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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의 귀환-907화 (908/939)

제 907화

제라스는 채 1분도 되지 않는 아 주 짤막한 시간 동안 그에게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정도의 차이가 있었나?’

솔직히 말하면 종이 한 장의 차이 정도로 여겼다.

박빙.

언제든 깨질 얼음이었다.

‘방심이 아니라 부족이었음을 이제 야 깨닫다니.’

착각이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현우와 자신의 차이는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상태였다.

‘그렇다는 건…. 저쪽도….’

제라스의 시선이 현우가 사라진 방 향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미래가 밝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저 손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 말 긴 시간이 필요하겠군.’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족장 의 자리는커녕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들었을 테니까.

‘그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제라스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머리 를 숙였다.

‘거인 버프는 아직 남겨뒀고…. 사 제들이 걸어준 버프도 넉넉하고.’

현우는 전장에 뛰어들기 전, 사제 들을 찾아다니며 버프를 받았다.

각기 다른 신전의 사제들인 만큼 버프의 효과는 모두 중첩이 됐다.

‘최소한 한 시간은 가겠지.’ 거기다 현우에게 버프를 준 이들은 모두 랭커였다.

스킬 숙련도가 일정 이상인 만큼 버프의 지속 시간도 무척 길었다.

가장 짧은 것도 한 시간 이상이었 다.

‘그래도 버프가 온전할 때…. 끝냈으 면 좋겠는데….’

버프 스킬의 숙련도가 오를수록 버 프의 효과와 지속 시간이 증가했다.

그런 것을 생각해보면 최근에 익힌 버프 스킬일수록 지속 시간이 짧다 는 추론이 가능했다.

‘문제는 그럴수록 버프의 효과가 남다르다는 거지.’

최근에 익혔다는 것은 곧 그만큼 스킬을 익히는 데에 조건이 까다롭 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겠네.’

현우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라쿤과 루케이의 전투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있었다.

‘길어야 3, 40분?’

전투는 라쿤의 우세였다.

눈에 띌 정도로 앞서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라쿤이 유리한 상 태였다.

- 와. 며칠 사이에 무슨 아이템 얻었 음? 왜 이렇게 세?

- 한 달 사이에 발전한 것인가.

- 아아…. 발전했다.

- 근데 마무리 안 된 거 같은데?

- 죽였겠지. 골목대장님이 안 죽일 사 람으로 보이냐?

- 그건 맞지. 죽었겠지. 배에 그만한 구멍이면….

시청자들은 제라스를 단숨에 날려 버린 현우에게 관심을 가졌다.

지난 한 달간 보여준 모습과는 너 무 달라진 모습에 놀란 반응이었다.

“제가 그동안 봐준 겁니다. 제가 저 런 놈과 비등할 거라고 생각하셨습 니까?”

현우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시청자 들에게 으스댔다.

- 골목대장이 힘을 숨김?

- 근데 힘을 숨길 이유가 있나? 상대 가 플레이어가 아니라 몬스터인데?

- 그건 맞지. 보스 빨리 잡고 미는 게 낫지 않나?

- 이유가 있겠지. 뭐.

“왜 안 잡았느냐고 물으신다면….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 그렇게 말 하겠습니다.”

현우는 미소를 연신 지으며 말을 돌렸다.

시청자들에게 그 비밀을 말해줄 생 각이 없었다.

“일단 전투 좀 보실까요? 오늘이 마지막이 될 전투입니다. 더는 이런 영상이 나올 일이 없습니다.”

정말 마지막이었다.

라쿤과 루케이의 전투는 무조건 오 늘로 끝이 난다.

더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 근데 진짜 멋있기는 하다.

- 나도 저것 보고 주변에 오크로 시작 하는 거 추천하기 시작함. 너무 멋있음.

- 오크족으로 시작해서 레벨 한 700 쯤 되면 저런 거 가능?

- 700으로 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 데? 스킬. 아이템 다 갖춰져야 할 듯?

한 달 동안 펼쳐진 라쿤과 루케이 의 전투로 인해 오크 족에 대한 인 식이 무척 상승했다.

이전보다 커뮤니티에도 오크 족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실제로 오크 플레이어들도 엄청나게 늘어났 다.

‘당연한 일이지. 라쿤이 보여주는 게 있으니까.’

라쿤의 전투는 단순하지만, 멋이 있 었다.

거대한 오크 형상이 제 몸뚱이만 한 도끼를 휘두르는 모습은 보는 맛 이 충분했다.

