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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인 줄 알았는데 괴담이다-28화 (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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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약혼자의 말대로 정원에 같이 가보기로 했다.

이동하는 내내 무어 경은 어쩐지 좀 초조해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내 의심은 더 증폭됐다. 진짜 애 울려서 나더러 같이 좀 달래달라고 하는 건 아니지......? 그럼 혹시 모르니 서브남 후보들과 서로를 더 알아가는 과정을 가지겠다.

하지만 아까 정원사를 만났던 그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약혼자가 당황한 원인이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장미나무 몇 그루가 이리저리 박살 나있다.

가지는 온갖 방향으로 부러졌고 몸통도 웬 커다란 찍힌 자국투성이다. 장미도 다 으스러졌다.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정원 한 구석이 이렇게 작살이 나다니 더 눈에 띄어서 말 그대로 처참 그 자체다.

“무어 경......?”

이 부름은 이게 무슨 개판이냐는 의미다.

약혼자는 영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황급히 설명했다.

“사실 대화로 설득 후에 돌려보낼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관심사를 통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려는 시도로, 정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다 보니 얼떨결에 작별인사로 손질도구를 하나 받게 되어서...... 한 번 시험 삼아 작동시켜보려고 했는데, 제가 너무 서툴렀는지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

“정말 죄송합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복구해 두겠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그 빠른 시일이라는 게 정확히 며칠 내인지 들려주시겠어요? 아니 애매한 대답 말고 확실히 이 안에는 된다, 이런 의미로 잡은 최대기간 말입니다.’같은 말이 나왔어야한다.

근데 그러기에는 너무 귀엽다!!

아니 저렇게 시대극에 나올 것처럼 단정하고 금욕적인 차림에 얼굴은 겁나게 화려한 체구 좋은 정석미남이 자신의 어설픈 손재주에 허둥지둥 부끄러워하면서 미안해 죽으려고 하다니 으으윽 심장 폭격이 과하구나.

당황했는지 아직도 손에 공구를 들고 변명하려고 막 손을 저어대는 게 정말 장난 아니게 사람을 흐뭇하게 만든다. ‘어휴, 다 괜찮아요. 괜찮아. 까짓 장미나무 더 심으면 되는 거지, 어? 사람이 원래 막 실수하면서 일도 배우고 그러는 거야.’ 같은 대사를 쳐줘야할 것 같다.

그래서 실제로 쳐줬다.

“하하하, 아니 뭐 장미나무야 새로 심으면 되지요 뭐. 그보다 다치거나 하지는 않으셨죠?”

“네. 멀쩡합니다. 아, 장미대신 다른 나무로 심어보는 건 어떠십니까? 로제 양께서 원하시는 관목을 이야기해주시면 바로 발주를 넣겠습니다.”

정말 미안했는지 대답하는 억양이 한껏 진지했다. 말만 꺼내면 아주 정원을 다 갈아엎고 새나무를 심어줄 기세다. 물론 아까워서 그런 짓이야 안 하겠지만, 망가진 곳에 새로운 종류의 나무를 심는 것 자체는 포인트도 되고 좋을 것 같긴 하다. 사과나무나 복숭아나무 심으면 철마다 냄새가 죽이겠지?

“그것도 좋죠! 열심히 생각해볼게요.”

약혼자가 약간 긴장이 풀렸는지 그때서야 설핏 웃는다. 크으으윽 너무 좋군. 이게 바로 로판 주인공의 맛인가. 나는 내적 코쓱을 열 번쯤 했다.

그리고 떠올렸다, 사진기의 존재를.

어머 이건 찍어야해.

하지만 왠지 놀리는 걸로 받아들여서 기분 나빠할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잠시만요! 혹시 저희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을까요?”

“예? 사진...... 말입니까. 지금 상황에서는 조금 민망할 것 같군요.”

아니나 다를까 약혼자가 조금 머뭇거리다가 완곡하게 거절했다. 나는 문명인답게 ‘에이~ 튕기지 말고 한 장 찍자니까요?’같은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역시 좀... 그렇죠? 아, 나무 망가진 걸 찍자는 건 아니었구요,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우리끼리 한 장 찍으면 좋을 것 같아서 해본 말이었어요.”

저는 정말 놀리려던 의도는 없었다는 점을 어필하고 싶습니다!

“......예.”

근데 놀랍게도 약혼자가 갈등하는 것처럼 눈썹을 찌푸리더니, 곧 미소를 지으며 결정을 번복했다!

“그렇다면 한 장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짜릿한 반응은 틀림없이 지금까지 쌓아둔 호감도의 영향일 것입니다. 이 영광을 지금까지 제가 읽었던 K-로판에 바치겠습니다......

