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17화
현우는 프니스에서 오랜 시간을 보 내지 않았다.
영지를 한 바퀴 슥 돌아보고는 곧 장 떠났다.
프니스에 시간을 더 쓰지 않아도 괜 찮을 거라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 다.
중간계의 영지를 떠난 현우가 나타 난 곳은 칙칙한 세상이었다.
에토노.
현우가 가진 또 다른 영지.
마계의 영지를 찾았다.
‘오랜만에 보니까.’
“더 갑갑하네.”
맑고 곱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붕 붕섬과 그보다는 못하지만 어느 휴 양지 못지않은 프니스에 있다가 마 계에 오니 괴리감이 더욱 컸다.
마계의 풍경은 너무도 별로였다.
‘그래도 일단 둘러는 봐야지.’
그러한 감정과는 상관없이, 현우는 지금 당장 에토노를 떠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에토노를 방문한 탓 에 최소한 하루 정도는 머물러야만 했다.
‘상태를 아예 모르니까….’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다.
에토노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상태창부터 봐야겠다.’
영지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
‘영지 상태창.’
[영지 상태창]
영지 명 : 에토노
영지 소속 : 없음
영주 명 : 강현우
영지 발전도 : 경제 80 군사 0 마법 70 문화 68
영지 인구 : 마족 0명, 마수 0마리, 인 간 25명.
영지 재산 : 2.317,623골드
소모 비용 : 19,200골드
징수액 : 78,934골드
치안 : 나쁨
보유 시설 : 29개(거주 시설 제외)
현 상태 : 도시가 모험가들로 가득한 상태. 도시를 공격해오는 마족과 마수들 로 인해 치안이 좋지 않다. 마력석의 마 력 흡수는 매우 빠른 상태.
에토노의 상태창을 읽어내리던 현 우의 표정이 점점 나빠졌다.
영지 발전도를 시작으로 치안에서 한 번 더 나빠졌고 그것은 현 상태 에서 정점을 찍었다.
‘치안이 왜 이렇게 개판이야?’
문제는 바로 치안이었다.
군사력이 o인 것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에토노는 모험가들, 즉 플레이어들 로 인해서 굴러가는 영지였다.
덕분에 NPC 병사가 단 하나도 없 었고, 군사력이 0인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도 문제가 되지 않는 건, 플 레이어들이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아서 였다.
에토노가 현우의 영지라는 건 모두 가 알고 있었다.
불의의 사고로 밝혀졌었다.
현우의 영지에서 행패를 부릴 만큼 배짱이 두둑한 플레이어는 전무했다.
단순히 현우 하나만 감당하는 것도 힘겨운데, 현우의 뒤에는 신대륙이 라는 아레나 제일의 길드가 버티고 있었다.
‘마족과 마수 때문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문제는 무조건 마수와 마 족들에게 있다는 소리였다.
‘요새 힘들어서 그렇지 사냥은 편 하다고 그렇게 소문이 났는데…. 그 래서 그런 건가?’
그 순간이었다.
현우의 머릿속에 잠자고 있던 기억 이 스쳐 지나갔다.
“아!”
치안이 왜 저렇게 나오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징수액이 왜 저렇게 높은지까지도.
‘캘리오락스…!’
에토노를 제외한 모든 도시를 밀어 버리겠다던 그 말.
‘내가 형님한테 전했었지….’
왜 잊고 있었던 것일까.
잊을 수가 없는 말인데.
‘에토노는 그래도 지켜준다고 했으 니….’
그래서 잊어버렸던 것 같다.
현우 자신에게는 그 어떠한 피해도 없었기에.
캘리오락스에게 그 말을 듣고 있던 당시, 현우는 마계에서 완전히 손을 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더욱 쉽게 잊힌 것이었다.
‘근데 문제는 없겠지?’
현우는 그래도 멀쩡한 에토노의 모 습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캘리오락스가 약속을 나름 잘 지켰다는 생각도 들었다.
에토노는 아직 멀쩡했으니까.
현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현우를 찾았다.
그것도 꽤 다급한 목소리로.
- 강중구 님으로부터 : 현우야, 바 쁘냐?
귓속말의 주인은 강중구였다.
현우는 귓속말에 대답하기에 앞서 고개부터 흔들었다.
‘지금 형님이 날 찾을 이유가 없을 텐데…?’
