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7화
“잘 쉬셨습니까?”
현우는 다 같이 한꺼번에 나타난 베놈 길드원들을 쳐다보며 손을 흔 들었다.
“네, 잘 쉬었습니다. 골목대장님은 잘 쉬셨습니까?”
캐런이 다른 길드원들을 대신해 현 우의 말을 받았다.
“컨디션 잘 조절했습니다. 이제 에 드워드를 만나러 가도 괜찮을 것 같 습니다.”
현우는 딱히 신경 쓸 일도 없었다.
숙제와 같았던 스트리밍도 해결했 고 충분한 휴식을 통해 정신도 멀쩡 했다.
스트레스에 견딜 준비가 끝이 난 상태였다.
“에드워드를요?”
캐런이 현우의 대답에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들은 이제 겨우 설산을 넘어 빙 하지대에 들어섰다.
에드워드가 있는 곳은 빙하지대에 서도 굉장히 깊숙한 곳에 있는 빙산 이었다.
단번에 가기에는 무리가 있는 거리 였다.
“네, 에드워드요. 얼른 만나러 가야 죠. 질질 끌 필요 있습니까? 그리고 저야 괜찮지만… 여러분들은 레벨 업도 급하지 않습니까? 5차 전직이 가벼운 의미를 지닌 게 아닌데 말이 죠.”
현우가 날카로운 조소를 머금은 채 로 베놈 길드를 도발했다.
“알고 있습니다. 저희도 급하다는 것을.”
캐런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 덕였다.
5차 전직은 현재 현우만이 달성한 위업이 었다.
누구도 그 뒤를 쫓지 못했다.
현우를 제외하고 가장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인 레인이 이제 490레벨이 었다.
당연히 5차 전직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 었다.
시청자들은 물론이고 랭커들조차도 자세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유일하게 현우에게 얘기를 들어 5 차 전직에 대해 아는 건 오직 영찬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5차 전직을 남들보 다 빨리 성공한다는 것은, 5차 전직 에 관심을 갖고 있는 수많은 시청자 들을 선점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시청자들을 흡수한다는 것 은 곧, A-월드의 채널 혹은 실시간 스트리밍의 성장을 의미했다.
단순히 랭킹이 높아지는 것보다 훨 씬 더 복잡한 뒷사정이 존재했다.
“그럼 얼른 가시죠. 급하신 분들을 오래 붙들고 있을 수는 없죠.”
현우는 빠르게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베놈 길드에게 더 이상 시간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빙산에서도 다크 엘프 언데드들이 나올까요?”
현우는 느긋하게 걸으며 캐런에게 말을 걸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까지 설산을 돌파한 게 저희가 처음 이라서요.”
캐런도 그런 것은 알 수가 없었다.
현우와 베놈 길드 이전에 설산을 돌파한 게이머가 아무도 없으니, 돌 아다니는 정보도 전무했다.
“그래요? 아무도 못 갔다구요? 다 들 5차 전직에 눈이 멀었네. 이 사 람들이 메인 시나리오인데 관심을 안 두네.”
현우가 혀를 찼다.
설산의 다크 엘프들이 강하고 까다 롭기는 했다.
현우야 별것 아닌 것처럼 단숨에 때려잡았지만, 당장 베놈 길드만 해 도 한 번에 셋 이상의 다크 엘프 언데드들이 덮쳐오면 힘겨워하는 게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이름 난 대형 길드들이 마음먹고 달려들면 설산을 돌파하는 것은 어 렵지 않을 터였다.
사제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쉬웠다.
“형식적인 공략대였으니까요. 시청 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캐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형 길드들은 이 사건에 딱히 관 심도 없었다.
스트리밍의 콘텐츠로써 북부의 일 을 이용했을 뿐이었다.
“숟가락을 나중에 얹어보겠다는 거 겠죠. 이제는 굳이 시작을 열지 않 아도 어느 정도 참여할 수 있다는 걸 아니까요.”
현우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 었다.
신대륙이라는 대형 길드를 이끄는 김석중에게 직접 들은 얘기였다.
“예전에야 메인 시나리오의 규모가 작았지만, 요새는 말도 안 되게 커 지지 않았습니까? 한두 길드가 독점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수준이죠.”
“맞습니다, 점점 스케일이 커지는 추세입니다. 아마 퀀시 사 내부의 정책인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해 플레이어 충성도를 높이려는 것 같습니다.”
