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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행방불명인 구 선셋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양어머니라도 만나야한다는 강한 의지로 면회를 요청해봤다. 이벤트, 이벤트를 보자!
하지만 빛의 속도로 거절당했다.
“엠마 자우어는 현재 상태가 몹시 불안정해 면회를 진행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까부터 칼 같던 무뚝뚝한 인상의 경관이 칼같이 잘랐다. 그래도 업무방해가 안 되는 선에서 한 번만 더 이야기해볼까? 이럴 때는 역시 가족의 정에 호소하는 게 비논리적이지만 최고로 효과적이겠지!
“어...... 일단 제가 딸인데요,”
“혐의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피해당사자와의 면회가 힘듭니다. 게다가 딸이 아니라 법적보호관계 아니십니까?”
“......”
맞다. 유능하시네. 다 아셔.
이렇게 유능하신데 해서 화이트가 도망친 건 왜 모르셨는지 의문일 뿐이다. 원작 억지력이냐?
경관은 한결 누그러든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피의자 도주 때문에 불안하신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해서 화이트는 무기나 금전 없이 맨몸으로 탈출했기 때문에 위협적이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수색 이유는 재판에서의 증언문제 때문이 큽니다. 그런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무기나 금전은 구할 수도 있지 않나요?”
“그러기는 힘들 겁니다. 이 지역에 연고가 없다고 하더군요.”
연고를 숨기고 있을 수도 있죠......?! 오히려 연고가 없다는 점이 수상한데요?! 게다가 원래 탈주한 사람은 더 강해지는 게 장르물의 법칙이라구요! 하지만 경관은 완고했다.
“많이 불안하시다면 오히려 자택에 귀가하시는 편은 어떠십니까? 저희가 타운에서 나가는 운송수단을 검문 중이기 때문에 타운에서 도로로만 접근이 가능한 그 저택은 안전할 겁니다.”
합리적인 말이긴 했다. 게다가 여기서 막 타운을 돌아다니다가 해서 화이트(구 하녀 선셋)와 조우하는 전개,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다. 물론 우리 사이에 우정이 싹트는 이벤트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납치 및 습격 이벤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대지 않기로 했다.
내 목숨이 제일 중요해. 우선 튀자! 전략적 후퇴다!
물론 튀기 전에 해서 화이트가 발견되면 꼭 연락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경관은 단호히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관련해서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 경관 분이 좀 완고해보이긴 하지만 원리원칙주의자 같으니까 한 말은 지키겠지. 나는 스스로 납득하면서, 차를 타려고 종종걸음으로 경찰서를 나갔다.
“......전화 한 통만 쓸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오초 만에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혹시 기다릴지도 모르니까 약혼자한테 먼저 돌아간다고 연락은 줘야지. 무의식중에 있지도 않은 스마트폰으로 연락하려고 했네. 나는 고개를 꾸벅거리며 전화기를 빌렸다. 그러니까...... 약혼자가 알려준 건물의 전화번호가 이거였지.
잠시 연결음이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아, 무어 경!”
-로제 양?
목소리가 갑자기 사근사근해진다. 미남의 편애라니 이 맛이 로판 주인공의 맛이로구나. 캬. 급박한 상황도 잊게 하는 카타르시스!
아무튼 얼른 상황을 설명하자. 나는 경찰서에 면회를 와서 해서 화이트의 도주 소식을 들었으며, 혹시 모르니 먼저 귀가해야겠다고 전했다.
대답하는 약혼자의 목소리가 낮아지며 걱정이 담뿍 묻어났다.
-이런, 저도 금방 돌아가겠습니다. 염려마시고 얼른 저택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넵넵.”
-그리고 사진관에서 인화한 사진은 제가 찾아갈 테니 그 건은 신경 쓰지 마시길 바랍니다.
맞다 사진! 상황이 휙휙 뒤집혀서 잊고 있었다. 세심하기까지 하다니 나한테 없는 덕목을 갖추고 있어, 역시 남주야.
“와,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약혼자로서 당연한 일이지요.
약혼자는 그 외 타운에서 계획이 더 있었는지 조근조근 물었고, 나는 다른 볼일은 없다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최대한 빨리 돌아가겠습니다.
“넵. 아, 혹시 갑자기 사람들이 뭘 보고 웅성거리기 시작하면 뒤돌아서 반대방향으로 전력질주하세요!”
이런 상황에서 전형적으로 일 터지는 도입부에 휘말리지 말라는 의미에서 하는 조언이다.
-......
“무어 경?”
-물론입니다. 로제.