이 시간이면 느긋하게 언데드들과 드잡이질을 할 때였다.
그리고 그 드잡이질에 변수는 없었 다. 그저 지루한 몰이사냥의 일환이 었다.
- 강중구 님에게 : 네, 형님. 안 바 쁩니다.
현우는 늦지 않게 강중구에게 답장 을 보냈다.
- 강중구 님으로부터 : 그래? 그럼 마계로 와줄 수 있냐?
강중구는 현우와 다르게 1초도 지 나지 않고 답장을 보냈다.
- 강중구 님에게 : 마계요? 마계에 는 왜요? 형님들 지금 북부 아니세 요?
현우는 이번만큼은 강중구만큼이나 빠르게 답을 보냈다.
강중구의 귓속말이 품고 있는 내용 이 그의 상식을 부수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 강중구 님으로부터 : 거기 떠난 지 꽤 됐다. 형님이 지루하다고 하셔 서 말이다. 마계가 다이내믹하다는 소식은 또 어디서 들으셨는지….
- 강중구 님에게 : 그래서요? 지금 에토노에 계십니까?
- 강중구 님으로부터 : 에토노는 아 니고 서쪽으로 조금 나왔다. 근데 덮 쳐온 마족이 좀 많다.
- 강중구 님에게 : 알겠습니다, 형 님. 바로 가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현우는 귓속말을 끝낸 즉시 내정실 을 박차고 나섰다.
강중구의 부름은 무조건 응해야 하 는 것이었으니까.
에토노의 하늘에 보라색 빛이 떠올 랐다.
***
“ 연락혔냐?”
김석중은 주먹을 휘둘러 거대한 마 수를 터트리며 강중구에게 말을 걸 었다.
“금방 올 겁니다, 형님. 어차피 말 한마디면 마계에 올 수 있는 녀석 아닙니까.”
강중구 역시 김석중처럼 마수를 죽 이는 중이었다.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마수와 마족들 은 신대륙 길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는 듯 덮쳐왔다.
단순히 그 정도라면 현우를 부를 일도 없었다.
마족과 마수는, 그 수를 셀 수 없 을 만큼 많았다.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우리 브라더 아니면, 우째 할 수 도 없겠구마.”
김석중이 킬킬거렸다.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여기나 거기나 똑같은 전쟁입니다. 그 쓸모없는 퀘스트를 깨기 위해 오 는 게 아니었는데….”
강중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푸념했다.
솔직히 마계나 북부의 전쟁터나 똑 같았다.
무척 많은 수의 암흑 속성 몬스터 들을 상대해야 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북부와 달리 마계에는 몇몇 소수의 신대륙 길드 원만 와 있다는 것이다.
“혹시 아냐? 이게 어떻게 연결이 될지.”
김석중은 강중구의 불만을 가볍게 넘겼다.
뇌를 비우고 스킬만 쓰는 사냥은 사절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렇게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최소한의 목적성이라는 게 있어야 했다.
“형님!!!”
두 사람의 언쟁이 치열하게 이어지 던 순간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며 전 장에 뛰어들었다.
“그려, 브라더 왔는가‘?”
김석중은 여유롭게 현우를 향해 손 을 흔들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형님. 몬스터 가 왜 이렇게 몰렸습니까?”
현우는 혼천도를 뽑으며 눈살을 찌 푸렸다.
강중구가 괜히 귓속말을 보낸 게 아니었다.
‘무슨 대형 이벤트도 아니고 무슨 몬스터가 이렇게 몰려?’
이 자리에 있는 신대륙 길드원이라 고 해봐야 고작 서른 명 정도였다.
그에 반해 신대륙을 둘러싸고 있는 마족과 마수의 수는 못해도 몇천 마 리 이상은 되어 보였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아냐. 요새 에 토노 근처 몬스터가 는다, 는다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강중구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제야 여유가 좀 생겼다.
주변 환경은 그대로였지만, 현우의 존재 자체가 그에게 이런 여유를 제 공했다.
“도시가 밀렸으면 이 정도는 올 수 있다고 가정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번에는 형님들이 너무 대책 없이 움직인 것 같습니다.”
현우는 그 말을 남긴 채 마수와 마 족들 사이로 몸을 던졌다.
쐐애애애액!!!
보라색 강기가 마족과 마수들을 도 륙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자리마다 핏물이 바닥을 메웠다.
