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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인 줄 알았는데 괴담이다-27화 (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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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턴하나와 기록용 사진기를 챙겨들고 힘차게 지하실로 떠나...려고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문이 잠겨있다.

“열쇠 달라고 해야지.”

사실 별 문제도 아니긴 하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집사 분을 찾아갔다. 아 맞다. 양어머니 서재 열쇠도 받으려고 했었지? 그냥 저택 전체 열쇠를 달라고 해야겠어.

하지만 집사 분은 식재료를 구매하러 외출 중이셨다. 일반 사용인들은 열쇠에 손을 댈 권한이 없다고 해서 그냥 가져간다는 쪽지를 남기고 임의로 집어왔다. 아, 여분의 서재 열쇠도 같이 챙겼다. 어차피 이 몸이 집주인이니까 상관없겠지 뭐.

지하실 문에 열쇠를 넣고 돌리자 부드럽게 달칵 잠금이 풀렸다. 아래로 뻗은 계단이 랜턴 빛에 잘 보였다. 빠른 걸음으로 후다닥 내려가자 지난번처럼 와인이 줄지어 담긴 선반과 서랍장이 나타났다.

음, 우선 쪽지에 적힌 것과 비슷하게 생긴 와인병을......

“...다 똑같이 생겼네?”

그러네. 라벨만 다르고 병모양은 다 똑같네. 규격이 있나봐. 나는 허탈함에 허허 웃었다.

그럼 일단 아무 와인이나 하나 뽑아서 살펴보자.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와인을 쑥 뽑아들었다. 고풍스러운 글씨로 ‘달콤한 순간’ 같은 말이 적혀있는 것 같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단맛이 나나보다.

아, 그러고 보니 서랍에 와인목록이 있었지! 수수께끼 쪽지에 적힌 내용하고 비슷한 이름이 있는지 한 번 찾아볼... 으아아악.

“망한......”

망했다. 서랍을 열다 와인병과 부딪혔다.

와인이 깨진 유리 틈으로 콸콸 쏟아진다. 으아아 도움!!!

하지만 속절없이 와인은 서랍장을 적시고 줄줄 서랍 안에 고이기 시작했다. 장부, 장부라도 살려야한다! 나는 수습을 포기하고 대신 이미 반쯤 젖은 장부부터 꺼냈다.

깨진 와인을 바닥에 내려놓고 장부를 펼치자 시큼하고 쾨쾨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약혼자가 와인 질이 별로 같다더니 보관을 잘못했는지 완전 상한 모양이다. 으윽.

설상가상으로 장부내용마저 번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으음... 랜턴보다 밝은 게 있으면 좀 보이려나? 챙겨서 밖으로 나가봐야겠다. ...나가는 김에 청소도구도 좀 들고 오자. 으으흑. 나는 이미 와인이 잔뜩 고인 서랍 안으로 몇 번 장부를 털어주고 미련 없이 뒤로 돌았다.

그때,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드드드드득......

돌이 맞물리는 소리다. 황급히 뒤로 돌자 놀랍게도 서랍장이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어어억!!”

나 이거 알아! 방탈출하는 예능에서 봤어!!

와 대박, 설마 수수께끼 쪽지에서 부으라는 게 와인이었어?! 실수해서 날로 먹었네, 역시 주인공 보정은 놀라워! 나는 허둥지둥 장부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황급히 그 근처로 가서 랜턴을 들이댔다.

놀랍게도 더 아래로 통하는 동굴이 보인다!

높이는 농구선수 키 정도로, 인공적으로 뚫은 것처럼 보였으며 굉장히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팍팍 풍겼다. 계단도 조성되어있었는데, 이끼가 잔뜩 낀 낡은 목재가 말 닿는 바닥 쪽에 덧대어져있다. 부서진 틈 사이로 돌이 보이는 걸 보니 아마 제법 예전에 돌계단 위에 설치한 모양이다. 꼭 두 명 이상 올라가면 부서질 것처럼 생겼다.

더 가까이 랜턴을 들이대니, 바위를 대충 깎아 만든 것처럼 거친 동굴 벽면에 빼곡하게 고대문자같은 것이 적혀있는 것도 보인다.

오오... 인디아나 존스... 이거 인디아나 존스 생각난다. 이 길 끝에서 금방이라도 황금 원숭이 상이 발견될 것 같은 느낌이야.

그렇다는 건 혹시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니 극도로 조심하면서 전진해야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나는 말 그대로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듯, 한 걸음마다 앞의 계단을 탁탁 건드려보며 천천히 한 걸음씩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법 걸어 내려가도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점차 방만해지기 시작했다. 내려갈수록 고대문자가 작고 빼곡해지는 것 외에는 변화조차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랜턴에 이미 육안으로 끝이 확인된다. 아마도 통로로 이어지는 것 같다. 습기 때문인지 어두운 색으로 군데군데 젖어있는 목재를 틈틈이 피해가며 아래로 꿋꿋이 내려갔다.

물론 중간 중간 멈춰 서서 벽과 바닥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분명 양어머니가 옛날 말로 된 서적을 번역하는 일을 했다고 하셨으니까, 혹시 서재에 사전이라도 있다면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음, 좋은 예감이 든다.

