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 화
현우는 여전히 서대륙의 전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 듯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현우는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전선이 밀리지 않게 신족과 신수들 을 적당히 잡아야 했고 때로는 르브 론을 도와 루케이를 견제했다.
라쿤이 제라스 때문에 전력을 다하 지 못했던 것처럼 루케이가 전력을 다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맡은 것 이었다.
개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 었다.
바로 제라스의 싸움.
정확히는 대련처럼 서로의 목숨은 노리지 않은 채 치열하게 싸우기만 하는 것이었다.
치명타는 절대 입히지 않았다.
‘숙련도가 쭉쭉 오르네.’
제라스를 죽이지 않아도 얻을 수 있 는 건 많았다.
제라스는 명색이 신족의 왕인 만큼 레벨도 엄청 높았고 그만큼 또 강했 다.
당연히 스킬 숙련도가 빠르게 올랐 다.
‘지속형 스킬이 많은 게 이럴 때는 참 좋아.’
현우의 스킬 대부분이 지속형 스킬 들이었다.
싸우기만 해도 숙련도가 올랐다.
‘너도나도 한 방은 곧 s+등급에 오 르겠네.’
현우가 가장 먼저 얻은 레어 스킬 인 ‘너도나도 한 방!’은 이제 S+등 급을 넘보고 있었다.
이제 현우의 앞에서는 그 어떤 몬 스터조차도 맨몸으로 나서지 못할 정 도였다.
‘혼천마공도 6성이 멀지 않았고.’
가장 큰 성과는 역시 혼천마공의 성장이었다.
혼천마공은 숙련도가 오를 때마다 새로운 스킬이 하나씩 생겨났다.
‘이런 개꿀 스킬이 어디 또 있을까.’
하지만 이런 생활도 이제 2주가 채 남지 않았다.
루케이가 죽고 나면 이런 환경이 더는 주어지지 않을 테니 당연한 얘 기였다.
“그래서 루케이 설득은 어느 정도나 진행이 됐지?”
현우는 창을 맞대고 있는 사내, 제 라스에게 말을 걸었다.
“슬슬 넘어오는 단계다. 비술을 따 로 남길 생각을 하고 있다.”
제라스는 창을 살짝 뒤흔들며 대답 했다.
“슬슬? 너무 느린 것 아닌가?”
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느려? 이것도 빠른 거다. 그는 자 신이 가진 걸 나눌 성격이 아니니.”
제라스 역시 얼굴을 굳혔다.
현우가 그의 일을 너무 쉽게 보는 듯해서 기분이 나빠진 것이었다.
맹목적인 충성에서 벗어난 지금의 시야로 본 루케이는 절대 자비로운 족장이 아니었다.
독재자였다.
예전과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족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강해 지는 열매가 아니라 연마할 비술이 었다.’
라 일족 자체의 수명은 매우 길었 다.
특히 신계라는 환경에 적응한 이후 에는 중간계에 살 때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수명이 늘었다.
제라스 본인만 하더라도 당장 중간 계 침공을 두 번이나 참여했다.
거의 반 불사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환경은 변하지 않았다.
루케이는 예전과 다르게 일족에게 비술을 더 이상 전하지 않았다.
홀로 고민하고 홀로 익혔다.
당연히 라 일족의 발전도 그만큼 느 려 졌다.
루케이 본인은 강해질지 몰라도 라 일족 전체로 보면 그렇게 큰 발전은 없었다.
거기다 루케이가 나무를 만들기 위 해 자발적인 봉인에 들어가자 마계 와의 분쟁도 사라졌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당연히 비술의 수련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몇백 년 쯤 수련을 하면 대개 비슷한 경지에 오르기 때문이었다.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지. 어차피 비술이 필요한 건 너다. 내가 아니 고.”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는 루케이가 비술을 남기든 말 든 솔직히 크게 상관이 없었다.
라 일족의 비술은 제라스를 꼬시기 위한 미끼였을 뿐이었다.
‘비술을 잇지 못하면…. 일족만 약 해지는 셈일 터.’
현우의 말을 들은 제라스의 얼굴이 더욱 굳었다.
맞는 말이었다.
