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7화
현우는 우연하게도 또 레이나를 만 난 것에 약간은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크게 놀라운 일 은 아니었다.
현우가 방문한 가게가 처음에는 아 는 사람만 오는 정말 숨겨진 맛집과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근방의 사 람들이 자주 찾는 가게가 됐기 때문 이었다.
‘구단 관계자가 저 사람인가?’ 현우가 레이나의 옆에 서 있는 여자 를 힐끗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서 만난 거예요?”
레이나가 고개를 저었다.
“식사는 따로 했어요. 얘가 커피보 다는 술을 더 좋아해서 여기에 온 건 데….”
레이나도 이제 막 가게에 도착했다. 자리를 파하고 돌아가는 게 아니라. 하지만 가게가 워낙 작은 탓에 크 게 늦은 시간이 아님에도 자리를 찾 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가게를 다시 빠져나온 것이었다.
“안에는 자리가 없어요.”
레이나는 현우에게 가게의 상황을 전 했다.
“아니요, 저는 예약을 하고 와서 괜 찮아요.”
현우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레이나의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
“여기 전화번호도 없잖아요? 그리고 예약은 안 받는다고 하던데요?”
현우의 말에 당황한 레이나가 어설 픈 한국말을 그만두고 영어로 따지듯 되물었다.
현우는 갑작스러운 레이나의 태도 변화에도 익숙하다는 듯 영어로 대 답해 나갔다.
이미 영찬에게 설명했을 때도 이런 반응이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예약이 아니라 약속을 한 거죠. 여기 사장님하고 아는 사이거든 요.”
현우가 손에 쥔 스마트폰을 흔들었 다.
“아, 그래요? 그렇군요….”
레이나가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렇다면 이해가 갔다.
왜 몇 개의 자리가 비어 있었는데도 자리가 없다고 한 것인지.
“음…. 뭐 불편하지만 않으시면 같 이 들어가실래요?”
현우가 레이나에게 합석을 제안했다.
‘내가 전화를 안 했으면…. 가게에 들어갈 수 있었겠지.’
물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 었다.
현우가 전화를 한 것은 대략 한 시 간도 더 된 일이었다.
그사이에 레이나보다 먼저 왔다가 자리가 없어서 돌아간 이들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우가 이런 호의를 베푸는 것은 레이나가 모르는 사람이 아니 기 때문이었다.
합석을 했을 때 불편해할 만한 사람 은 레이나가 데려온 구단 직원이라는 여자뿐이었다.
현우는 물론이고 영찬도 레이나와 어색한 사이는 아니었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서너 번 이상 운 동을 같이 했고 또 밥을 같이 먹은 횟수도 그 정도는 됐다.
편히 말할 사이는 아니어도 불편해 할 사이 역시 아니었다.
“저는 괜찮은데…. 괜찮으시겠어요?” 레이나가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이려 다 현우의 옆에 서 있는 영찬을 보며 가까스로 고개를 멈췄다. 그러고는 약간은 어설픈 한국어를 내뱉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영찬은 고개를 선선히 끄덕였다.
괜찮았다.
무조건 괜찮았다.
“이 새끼 눈 돌아갔네.”
현우가 그런 영찬을 보며 장난을 쳤 다.
“눈이 돌아가기는…. 헛소리하지 마. 이 새끼야.”
영찬은 그런 현우를 향해 손을 뻗는 시늉을 했다.
두 사람이 투덕거리는 사이 레이나 와 그녀의 옆에 서 있는 여자가 영어 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너, 한국말은 언제 이렇게 공부를 했어? 왜 이렇게 잘해?”
“잘하기는 무슨. 현우가 같은 테이 블 써도 된다고 했으니까. 이상한 소 리 하지 말고 잠자코 맥주나 마셔.”
레이나는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여 자의 성격을 떠올리고는 혀를 찼다.
“가까이서 보니까…. 알 만하다. 네 가 왜 이러는지. 정말 잘생겼잖아?”
여자가 레이나의 귓가에 작게 속삭 였다.
레이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발갛게 달아올랐다.
“야!”
레이나가 여자를 향해 날카롭게 고 함을 내질렀다.
“왜?”
여자는 레이나의 고성에도 눈썹을 들썩이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레이 나를 바라봤다.
“너 진짜 입 조심해.”
