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1 화
제이미 무어는 자신이 운이 유독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일단 아침에 일어났을 때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물을 먹기 위해 부엌으 로 움직이다 발가락을 찧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밥을 먹기 위해 평소 자주 갔던 레스토랑에 갔을 때 그 레스토랑은 개인 사정으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바로 지금.
또 한 번의 불운이 제이미 무어를 찾아왔다.
제이미 무어는 눈앞의 남자를 보며 침을 삼켰다.
‘무슨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나? 사람이 어떻게 저런 기세를 뿜지?’
남자의 표정은 가면을 쓰고 있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면 사이로 보이는 두 눈.
그 눈에는 극한의 독기가 서려 있 었다.
“제이미? 인사…. 하셔야죠?”
가면의 남자를 바라보고 있던 제이 미 무어에게 현우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들. 제 이미 무어입니다.”
제이미 무어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약간은 경직된 듯한 딱딱한 인사를 건넸다.
- 오늘 긴장한 거임?
- 사람이 바뀌면 죽을 때라던데….
- 죽을 때가 된 것 같음.
- 아직 동메달도 못 됐는데…. 안타깝 네.
- 아니면 건강이 안 좋나? 진짜 왜 저 러지.
시청자들은 당연하게도 평소와 다 른 모습을 보이는 제이미 무어에게 시선을 보냈다.
‘진짜 뭐가 문제가 있나?’
제이미 무어의 모습과 채팅창을 번 갈아가면서 보던 현우의 머릿속에도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스트리밍이 끝나고 나서 물어봐야 겠네.’
하지만 지금 물어볼 수는 없었다.
스트리밍이 켜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쪽은 제가 특별히 초빙 한 일일 강사님이십니다. 다들 박수 로 맞아주세요.”
현우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다른 쪽 으로 돌렸다.
현우의 의도대로 시청자들은 단숨 에 제이미 무어에게서 관심을 옮겼 다.
아니, 원래 처음부터 제이미 무어 보다는 그쪽에 눈을 뒀던 시청자들 이 훨씬 많았다.
불과 며칠 전에 있었던 전투에서 화제가 된 인물이 서 있었기 때문이 었다.
현우가 탱이에게 턱짓을 했다.
그러자 탱이는 현우가 종전까지 바 라보고 있던 곳을 향해 고개를 까딱 숙였다.
“일일 강사님께서는 개인 신상의 문제로 말을 하지 않는 점 이해 바 랍니다. 그래도 실력만큼은 확실한 분입니다.”
현우는 탱이가 말을 하지 않는 이 유를 적당히 둘러댔다.
성인 인간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한 탱이의 목소리는 곰 시절과는 달랐 다.
하지만 비슷하게 느껴지는 점도 분 명 존재했다.
현우의 수많은 시청자 중 누군가는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되지.’
사람이 만 명만 모여도 별 이상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 었다.
현우의 시청자는 1,000만을 가볍게 넘기고 2,000만 명에 육박했다.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생겨도 결코 이상하지 않았다.
-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정체를 밝혀 라.
- 골목대장님과의 관계를 알려주셈.
- 저 아이템 분명 골목대장님이 쓰던 장비임.
- 무기부터 방어구까지. 전부 지원해 줄 정도면 핏줄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함.
- 숨겨둔 동생? 근데 아르곤이나 유리 피셜로는 외동아들이라고 했는데….
- 그럼 혹시 부모님…?
시청자들은 현우가 탱이를 소개하 자마자 온갖 의혹들을 제기했다.
의혹들은 현우와의 관계에 몰려 있 었다.
“오늘 모신 이분은 피를 나눈 가족 도 아니고 같은 학교 동생도 아닙니 다. 친척도 아니고요. 그냥 가족만큼 아끼는 동생입니다.”
현우는 차분하게 시청자들이 제기 하는 의혹에 답변을 내놓았다.
- 그럼 전투 스타일은 왜 이렇게 닮 음?
- 설마 예전부터 키워온….
- 키워온?
- 후계자?
- 에이, 설마.
- 근데 그게 아니면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다는 스타일을 어떻게 구사함.
그런데도 의혹은 계속해서 불거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직 현우만이 실전에서 쓸 수 있 는 절묘한 마력 조절.
