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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인 줄 알았는데 괴담이다-14화 (14/57)

<-- 각자의 사정 -->

그 후로도 신나는 저택탐험이 계속... 될 뻔 했지만, 아쉽게도 3층에서 멈추게 되었다.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의붓오빠와 딱 마주쳤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여장한 모습이구나. 나는 자극하지 않기 위해 절대 놀라지 않았다는 표정으로 태연히 인사했다.

“아, 좋은 아침!”

“......”

하지만 의붓오빠는 창백한 표정으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나와 약혼자를 스쳐지나갔다. 진짜 낯을 가려서 저러는 건가? 나는 혹시 약혼자가 당황했을까봐 확인했지만, 동요 하나 없이 웃고 있을 뿐이었다.

“로제, 이 위층은 다음에 다시 찾아볼까요? 마담 자우어의 따님도 밖에 계시는 걸보니, 곧 사람들이 활동할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네네.”

건진 건 특별히 없지만 재미는 있었다. 특히 내 방 주변의 2층은 화려한 장식품이나 다양한 인테리어의 응접실이 보는 맛이 있었다. 꼭 돈 내고 들어오는 고궁 관광 같았지. 나는 오늘 밤이나 내일 새벽에 윗층을 탐험하자고 생각하면서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뒤 몸단장을 위해 일하는 분들이 들어왔을 때,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아침을?”

“예. 제릴 아가씨께서 함께 아침식사를 들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의붓오빠가 아침 식사를 같이하자고 부른 것이다. 웬일이래? 어쩌면 자신의 사회성 없는 모습을 해명하기 위한 자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질문 폭격할 각을 재고 있었는데 잘 됐네. 나는 머릿속으로 온갖 질문 목록을 갱신하며 신나서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예상 가능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식사가 차려지는데 둘 중 아무도 먹지 않는 어색한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

“......”

뭐야, 왜 안 먹어.

일하는 분들도 의붓오빠가 다 내보내서 안에는 우리 둘만 있었다. 그 적막한 분위기에서 그렇게 서로 눈으로 대화하던 우리는 결국 육성으로 의사소통을 시작했다.

“왜 이렇게 안 먹어? 평소에도 그렇고 혹시 체형 관리라도 해?”

의붓오빠는 얼굴이 울긋불긋 해졌지만 가까스로 화내지 않은 것 같았다.

“너야말로 요 며칠 입에 음식 넣기 바쁘더니, 왜 안 먹지?”

가뜩이나 맛있는 걸 앞에 두고 참고 있어서 열 받는데 1순위 독살 용의자의 유력한 범행 동기 의심군이 그런 말을 하니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지원군으로 약혼자도 포섭했겠다, 그냥 말해버려야지! 나는 거리낌 없이 입을 열었다.

“사실 독살 당할 뻔해서 무서워서 못 먹겠어!”

“뭐!?”

의붓오빠가 기겁하더니 테이블을 치며 반쯤 일어났다.

“독살!? 왜?! 언제!?! 왜 말하지 않았지?”

아니 그래서 지금 하고 있잖아 뭐가 문제야. 사실 사이가 안 좋은 것 같아서 말하기 껄끄러웠다고 하면 더 화낼 것 같으니까 그 부분은 좀 돌려서 말해주자.

“그렇게 시간이 지나진 않았어. 한 이틀? 아무래도 내가 지금 기억 안 나는 게 많은 상태잖아. 증거가 안 나오면 혹시 자작극 피해망상으로 요양원에 갈 수도 있으니까 증거를 찾아보고, 고민하느라 그랬지......”

“......”

의붓오빠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털썩 의자에 도로 주저앉더니, 묵묵히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아까 이야기 듣고 경악했던 것도 그렇고, 지금 묘하게 가슴아파하는 것 같은 이 분위기로 볼 때 이쪽은 독살에 관여하지 않은 것 같다. 태도가 거칠어서 그렇지, 사이도 하녀 쪽 선셋 말대로 정말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나보네.

“그래서 증거는 찾았어?”

“아니.”

아무 것도 없더라. 무슨 부엌이 먼지 한 톨 없었지.

“일단 상황을 말해봐.”

“응. 그러니까, 그게......”

나는 당시에 일어났던 일들을 잘 정리해서 말했다. 차 마시는데 실수로 복용하던 약을 떨어트렸고(의붓오빠의 눈이 가늘어졌지만 역시 그때 약을 숨기는 걸 봤던 건지 어떻게 안 먹고 가지고 있었냐는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 은 티스푼을 넣으니까 변색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의붓오빠는 ‘변색’까지 듣자마자 다시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났다. 이번에는 당장 나갈 것 같은 기색이었다.

“제길, 당장 차 서빙한 놈부터 심문해야지 뭐하고 있던 거야! 그리고 변색된 티스푼 당장 보여줘!”

어이쿠, 그건 이미 내 손에 없는데요.

“아, 그거 약혼자가 선물해준 거라서 우선 그쪽에 먼저 보여줬는데. 전문가한테 확인해주겠다고 가지고 갔어.”

“......뭐?”

의붓오빠의 몸이 선채로 굳었다. 또 약혼자 이야기 나오니까 저러네. 이쯤 되면 의아하다. 내가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자 의붓오빠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 지난번에도 말하려고 했는데. 너 약혼자라는......”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뭐야 결정적인 순간에!

“무어 경께서 오셨습니다.”

의붓오빠가 목 부러지듯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 약혼자가 사용인이 열어주는 문으로 흐트러짐 없이 들어왔다. 식탁 앞에 선 약혼자는 싱긋 웃으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지난번, 식사에 초대해주신다고 하셨던 것이 생각나 왔습니다. 제가 방해가 됐을까요?”