바로 지금처럼.

부우우우우웅!!!

거대한 도끼 형상의 강기가 루케이 의 머리를 쪼갤 기세로 휘둘러졌다.

단순한 내려치기였지만, 강기의 크 기가 수십 미터가 된다면 그것은 다 른 얘기였다.

루케이는 당황하지 않고 떨어지는 도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루케이의 등 뒤에 10미터 가 넘는 길이의 장창들이 모습을 드 러냈고 라쿤의 도끼를 향해 빠르게 쏘아졌다.

콰아아아아앙!!!

라쿤의 도끼와 루케이의 창이 부딪 칠 때마다 폭음이 터지며 라쿤의 도 끼가 움찔거렸다.

하지만 라쿤의 도끼는 원하던 목적 지에 도착했다.

날아드는 창을 모두 분쇄하고 루케 이의 머리를 쪼개기 위해 움직였다.

그 순간 루케이의 몸이 사라졌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자취를 감췄다.

라쿤의 도끼는 그대로 빈 대지에 처박혔다.

콰아아아아앙!!!!

대지에 수십 미터가 넘는 흔적이 생겼다.

라쿤은 본인이 만든 참상에도 아랑 곳하지 않고 도끼를 재차 휘둘렀다.

라쿤이 움직이자 라쿤의 등 뒤에 나타난 거대한 오크 역시 움직였다.

라쿤과 똑같이.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부우우우웅!!!

라쿤의 도끼가 수평으로 휘둘러지 자 일자(一) 모양의 강기가 빠르게 날아갔다.

쐐애애애액!!!

거대한 강기가 향하는 곳에는 하얀 색의 장창을 들고 서 있는 루케이가 있었다.

루케이는 날아오는 강기를 향해 창 을 내질렀다.

새하얀 빛이 허공을 메웠다.

빛은 날아드는 라쿤의 강기를 막아 섰다.

빛은 조금씩 조금씩 라쿤의 강기를 지워 냈다.

그 순간이었다.

라쿤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줄기줄 기 솟구쳐 나왔다.

붉은 기운은 빠르게 하얀색 빛의 영역을 지워냈다.

동시에 라쿤의 강기가 루케이를 향 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루케이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재차 창을 내질렀다.

그러자 루케이의 등 뒤에서 몇 줄 기의 마력 광선이 쏘아져 나가 라쿤 의 강기를 막아냈다.

라쿤은 공격이 먹혀들지 않는 것을 알자 잠시 공격을 멈췄다.

‘녀석이 잘해줬어.’

라쿤은 루케이와 전투를 치르는 와 중에도 현우가 제라스의 몸에 공격 을 성공시킨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숨겨둔 게 정말 있었나 보군.’

라쿤은 현우가 제라스를 이길 거라 고 생각은 했지만, 이처럼 말도 안 되게 압도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약속을 지켜야겠지.’

현우는 약속을 지켰다.

제라스를 치워내는 데에 성공했다.

이제는 라쿤 자신이 약속을 지킬 때 였다.

“오늘에야말로 네놈의 멱을 따주마.”

라쿤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벌려진 입 사이로 커다란 송곳니가 유독 흉험해 보였다.

“그 말을 들은 지도 벌써 한 달째 다. 얼마나 멍청하기에 아직도 제대 로 깨닫지를 못했는지….”

루케이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무시 하며 라쿤의 도발을 맞받아쳤다.

‘숨겨둔 게 있었나…?’

라쿤의 힘이 지난 전투 때보다 조 금은 더 강해진 느낌이었다.

그 조금의 차이는 생각보다 너무 큰 힘의 차이를 불러왔다.

‘제라스는…. 어디 갔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루케이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게 또 있었다.

제라스의 부재.

단순히 제라스만 없어졌다면, 크게 상관하지 않았을 터였다.

늘 있던 일이었으니까.

‘거슬려.’

하지만 제라스와 함께 사라졌어야 할 인간은 전장에 있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신경이 거슬리는 위치에.

평상시에 제라스가 하던 것을 저 인간이 고스란히 따라 했다.

“왜, 항상 있던 놈이 안 보이니 불 안한가 보_지? 일대일로는 날 이길 수 없잖아.”

루케이의 눈이 바쁘게 돌아가는 것 을 확인한 라쿤이 루케이를 재차 도 발했다.