인간의 목적은 비술을 남기든 남기 지 않든 루케이를 죽이는 것이었다.
‘무조건 남기게 해야 한다….’
급해졌다.
이제 인간이 말한 시간이 그렇게 많 이 남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알았다, 그건 내가 더 노력해보지.” “그건 그렇고…. 전에 말한 그걸 받 고 싶은데…. 언제쯤 준비가 되지?”
현우가 뒤로 훌쩍 물러나며 물었다.
현우는 2주라는 시간 동안을 덧없 이 보낸 게 아니었다.
제라스와의 대화를 통해 많은 정보 를 얻었다.
그리고 그 정보 중에서 쓸 만한 것 을 곧장 활용했다.
제라스에게 루케이가 만들었다는 나 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요구했다.
“ 받아라.”
제라스가 품 안으로 손을 넣더니 현 우를 향해 무언가를 던졌다.
“두 개를 달라고 하지 않았나?”
제라스가 던진 열매를 받은 현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혹시 말을 잘못했나 하는 생각에서 였다.
“아무렇게나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하나를 확보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 다.”
현우가 틀린 게 아니었다.
현우는 분명 정확히 말했다.
다만 제라스가 그 부탁을 들어줄 수 가 없었을 뿐이었다.
열매는 하루에 한 개씩 열렸다.
하지만 그것을 먹고자 하는 이들은
널리고 널렸다.
아무리 제라스가 라 일족 내에서 루 케이 다음이라지만, 마음대로 빼낼 수 가 없었다.
“그것 하나에 백작의 목숨 하나가 날아갔다.”
제라스가 열매를 구한 방법은 바로 열매를 얻을 라 일족을 죽이는 것이 었다.
“왜 정색을 하지? 어차피 죽일 놈을 죽인 것일 텐데.”
현우가 조소를 터트렸다.
안 봐도 뻔했다.
제라스가 죽인 백작은 그가 판단하 기에 방해가 될 인물이기에 죽인 것 이었다.
“귀신 같은 인간.”
제라스는 모든 일을 꿰뚫어 보는 현 우의 안목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일이 벌어지는 그날. 남은 한 개 역시 구할 수 있다. 조금만 더 기다 려라. 나도 기다리는 중이니.”
제라스가 그 말을 끝으로 전장에서 사라졌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루케이를 도우 러 가야 할 시간이 된 것이었다.
현우 역시 전선에서 빠져나갈 준비 를 했다.
굳이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사냥은 사냥대로 다 했고 제라스와 의 전투도 끝이 났다.
‘얼른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그리고 현우도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었다.
제라스가 준 열매를 확인할 생각이 었다.
“탱이야, 가자.”
현우는 전장을 휘젓고 있는 커다란 곰에게 소리를 질렀다.
*** 전장을 빠져나온 현우가 향한 곳은 바로 르브론의 거처였다.
그곳만큼 플레이어나 NPC들의 시 선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아직 전투가 한창일 터인데…. 여 긴 무슨 일이냐?”
르브론은 불시에 찾아온 제자의 방 문에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어떻게 제자가 왔는데 한 번을 안 반겨 주십니까. 제자가 맞기는 한지 모르겠습니다.”
현우가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왜 왔느냐고 묻지 않느냐.” 하지만 르브론은 그에 굴하지 않고 현우에게 까칠함을 발산했다.
“쉬러 왔습니다.”
현우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쉬러 왔다? 뭔가 할 일이 있나 보 군.”
르브론은 현우의 짧은 대답에서 숨 어 있는 무언가를 잡아냈다.
‘귀신 같으니.’
현우는 기가 막히게 본심을 알아차 리는 르브론을 보고는 쓴웃음을 지 었다.
“사실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이 필요했습니다.”
“왜?”
“확인할 물건이 있어서요.”
“확인할 물건? 또 어디서 재미있는 걸 주워왔구나.”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은 현우가 가져온 물건이 곧 심상찮다 는 뜻이었다.
“어서 꺼내지 않고 뭐 하느냐? 설마 내게도 비밀이라는 건 아니겠지?”
르브론은 어물쩍거리는 현우를 보 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닙니다, 이제 꺼내려고 했습니다.”
