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의 귀환-894화 (895/939)

제894화

신족과의 전투에 참여한 플레이어 들은 오늘따라 유독 집중력이 흐려 진 것을 느꼈다.

온전히 사냥에 집중할 수가 없었 다.

멀찍이 보이는 전투에 시선이 어쩔 수 없이 갔기 때문이었다.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쏠린 곳에는 오랜만에 나타난 르브론이 루케이를 상대로 분투를 펼치고 있었다.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랭커들의 시 선을 빼앗기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르브론의 주변에는 이리저 리 뛰어다니는 작은 곰이 있었다.

곰의 정체는 당연하게도 탱이였다. 탱이는 현우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르브론을 찾아가 버프를 줬고 주변 에서 착실히 싸웠다.

폴리모프를 사용해 인간의 모습으 로 싸운 것은 아니었다.

현우 없이 그 모습을 유지하는 건 대단한 도박이었으니까.

탱이는 현우에게 전해 주겠다는 일 념 하나로 르브론과 루케이 사이의 전투를 나름대로 분석했다.

하지만 사실 크게 분석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눈으로 보고 그것을 현우에게 그대 로 전할 생각이었으니까.

‘홈…. 확실히 아조씨보다는 약한 것 같다.’

르브론은 루케이에게 연신 밀리고 있었다.

탱이의 버프를 받아서 이 정도였다.

‘힘의 차이가 심한 것 같다.’

탱이가 보기에 르브론이 밀리는 가 장 큰 이유는 힘의 부재였다.

서로가 맞부딪칠 때는 기술이 얼마 나 좋던지 상관없이 힘이 세야 했다.

르브론은 거기서 밀렸다.

신체적인 힘에서도 밀렸고 마력의 강함에서도 밀렸다.

그러니 서로 무기를 맞댈 때마다 속절없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빈틈을 만들어야 할 텐데….’

탱이의 판단으로는 르브론이 루케 이를 이기기 위해서는 루케이가 막 지 못할 만한 기술이 필요했다.

그것은 강한 기술이 아니라 말 그 대로 막지 못할 기술이었다.

‘그게 가능할 것 같지는 않지만….’

썩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루케이의 공격은 정말 화려했다.

르브론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해 보 였다.

라쿤은 그것을 우직한 도끼질 한 방 으로 뚫었지만, 르브론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다.

“지고 있네?”

어느새 탱이의 근처에 다가온 현우 가 혀를 찼다.

자신만만하게 나섰던 르브론이 형 편없이 밀리고 있었다.

“힘에서 밀리는 것 같다, 주인 놈아.”

탱이는 그간의 전투 양상을 한마디 로 정리했다.

“그래? 늙은 생강이 맵기는 하단 말 이지....”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케이는 나이를 셀 수 없는 괴물 이었다.

당연히 르브론에 비해서 쌓은 마력 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라간드도 원래는 이 정도는 됐다, 이거지?’

루케이를 보자 절로 라간드가 떠올 랐다.

캘리오락스에게 허무하게 죽었던 바 로 그 라간드.

‘라간드는… 불완전했고. 캘리오락스 는 너무 강했지.’

물론 제 상태라고 해도 캘리오락스 에게 죽었을 게 뻔했다.

캘리오락스는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현우 자신도 있었고 탱이도 있었다. ‘슬슬 밀릴 때가 된 것 같은데….’ 현우의 눈에는 이제 르브론이 한계 에 달한 것처럼 보였다.

조금씩 조금씩 밀리던 것이 모여 패 배라는 이름의 산을 이룬 것이었다.

“탱이야, 가서 라쿤 님 좀 불러와. 나한테 버프 한 번만 주고.”

현우가 탱이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 다.

이 전투를 뒤이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건 오로지 라쿤뿐이었다.

그 외에는 감당할 이가 없었다.

“알았다, 주인 놈아. 내가 금방 데 려오겠다.”

탱이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고는 현우의 품에서 벗어나 땅을 네발로 박차 전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얼른 데려와라. 얼른.’

현우는 사라지는 탱이의 뒷모습을 살피다 다시 시선을 르브론과 루케 이에게로 고정했다.

“쯧…. 귀한 남의 집 자식을 저렇 게 패놓다니….”

라쿤은 눈두덩이 파랗게 멍이 든 채로 전장을 휩쓸고 있는 칸쿤을 보 며 중얼거렸다.

“저건 형님이 만든 것 아닙니까.”