퍼뜩 깨달았다. 아, 나 밥 못 먹는 거 커버 쳐주려고 온 건가 보다. 은은하게 감동적이기까지 하지만 이미 독살 건을 말해서 괜찮긴 한데. 나는 의붓오빠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언니가 같이 식사하자고 해준 거라서요. 언니의 의사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정말 그렇겠습니다.”

약혼자가 의붓오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몹시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분만의 자리를 방해해서 죄송하군요. 혹시 어떤 제가 방해할 수 없는 담소라도 나누고 계셨는지?”

“......”

“대답이 없으시군요. 혹시 제가 불편하십니까?”

“아, 저 그때 티스푼 색이 변했던 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의붓오빠가 너무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내가 슬쩍 끼어들었다. 어휴, 처음에는 그냥 여장한 걸 안 들키려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진짜 낯선 사람하고 말을 못 하나보다.

“아, 그렇군요. 저도 우선 증거가 될 만한 물품들을 분석 의뢰하긴 했습니다만, 아침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너무 소극적인 대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약혼자는 내 말을 받고는 도로 의붓오빠에게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아, 아니. 의붓오빠의 상태를 좀 봐줘. 이미 사회성 라이프가 제로가 됐다고!

“일단 로제 양께서 사용하시는 식기는 전부 은제로 바꾸고, 로제 양 주변 사용인을 전부 심문 후 해고하고 새로 고용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것도 임시방편이긴 합니다만.”

“나, 나는......”

“이상하군요. 마담 자우어가 부재중이니 지금은 당신이 이 저택의 재산 관리 대리인인 아닙니까? 왜 반응이......, 이런.”

약혼자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다가 결국 문 밖으로 뛰쳐나가버린 의붓오빠를 보며 혀를 찼다. 야, 그렇게 압박 심문하듯이 말하면 어떻게 해?

“좀 수상하군요. 이런 일에는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맞을 텐데.”

아냐, 니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엄청 적극적이었어. 내가 보기에는 그냥 아싸가 인싸력를 버티지 못하고 도망간 것 같아.

나는 동공지진하며 의붓오빠를 쫒아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약혼자의 다음 말에 내 코가 석자인 것을 깨달았다.

“티스푼 이야기가 다시 나오니 여쭤보는 겁니다만, 혹시 제가 드린 약은 복용하고 계십니까?”

“......그럼요!”

헐.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 기억을 되살려 보자. 그때 분명 봉투에서 약하고 티스푼이 나왔지? 그리고 내가 그걸 둘 다 챙겨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스푼만 주머니에서 꺼냈었다......?

맙소사, 중간에 어디 다른 곳에 흘렸나봐. 어차피 안 먹을 약이었지만 그래도 미안하네.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나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황급히 변명했다.

“하하, 그러고 보니 이미 다 마셔서 어제 오늘은 안 마셨어요!”

“그 양을? ......알겠습니다.”

약혼자의 표정이 없어졌다. 완전히 망한 것 같다. 하하.

......설마 이 집 어딘가에 굴러다니고 있던 병을 찾아낸 건 아니겠지?

안 돼, 호감도가 폭락하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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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이런 일이...!’

식당을 뛰쳐나온 제릴 자우어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거의 기어가듯 4층까지 올라갔다. 요 며칠 간 쉴 새 없이 드나든 문이 그곳에 있었다. 어머니의 서재. 과거 오베르 경의 서재였던 그 거대한 서적 보관함은 몇 번의 방문으로도 소년이 찾는 것을 내주지 않았다.

황급히 그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던 제릴은 순간 자신의 치마를 밟고 발을 헛디뎠다.

“...제길!”

혐오, 자괴,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안도감. 복잡한 감정으로 치마를 구기던 소년은 책상으로 다시 달려갔다. 원래 그가 찾으려던 물건도 아직 채 찾지 못했지만, 지금은 분명 이것이 더 급할 것이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물방울 모양 크리스털 약병을 꺼내들었다. 로제의 세탁물에서 발견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돌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지난 아침 로제의 약혼자라 자칭하는 그 ‘무어 경’을 만나고 나자 그것으로부터 온 물건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소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소년은 그 약병 뚜껑에 말려있는 종이를 걷어내면 보이는 문장. 두 개의 채찍과 나선 문양이 겹친 그 섬뜩한 문장을 찾기 위해 지난 밤 내내 이곳을 뒤졌지만 도움이 될 물건은 찾지 못했다.

설마 어머니가 가져간 걸까? 아니다. 그건 함부로 휴대할만한 물건이 아니다. 적어도 일주일은 시간을 두고 포장해야할 물건을 이렇게 급한 외출에 가지고 갔을 리가 없다.

소년은 다시 책상 서랍을 모조리 열고, 혹시 비밀공간이 있나 그 바닥을 건드려보고, 옆면을 긁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제릴은 공포로 울먹거리며 신음했다.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다들 왜 저러는 거야......!”

“로제는 약혼자가 없다고!”

※※※

근무수칙

6. 저택에서 자신을 ‘무어 경’이라고 자칭하는 남자를 만날 시, 즉각 가장 가까운 방에 들어가 그가 떠날 때까지 나오지 마십시오.

========== 작품 후기 ==========

이 소설은 괴담을 소재로만 하고 있을 뿐 명백한 로판이며 앞으로 남주에겐 주인공 처돌이가 될 길만 남아있기 때문에 절대 공포물이 아닌 로코라고 볼 수 있습니다......(침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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