캐런이 현우의 말에 동의했다.
이것은 비단 현우의 생각만이 아니 라 캐런의 주변에서도 많이 나오는 말이었다.
메인 시나리오를 찾는 것에 굳이 시간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
나중에 느긋하게 끼어들어도 문제 가 없다.
“하지만 그건 뭣도 모르는 사람들 이 하는 말입니다. 메인 시나리오를 선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어마어마하거든요. ”
“근데 그건 선점했을 때의 얘기 아 닙니까? 리스크가 너무 큰 것 같습 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메인 시나리 오를 선점한 경험이 있는 곳이 딱 두 곳입니다. 신대륙과 골목대장. 누 가 뛰어들고 싶겠습니까.” 캐런의 말에 현우는 입을 다물어야 만 했다.
할 말이 없었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내가 너무 먹었나?’
메인 시나리오의 처음을 현우가 열 었고 그다음 메인 시나리오는 신대 륙이 열었으며 그 후로는 아레나에 복귀한 현우가 휩쓸었다.
말 그대로 독무대였다.
양보는 전혀 없었다.
“뭐…. 그렇다면 저도 할 말이 없 네요. 양보를 해준다니 알아서 잘 챙겨야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메인 시나리 오를 양보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건 다른 길드들이 현우에게서 빼 앗아야 하는 것이었다.
현우와 베놈 길드는 설산을 넘을 때보다 조금은 더 자연스럽게 대화 를 나누며 빙하지대를 돌파했다.
빙하지대를 직선으로 지나가는 현 우와 베놈 길드의 앞에 언데드 떼가 출몰했다.
그 수가 족히 1백은 넘어 보였다.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거대한 짐승부터 1미터가 조금 넘 는 크기의 해골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 다.
‘전혀 안 세 보이는데?’
현우는 언데드 무리를 보며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언데드들이 딱히 강해 보이지 않았 던 것이다.
그냥저냥 했다.
솔직히 말하면 설산에서 출몰하던 다크 엘프 언데드가 훨씬 강한 것처 럼 느껴졌다.
현우는 베놈 길드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언데드 떼를 향해 홀로 튀어나갔다.
‘같이 잡을 필요도 없지.’
저런 정도는 베놈 길드의 도움 없 이 상대해도 충분했다.
“곰이야, 탱이야.”
현우에게는 펫인 탱이와 마령인 곰 이가 있었다.
그 둘이면 충분했다.
“탱이는 버프 주고. 곰이는 탱이 옆에 있고.”
물론 그 둘도 전투에 직접 참여할 필요는 없었다.
전투를 치르는 것은 현우 혼자면 충분했다.
현우는 잇따른 스펙 업으로 인해 자신감이 가득한 상태였다.
그것은 다크 엘프 언데드를 상대하 면서 극에 달했다.
“알았다, 주인 놈아. 잘 싸우고 와 라.”
탱이는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한 표 정으로 현우에게 버프를 걸었다.
곰이는 그런 탱이의 발을 잡은 채 로 탱이의 옆에 섰다.
“주인 놈은 세다. 너무 세다. 걱정 할 필요 없다.”
“맞다, 주인 놈은 세다. 괴물이다.” 탱이와 곰이는 언데드 무리를 향해 뛰어가는 현우의 뒷모습을 보며 중 얼거렸다.
현우는 누가 뭐래도 일기당천의 플 레이어 였다.
‘초승달 베기부터.’
현우는 빠르게 달려 나가며 현천도 를 뽑아 휘둘렀다.
현우의 선택은 마력을 한가득 눌러 담은 초승달 베기였다.
쐐애애애액!!!
거대한 보랏빛 초승달 하나가 빙하 지대를 꿰뚫었다.
언데드 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거 대한 코끼리 형상의 언데드가 검은 기운으로 물들며 보랏빛 초승달을 향해 돌진했다.
콰아아아앙!!!
새카맣게 변한 코끼리의 코와 현우 의 강기가 충돌했다.
충돌의 결과는 무척 일방적이었다.
현우가 날린 보랏빛 강기가 코끼리 를 반으로 쪼개며 앞으로 나아갔다.
[저주받은 설산 매머드를 처치했습니 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도 보랏빛 강기는 거침없이 움직였다.
언데드들이 몸을 던져 강기를 막아 섰지만, 별 효과가 없어 보였다.
보라색 초승달은 언데드들을 유린 하며 계속해서 나아갔다.