레이나가 눈을 크게 뜨고 여자를 응 시했다.
흡사 현실이 아니라 아레나인 것처 럼 레이나에게서 싸늘한 기세가 흘 겨 나왔다.
여자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눈을 연신 깜빡이는 것을 멈 추지는 않았다.
레이나는 한숨을 옅게 내쉬고는 현 우에게 말을 걸었다.
“이 친구도 괜찮다고 하네요.”
“그래요? 그럼 같이 들어가시죠.”
현우가 먼저 문을 밀고 가게의 안으 로 들어갔다.
가게의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 지만, 가게가 워낙에 좁아서 그런 느 낌이 들었다.
“누나, 오랜만이에요.”
현우는 그중 유일하게 서 있는 한 명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굉장한 미녀였다.
“어, 왔어? 여기 앉아.”
현우의 인사를 받은 여자가 손가락 을 뻗으며 말했다.
“네 명인데 괜찮아요?”
여자가 가리킨 곳은 주방의 바로 앞 에 있는 자리였다.
초밥집이나 철판요리집에서 보이는 구조의 테이블이었다.
마주 보고 앉는 것이 아니라 일렬로 늘어서 앉는 구조였다.
“네 명까지는 괜찮아. 의자도 네 개 잖아?”
여자의 말에 현우를 포함한 네 명 이 자리에 앉았다.
“뭐 먹을래?”
여자가 현우의 앞에 다가와 물었다.
“사장님 추천 메뉴?”
현우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 했다.
“그런 건 없는데?”
“그럼 아무거나?”
“그런 것도 없는데?”
“여기 거는 전부 맛있어서 아무거나 줘도 돼요.”
현우와 여자는 꽤 친한 듯 장난을 서슴없이 주고받았다.
“가만히 있다가는 아무것도 못 하겠 어, 레이나.”
레이나의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그 모습을 보며 레이나에게 이죽댔다.
‘상태창.’
캐릭터명 : 강현우 레벨 : 381
직업 : 예비 키온 기사단장
칭호 : 혼돈룡의 후계자 외 42개.
능력치 : 힘 1460(+6700) 민첩 2045(+6650) 체력 1054(+6650) 마력 2320(+6900) 투기 1575(+6450) 위엄 1034(+6450) 살기 1091(+6450)
잔여 스탯 : 0
보유 속성 : 혼돈
현우는 상태창을 보며 고민에 빠졌 다.
현재 레벨은 381레벨.
라쿤이 퀘스트 클리어의 조건으로 내건 400레벨과는 19레벨 차이였다.
19라는 숫자만 보면 분명히 작았다. 하지만 381레벨과 400레벨이라는 조건이 붙으면 그것은 굉장히 큰 숫 자로 변모했다.
381레벨에서 19레벨을 올리려면 많 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시간과 노 력을 쏟아부을 사냥터도 필요했다.
‘마계로 다시 가야 하나?’
현우가 아는 사냥터가 없었다.
중간계에 현우가 사냥할 만한 사냥 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현우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형 길드 들이 마계에서 날뛰는 동안 일부 대 형 길드들은 중간계에서 자신들의 입 지를 다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한 노력 중에서는 대표적인 것 이 바로 미개척지 개발이었다.
아레나 초창기 시절에는 메인 시나 리오로 나올 만큼 비중이 큰 게 미 개척지 개척이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그저 귀족들의 신뢰와 황실 기여도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런 미개척지 개발은 필연적으로 질 좋은 사냥터를 동반했다.
하나같이 랭커들이나 그보다 조금 떨어지는 수준의 플레이어들이 사냥 하기에 알맞은 몬스터들이 출몰했다. 괜찮은 인스턴스 던전이 함께 나오 는 것은 당연한 얘기였다.
‘진짜 마계는 가기 싫은데.’
마계는 지겨웠다.
현우는 이제 프로게이머가 아니었다.
아레나를 즐기는 플레이어이자 스트 리머 였다.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됐다.
굳이 그런 것을 참아가며 효율을 찾 을 필요는 없었다.
‘좋은 사냥터에 퀘스트 하나 그리고 인스턴스 던전 하나만 세트로 왔으 면....’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바람에 불과했 다.
누가 현우에게 그런 사냥터를 가르 쳐주겠는가.
