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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인 줄 알았는데 괴담이다-30화 (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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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서 자본주의 뇌가 친절하게 탐정의 말을 해석해주고 있다. ‘석유왕의 꿈, 어쩌면 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와아악 가진 적 없던 망상같은 꿈이 갑자기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침착하려 애쓰며 탐정의 나머지 말을 기다렸다. 탐정은 내가 대박을 외친 것이 단순히 자신의 조사내용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싱글벙글 별 동요도 없다.

“아, 물론 예전 토지를 전부 돌려받은 것은 아닙니다. 점유권 등 문제로 꽤 복잡한 소송을 통해 절반정도만 되찾았다고 하던데요.”

괜찮다. 애초에 전체 토지가 얼만큼인지도 모르는 판인데 절반이든 사분지 일이든 그게 뭐 중요한 일이겠는가. 일단 석유 나는 땅이 있다는 게 중요하지!

“그래도 대단하네요.”

“뭐, 그렇긴 하죠.”

탐정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짓궂은 어조로 덧붙였다.

“물론 아가씨도 대단한 부자겠지만 어쩌면 오베르 가문의 대저택을 매입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요?”

“시도해 봐서 손해 볼 건 없죠 뭐.”

“거참 호쾌한 발언이군요. 마음에 듭니다.”

탐정은 물 한 잔을 단숨에 들이키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아, 저택조사 건은 내일 저녁에 연락주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굉장히 내력이 오래된 저택인 건 확실합니다.”

“혹시 예전에 오베르 가문이 살았던 저택인 건가요?”

“안 그래도 그것부터 가능성을 봤는데, 아니더군요. 오베르 가문이 살던 곳은 시내중심부에 있어서 타운 조성공사 중에 싹 밀렸다고 합니다.”

괜히 아쉽다. 지금 이 집이 가문의 옛날 저택이었으면 드래곤 관련서사가 더 확실하게 연결될 텐데. 지금은 어쩐지 추리가 연결되지 않는군. 내일 조사결과를 듣고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아, 추리하니까 따로 의뢰했던 두 사람에 대한 조사도 생각났다.

“그, 추가로 의뢰했던 두 사람에 대한 조사진행은 어떤가요?”

“아 엠마 자우어와 해서 화이트.”

탐정은 인상을 찌푸렸다.

“우선 엠마 자우어는 이 지역에 넘어오기 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더 정밀한 추적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학위도 확인했다는 증언만 있고 어디를 졸업한 건지, 언제 졸업한 건지 아무 자료도 없는 점이 걸리는 군요. 일단 개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펴볼 예정입니다.”

“음, 네.”

개명이라, 로판에서 개명이라고 한다면 관련된 여러 막장전개가 떠오르는 데요. 다른 사람인 척 나타나 주변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여러 스토리들이 예고 없이 떠올라 머리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서 화이트는 고용기록부터 확인 중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내일 중점적으로 알아볼 생각이고, 혹시 약속한 기간 내로 못하면 환불조치도 되니 걱정 말아요.”

탐정은 제법 자신만만해보였다. 그리고 나는 오늘 외출한 김에 경찰서에 가려고 했던 일정을 꼭 수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아, 마지막으로...... 로제 오베르의 약혼자에 대한 조사가 있었죠.”

“네네.”

탐정이 간단히 말했다.

“없습니다.”

“네?”

아니 있는데요.

“공식적인 약혼자는 없었습니다. 최소한 이 지역의 상류층 커뮤니티에서는 아무 소식도 낌새도 없다고 하더군요.”

“아하. 네.”

그러고 보니 무어 경은 다른 지역의 대지주 상속자라고 했었다. 가뜩이나 은둔 생활하는 이 가문이니 다른 지역 사람이랑 약혼한 건 정말 소문도 돌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지. 에이 괜히 의뢰해서 돈만 썼네.

하지만 방금 석유왕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서 그런지 그다지 아깝지는 않았다. 석유 최고!

“아가씨는 약혼자가 있었죠? 어때요, 잘 해줍니까?”

“네.”

얼굴, 인성 그리고 재력. 세가지 덕목을 모두 갖춘 로판 남주의 정석입니다.

하지만 단호한 단답에도 탐정은 눈을 찡긋거렸다.

“가끔은 약혼자말고 애인과 지극히 개인적인 연애를 하고 싶어지진 않습니까?”

되게 서브남으로 입후보할 것 같은 대사를 치고 있다.

“글쎄요. 별로 그렇지는 않아요.”

“이런, 아쉽네요. 부자친구보다는 부자애인이 좋은데.”

탐정이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네네. 그래도 서브남 안 되고요, 친구로 합시다.

이후 마침 서빙이 된 푸짐한 후식을 먹으며 얼마간 대화가 끊겼다. 충분히 즐긴 뒤 마지막으로 느긋하게 음료를 마시며 생각했다. 그래도 이 탐정친구...... 나랑 먹는 취향이 비슷한데? 갑자기 마음에 든다.

그리고 탐정은 점심식사 후에 나른해지기는커녕 더 기운이 넘치고 팔팔해졌다. 머리에 당이 공급돼서 그런 걸까?

“이건 원래 우리가 약속을 잡은 이유입니다. 지난 조사 자료들이죠. 녹음기록도 전부 필사해뒀습니다.”

탐정청년은 서류 가방에서 파일과 쪽지를 뭉텅이로 꺼내 테이블에 툭 올렸다. 오, 이런 걸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인데? 신기하다. 들어서 넘겨보자 탐정이 빙긋 웃었다.

