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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인 줄 알았는데 괴담이다-29화 (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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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망의 다음날 아침이 왔다. 약혼자는 번화가에 도착하자마자 아침을 못 먹어 공복상태인 나에게 아침 군것질거리를 권했다. 음, 바람직하군.

“드시고 계시면 곧 총포사에 도착할 겁니다.”

낯선 단어지만 대충 문맥상 총 파는 곳이라고 알아들으면 되겠지. 아니나 다를까 각종 총기와 무기가 진열된 곳이 도착지였다. 나는 문짝에 과시하듯이 거대한 사슴대가리를 붙인 것을 떨떠름하게 바라봤다. 고급과 야만 사이 어딘가의 인테리어였다.

차가 진입할 때부터 대기하고 있었는지 입장하자마자 직원들과 주인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달려와서 주문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저께 백화점의 재림이었다.

아니 나는, 그...... 있잖아요. 왜 K-판소에서 무기점가면 어쩐지 낡은 건물에 노익장 한 분이 뭔가를 담금질하고 있고 몇 번의 떠보는 문답과 인정 끝에 ‘이 놈이 주인을 찾는 것도 10년만이군. 못 찾을 줄 알았는데.’ 같은 대사 쳐주시면서 전설의 레전드 무기를 주는 그런 상상을 좀 했는데...... 완전히 상업성의 끝을 달린다.

“이 권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선 사격유효거리가 특징적인......”

“다음. 더 가벼운 걸로 보여주십시오.”

거기에는 끝없이 다음을 외치는 약혼자가 한몫했다. 주인장은 솔직히 몇 번이고 총의 내력 같은 걸 말하면서 분위기를 잡아보려고 한 것 같은데, 약혼자가 내가 사고 싶은 조건을 사전에 들어두더니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싶으면 참지 않고 설명을 잘랐다.

와...... 이런 친구랑 같이 가면 환불도 15초 컷으로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그 과정을 통해 빠르게 후보군을 추리고 나서 내가 원하는 총기를 두 점 구매했다. 하나는 내가 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드래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은 제릴에게 선물로 줄 예정이다. 뒤숭숭한데 호신용품 있으면 좋지 뭐.

“이 리볼버가 연식도 아주 최근이고 재장전도 빠릅니다. 게다가 가볍고 안전장치까지 훌륭하니 정말 쓰시기 좋은......”

주인장이 계산을 진행하며 열심히 장점을 피력했다. 하지만 솔직히 귀에 잘 들어오진 않았다. 후하후하, 총기가 불법이던 국가에 살다가 직접 총기를 소지하게 되다니 이런 스펙타클한 일을 겪을 줄이야. 직접 받아드니까 더 실감이 난다.

하지만 동시에 리볼버라는 점에서 괜히 좀 두근거린다. 인디아나 존스도 리볼버를 썼거든!!! 건물 뒤편의 사격 연습장에서 몇 번 시범사격을 하며 작동법을 배우자 어쩐지 드래곤 하트 대탐험 경험까지 겹쳐져서 내가 인디아나 존스가 된 기분이다. 좋아, 왠지 드래곤도 사냥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기분만 그럴 뿐 실제로 싸우면 오초 만에 로제였던 육편이 될 테고 다행히 전개상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무튼 기분은 그렇다는 것이다.

“점심까지 시간이 약간 남았군요.”

“아. 그럼 혹시 사진 현상할만한 곳을 방문해도 괜찮을까요?”

혹시 시간되면 현상하려고 사진기 챙겨오길 잘했다!

“물론 괜찮습니다.”

약혼자는 웃으며 흔쾌히 동의했다.

“맡기신 후에 현상까지 시간이 걸릴 테니 점심식사하시고 오후나 다음날 찾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약혼자는 작지만 제법 전문적으로 보이는 사진관으로 안내해줬고, 나는 필름을 통째로 맡겼다. 암실을 들락거리시던 모자를 쓴 노인분이 약간 퉁명스러울 정도로 고개만 까닥거리셨다. ......어쩐지 총포사에서 느끼지 못했던 무기점 주인장 클리셰가 이쪽에서 느껴지는 건 착각인가. 아무튼 잘 현상해주실 것 같아서 기대가 크다.

그렇게 사진관까지 들리고 나오자 얼추 약속시간인 정오가 가까워졌다. 약혼자는 약속장소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했으나 내 쪽에서 거절했다. 사진관이 도시 외곽에 있어서 탐정이 알려준 식당과 상당히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이다. 사람도 많고 혼자 다니는 여자도 많아 보이니 나도 별 문제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엄청 빼입지 않고 적당히 외출복을 챙겨 입은 상태다. 탐정이 소개해준다는 맛집에 지난번 같은 차림으로 가면 부조화의 극치일 것 같았기 때문인데, 길거리의 사람들하고 비교해도 큰 차이 없는 것 같다.

“로제, 즐거운 점심 식사되시길 바랍니다.”

“넵. 무어 경께서도 오늘 하시는 일 다 잘 되길 바랍니다.”

“예. 정말 그랬으면 좋겠군요.”

약혼자는 사업관련 인물과 점심약속을 잡았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오후 내내 이 타운에서 일을 볼 예정이니 시간이 맞으면 같이 저택에 돌아가자고 한다. 아마 미안해서 굳이 연락안하고 저택에서 사람을 불러서 돌아갈 것 같기는 하지만 일단은 동의했다.