현우는 애써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제라스에게 받은 열매를 꺼냈다.
“오호? 정말 재밌는 걸 가져왔어. 이리 한번 줘 보아라.”
르브론이 현우에게 손을 뻗었다.
현우는 순순히 르브론의 손바닥 위 에 열매를 올려놓았다.
르브론이 이걸 먹거나 하지 않을 것 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한 행동이었 다.
“마력이 잔뜩 농축되어 있군. 마치 정수와 같은데…. 생김새는 어디 나 무에서 열리는 과실과 같고….”
르브론은 열매를 이리저리 살펴보 며 그가 느낀 점을 중얼거렸다.
“거기다 마력의 속성은 또 빛이군. 정말 신기해. 이런 열매에 대해서 나 는 들어본 적이 없다.”
르브론은 일반적인 기사답지 않게 아는 게 정말 많았다.
특히 정수와 관련된 것에서는 제국 의 대마법사인 서페드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한때 마력이 적어 그것이 콤플렉스 였던 만큼 나름대로 해법을 찾아 헤 맨 것이었다.
“신계에서 난 열매입니다. 어렵게 구 했습니다.”
현우는 그런 르브론에게 열매의 출 처를 밝혔다.
“신계에서?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 다. 그곳이라면 이런 열매가 생길 수 있겠지.”
르브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아는 건 대륙, 즉 중간계에 관 한 것이었다.
신계나 마계의 일은 아는 바가 없 었다.
그러나 빛 속성 마력이 충만한 신 계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 이 들었다.
“평소에도 이런 걸 먹고 다닌 것이 냐?”
이번에는 르브론이 서운하다는 표정 을 지었다.
“제가 먹을 게 아닙니다, 스승님. 그 녀석이 먹을 겁니다.”
현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왜 내게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스승님은 강하시지 않습니까. 그리 고 제가 어디 가서 얻어터지고 다녔 으면 좋겠습니까?”
현우가 묘한 눈빛으로 르브론의 시 선을 응시했다.
“그런 건 아니다만…. 아니다, 됐다. 내가 너에게 무슨 말을 더 하겠느냐.”
르브론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이런 것뿐 입니다.”
현우는 그런 르브론의 앞에 술병들 을 늘어놓았다.
이종족 연맹과 동대륙 그리고 마계 에서까지.
현우가 수집한 술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붉은 옥병을 꺼 내 르브론의 앞에 내놓았다.
“이건 고대 제국의 비법으로 만든 특제입니다. 대륙의 그 어떤 사람도 먹어보지 못한 술입니다.”
붉은 옥병의 정체는 바로 프니스에 정착한 루오스 제국의 후예들이 만 든 술이었다.
“크흠…. 아무도 먹지 못했다, 그 말 이렷다?”
르브론이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에게 자랑할 일이 하나 생겨 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르브론은 현우에게 받은 열매를 다 시 돌려줬다.
그러고는 재빨리 술병들을 챙겼다.
‘술병 하나 챙기는 데에 저런 짓을 하다니….’
현우는 허공에 둥둥 뜬 채로 집안 을 향해 움직이는 술병을 보며 한숨 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관심은 이내 손에 든 열매로 향했 다.
‘얼마나 좋으려나….’
루케이가 긴 시간 동안 봉인이 될 정도로 많은 마력을 소모해 만든 나 무에서 나왔다는 바로 그 열매.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템 정보.’
현우는 곧장 열매의 정보를 확인했 다.
[농축된 순수]
신계의 마력을 먹고 자란 나무가 만들 어 낸 열매. 단순히 마력을 정제하고 농 축한 것이 아닌 무언가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등급 : 에픽
조건 : 빛 속성 보유, 마력 스탯 7,000 이상.
효과 : 복용 시 스탯이 랜덤하게 증가 한다(한 스탯당 최대 증가량은 350). 아 주 높은 확률로 스킬이 생성된다. 높은 확률로 스탯이 생성된다. 보통 확률로 칭호가 생성된다. 낮은 확률로 클래스를 얻게 된다.
“어….”
열매의 정보를 확인한 현우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앞의 메시지창에는 전혀 생각지 못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클래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