현우는 가득 차오른 마력을 확인하 고는 다시 현천도를 휘둘렀다.
쐐애애애액!!!
현우의 도가 허공을 베어낼 때마다 거대한 강기가 언데드들을 향해 날 아갔다.
초승달 베기조차도 제대로 감당하 지 못한 언데드 무리였다.
그보다 더 강한 현천폭을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현천폭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누구 하나 땅 위에 다리를 붙이고 서 있는 언데드가 없었다.
“슬슬 언데드 종류가 늘어나네요.”
현우는 그의 앞에 허물어진 뼈다귀 들의 무덤을 발로 차며 말했다.
비교적 멀쩡한 몰골을 하고 있던 다크 엘프 언데드들과는 달리 이제 는 전형적인 형태의 언데드들도 함 께 출현했다.
피와 살이 없이 뼈만 남은 채로 움직이는 해골들.
“원래 빙하지대나 설산에서 출현하 던 몬스터들이라 그런지 다크 엘프 에 비해서 까다롭지도 않은 것 같습 니다. 대신 양이 조금 많은 게 문제 이기는 하지만…. 저희야 골목대장 님이 계시니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고요.”
캐런은 기가 차다는 얼굴이었다.
두 눈으로 지켜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저렇게 쉽게 잡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다크 엘프 언데드보다는 약한 게 분명했지만, 그래도 무시할 정도로 레벨이 낮은 몬스터들은 절대로 아 니었다.
그런데 그런 언데드들 1백여 개가 단 두 번의 공격만으로 모조리 쓰러 졌다.
그것은 감탄을 넘어선 경악이었다.
‘버스 기사는 제대로 구했어.’
하지만 놀람도 잠시였다.
현우는 임시지만, 베놈 길드와 같 이 움직이는 몸이었다.
적으로 만나면 모를까 아군이라면 더없이 든든했다.
현우가 강하면 강할수록 메인 시나 리오를 얻어낼 확률이 높아졌다.
‘이 영상을 올리면 채널 구독자가 최소 몇 만 명은 더 늘어나겠지.’
캐런의 눈에 현우는 이제 구원자로 보여 졌다.
그들을 성공의 길로 이끌어줄.
“뭣들 하세요? 자, 얼른 출발하시 죠. 언데드들이 생각보다 세지 않습 니다. 여러분들도 충분히 뚫을 수 있을 겁니다.”
현우가 베놈 길드를 재촉했다.
“네, 네. 가시죠.”
베놈 길드는 이전보다 더욱 순해진
태도로 현우의 말을 따랐다.
쉽게 빙하지대를 돌파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금세 산산이 부서졌다.
빙하지대를 조금씩 지나갈 때마다 나타나는 언데드들의 수준이 기하급 수적으로 상승했다.
첫 언데드 무리는 정말 사냥하기 쉬운 편에 속한 것이었다.
그다음부터는 온갖 스켈레톤들로 이뤄진 군대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고 수십이 넘는 데스나이트가 나 오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가장 강력한 언데드 군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아닌데.’
현우는 저 멀리서부터 빼곡하게 보 이는 언데드 군단에 고개를 절레절 레 혼들었다.
이건 단순히 싸워볼 만하다, 아니 다를 따질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에드워드를 다시 만 나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골목대 장님.”
언데드 군단을 본 캐런이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겨우 뗐다.
“최대한 많이 잡고 죽어야-. 손해 를 안 보겠는데?”
“그러게. 오늘 한번 스킬은 죽도록 써보겠네.”
다른 베놈 길드원들도 하나같이 질 린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언데드 군단의 수가 어마어 마했다.
눈에 닿는 곳마다 전부 언데드로 시야가 가득 채워졌다.
그것은 하늘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 았다.
“본 드래곤….” 현우가 허공에 유유히 떠 있는 다 섯 마리의 본 드래곤을 보고 침음성 을 흘렸다.
저것은 많이 부담스러웠다.
아무리 신계에서 스펙 업을 했다고 해도, 본 드래곤 다섯 마리는 경우 가 다른 문제였다.
잠시 후, 허공에 떠 있던 본 드래 곤 중에서 가장 커다란 본 드래곤의 머리 위에서 회색빛 갑옷을 입고 있 는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제를 모르는 인간들이…. 또 죽 을 자리를 찾아 왔구나. 어찌 이리 어리석은가.”
현우가 찾고 있던 그 남자.
에드워드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