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인 줄 알았는데 괴담이다-50화 (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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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숙하게 선언했다.

“앞으로 마담은 강제노동에 동원되시겠습니다.”

일명 ‘함무라비 - 극한 자본주의 버전’ 보상청구다.

이 몸의 생명을 없애려 했으니 네 몸의 자유도 뺏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

“말 그대로 앞으로 만 60세가 되실 때까지 지정하는 직종에서 노동하셔야한다는 말입니다.”

탐정이 입 안의 샌드위치를 뿜을 것처럼 격하게 기침을 한다. 이렇게 합리적이고 냉정한 판결은 예상도 못했나보군.

나는 한층 더 진지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봉급의 절반을 압류하겠습니다. 앞으로 영원히! 지속적으로!”

“......로제?”

어허, 이건 절대 사리사욕이 아니다. 석유왕(예정)인데 남의 월급을 수탈하는 의미 없는 일에 욕심이 생길 리가 없지!

단지 좋은 일에 쓰려는 것뿐이다!

“그 돈은 이 일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데 사용될 거예요. 참고로 이의 있으셔도 거부권은 없습니다!”

“......”

“참고로 병가와 연차는 인정되지만 무단결근 시에는 봉급에서 압류되는 비율이 늘어날 겁니다.”

양어머니는 완전히 혼미한 표정이다. 긴 침묵이 흐른 후에야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마저도 가까스로 입을 연 기색이 역력하다. 어허, 그래도 못 바꿔드립니다. 돌아가세요!

“......최선을 다해보마.”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첫 번째 업무를 한 시간 뒤에 시작합시다. 일하려면 얼른 식사를 해두세요!”

나는 샌드위치 접시를 집어서 양어머니에게 들이댔고, 양어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음, 이렇게 보니 제릴하고 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굉장히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판결이다! 양어머니가 중간보스 흑막(선셋)에게 조종당했다가 막판에 동료들에게 정보를 넘겨준 ‘이 녀석도 사실 착한 녀석이었어’ 타입의 악당 클리셰였다는 것까지 고려해서 수위를 조절하느라 열심히 고민한 지난 한 시간이 아깝지 않구만.

좋아, 이 정도면 원작 작가가 봐도 사이다라고 생각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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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기어코 로제 오베르는 마담 자우어를 끌고 집안 곳곳을 종횡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첫 번째 업무로 난장판이 된 집안을 정리하고 수상한 물건을 가려내는 일을 지시하는 것 같았다.

‘상황이 아주 재밌는데.’

사실 마담 자우어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통쾌하면서도 자비로운 판결이지 않은가?

저 여자는 보호를 핑계로 로제 오베르를 살해하기 위해 5년 간 저택에 묶어놓은 대가를 본인이 로제 오베르에게 묶여 지내는 것으로 보상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정년을 둔 고용의 형태를 취하는 것으로 마담 자우어가 그간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점을 고려한 도덕적 자비로움도 보여줬다.

이걸 이렇게 해결해버리다니!

마이어 화이트는 기어코 슬쩍 휘파람을 불었다. 감탄과 추파 사이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행위였다.

탐정 행세를 하던 그 금발청년은 환호나 야유를 보내고 싶은 순간을 몹시 즐겼고, 지금 이 상황도 그런 ‘휘파람에 걸 맞는’ 순간임이 몹시 명백했다!

그리고 몹시도 싸늘한 불쾌감의 표출을 맞닥뜨렸다.

“입이 가벼운데. 쓸데없이.”

자칭 로제 오베르의 약혼자였다. 그 목소리가 촉각으로 느껴질 만큼 스산했다.

그러나 요요한 남보랏빛 눈은 마치 방화당한 정원처럼 섬뜩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강렬한 위기경보가 척수를 두드리는 느낌에 마이어는 침음을 흘렸다. 무슨 코흘리개 형사였던 시절에 스치듯 목격한 연쇄살인마도 아니고, 대체 저 인간은 뭐지?

‘아니, ...애초에 인간이 맞긴 한가?’

그는 저 남자가 벌였던 온갖 기상천외한 마법 같은 상황들을 떠올리며 찜찜해했으나, 결국 울고불고 로제 오베르에게 매달리던 모습까지 떠올리고는 대담하게 그 모든 위험신호를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때로는 용기가 승리하는 날도 있는 법이지!

“내 입은 알아서 무게를 조절합니다. 무거울 때는 금괴처럼 무겁지요.”

“언제나 그래야할 거야.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

로제 오베르가 사라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투까지 바뀌었다. 마담 자우어와 저택을 순방하려던 로제 오베르에게 저 남자가 ‘위험할 수도 있으니 자신이 꼭 동행하는 게 좋겠다.’는 어필을 얼마나 했던지, 해서를 데리고 가던 그 아가씨가 상당히 난감해했었다. 그 부드럽고 정중한 어투와 지금 것은 무슨 이중인격 수준의 차이가 느껴졌다.