라쿤의 옆에 서 있던 다칸이 어이 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칸쿤은 열 번에 달하는 대련이 끝 났을 때 어떠한 상처도 없었다.

현우는 상처가 남을 정도로 칸쿤을 때리지 않았다.

최후의 순간에는 힘을 빼 그저 자 세를 무너트리고 승패를 가를 수 있 을 정도로만 공격을 가했다.

지금 칸쿤의 몸에 남은 상처는 모 두 라쿤이 만든 것이었다.

복습이라는 이름으로 무지막지한 대련을 했던 것이었다.

“어렸을 때 지금처럼 했으면 얼마 나 좋았을꼬….”

라쿤은 다칸이 뭐라고 하든 신경을 쓰지 않고 제 할 말만 이어 나갔다.

“처음부터 유하게 가르쳤으면 되는 일 아닙니까. 나이에 맞는 교육법이 라는 게 있는 겁니다.”

다칸은 이번에도 라쿤의 말을 가볍 게 반박했다.

“너, 나한테 요새 불만 있냐? 너도 수련 한 번 할래?”

라쿤이 다칸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는 얼굴을 구겼다.

“됐습니다, 그 정성 저 녀석에게나 쏟으시지요. 이 나이에 더 강해져서 뭐 합니까.”

다칸이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났 다.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저 녀석보 다는 네가 강해지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라쿤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다칸 의 멱살을 잡으려던 그 순간 탱이가 라쿤을 향해 몸을 던졌다.

쿵!

라쿤의 복부에서 작은 타격음이 터 졌다.

“덩치에 안 맞게 뭐가 이렇게 무거 워?”

라쿤은 탱이의 목덜미를 잡고 그대 로 들어올렸다.

“아조씨, 아조씨. 주인 놈이 위험하 다.”

탱이는 다급한 얼굴로 라쿤을 불렀 다.

“주인 놈이 위험해? 네 주인이라 면…. 그놈인데. 그놈이 위험하다고?” 라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탱이가 말하는 주인은 현우일 터였다.

제라스마저도 어렵지 않게 상대하 는 현우에게 있어 위협이 될 만한 게 있을 리가 없었다.

‘하나 있기는 하지.’

“그 빌어먹을 노란 머리 참새가 문 제더냐?”

루케이.

유일하게 현우가 어쩔 수 없는 자.

현우뿐만이 아니라 현우의 스승이 라던 인간도 버거울 게 뻔했다.

“그놈이다, 그놈. 우리 주인 놈을 죽 이려고 한다.”

탱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들갑을 떨었다.

“근데…. 그 인간이 그렇게 쉽지 지 지는 않을 텐데….”

버티는 데에 주력한다면 르브론은 절대 루케이에게 쉽게 밀리지 않을 터였다.

라쿤이 생각하는 르브론의 장점은 바로 섬세한 마력 운용이었다.

루케이가 힘으로 몰아붙인다고 한 들 르브론의 마력이 전부 소모되지 않는 이상에는 어떤 피해를 입히기 힘들었다.

“그것까지는 모른다. 주인 놈이 아 조씨를 불러오라고 했다.”

탱이가 고개를 저었다.

자세한 건 몰랐다.

단지 곧 불리해질 것 같으니 라쿤을 불러오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래, 가자.”

라쿤이 탱이를 어깨 위에 올렸다.

그러고는 아주 느긋하게 걸음을 옮 겼다.

그런 라쿤을 누구도 건들지 않았다.

오히려 라쿤이 지나갈 길을 만들어 주기 바빴다.

그렇게 전장에 길이 생겨났다.

♦ ♦♦

탱이가 라쿤을 데리러 간 후, 홀로 남은 현우는 르브론의 전투를 지켜 보면서 한 번씩 눈을 돌렸다.

‘제라스 이 새끼 언제 나오지?’

현우가 눈을 돌리는 이유.

그건 바로 제라스를 찾기 위함이었 다.

물론 죽이기 위해 찾는 건 아니었다. 당장 제라스가 죽으면 루케이가 어 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다.

‘물론 퀘스트는 클리어할 수 있겠 지….’

제라스를 잡아도 퀘스트는 깰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만약 루케이가 중간 계를 포기하고 신계로 돌아간다면….

루케이를 놓친 라쿤이 무슨 반응을 보일지 몰랐다.

어떻게 보면 그게 더 큰 문제였다.

‘요놈, 이제 나왔구나.’

그 순간 제라스가 전장에 모습을 드 러냈다.

현우는 곧장 제라스에게 몸을 날렸 다.

아주 민첩한 몸놀림이었다.