루케이가 왜 저러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짜증이 나지? 있어야 할 놈은 없 고 없어야 할 놈이 서 있으니까?”

“오늘따라 혀가 길어.” 짧게 대답한 루케이가 갑자기 창을 내질렀다.

더 이상 말을 섞어봐야 자신만 손 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콰아아앙!!!

루케이의 창은 라쿤의 도끼 앞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막혔다.

완전히.

난공불락의 성을 마주한 것처럼, 루케이의 창은 나아가질 못했다.

“이것까지는 쓰지 않으려 했거늘….”

루케이가 창을 거뒀다.

근접전으로는 답이 없다는 걸 인정 한 것이었다.

루케이는 오른손으로만 창을 쥐었다.

마치 단창을 쥐는 것처럼.

그러고는 왼손을 펼쳐 라쿤을 향해 뻗었다.

루케이는 그간 제대로 보여주지 않 았던 비술의 등장이었다.

“죽을 때가 되니 밑천을 꺼내는군. 이제야 꺼내.”

라쿤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루케이가 숨긴 게 있다는 사실에 놀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가 한 말이 어이가 없었기 때문 이었다.

무언가를 숨긴 것은 루케이만이 아 니었으니까.

“누구나 숨긴 게 있다. 그게 얼마 나 되느냐가 문제겠지.”

라쿤의 등 뒤에 있던 거대한 오크 의 형상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러다 몇 초가 흐른 뒤에는 아예 사라졌다.

라쿤의 몸에 흡수가 된 것이었다.

변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잠시 후 라쿤의 두 눈에 붉은 광 망이 서렸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현우가 팔뚝을 쓸었다.

‘어우 살벌해.’

꽤 거리가 있음에도 라쿤에게서 느 껴지는 기세가 너무 흉흉했다.

눈앞에 그 기세를 감당할 루케이의 압박감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가 지 않았다.

“여러분들은 느껴지지 않으시겠지 만, 지금 라쿤에게서 말도 안 되는 기파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조금 만 더 가까이 가면 부서지고 찢길 것 같은 느낌입니다.”

현우는 그가 받은 느낌을 최대한 생생하게 시청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게 다 전해 지는 건 아니었다.

시청자들은 현우라는 매개체를 통 해서 라쿤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시각이나 청각 외의 촉각과 같은 것들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 그 정도임?

- 이게 막 고 페이즈 2 이런 건가?

- 근데 라쿤은 신나게 때리기만 했는 데 페이즈가 넘어감?

- 밸런스 조정 모름? 원래 같이 세지 는 게 정석임.

- 그런가? 근데 방금까지는 좀 멋있었 는데 지금은 좀 무섭네. 눈빛 보셈. 진 짜 무서움.

하지만 시청자들도 확실히 시각적 인 변화는 느꼈다.

라쿤의 짙은 붉은색 안광을 보고는 소름이 끼친 것이었다.

“그럼 숨긴 걸 한번 꺼내 보}. 비술 이라고 하던가? 재밌는 게 있다고 하던데.”

라쿤은 붉은 안광을 줄기줄기 내뿜 으며 루케이에게 다가갔다.

“그렇지 않아도 보여줄 셈이었다.

하등한 오크야.”

루케이가 허공 높이 떠올랐다.

동시에 검지를 제외한 루케이의 왼 손가락이 모두 접혔다.

루케이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톱니 바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추 봐도 직경이 100미터는 될 법한 크기였다.

그리고 그런 톱니바퀴는 한두 개가 아니라 무려 여덟 개였다.

“ 막아봐라.”

여덟 개의 톱니바퀴 중 네 개는 루케이의 등 뒤에서 빠르게 회전했 고 나머지 네 개는 라쿤을 향해 비 행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이잉!!!

라쿤은 섬뜩한 소리와 함께 날아드 는 톱니바퀴를 보고는 커다란 송곳 니를 드러냈다.

‘웃어?’

이건 명백한 미소였다.

“막는 건 내가 아니라 너다. 세월 에 매몰된 괴물아.”

라쿤은 오른손으로 들고 있던 도끼 를 그대로 던졌다.

부우우우우우웅!!!

허공을 날기 시작한 도끼는 삽시간 에 커지기 시작했다.

10미터.

20미터.

30미터.

100D1 터.

그러다 톱니바퀴와 맞닿기 직전이 되자, 그보다 훨씬 더 커져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해진 도끼와 톱니바퀴 네 개가 충돌했다.

카아아아앙!!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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