일부러 찍어 눌러서 견제하려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다. 음, 그럼 나도 일부러 좀 긁어줘야겠군. 마이어는 더 느물거리는 투로 말을 이었다.

“어어... 그렇군요. 그쪽 입장에서는... 내 입이 무겁기만을 바라는 게 좋겠습니다.”

“무슨 뜻인지 말해.”

자신의 금발을 쓸어 넘기며, 마이어는 벙글거렸다.

“지금 그 모습, 일부러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

“주문에 걸렸다는 뭐 그런 말, 사실 너무 어설픈 변명이군요. 아가씨가 호쾌하게 그 괴물을 이미 쫒아냈다는데, 그 판에 굳이 댁한테 더 잘생겨 보이는 주문을 걸어줄 이유는 없잖습니까.”

그러니까, 저 남자가 그 동안 보여준 기묘한 마법적인 능력 중 하나로 저 모습으로 변했다는 매우 가능성 높은 추측이 가능했다.

어? 그렇다면 내가 지금 그런 괴물에게 싸움을 걸고 있다는 거로군. 그는 다시금 위기경보를 의식할 뻔 했지만, 이번에도 뻔뻔스럽게 무시하기로 했다. 쟤도 아가씨한테 점수 안 까먹으려고 아마 끝까지 참겠지 뭐!

그러나 예상 외로 상당히 소름끼치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더 이상 루카스 무어의 모습이 아닌 남자는 뭔가 가늠하듯이, 금발 호청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눈 끝으로 훑었던 것이다.

“......”

특별히 과장된 위협적인 동작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차라리 일감을 바라보는 도축업자 같은 눈빛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들까?

그래. 그런 느낌이다. 마이어는 등골을 타고 내려가는 본능적인 직감에 반사적으로 고민했다. 당장이라고 로제 아가씨에게 달려가 볼까?

하지만 다행히 그 태도는 몇 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휴, 이놈의 한계까지 시도해보려는 버릇, 얼른 고치지 않으면 제명에 못 죽을지도 모르겠군.’

마이어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뭐 됐습니다. 그쪽이 무슨 얼굴을 하던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

“중요한 건 취향은 변하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마이어는 당당하게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를테면 나 같은 시원시원한 미남이 좋아지는 날도 분명 오겠지요!”

순간 격정이 폭발할 것 같던 남자의 눈이 확 흔들렸다.

어? 아무래도 확정 난 관계가 아니었나보군. 마이어는 쾌재를 불렀다.

“......로제는 절대......”

“아 뭐 관계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닙니까? 좀 기다려보지요. 그쪽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관계가 되기에는 너무 비밀이 많은 부류라, 아가씨처럼 호방한 사람은 금방 답답해할 것 같은데요.”

“......”

저건 절대 손해 보면서 진실을 토로할 부류가 아니었다. 심지어 괴물이 습격하던 순간에도 아가씨에게 사과나 주절거리고 왜 이 꼴이 된 건지 정황은 한 마디도 설명 안 했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제법 껄끄러운 만한 비밀을 많이 감추고 있을 것이다.

마이어는 즐겁게 둘의 사이에 빈틈이 생길 그날을 상상했다. 어차피 형사도 때려치운 판에 아쉬울 게 없다! 굳이 헤어지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원래 가진 게 많은 사람은 애인도 많아도 괜찮지 않을까? 크, 억만장자의 두 번째 애인이라니, 드디어 나도 출세하겠군.

금발청년은 씩 웃었다.

“그럼 난 이만. 해서가 잘 경호하나 구경이나 가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상쾌하게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을 굳이 바라보지도 않은 채, 지금도 로제에게 ‘무어 경’이라고 불리고 있는 남자는 평정을 되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넘실거리던 행복과 안정감이 마치 그릇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순식간에 바닥으로 빠져나간다.

그 대신 그릇을 매운 것은 또 다시 공포였다.

왜 이 낯선 감정은, 가장 큰 것이 사라져도 그 자리를 또 다른 것이 채우는 것일까?

로제가 죽을까봐 무서웠다. 살아나자 그때는 자신을 싫어할까봐 무서웠다. 이제는 애정이 옮겨갈 것이 무섭다.

직전까지 인식하지도 못했던 불안이 어떻게 그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커질 수 있는 걸까.

“대체제가 너무 많아.”

로제에게는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그 애의 주변에, 세상에 너무 많았다.

그리고 자신이 사실 결함품이라는 걸 들키면 대체될 것 같았다. 나쁜 의도로 처음에 접근했다는 것을 알면, 약을 먹였다는 것을 알면...... 그 전에, 그가 어떤 짓을 하며 이 저택에까지 온 것을 알면.

남자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니 절대 들키지 않을 것이다.

절대.

========== 작품 후기 ==========

큰 문제 없이 꽉 닫힌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찡긋

여러분 추석연휴는 잘 보내고 계신가요. 남은 연휴도 편안히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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