 배달시키자. 어차피 휴 지 하루 없다고 죽는 것도 아니니까.” 영찬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다고는 하나 그 나잇대의 청년들 대부분이 그렇듯, 영 찬 역시도 살림을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고 불편함을 느낄 때가 돼서야 몸을 움직였다.

그런 영찬에게 하루 정도를 더 참는 것쯤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원래 이렇게 게으른가?’ 레이나는 영찬과 현우의 대화를 들 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생각보다 막 사는 것 같았기 때문이 었다.

“우리가 특별하게 이상한 게 아니에 요, 레이나. 원래 혼자 사는 게 다 그 렇죠.”

레이나의 표정을 읽은 현우가 변명 을 늘어놨다.

현우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언제나 그렇듯 당사자의 얘기는 신빙 성이 없는 법이었다.

“아…. 알았어요.”

“그 표정은 전혀 알아들은 표정이 아닌데요? 지금 속으로는 한심하다고 생각했죠. 맞죠? 우리만 그런 거 아 니라니까요?”

현우는 마치 영찬이나 다른 친구들 에게 하듯 레이나에게 말을 쏟아냈다.

이는 두 사람이 그만큼 친해졌다는 증거였다.

‘둘이 많이 친해졌네.’

하지만 그것은 대화 당사자인 레이 나와 현우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변화 였다.

대화가 이렇게까지 진전된 것은 우 연처럼 이어진 만남의 결과였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는 너무나 점진 적이어서 당사자의 체감이 힘든 변화 이기도 했다.

“어...어…!”

텔레비전 속 토크쇼를 보듯 두 사람 을 지켜보던 영찬이 돌연 신음을 흘렸 다.

“왜? 무슨 일 있어?”

영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현우가 고개를 들어 룸미러로 영찬을 쳐다봤 다.

“지나쳤어....”

“뭐?”

“지나쳤다고. 네가 헛소리를 하느라 지나쳤어.”

“진작 말했어야지. 논현동이라고만 하니까 지나친 거 아니야.”

“너는 여기 처음 가보냐? 자기가 헛 소리하느라 지나친 걸….”

영찬과 현우는 레이나의 차 안이라 는 것도 잊었는지 또 한 번 아웅다옹 싸웠다.

이제는 레이나도 포기한 것인지 아 무런 말도 하지 않고 운전만 하고 있 었다.

레이나의 차가 부드럽게 멈춰 섰다.

“예약해놓은 것 좀 받아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요.” 레이나가 차에서 내리고 총총걸음으 로 사라졌다.

“갈 때 내려줄 건가 봐.”

“그렇겠지? 그니까 창밖 좀 잘 좀 보지 그랬어, 영찬아.”

“또 이러네. 네 잘못이에요. 이 새끼 야.”

두 사람은 레이나가 사라지자 또 싸 우기 시작했다.

영찬과 현우에게 평화란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강제로 평화 가 깃드는 시기가 있었다.

커다란 쇼핑백을 든 레이나가 건물 밖으로 나오자 영찬과 현우는 언제 말싸움을 했냐는 듯 조용히 입을 다 물었다.

“이것 좀 옆자리에 놔 주시겠어요?” 뒷좌석을 연 레이나가 커다란 쇼핑 백을 영찬에게 내밀었다.

“네.”

영찬은 조심스럽게 쇼핑백을 받아 옆 좌석에 내려놓았다.

“ 현우.”

“네‘?”

현우는 갑작스러운 레이나의 물음에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가는 곳의 위치를 아예 애플리케이 션에 찍어줄래요? 저도 살 게 있어 서요.”

“알았어요. 잠깐만요.”

현우는 빠르게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그들이 가려고 했던 대형마트의 위치를 찍었다.

- 경로 안내를 시작합니다.

현우의 스마트폰에서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우는 레이나가 보기 편하게 스마 트폰을 대시보드의 위쪽에 올려뒀다.

레이나의 자동차는 꽉 막힌 도로를 뚫고 애플리케이션이 안내한 목적지 에 도착했다.

“고마워요, 레이나. 나중에 밥이라 도 살게요.”

현우가 안전띠를 풀고 차량의 문을 열며 말했다.

“근데 왜 같이 내리…?”

그러던 현우의 표정이 바뀌었다.

레이나가 자동차의 시동을 끄고 내 릴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도 살 게 있어서요. 한 번쯤 가 려고 했어요.”

“그래요? 그럼 같이 가요.”

현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레이나가 마트에 가는 것은 그녀의 자유였다.

현우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거기다 레이나가 함께 쇼핑을 하면 오피스텔로 돌아갈 때도 레이나의 차 를 탈 수가 있었다.

오히려 현우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차를 얻어 타니까…. 쇼핑을 좀 도 와줘야겠다.’

뭐라도 레이나에게 해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레이나는 뭘 살 거예요?”

현우는 레이나에게 친절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을 걸었다.

“저는 휴지랑…. 고기 좀 사려고요. 커피도 좀 사고.”

“고기요? 고기는 제가 좀 잘 아는 데. 제가 도와줄게요.”

현우는 자연스럽게 카트를 끌고 레 이나와 함께 사라졌다.

“저…. 아오.”

현우가 무슨 의도로 저러는 것인지 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태워준 보답을 하는 건 좋은데.’

“이러면 내가 채워 넣는 거잖아….” 사라지는 현우와 레이나의 뒷모습 을 바라보는 영찬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선남선녀네. 잘 어울려.”

그 순간 함께 물건을 보는 레이나 와 현우를 보며 누군가가 칭찬의 말 을 읊조렸다.

“선남선녀는 무슨 선녀와 나무꾼이 지.”

그 뒤를 쫓는 영찬이 괜히 투덜거 렸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알포레로 이동 하는 동안 현우 역시 상전 두 명과 함께 알포레로 움직이고 있었다.

“강현우 후작.”

황제가 가볍게 걸음을 옮기며 현우 를 불렀다.

“예, 폐하.”

현우는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황제가 말을 하는 것에 큰 불안감을 느꼈다.

이번에는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 리를 지껄일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제발 이상한 소리 좀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현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황제는 자기가 하고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마계의 마왕이 일곱이라고 했 나?”

“예, 폐하. 지난번에 만난 발레르까 지 해서 총 일곱입니다.”

“그중에 한 명은 본인일 테지.”

“그렇사옵니다. 폐하.”

“그럼 내가 상대할 수 있는 마왕은 총 다섯인가?”

황제의 계산은 간단했다.

일곱 중에 황제의 손에 죽은 게 하 나였고 지난번 눈앞에서 죽음을 목격 한 게 하나였다.

그러니 다섯이 남은 게 맞다고 생 각했다.

“아닙니다, 폐하.”

현우가 고개를 저었다.

하나를 더 빼야 했다.

“다섯 중 하나가 블레이크 공작입니 다, 폐하. 그러니 많아야 넷입니다. 아 마 셋일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셋이라....”

황제가 신음을 흘렸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아마 지난번 그놈■이 포함되지 않은 숫자겠지?”

“그렇사옵니다, 폐하.”

당연히 셋에는 발레르가 포함되지 않았다.

음모의 주체가 바로 그였으니까.

“혹시 놈까지 처리할 방법은 없나?” 황제의 말을 들은 현우가 두 눈을 부릅떴다.

지금 이 순간 황제의 욕심이 하늘을 꿰뚫고 있었다.

‘해도 해도 너무하네.’

“그것은 너무….”

현우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 나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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