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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인 줄 알았는데 괴담이다-25화 (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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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잠깐! 나는 타오르는 금전 욕구를 진정시키며 정원사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이 집 정원에 묻혀있었다고 해도 찾아낸 사람 공이 있지. 혹시 정말로 이걸 힌트로 보물을 찾으면 나눠야한다.

“이거 꼭 무슨 보물이 숨겨진 장소 암시 같네!”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소년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나는 약간 뭉클했다. 와, 자기도 그렇게 생각했으면 그냥 가질 수도 있었는데 집주인한테 보여준 거야?

“근데 이거 나 줘도 괜찮겠어? 그래도 찾은 건 너잖아.”

간신히 보이는 정원사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아가씨에게 적합한 물건인 것 같아서요.”

크으, 시대에 보기 드문 준법정신...... 아니, 이렇게 도덕적인 애가 왜 몰래 작업하고 있는 거지? 나이 때문에 고용을 안 해주나?

조심스럽게 말해보자.

“저기, 집사한테 들었는데 이 저택에 너 또래의 정원사는 없다고 하더라.”

“그래요?”

반응이 태평도 하다. 어휴.

“그래. 이렇게 몰래하지 말고... 차라리 정식으로 고용되는 건 어때? 집사한테 말해볼게.”

“고용?”

어라, 정원사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살짝 고개를 숙인 정원사가 장미를 다듬던 도구를 공구함에 꽂는다.

어, 얘 화났나?

“본인은 고용되지 않습니다.”

“......그래?”

“단지 주인의식을 가지고 장미를 돌보는 중...이죠.”

정원사 선셋은 완전히 몸을 돌려 장미를 바라보더니, 자신이 잘라낸 가지부분을 쓰다듬었다.

그래 알았다. 이거 완전 예술가 기질 있는 청소년에게 중2병 왔을 때의 증상이야.

‘크크큭.... 나를 감히 고용하려 하다니... 저는 그런 자본주의적 천박한 사유로 움직이지 않.는.다.구.요? 단지 내 예.술.작.품에 대한 주인의식만이 전부인...... 이 고독한 예술세계를 모르는 평범한 인간이란......’

요정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창피할 정도로 전형적인데... 어흐흑. 분명 야밤에 주로 작업하는 것도 자신의 고독하고 마이너한 예술 감성을 돋보이게 하려고일거야. 나는 내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끼며 가까스로 대답했다.

“그래, 주인의식...... 좋지. 책임감은 정말 좋은 덕목이야......”

“책임감... 그런 깊이 없는 단어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요.”

그래 시발 맘대로 해라. 나는 모든 걸 포기했다.

“그래. 깊은 예술혼... 많이 불태우고. 아무튼 이건 고마워.”

“......별 말씀을요, 오베르 아가씨.”

소년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와, 이렇게 보면 괜찮은 애 같은데. 질풍노도의 시기란 정말 알 수 없구나. 나는 아마 소년 정원사 못지않았을 내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에 일단 자리를 뜨기로 했다.

선셋이라는 별명에 대해 물어봐야하는데 도저히 길게 이야기를 못 하겠어. 빨리 하자.

“저기... 그때 선셋이라고 불러달라고 했잖아.”

“네.”

“그럼 본명은 뭐야?”

“잊어버렸네요.”

그렇구나...... ‘예술에 취해 나의 본명도 기억나지 않아...... 나는 그저 고독한 정원사일 뿐.’ 그런 거지?

더 이상 대화는 내 항마력이 부족해서 못하겠다. 나는 황급히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 그렇구나. 아무튼...... 예쁜 정원 고마워.”

“아, 오베르 아가씨. 이제 곧 장미에 물을 줄 건데, 보실래요?”

“어? 그게......”

제안은 고마운데 진짜 안 되겠어. 너 막 물 주면서 ‘나의 흑수룡(워터 토네이더)이 그리는 [흩날리는 예술의 길]! ’같은 소리할 거 같아. 내 입아, 빨리 아무거나 급한 일을 대고 자리에서 벗어나자고! 응?

그때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로제?”

“무어 경!”

저택에서부터 약혼자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와 씨 약혼자야 네가 이렇게 반가운 건 정말 처음이야 날 좀 도와줘. 이대로는 내 항마력이...!

곧 약혼자가 내 옆에 서자, 소년 정원사는 그쪽을 힐끗 쳐다봤다.

“약혼...자?”

“아, 응. 내 약혼자야.”

너는 야밤에만 주로 출몰하느라 본 적 없겠지만 이런 사람이 있었단다.

“......”

정원사는 그냥 웃고 있는 것 같다. 약혼자는 나를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로제, 마담 자우어의 딸이 당신을 찾더군요.”

“어? 진짜요?”

맞다, 의붓오빠 찾아가던 길이었지! 마침 잘 됐다. 얼른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나는 약혼자의 팔목을 잡고 같이 뒤로 돌려고 했지만, 부드럽게 거절당했다.

“이쪽은 제가 잘 이야기해두겠습니다. 걱정 말고 가보세요.”

“아... 고마워요!”