약혼자는 약간 늦게 대답했다. 그리고 마치 벼르던 것처럼 경관들의 안일함에 대한 탐탁지 않은 기색의 말을 몇 마디 덧붙이더니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정말 빨리 움직이려나 보다. 나는 행동력도 갖춘 그 모습에 더 흡족해하며 공손히 전화기를 경찰 분께 돌려드렸다. 나도 얼른 움직이자!
그리고 그대로 차에 실려 저택까지 쾌속 질주했다.
그 와중에 갑자기 로판의 유력한 납치 용의자가 낯선 마부라는 것을 깨닫고 운전기사 분을 경계했지만,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저택에 안전히 도착했을 뿐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운전기사 분 얼굴을 다 몰라서 누가오든 다 낯선 얼굴이었겠군. 나는 머쓱해하며 운전기사 분께 감사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운전기사 분이 주차를 위해 떠나시는 것을 배웅한 뒤, 천천히 정원을 걸어 현관을 향하는 중이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산책하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다. 그래봤자 며칠이지만 독살시도이후부터 너무 스펙타클했어. 그래도 이 고비만 넘기면 미남 배우자를 옆구리에 낀 석유왕 라이프야. 힘내자!
주먹을 불끈 쥐고 걸어가는데 마침 익숙한 난장판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 약혼자가 박살낸 장미나무들이다. 아직 일하는 분들이 손을 못 댔는지 아니면 약혼자가 자기가 하겠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전히 시원할 정도로 망한 꼴이 그대로다.
“어라?”
근데 자세히 보니 좀 차이점이 있긴 하다. 다 헤졌던 장미나무 몸통이 수액 같은 것으로 덮여져 굳어가고 있다. 아마 아직 나무가 죽은 건 아닌가보다. 살아남으려고 애쓰는구만. 나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영양제라도 꽂아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식물 영양제를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소년 정원사가 떠오른다. 자기가 약혼자에게 공구를 주긴 했지만 이 꼴을 봤으면 분명 기함했을 것 같다. 장미 엄청 좋아하던데 혹시 약혼자랑 상의해서 장미대신 다른 나무 심으면 열 받아서 다시 나타나는 거 아냐?
나는 소년이 흑수룡을 소환하려 드는 장면을 상상하며 웃김과 애잔함을 감추지 못했다. 참고로 애잔함은 10년 뒤 소년이 그 장면을 회상했을 때 느낄 감정을 향해 가진 것이다. 분명 회복에 시간이 걸리겠어.
나는 슬슬 웃김보다 침통함으로 감정의 추가 기우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현관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할 일이 많다. 우선 제릴에게 이 선물도 줘야하고!
물론 선물을 주기 전에 해서 화이트의 도망 소식부터 알렸다. 하지만 자기 어머니를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에 대한 소식을 듣는 것 치고는 제릴은 상당히 동요 없이 침착했다. 마침 웬일로 여장도 안하고 있네.
“그렇군. 혹시 모르니 조심해.”
이렇게 대답했을 뿐이었다. 흠, 마침 조심하자는 화제도 나왔겠다, 호신용 (살상)권총을 선물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군!
“그래야지. 아, 그리고 이건 선물!”
“......”
그리고 선물을 건넸을 때 제릴의 반응은 예상 외였다. 분명 여기서는 ‘무슨 속셈이야?’나 ‘일단 줘봐, 성의를 봐서 받는 거니까!’ 같은 대사가 나올 줄 알았는데 묵묵히 받아든 것이다.
“고, 고마워.”
대답하는 귀가 빨갛다. 그리고 나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어, 어라. 이건 새침데기용 반응이 아닌데...?
이 불길한 직감은 제릴이 선물을 풀고 권총을 확인 후, 5분이 넘는 침묵 끝에 다음과 같은 대사를 했을 때 극에 달했다.
“로제.”
“응?”
“최대한 멀리, 다른 지역으로 도망가자.”
고개를 든 제릴의 표정은 무섭게 굳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기겁했다.
의붓오빠와 지금까지 가족 이벤트만 착실히 본 것 같은데 왜 갑자기 서브남에게서 사랑의 도피 제안이 오는 흐름이 된 거지?
도대체 어디서 꽂힌 거야 제릴?! 왜 맘대로 연애로 공략완료가 됐냐고?
“어... 언제?”
“......오늘 밤에.”
심지어 오늘 밤이라니 이게 무슨 미친 소리세요. 하마터면 준 권총 도로 뺏을 뻔 했다.
========== 작품 후기 ==========
(1/2)
제가 지난편을 수정 전 버전으로 업로드하는 바람에 아침에 급하게 업로드를 다시했습니다.ㅠㅠ 문장 몇 개가 빠지고 들어간 수준이며 큰 줄기에 차이는 없지만, 혹시 궁금하신 분은 전편을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실수를 만회하고자 오늘은 연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