그것을 일일 강사가 보여 줬으니 까.
이는 일일 강사의 마력 컨트롤이 현우를 제외한 어떤 랭커들보다도 앞서 있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건 제가 잘 가르쳐서 그렇습니 다. 제가 아끼는 동생이라고 했지 요? 정말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 리고 아이템은 잠시 빌려준 겁니다. 원래 본인의 장비는 따로 있구요.”
현우의 답변은 진실이었다.
현우가 탱이를 가르친 것도 맞았고 탱이를 아끼는 것도 맞았다.
아이템을 임시로 빌려준 것도 맞았 다.
그리고 탱이의 장비가 따로 있는 것도 맞았다.
대신 그것들이 보이지 않을 뿐이었 다.
“이러면…. 시청자 여러분들의 궁 금증이 조금은 풀리셨나요?”
- 흠…. 그렇다면야…. 할 말이 없기는 한데….
- 괴물 아는 동생도 괴물이다.
- 근데 왜 저 동생은 크레센트문에 데 려오지 않았을까?
- 멍청아, 스트리밍에도 얼굴을 가리 고 나오는데 프로게이머를 하겠냐. 생각 좀 해라. 으휴
- 근데 그럼 오늘도 제이미 무어는 두 들겨 맞음?
_ 응, 맞음. 크 크 크 크 그 크
시청자들은 이제 가면을 쓴 남자, 탱이에 대한 의혹을 거뒀다.
얻을 만한 정보는 다 얻었다.
어차피 이보다 더한 정보는 현우가 가르쳐주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 었다.
“소개가 끝났으니 이제는 본격적인 골목대장 아카데미를 시작해 보겠습 니다. 두 분은 투기장 중앙으로 이 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우가 손을 뻗었다.
제이미 무어와 탱이는 상반되는 기 세를 풍기며 현우의 손이 가리킨 곳 으로 걸어갔다.
한 명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 았고 다른 한 명은 놀이동산에 입장 하는 소년 같았다.
현우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거리가 벌어지자 현우는 다 시금 입을 열었다.
“저 일일 강사분은 굉장히 많은 속 성을 다룹니다. 그게 바로 오늘 대 련의 키포인트입니다.”
탱이가 다루는 속성은 혼돈을 기반 으로 해 파이어, 아이스, 라이트닝 세 가지 속성을 다뤘다.
즉, 당하는 입장에서는 탱이가 네 가지 속성을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는 뜻이었다.
- 많은 속성을 다뤄?
- 희귀 직업인가?
- 근데 저런 직업이면…. 썩 좋아 보 이지는 않는데….
- 마력 높은 근접 클래스치고 좋은 게 없음.
- 컨트롤 없이는 우주 쓰레기임.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런 현우의 설 명을 좋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대다수 사람들의 가치관에서 마력 스탯이 주가 되는 근접 클래스는 최 악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도 저도 안 되는 쓰레기.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좋은 아이템 과 섬세한 컨트롤이 필요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 니지.’
현우도 시청자들과 의견이 크게 다 르지 않았다.
자신의 직업인 키온의 기사 역시 막강한 스탯과 스킬 그리고 뛰어난 컨트롤이 없다면 쓰레기였다.
마력은 부족하고 다른 스탯은 어중 간하다.
당연히 좋을 리가 없었다.
‘근데 탱이는 스탯이 사기잖아?’
하지만 탱이는 달랐다.
스탯이 모든 것을 해냈다.
마력 스탯은 10,000이 넘었고 다 른 스탯들 역시 4,000을 훌쩍 넘겼 다.
사람들이 정의하는 애매한 스탯의 범주를 넘어섰다.
그런 사실을 현우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아무도의 범위 안에는 제이미 무어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제이미 무어는 최대한 공손하게 인 사했다.
그것은 당연한 행동이었다.
눈앞에 서 있는 탱이의 기세가 너 무나 날카로웠기 때문이었다.
탱이는 현우로부터 말을 하지 말라 는 부탁을 받았기에 당연히 말이 아 니라 행동으로 대답했다.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곧장 무기를 뽑아 든 것이었다.
‘문답 무용인가….’
제이미 무어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 는 쌍검을 뽑았다.