“가져가서 천천히 읽어봐도 됩니다. 남은 조사도 만족할 만큼 잘 진행될 테니 마음 놓고 있어요.”

“그래요, 그래.”

이건 슬슬 만남을 끝내자는 말이지? 나는 탐정이 넘겨준 종이 뭉텅이를 챙기고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탐정이 영수증에 돈을 끼워두고 황급히 따라 일어나는 것 같다.

“너무 서두르는데요? 다른 약속이라도 있습니까?”

“비슷해요.”

“괜히 부자가 아니라는 거네요.”

탐정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니, 돈 버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 어쩐지 민망하다. 금발의 호쾌한 미남은 문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을 얼른 따라잡더니 옆에서 계속 말을 붙였다.

“근데 이렇게 밖에 나오면서 수행원이 없어도 괜찮습니까? 듣기로는 부자들은 고용인들이 발 닦는 것까지 해준다고 하던데.”

“......많이 도와주기는 하죠?”

어느 정도냐면 처음에 빙의했을 때는 신분제 세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신분보다 무서운 자본의 지배였을 줄이야. 부디 월급을 많이 타가고 계시길 바란다. 혹시 아니라면 이 몸이 성인이 되면 바로 두둑하게 올려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문득 느낌이 싸하다. 오해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반말 쓰고 있었는데 이거 괜찮은 걸까? 갑자기 내가 빙의한 순간부터 반말쓰기 시작했던 거 아냐?

으헉, 오늘 집에 가자마자 제릴이 일하는 분께 어떻게 말하는지 관찰해봐야겠다.

내 혼란한 심정을 알 바 없는 탐정은 계속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고용도 직접 하는 겁니까?”

“아뇨. 다른 분이 해주시죠.”

아마도 양어머니나 집사 분이 해주시지 않았을까요. 아, 일단 이 탐정은 이 몸이 성인이 아닌 걸 모르니까 오해할 만도 하다.

“그래도 고용주는 아가씨 아닙니까?”

“그렇겠죠, 아마?”

일단은 로제 오베르의 재산을 마담 자우어가 관리해주는 것이니까 결국 이 몸이 고용주는 맞을 것이다.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라 잘 모르겠네. 대충 대답했지만 탐정은 만족한 모양이다.

“음, 잘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약속도 실속 있게 보내길 바랍니다.”

“그쪽도 좋은 하루 돼요.”

맛집을 소개해준 답례로 덕담을 보탰다. 탐정은 적당히 멋 부린 작별동작을 하고는 재빨리 가게를 나섰다. 발도 빠르네. 서브남으로 인정하기는 그렇지만 맛집탐방하는 부자친구정도는 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탐정 청년에 대한 평가를 올리며 카운터에 전화를 요청했다. 경찰서까지는 저택에서 차를 보내주면 그 차로 이동하도록 하자.

그리고 얼마 후, 마중 나와 준 차를 타고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강타했다.

“네?”

“이런 말씀 드리게 돼서 저희도 참 난감합니다만...... 일단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는 덩치 좋은 경관 앞에서 같이 식은땀을 흘리고 싶은 기분이 됐다.

“행방불명이요?”

“네. 해서 화이트는 지난 새벽에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어어억.

“아니, 정확히 말하면 피의자 겸 증인이 도주 중인 겁니다. 사안을 경미하게 보지 마십시오.”

무뚝뚝한 인상의 다른 경관이 끼어들더니 덩치 좋은 경관에게 쏘아붙였다. 그리고 나를 보며 침착하지만 우울한 어조로 대신 말을 이었다.

“면목이 없습니다. 피의자가 혐의점에서 크게 멀어지면서 다들 방심했습니다. 새벽에 갑자기 두통을 호소해서 의무실로 옮기자 창문으로 도주한 것 같습니다. 다들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수색 중이니 곧 발견될 겁니다.”

아냐 도주까지 일어나서 주인공이 알게되었는데 이게 아무 전개로도 이어지지 않고 싱겁게 봉합될리가 없어.

그러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경찰이 발견하기 전에 제가 납치나 습격당할 복선인 것 같은데요......?

아, 아니야 침착하자. 행복회로를 돌려보자구. 어쩌면 그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 도망친 해서 화이트(구 하녀 선셋)를 내가 먼저 발견해서 안정시키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걸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우리가 서로 더 가까워지고 오해를 풀며 진짜 범인을 함께 알아가는 전개로......

아니, 다시 보니 이건 남주하고 쌓을 서사같은데......? 아, 아닌가? 원래는 악역인 등장인물과 협력하게 되는 전형적인 빙의물 클리셰인가?

이제 나도 모르겠다. 그냥 권총이나 믿어야겠다. 권총 사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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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참.”

탐정은 자신의 사무실 의자에 털썩 앉으며 긴 한숨을 쉬었다. 한손으로 얼굴까지 가리고 있는 게, 누군가 청년의 지인이 본다면 닮은 사람이라고 오해할 만큼 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는 등받이로 깊게 몸을 기대며 눈을 꾹꾹 눌렀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될지 감 잡을 수가 없어.”

탐정은 책상 위에 놓인 카드목록에 시선을 던졌다.

카드목록 맨 첫 장에는 고풍스러운 필기체로 ‘사용인 근무수칙’이라고 적혀있었다.

※※※

근무수칙

18. 고용주 앞에서 이 근무수칙 목록을 절대 언급하지 마십시오.

========== 작품 후기 ==========

이번 편은 수정 전 버전을 실수로 업로드하여 다음날 아침 9시경 확인 후 고쳤습니다ㅠㅠ 죄송합니다!

+말씀해주시는 단어 오용과 오타들은 꾸준히 수정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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