중2병 소년까지 신경써주는 이 시대의 진정한 인성,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얼른 저택으로 향했다. 기다려라 제릴,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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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기 있네.”

깜박하고 어디서 부르는지 안 듣고 와서 이 근방 한참 찾았다 이놈아.

“불만 있어?”

의붓오빠가 쏘아붙였다. 그래도 우울해보이진 않는다. 팔팔해 보여서 다행이다. 나는 서재의 거대한 책상 앞에 앉은 제릴에게 다가갔다. 의붓오빠는 보고 있던 것을 황급히 덮더니 물었다.

“여기는... 무슨 일로 왔는데?”

“음? 부른다고 그래서 왔는데?”

“......뭐라는 거야.”

제릴이 고개를 휙 돌린다. 왜 자기가 부르고 저러는 거지. 양어머니 사이에 막아줄 때부터 더 의심스럽더니 이 설정은... 역시 서브남인가.

아냐, 일단은 더 중요한 것부터 생각하자.

“이거 한 번 봐봐.”

나는 다짜고짜 양어머니에 대한 화제를 꺼내는 대신 보물 수수께끼 내용이 적힌 쪽지를 꺼냈다. 이걸로 내가 금전적인 부분에서까지도 이렇게 너를 신뢰하고 있다는 점을 우선 어필한 뒤 양어머니에 대한 질문으로 들어가마.....!

의붓오빠는 어쩐지 좀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한 손으로 툭 낚아채듯 쪽지를 받아들었다.

“뭔데?”

“이게 아마도 보물을 숨겨둔 수수께끼 같거든? 혹시 이 저택에서 이 내용에 맞을만한 장소... 야야!!”

미친 왜 던져! 나는 쪽지를 펼치자마자 도로 뭉쳐서 던져버리는 제릴을 보며 기겁했다. 심지어 창문 밖으로 던졌어!?

“야, 찾기 싫으면 말로 하지 왜.....”

“찾을 생각도 하지마!”

제릴이 양손이 모두 하얗게 될 정도로 주먹 꾹 쥔 채 소리를 질렀다. 책상을 박차고 일어난 의붓오빠는 마치 버린 쪽지가 쫒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창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 흐느끼듯이 중얼거렸다.

“이 저택에서... 이 저택에서 뭘 찾으려고 하지 말라고......”

얘는 또 왜 이러냐. 역시 아닌 척 했지만 양어머니가 잡혀간 충격이 컸나. 그래서 양어머니가 서재에서 무슨 증거를 찾으려고 애썼던 장면이 너무 뇌리에 박히는 바람에 이 저택에서 뭔가를 찾아내려는 행위 자체에 거부감을......

“내가, 내가 왜 여기서 고기를 안 먹는지 알아?”

아, 아뇨. 근데 그것도 궁금하긴 합니다. 혹시 남다른 이유가 있던 거였나요?

사실 방금 제가 로판 캐해석을 한편 뚝딱 하려고 했는데......

“이 저택에서는... 여기서는......”

제릴이 털썩 자리에 다시 앉았다. 꾹 쥐고 있던 양손은 어느새 펴져서 얼굴을 온통 가리고 있었다. 헉. 너무 반응이 과한데, 정말 무슨 심각한 문제라도 있는 걸까?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안색을 살피려 노력했다.

혹시 이 저택 자체가 불편했던 걸까? 음, 가능성이 있다. 5년 전이면 한참 예민한 청소년기였을 텐데, 갑자기 사는 환경이 바뀌고 또래 이성이랑 같이 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 저택의 실소유주였던 이 몸의 아버지도 급사했지. 아무리 양어머니가 내 보호자로 소송에 승리했더라도 제릴 입장에서는 마치 얹혀사는 모양새로 이곳에 있는 것이 가뜩이나 불편했을 것이다. 거기다 학교도 가지 않은 채 이 저택에서 혼자 있으면서 충분히 저택이 지긋지긋해졌을 법도 하다.

제릴은 천천히 숨을 몰아쉬는 것 같았다. 등이라도 두드려주는 게 나으려나? 엉거주춤 일어나는데 갑자기 그쪽에서 크게 숨을 들이켰다. 공기가 들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컸다.

“나, 나는......”

“응응.”

편하게 속을 터놓을 수 있도록 적절히 호응해주도록 하자.

“여기 오고 난 뒤로... 계속 꿈을 꿔. 어떤 남자가......”

남자? 혹시 재혼한 이 몸의 아버지? 아니면 제릴의 친아버지일까?

하지만 제릴은 말을 이으려다가 계속 더듬거리더니 실패했다. 이윽고는 그 말을 잇는 것을 포기한 듯. 체념하며 문장을 흐려버렸다.

“......”

그리고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재촉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

의붓오빠는 바닥을 보며 낮고 느리게 중얼거렸다.

“이 저택 밑에는... 뭔가가 있어.”

“음?”

이건 또 갑자기 무슨 소리야. 혹시 뜬금없이 보물이야기로 돌아온 거 아니지?

※※※

근무수칙

16. 성공적으로 삭제됐습니다.

17. 16번 근무수칙의 내용을 알아내려고 시도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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