“오늘도 역시나 나왔군.”

제라스의 앞을 가로막은 현우가 미 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놈….”

제라스는 언성을 크게 높이지 못했 다.

며칠간 계속해서 현우에게 당한 탓 에 기를 펴지 못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이긴다.’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그가 모시는 신인 루케이가 전투에서 우세를 점 하고 있었다.

당장의 전황은 그들에게 미소를 짓 고 있었다.

“왜? 오늘은 좀 이기는 거 같으니 까 마음이 놓이나?”

현우는 그런 제라스의 표정을 읽어 냈다.

자주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되었다.

“근데 어쩌지? 지금 라쿤 님도 이 곳으로 오고 있는데….”

현우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웃듯이 말을 덧붙였다.

현우의 말을 들은 제라스의 표정은 눈에 띄게 좋지 않아졌다.

‘오크까지 온다고?’

당장 라쿤 한 명만 하더라도 루케 이가 감당하기 버거웠다.

거기에 르브론까지 더해지면….

결과는 뻔했다.

세 살배기 애도 맞출 수 있을 정 도로 쉬워졌다.

‘필패다.’

단순히 지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루케이가 죽을지도 몰랐다.

‘루케이 님이…. 죽는다고?’

신의 죽음.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 은 일이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됐다.

루케이는 불멸 그 자체여야만 했다.

“걱정은 하지 마. 오늘은 죽지 않 을 테니까.”

현우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럴수록 제라스가 느끼는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잡담은 이쯤하고…. 우리도 싸워야 지?”

현우는 일부러 보여주는 것처럼 느 릿하게 혼천도를 뽑았다.

제라스를 죽일 생각이 없으니 굳이 수호자의 창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

가장 익숙한 무기를 꺼냈다.

느릿하게 도를 뽑았던 것과는 달리 현우의 공격은 매우 빠르게 전개됐 다.

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제라스 의 눈앞에 나타난 현우는 혼천도를 강하게 내리쳤다.

쐐애애애액!!!

혼천도가 벼락처럼 제라스를 덮쳤다.

제라스는 굳은 얼굴로 창을 만들어 현우의 참격을 막아냈다.

콰아아아앙!!!

제라스의 몸이 그대로 땅을 파고들 었다.

발목까지 잠겼다.

하지만 그런 건 제라스의 이동을 막을 수 없었다.

제라스는 땅을 거칠게 부수며 허공 높이 뛰어올랐다.

동시에 그의 등에서 날개가 생겨났 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인공 날개였다.

현우도 뒤이어 땅을 박찼다.

제라스를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 다.

그가 다른 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현우의 도와 제라스의 창이 다시금 맞부딪쳤다.

마력을 잔뜩 퍼부은 현우의 힘을 이 겨내지 못한 제라스의 몸이 뒤로 주 르륵 밀려났다.

제라스는 허공에서 뒷걸음질을 쳤다.

어쩔 수 없었다.

땅바닥에서야 홀리는 것도 가능했 지만, 허공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밀리면 밀리는 대로 날아가야 했다.

현우는 허공을 강하게 밟아 날아가 는 제라스를 쫓았다.

쉬지 않고 몰아쳤다.

현천도가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만큼 제라스는 빠르게 물러났다.

그렇게 공방이 더 이뤄지고 나자 르 브론과 루케이의 모습이 작은 점처 럼 보일 정도로 멀리 온 상태였다.

‘이쯤이면….’

현우가 갑자기 현천도를 거두고 제 자리에 멈춰 섰다.

제라스는 갑작스러운 현우의 행동에 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창으로 현우를 겨눴다.

“루케이는 한 달 후에 죽는다.”

현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제라스에 게 말을 시작했다.

“헛소리하지 마라.”

제라스가 크게 소리쳤다.

“글쎄…. 너도 알고 있을 텐데?”

현우의 이어지는 말에 제라스는 답 을 내놓지 못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 었다.

“그래서 네게 제안을 하나 하지.”

“제안?”

“내게 협조해라. 그렇다면 넌 살려 주지.”

“그걸 어떻게 믿지?”

제라스의 외침에 현우가 피식 웃었 다.

“지금까지 살려준 정도면…. 충분하 지 않나?”

현우가 제라스에게서 몸을 돌렸다.

“잘 생각해 봐. 끊어진 줄을 잡고 같이 떨어질 것인지. 아니면…. 본인 이 그 줄이 될 것인지.”

그 말을 끝으로 현우는 빠르게 자 리를 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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