그렇게 마침내 계단 끝에 발을 디디자, 짧은 통로너머로 이어지는 넓은 공간이 보였다.

그리고 구조를 파악하기도 전에 저 끝에 번쩍거리는 뭔가가 마치 클로즈업된 듯이 눈에 팍 들어왔다.

저건 분명 가운데 번쩍거리는 큼직한 루비가 박힌 황금장식이다.

미쳤다. 금전운이 돌았다.

“치, 침착해.”

나는 심호흡을 했다. 인디아나 존스까지 갈 것도 없어. 램프의 요정이 나오는 모 만화영화를 기억하자. 혹시 함부로 손을 댔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게다가 정말 드래곤 레어라면 저거 하나만 있을 리가 없어, 미끼 보물일 수도 있다고!

그러니 일단 사진부터 찍자.

나는 통로를 와다다 뛰어서 공터로 이어지기 직전에 사진기를 들었다. 경쾌한 셔터음과 함께 사진 몇 장이 찍힌다.

자, 이제부터는 몹시 천천히, 주변을 잘 살피면서...... 아주 천천히 접근해보자. 그리고 갑자기 어디선가 사람이 튀어나와도 놀라지 말자, 분명 사람으로 변신한 드래곤이다. 물론 의붓오빠의 말이 맞다면 아직 자고 있는 중이니 그럴 확률은 낮겠지.

그럼 갑자기 나도 ‘일어난다, 도래한다.’ 같은 말이 들려도 놀라지 않고 얼른 여기서 튀는 걸로 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올라가는 걸로. 그게 드래곤과 연관된 감금플래그인지 연애플래그인지 모르는 판에 굳이 위험을 무릅쓰지 말자는 뜻이다.

하지만 슬금슬금 공터로 나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좀 머쓱해져서 랜턴으로 주변이나 더 살펴보기로 했다.

우선 생각보다 거대한 공간이다. 학교 운동장 절반정도의 크기로 어딘지 어설픈 반구형이었다. 아마도 장식이었을 다 부서진 조각과 장식들이 몇 가지 눈에 띄었고, 벽마다 다 찢어지고 색 바랜 거대한 천 쪼가리들로 가득한 게 제법 인상적이었다.

아마 다 낡아서 자연 풍화된 휘장이나 태피스트리들이겠지. 어쩌면 과거에는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한 멋진 공간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풍화되고 낡은 유적지처럼 보였다. 나는 몇 번 더 사진을 찍고서 천천히 앞으로 전진 했다.

점점 보물이 가까워지고 있다.

후하후하 진정하자. 되새겨라. 이 몸은 저게 없어도 엄청난 부자다. 금수저를 넘어선 다이아수저, 어쩌면 석유왕의 후계자일지도 모른다.....

약간 진정이 됐다.

하지만 충분히 가까워지고 나니, 보물이 생각과는 약간 다른 모양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

큼직한 루비가 붙은 왕관이나 목걸이를 예상했지만, 그건 거대한 루비가 든 빛바랜 황금상자처럼 보였다.

아니, 루비가 맞긴 한가? 자세히 보니 안에 든 보석이...... 잠깐, 보석도 아닌 것 같은데? 검은 수정에 빨간 광선 같은 게 꽉 차있어서 루비로 보였던 것 같다. 무슨 야광처럼 번쩍거린다.

어, 게다가 주변에 뭔가 이상한 게 붙어있는데.

저거 설마 근육인가?

꿈틀.

“히이이익.”

순식간에 다섯 걸음 물러났다.

저거저거 뭐야. 보석이 아니잖아. 누가 봐도 함정이잖아. 이 집 지하에 잠든 드래곤이 멍청한 건지 성격이 더러운 건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대놓고 ‘나는 평범한 패물이 아니오.’라고 외치고 있다.

심지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잠깐, 살아있다고?

“드래곤 하트다.”

이건 드래곤 하트야. 나는 반사적으로 사진을 한 컷 더 찍었다.

이 범상치 않은 모습. 살아있는 것 같고 보석 같은 결정체. 안에 든 붉은 선들은 마력일 거라고 감히 예상해봅니다.

그래서 나는 미련 없이 공터를 떠나 다시 지하실로 올라가기로 했다.

왜 이게 대놓고 여기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드래곤 하트 건드려봤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손을 대지는 않는다. 최소한 약혼자한테 부탁한 권총이라도 확보하고 건드려야......

아 맞다, 약혼자!

그 중2병 정원사하고 대화는 잘 끝났을까 모르겠다. 물론 지금까지 본 약혼자의 인성 상 별 문제없이 타일렀을 것 같긴 하다. 나는 터벅터벅 동굴계단을 올라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별 일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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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 제가 정원에서 실수를 저지른 것 같습니다.”

내 방에 사진기와 랜턴을 두고 1층으로 내려오자마자 약혼자가 난처한 표정으로 현관으로 달려와서 한 말이다.

한손에는 뭔가가 들려있다. 다시 보니 정원사가 장미 손질하던 공구 같다.

“죄송합니다. 한 번 확인해주시겠습니까?”

설마 애 혼낸다고 공구 다 뺏어서 돌려보낸 건 아니지요? 그런 극단적인 방법은 안 썼을 거라고 믿습니다. 선셋 울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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