자신들이 쓰기에도 바쁠 텐데.
‘누구한테 빌붙지….’
일단 사냥터의 소재지만 파악되면 빌붙기는 쉬웠다.
얼굴에 철판을 깐 뒤에 은근슬쩍 사 냥터에 몸을 들이밀면 됐다.
대형 길드들이라도 그것까지는 막지 않을 터였다.
그것은 현우가 혼자 다니기 때문이 었다.
신대륙의 길드원이라고는 하지만, 길 드원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아니었 다.
현우는 늘 홀로 다녔다.
그리고….
실상 현우가 들이밀면 막아낼 재주 가 없었다.
막는다는 것은 곧 힘으로 막는 것이 었다.
개인으로서 현우를 막을 힘을 지닌 길드가 없었다.
설사 현우를 막는다고 하더라도 신 대륙을 막을 수가 없었다.
김석중이 길드의 정예를 이끌고 와 서 깽판을 놓는다면….
답이 없었다.
그런 상황을 만드느니 그냥 현우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게 상책이었다.
현우는 그대로 A-월드를 켜고 실시 간 스트리밍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자, 어느 꿀통이 잘 익었나….’
빨대를 꽂을 만한 꿀통을 탐색해 나 갔다.
꿀벌들이 열심히 일해 가득 채워놓 은 꿀통을.
‘얘는 별로고. 여기도 별로고.’
A-월드를 살필수록 현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소득이 없었다.
“어우, 마계만 몇 개야 이게….”
상위권 스트리머들은 대부분 마계 에 있었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투기장에 있었 다.
아니면 제각각 준비한 콘텐츠를 진 행하거나.
‘중간계 없어? 없냐고!!!’
현우는 속으로 고함을 토했다.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자.’
현우는 배수의 진을 쳤다.
이번에도 찾지 못하면 괜한 시간을 버리지 않고 마계로 갈 각오였다.
‘제발 하나만….’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과는 별개로 마계에 가고 싶지 않은 게 현우의 본 심이었다.
그런 현우의 눈에 무언가가 잡혔다.
‘저거 뭐지?’
창을 등에 메고 있는 남자였다.
그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A-월드를 자주 보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얼굴이었다.
‘테이카?’
현우는 뭐에 홀린 것처럼 테이카의 스트리밍을 클릭했다.
- 잠깐만 여기서 쉴게요. 파티원들 이 아직 안 왔거든요. 다들 시간 약속 을 잘 지키는 친구들이 아니라서요.
테이카는 익숙한 듯 혼잣말을 했다.
스트리밍을 하지 않던 예전과는 상 당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파티가 있어?’
현우는 테이카의 말에서 뭔가 이상 한 점을 발견했다.
테이카도 현우처럼 홀로 다니기로 유명한 플레이어였다.
그런 테이카가 파티를 꾸렸다는 게 놀라웠다.
잠시 후, 테이카의 주변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가 말한 파티원들이었다.
그런데 그 파티원들조차도 현우가 모두 아는 얼굴들이었다.
‘PSG?’
그랬다.
테이카가 말한 파티원들은 PSG의 선수들이었다.
정확히는 PSG의 대들보이자 주장인 레오의 파티였다.
레오와 테이카가 친구 사이라는 것 을 알지 못하는 현우로서는 믿지 못 할 광경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 이제 여기 있는 약속이라고는 지 킬 줄 모르는 머저리들과 사냥을 떠 날 겁니다. 아, 여기가 어디냐고요? 제 스트리밍에 처음 오셨나 봐요. 다 시 한번 설명합니다. 이곳은 유스마 제국의 최남단, 시네리모입니다. 이제 막 개척된 지 일주일이 된 도시입니 다.
“저기다!!!”
현우가 소리쳤다.
현우가 원하던 곳이 바로 저곳이었 다.
현우는 곧장 테이카에게 귓속말을 걸었다.
- 테이카 님에게 : 저 골목대장입 니다. 혹시 저도 시네리모에서 사냥 할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테이카의 반응은 즉각적 이었다.
- 응? 잠시만요, 여러분. 잠시만요. 지금 이상한 분에게 귓속말이 왔거든 요. 잠깐만요.
스트리밍을 진행하던 테이카가 당황 한 표정으로 연신 두 눈을 끔뻑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