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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인 줄 알았는데 괴담이다-22화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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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관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탕이다.

참고로 여기서 충격은 나고 공포는 제릴이다.

“......!”

한 발 늦게 뛰쳐나온 제릴은 경관들이 현관을 에워싼 것을 보자마자 양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아마 안에서 양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왔나보다.

양어머니도 패닉상태 같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대응하려 애쓰는 것 같았다.

“저는... 저는 아닙니다. 절대 그런 적이 없어요...!”

그리고 휙 나를 돌아보았다. 허억, 이걸 어떻게 반응 하냐.

“로제, 우리 로제...... 이 어미는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답니다. 절대로!”

“예. 자세한 말씀은 서에서 듣겠습니다.”

“잠시, 잠시만요......!”

양어머니는 완강히 자신의 팔에 수갑을 채우려는 경찰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며 되물었다.

“무슨 증거로 날 체포하는 건가요?! 대체 무슨......”

“증인이 나왔습니다.”

“......네?”

“당신의 범행을 목격했다고 이 집 사용인들이 증언했다는 말입니다. 그 동안은 당신의 협박과 회유로 말하지 못했다며 서에 와서야 털어놓더군요.”

경관은 화끈하게 증인 신상을 까버렸다. 역시 증인보호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는 판타지 와일드 근대답다.

아, 아니 그보다 지금 갑자기 분위기 왜 이러냐. 왜 엔딩 직전에 악역의 악행이 밝혀지고 정의구현당하는 장면 같은 게 된 거야. 오전만 해도 가족 힐링물이었잖아!

잠깐. 혹시 이거 비중 높은 조연이 누명써서 주인공만은 그 사람을 믿으며 진실을 밝혀내는 전개로 이어지며 둘 사이가 돈독해지는 서사야?

거절하게 해줘! 그 전에 위장병 걸리겠어!

“난... 난 로제가 독살당할 뻔 했을 때 이 저택에 있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절 시키셨죠.”

그 때, 경관 뒤에서 내 또래 단발머리 소녀가 걸어 나왔다. 어?

선셋이잖아?

근무복 대신 가벼운 회색 치마를 입은 선셋이 양어머니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마담이 제게 아가씨의 찻잎에 수상한 가루를 타라고 지시했었습니다. 제게는 수면제라고 말씀하셨죠.”

역시! 역시 뭔가 탔던 건 맞구나! 근데 그게 양어머니 지시라고!?

“그건 정말 수면제였어!”

“저는 어쩐지 마음이 꺼림칙해 거절하고 싶었지만 해고가 두려워 그러지 못했습니다.”

양어머니의 날카로운 반발에도 굴하지 않고 선셋은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경찰은 팔짱을 꼈다.

“무의미한 반항은 그만 두십시오. 정말 떳떳하다면 조사를 받으면 될 것 아닙니까?”

“로제, 정말로 그건 수면제였답니다. 근래 기억에 문제가 생길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서 낮잠이라도 푹 자라고 그런 거였어요. 말해두면 오히려 더 신경 쓸 것 같아서 굳이 말하지 않은 것뿐이에요.”

양어머니는 경관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말을 이었다. 어우씨, 어떻게 하냐. 누굴 믿어야하는 거야? 어떻게 된 게 다 수상하고 다 일리가 있냐고요.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동공지진했다.

그때, 예상치 못한 사람이 나와 양어머니 사이에 끼어들었다.

제릴이었다.

이 몸의 의붓오빠는 마치 내 시야를 가리고 양어머니를 막아서려는 것처럼, 정확히 내 눈앞에 서서 양어머니 쪽으로 완전히 몸을 틀었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호리호리한 등뿐이었지만 그 의도는 충분히 통했다.

허억 이건 로판에서 남주후보와 관계진전 될 때 쓰는 클리셰 중에 하나잖아! 불편한 상호작용 막아주기!

“너......”

양어머니가 멍하니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관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여러 사람 불편하게 하지 말고, 얼른 서로 갑시다. 독살 건 말고도 혐의점이 더 있단 말입니다.”

그리고 현관문을 막고 있던 다른 경관들에게 턱짓한다. 아마 강제로라도 끌어내자는 사인인가보다. 양어머니도 그걸 봤는지 다급하게 외쳤다.

“오베르 경은, 그쪽은 확실히 내가 아니라는 증거가 있어요! 자살이라는 증거가......!”

이 몸의 아버지는 자살했다는 정보를 어부지리로 얻었다......

“어떤 증거입니까?”

“서재, 서재에 있으니까 바로 찾아올 수 있어요. 조금만 기다려주면......”

“몇 층입니까? 어이, 따라와.”

덩치 큰 경관이 현관 문 쪽에 있던 다른 경관 몇 명을 불러냈다. 경관들은 양어머니를 빙 에워싸고 함께 위층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제릴도 나에게 슬쩍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따라서 계단을 올라갔다. 으으음, 나도 저걸 따라가야 할까 약간 고민했지만, 결국 다른 쪽을 골랐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쥐고 서있는 선셋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만일 증언이 사실이라면 맘고생이 많았겠지. 의심만해서 좀 미안하다.