현우의 막강한 활약에 힘입어 신대 륙의 길드원들은 조금씩 마족과 마 수들을 밀어냈다.
하지만 워낙에 마족과 마수들의 수 가 많은 탓에 티가 나질 않았다.
“싸게 끝내자고!”
김석중은 수많은 마수에게 포위당 한 사람답지 않게, 밝은 목소리로 외 쳤다.
“형님 말씀 들었지? 다들 아끼지 말고 쏟아부어라. 어차피 뒤처리해 줄 사람도 있으니까.”
강중구 역시 김석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약간은 신이 난 듯한 표정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걱정 없이 다 쓰겠습니다!”
신대륙의 길드원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는 뒷일이 염려되어서, 가 장 강한 스킬들은 사용하지도 못하 고 있었다.
위력은 강하지만,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약한 다수의 몬스터를 상 대로는 적당한 위력의 스킬을 쓰는 게 나았다.
이러든 저러든 어차피 한 방이었으
니까.
하지만 현우라는 확실한 소방수가 나타난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사방에서 형형색색의 마력들이 마 족들을 덮쳤다.
단 하나의 스킬도 겹치지 않았다.
모두 다른 곳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아아아앙!!!
폭음이 연달아 터졌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마수와 마족들 이 한순간에 쓰러졌다.
“남은 건 브라더 몫이여.”
“잘 부탁한다, 현우야.”
김석중과 강중구가 현우를 향해 손 을 흔들었다.
‘이렇게 쓸어버렸는데도 절반 넘게 남은 것 같네….’
현우는 실눈을 뜨고 전장을 정확하 게 살폈다.
신대륙의 길드원들의 스킬이 휩쓸 고 지나갔지만, 아직도 마족과 마수 들은 너무나 많았다.
‘그래도 뭐…. 별로 오래 걸리진 않 겠네.’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걸릴 뿐. 잡지 못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슷III
—— 月'、* * *
혼천도에서 강기가 길게 솟아났다.
현우는 혼천도를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그 궤적을 따라 강기가 형 상을 갖추었다.
쐐애애애액!!!
초승달 형태의 강기가 빠르게 쏘아 졌다.
거대한 강기는 마족과 마수들을 가 볍게 뚫고 지나갔다.
막을 자가 없었다.
마수와 마족들이 각자의 마력을 뿜 어내도 조금도 막히지 않았다.
닿는 대로 부서지고 무너졌다.
현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 서 움직였다.
어느새 허공 높이 떠오른 현우가 혼천도를 빠른 속도로 여러 번 반복 해서 휘둘렀다.
쐐애애애애액!!!
수백 개가 넘는 강기가 지상을 향 해 폭격을 시작했다.
퍼 버 버 버벙!!!
강기들이 대지를 강타했다.
당연히 그 위에 서 있던 마족과 마 수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현우와 일반 마족, 마수의 차이는 그만큼이나 벌어진 상태였다.
“형님들 뭐 하십니까. 진짜 구경만 하실 생각이십니까?”
현우는 숫자가 확 줄어든 마족들을 보며 소리쳤다.
이제는 신대륙 길드원들만으로도 충 분히 싸울 수가 있었다.
“뭐 허냐. 안 싸우고들!”
“레벨 안 올려? 숙련도는 안 올릴 거여?”
김석중과 강중구는 그제야 길드원 들에게 소리를 쳤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느릿하게 움직 이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시늉에 불과했다.
“형님들, 앞으로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지난번에도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마계는 이제 위험한 지 역입니다.”
현우가 김석중과 강중구에게 다가 가 말했다.
캘리오락스가 마계 강화 정책을 멈 추지 않는 한. 이런 위기는 언제 어 디서나 반복될 것이었다.
“알았다, 길드원들을 더 불러들여야 겠어.”
강중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생기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 미 벌어진 지금에는 현우의 충고를 기꺼이 수렴해야 했다.
못해도 길드원의 숫자를 백은 채워 야 할 것 같았다.
오늘과 같은 사달을 방지하기 위해 서라면.
그 순간 현우의 얼굴에 금이 갔다.
미간을 미미하게 찌푸린 현우가 김 석중에게 다가갔다.
“형님, 제가 일이 생겨서….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야, 싸게 가 봐.” 김석중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다시 뵙겠습니다.”
현우는 애써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 덕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