언제나 든든했던 유니크 등급의 쌍 검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차라리 맨손으로 싸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하지만 불평을 해봐야 바뀌는 것은 없었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제이미 무어는 가벼운 스탭을 밟으 며 탱이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 모습을 본 탱이 역시 제이미 무어에게 달려들었다.
둘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 다.
각자의 무기를 뽑아 휘두른다면 닿 을 수도 있는 거리였다.
먼저 무기를 휘두른 건 탱이였다.
제이미 무어를 향해 검은색 도를 망설임 없이 휘둘렀다.
쐐애애애액!!!
장도가 허공을 빠르게 베어냈다.
도의 길이는 아무리 길게 쳐줘도
2미터가 되지 않았다.
탱이의 팔까지 합쳐도 3미터가 되 지 않았다.
하지만 제이미 무어와 탱이 사이의 거리는 대략 5미터.
현실적으로 절대 닿을 수가 없는 거리였다.
그러나 아레나는 현실이 아니었다.
^^슷lll
검은 도에서 보라색 도기가 번개처 럼 일어났다.
제이미 무어는 소스라치게 놀란 표 정을 지은 채로 멈춰 서서 허리를 뒤로 젖혔다.
‘생각하지 않았다면…. 죽었다.’
이는 현우와의 대련이 가져다준 학 습 효과였다.
파블로프의 개 정도는 아니지만, 머릿속에 한 번쯤은 떠올릴 정도는 됐다.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은 것이었다.
제이미 무어는 후속 공격에 대비하 기 위해 재빨리 자세를 수습하고 쌍 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후속 공격은 오지 않았다.
‘뭐지?’
눈앞의 사내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제자리에서 서서 고개만 갸 웃거렸다.
제이미 무어는 그게 더 무서웠다.
‘이 정도면 만족해, 제발. 당신은 골목대장 다음이라고.’
골목대장을 빼고는 종전의 기법을 누구도 실전에서 성공시키지 못했 다.
가면의 사내는 아레나 최초는 아니 지만, 두 번째는 되는 셈이었다.
그런데 그게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나도 모른다, 이제.’
제이미 무어는 어차피 맞을 거라면 본신의 기량은 보여 주자는 생각을 하고는 거침없이 탱이에게 뛰어들었 다.
‘주인 놈처럼은…. 안 되는군.’
탱이는 제이미 무어의 생각처럼 아 쉬워하는 중이었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우의 것과 다르게 자신은 분명 무언가 턱 막힌 느낌이 있었다.
자연스럽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똑같았다.
더 빠르고, 더 자연스러워지기 위 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 순간 탱이의 눈에 쌍검을 든 채 검붉은 검기를 줄기줄기 내뿜는 사내가 보였다.
탱이는 그 순간 사내를 방해물로 인식했다.
쐐애애애액!!!
탱이의 도가 다시 한번 움직였다.
이번에는 약간 보라색이 감돌지만, 대체적으로는 시원한 색의 도기가 솟구쳤다.
쩌저저저정!!!
탱이의 도가 지나간 자리에는 얼음 이 맺혔다.
대련을 지켜보는 모두가 도의 궤적 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까드드드득!!!
탱이의 도기와 제이미 무어의 검기 가 충돌했다.
둘은 치열하게 서로를 밀쳤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잠시였다.
탱이가 앞발을 가볍게 내디디며 도 를 뻗어내자 예의 시원한 색의 도기 가 뿜어져 나왔다.
제이미 무어는 도기와 함께 뒤쪽으 로 밀려났다.
- 어우야…. 발뒤꿈치 다 나갔다.
- 현실에서 저랬으면 끔찍했겠는데….
- 최소 깁스 4주일 듯.
- 그 정도면 다행이지.
- 아레나에서도 저 정도면 아파 이 새 끼들아 그 그 그 그
시청자들은 양발 뒤꿈치로 전신을 지탱한 채 뒤로 계속해서 밀려나는 제이미 무어를 보며 탄식했다.
마치 발뒤꿈치로 밭을 가는 것 같 았다.
투기장에 두 줄기 고랑이 파였다.
“미친놈....”
그 모습을 본 현우가 이마를 부여 잡았다.
적당히 대련을 하라고 보냈더니 스 탯으로 완전히 짓눌러 버렸다.
‘누구한테 배워서 저 모양인지….’
한숨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 라왔다.
“후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