“저기... 선셋?”

선셋은 다가오는 나를 쳐다보더니,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게 대답했다.

“저를 부르신 건가요?”

“그렇지? 선셋이라고 불렀잖아.”

“......”

선셋은 어쩐지 난감한 기색이었다.

“죄송하지만 아가씨, 제 이름은 선셋이 아닙니다. 누군가와 착각하신 모양입니다.”

이건 또 무슨 겁나게 수상쩍은 소리세요. 널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생각한 게 오초 전이야.

“분명 선셋이라고 불러달라고 했었는데......”

“제 이름은 해서 화이트입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폐만 끼쳐 아가씨께는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 저택의 하녀일은 즉시 그만뒀습니다. 그동안 따듯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설마 거지같은 알바 그만하면서 사장한테 맛 좀 보라는 식으로 지금 그만두는 판에 나 찜찜하게 하려고 이러는 거 아니지? 그렇지?

나는 내게 크게 허리를 숙이는 선셋, 아니 해서 화이트라는 또래 소녀를 보며 그대로 멘붕했다.

더 환장할 노릇은 양어머니가 경관들에게 끌려 내려왔을 때 발생했다.

“아악! 아니야! 분명히 거기에..., 거기 있는데......!”

“아니, 이렇게 뒤져서 안 나왔잖습니까! 거, 그건 이쪽에서 따로 수색해보겠습니다. 시간 끌지 마십시오!”

“이럴 리가, 이런......”

갑자기 양어머니가 내 쪽을 돌아보며 눈을 희번덕였다.

“로제.”

서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장난 아니었나봅니다. 눈빛이 달라지셨어요 양어머님......

“절대 아무도 믿지 마세요. 절대로!”

그 말을 끝으로 경찰은 양어머니를 질질 끌고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해서 화이트도 내게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얼른 그쪽으로 따라간다.

쾅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닫히고, 곧 저택에 정적이 드리웠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넋 부랑자가 되었다.

허허, 원래 이쯤 되면 보통 다른 사람 시점을 좀 읽어줘서 독자는 전말을 알아야 하는 건데 나는 빙의해버려서 읽을 수가 없네? 나도 원작소설내용 알고 있는 곳으로 좀 빙의시켜주지 그랬어요 로판요정님......

모르겠다. 약혼자 얼굴이나 보면서 힐링이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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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아수라장이었다.

5분 전까지는 그 소리 지르며 우는 개구리들 사이에서 홀로 당황하는 개구리 짤 같은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고요해졌다. 그때서야 나는 생각이라는 걸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상황을 정리해보자.

양어머니? 엄청 수상하다.

하녀 선셋? 굉장히 수상하다.

하지만 둘 다 악역이라고 의심할만한 정황이 있는 거지, 아예 단정지을만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양어머니는 너무 억울해하며 끝까지 날 걱정했고, 선셋도 정말 나한테 미안해하는 것 같기도 했지. 그렇다면 이건 어쩌면 오해로 상황이 어그러진 거고, 이걸 내가 멋지게 풀어야하는 전개일 수도 있다.

혹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그쪽을 조력자로 맞아서 결말을 보는 것도 예상 가능한 루트다. 음. 하지만 역시 그건 로판 초심자들이나 하는 선택이다. 나는 그 시기는 지났다.

아니면 둘 다 손절하고 무시하는 방법도 있다. 현실적으로는 가장 안전해보이지만 로판적으로는 서사 상 가장 위험하고...... 언제 반전으로 뒤통수 맞을지 모른다는 이상한 불안감이 든다.

고로 나는 가능하다면 둘 다 공략 가능성을 변함없이 열어두자!

혹시 공략하다가 슬슬 본심이 보여서 누군가 감당 못할 악역인 것 같으면 손절하면 된다! 재력이 있으니까 할 수 있을 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상비용 무기도 하나 준비하고.

...근데 그건 그렇고 솔직히 공권력이 개입하니까 마음이 놓이긴 한다. 혹시 지금 용의자 중에 범인이 없고 진짜 흑막이 있어도 이렇게까지 수사가 들어온 이상 바보도 아니고 지금 이 몸을 암살하려고 하지는 않겠지. 휴우.

그럼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로구나.

나는 종종걸음으로 현관을 벗어나 제일 큰 응접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콘솔에 위의 전화기를 번쩍 집어 들었다. 다이얼을 돌려 신호음이 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마이어 테일러 탐정 사무소입니다.”

“얼마 전에 오베르 집안에 대해서 의뢰했던 사람인데요.”

“아하, 아가씨! 안 그래도 연락을......”

“추가 의뢰하겠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덧붙였다.

“그 저택 안주인인 엠마 자우어와 하녀로 일했던 해서 화이트에 대해서 조사해주세요.”

일단 프로필 좀 뽑자!

“어...... 나야 돈 벌고 좋은데요, 아가씨.”

청년탐정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다가, 좀 진지해진 채 말을 끝냈다.

“우선 내 말을 좀 들어봐요. 1차 조사를 방금 끝냈거든요.”

네? 벌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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