나는 차에 타는 약혼자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얼른 약속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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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네.”

늦어. 나는 이미 15분이 지난 시계를 바라보며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5분만 늦어도 ‘나 도착했는데 어디쯤이야?’라고 메시지를 보내며 살던 사람에게 이 소식 없는 기다림은 너무 가혹하다. 스마트폰 금단증상이 일어나려고 해......!

“아가씨, 애인이 늦나봐. 이거라도 좀 들면서 기다려요!”

“와, 어, 감사합니다...!”

호쾌한 인상의 중년 여성분이 내 앞에 주전부리를 탁 놓아주신다. 크림과 양념가루가 묻은 빵 몇 조각이다. 우선 굉장히 친절하신 분이군. 애인은 아니지만 감사합니다. 흐뭇해하면서 빵을 입에 넣자 와작와작 바삭한 식감과 강렬한 소스 맛이 느껴진다. 아주 좋군!

나는 혹시 탐정 놈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식사는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빵을 다 먹어치웠다. 마지막 조각을 입에 밀어 넣고 있을 때 즈음에서야 탐정 청년은 헐레벌떡 입구로 들어왔다.

“어후, 허...... 미안합니다. 많이 기다렸습니까?”

“좀 그렇긴 했죠.”

탐정은 내 맡은 편에 쓰러지듯 앉았다. 소매를 다 걷어 올린 팔과 다 젖은 목덜미가 탐정이 겪은 운동 강도를 알려주는 것 같다. 상태를 보니 전력질주한 모양이다. 나는 지각에 대한 추궁 강도를 한 단계 낮춰주기로 했다. 염치는 있구먼.

“왜 이렇게 늦었어요?”

“말도 마십시오. 내가 방금 도서관에서 발견한 게...... 아, 우선 주문부터 하죠. 기다리느라 고생했어요. 많이 시켜도 됩니다.”

“네네.”

사양 안 한다. 나는 내게 입모양으로 ‘애인이 아주 미남이네! 몸도 좋고!’ 같은 말을 소리 없이 벙긋거리는 주인장 분께 매출을 많이 올려드리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음식을 주문했다. 탐정은 배를 잡고 웃었다. 지갑 걱정에 해탈한 모양이었다.

이후 십분 정도 말없이 전투적인 식사시간이 흘렀다. 맛은 아주 훌륭했다. 그래서 마지막 고기파이 조각을 접시에 덜고 나서야 이 만남의 목적이 떠올랐다.

“그래서 뭘 발견했다는 건데요?”

“아, 이겁니다.”

탐정은 거의 다 먹은 빈 접시를 식탁 한쪽으로 밀더니, 들고 온 큼직한 서류가방에서 파일들을 꺼냈다. 그냥 보기에는 무슨 옛날 서류 필사본 같다.

“오베르 가문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던 중에 제법 흥미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탐정이 씩 웃었다.

“이 가문이 이 지역에 정착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그래요?”

“네. 원래 이 지역에서 시작된 가문이었습니다. 조사하다가 흥이 나서 왕정시대 이전까지 파고들어가니 흔적이 있던데요. 제법 명망이 있었던 모양이죠.”

탐정이 다른 필사본을 또 꺼내들었다.

“그런데 이백 년쯤 전에 이 지역에서 갑자기 도망치듯 사라졌던 겁니다. 당시에 하인과 재산 일체를 거의 두고 가서 소유권을 두고 지주들 사이에 분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흠......”

좀 비약적인 추측이지만 서사상 이건 아무래도... 드래곤이 엮인 각이지?

가령 축복을 내려주던 드래곤이 수면기가 올 조짐을 보고 도망쳤다든가...... 아니면 아들이나 딸이 드래곤의 반려로 찍혀서 안 주려고 도망갔다든가 하는 백스토리가 감지되는 군.

“그러다 갑자기 21년 전에 짠! 갑자기 돌아옵니다. 왜였을 것 같습니까?”

글쎄요. 드래곤이 깨어날 것 같아서?

“원래 오베르 가문의 소유였던 땅에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대박!”

갑자기 판타지에서 현대 자본주의로 초점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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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사진관 안은 고요했다. 무어가 걸어 들어오자, 바쁘게 암실을 오가던 노인은 깊은 잠에 빠져 정신을 잃었다. 카운터 옆 의자에 고개를 꺾고 쓰러진 그 인영을 감흥 없이 지나친 남자는 암실로 들어갔다.

암실에는 아직 약품에 담기지 않은 필름들이 가득했다. 남자는 그 중에서 자신이 손댈 것을 정확하게 찾았다. 하지만 필름은 이미 일부가 작업에 들어가 절반만 남아있었다.

무어는 이윽고 인화 중인 사진들 틈에서 자신이 찾던 사진들을 알아차렸다. 그 중 가장 마지막에 찍힌 사진이 가장 먼저 걸려있다. 남자는 혹시 모를 훼손도 개의치 않고 걸려있는 사진을 잡아 뽑았다.

익숙한 남자와 눈에 익은 여자가 붙어서 찍은 사진이다.

“하.”

남자는 이상하게도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참지 못하고 소리를 냈다. 머리와 심장에서 불쾌한 감각이 휘몰아치는 그 느낌에, 남자는 이를 악물었다.

로제의 약혼자는 떨리는 손으로 거칠게 사진을 반으로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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