“네, 그럼 가지고 오겠습니다!”

“로제? 천천히......”

나는 후다닥 저택으로 달려가 내 방까지 단숨에 돌진했다.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고 자부한다.

다행스럽게도 일하는 분들이 복도에 안 계셔서 충돌사고 없이 내 방에서 사진기를 꺼내자, 창밖너머로 펼쳐진 정원 저편에서 약간 당황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약혼자가 보였다.

나는 마치 원숭이가 아기사자를 번쩍 들어 올리듯이 창밖으로 사진기를 번쩍 양손으로 들어올렸다.

약혼자의 표정이 없어졌다.

“로제 양, 뛰어내리시면 위험합니다.”

“에이, 왜 제가 멀쩡한 현관 나두고 굳이 뛰어내리겠어요?”

“......”

그때는 현관을 이용하기에 너무 급하거나 비밀스러운 특수한 경우였을 뿐이다. 지금처럼 안정적인 일상 상황에서 굳이 그럴 이유가 없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현관으로 향했다.

포토북을 향한 나의 열정이 넘친다!

그런데 정원에서 약혼자를 향해 사진기를 들자마자 질문이 들어왔다.

“함께 찍는 것 아니었습니까?”

“네?”

아니 그건 우리가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있는 모습을 찍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진을 찍는 순간을 공유하는 것으로... 저는 그쪽을 찍고 혹시 원하면 그쪽은 저를 찍는 단란한 시간이 어쩌구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만......

왜 서운한 듯이 눈 내리깔고 그러세요. 알았어, 알았다.

“어, 그럼 같이 찍을까요? 근데 찍어줄만한 사람이 없는데......”

“사용인을 부르면 되겠군요.”

네. 그럼 그러세요.

결국 우리 둘은 정원까지 불려온 일하는 분의 도움에 힘입어 둘이 함께 서있는 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었다.

아까도 이렇게 가까이서 약혼자 얼굴을 보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적응 안 되는 얼굴이라 나는 그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야만했다.

아마 찍힌 사진은 안 친한 동기와 졸업사진에서 포옹하는 컷을 찍는 것만큼 어색하기 짝이 없었을 것 같지만 약혼자는 만족한 것 같으니 그걸로 됐다. 나도 약혼자 사진을 하나 더 건졌으니 만족한다. 일하는 분은 사진촬영이 끝나자마자 얼른 사진기를 건네주고는 목례 후에 저택 안으로 도로 들어가셨다.

아, 일하는 분을 보니까 정원사 소년은 어떻게 잘 해결됐을까 궁금해진다. 아까 약혼자의 뉘앙스는 마치 장미나무는 몇 그루 파괴했지만 일은 잘 끝냈다는 투였는데.

물어보자 약혼자가 자신감있게 대답했다.

“아, 그 자칭 정원사는 잘 타일러서 돌려보냈습니다. 앞으로 몰래 정원에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 감사합니다! 혹시 어디 사는지도 들으셨나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어, 그건 좀 아쉽다. 항마력을 기른 후에 한 번 더 대화에 도전해서 선셋에 관해서도 좀 더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게다가 제법 정이 들었다는 말이지.

나는 어쩐지 히든 루트가 닫힌 것 같은 묘한 아쉬움이 들었지만, 기껏 도와준 사람 앞에서 그런 티를 내는 것도 실례 같아 얼른 생각을 지웠다.

대신 내일 탐정을 만나러 가면서 경찰서도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선셋이 생각난 김에 해서 화이트(구 하녀 선셋)를 만나봐야겠다. 양어머니도 가능하다면 꼭 만날 수 있다면 좋겠고.

“그러고 보니 로제, 권총 구매 건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요?”

설마 벌써 구했나? 에이, 그건 아니겠지.

“아무래도 총기는 개개인에게 맞는 것을 고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괜찮으시다면 내일 오전이나 오후에 로만타운으로 총기를 보러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좋았어! 마침 외출하려고 했는데 약혼자 이벤트까지 보고 무기까지 챙기다니 이게 바로 일석삼조구나.

“오! 좋아요. 그럼 혹시 오전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약혼자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점심은 괜찮은 곳을 알아봐두었습니다. 분명 로제 양 입맛에도 맞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와, 이거 진짜 거절하기 그렇네. 미리 알아봐 뒀나봐. 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 죄송하지만 점심은 선약이 있는데요.”

“선약이요?”

약혼자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혹시 어떤 선약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웬만하면 내가 탐정을 만난다고 말하고 싶은데 하필 너희 가문 뒷조사를 의뢰해놔서 오늘은 안 되겠다. 미안하다!!

“친구를 좀 보려구요.”

“친구......”

무어 경이 밝게 웃었다.

“네. 즐거운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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