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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무신님-12화 (12/454)

- 1권 12화

등을 떠밀어 주는 선선한 바람의 기운과 이제는 제법 선선해지며 풀린 가을 날씨가 아니었다면 백이연과 진창혁, 두 사람은 가까워진 목적지인 과거, ‘마포 지하철역 입구’를 보자마자 제자리에 쓰러졌을 수도 있었다.

돌려 말해, 그런 여러 가지 호사가 있었기에 두 사람은 쓰러지지 않았다.

육체는 다소 지친 느낌이었지만 훨씬 더 힘이 들어간 표정으로 설수 있게 된 것이다.

‘샤하르, 진짜 재능 있는데.’

수혁은 내심 샤하르의 수완에 감탄했다.

전투에 들어가기 전 방심은 분명 화를 부른다.

하지만 너무 큰 긴장도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다.

딱딱하게 굳은 몸은 상황에 따라 의식만큼 반응하지 않는다.

지금 두 사람의 육체는 딱 그 중간이었다.

상황으로 인한 긴장, 그리고 탈력감으로 인한 여유.

전투를 겪기에 가장 좋은 상태에 강제적으로 처해진 것이다.

샤하르가 이 모든 것을 계산했다고 생각하니 그녀가 가진 선생으로서의 재능에 박수를 쳐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바로 입장하겠다.”

준비가 된 세 사람의 모습을 살핀 샤하르가 이제는 단단한 철문으로 잠긴 마포역 입구 앞에 서 동공을 스캔했다.

띠-!

기계음이 울리고, 무거운 철문이 좌우로 열린다.

“들어가지.”

지하로 향하는 출입구는 그리 어둡지 않았다.

덕분에 일행들은 큰 어려움 없이 한때 지하철이 다니던 통로까지 들어설 수 있었다.

입구에는 각성자 두 명이 지키고 서 있었는데, 샤하르의 모습과 신분증을 확인하자마자 경례 자세를 취하고는 길을 비켜 주었다.

그런 선로의 중앙.

머지않은 곳에 제법 큰 크기의 연한 붉은빛 포털이 넘실거리듯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저게 1등급 포털……

연한 붉은빛은 가장 낮은 등급인 1등급 포털을 상징하는 색이다.

그 크기가 큰 것은 내부 세계가 넓다는 뜻.

샤하르의 설명대로였다.

“저 너머의 세계에는 이성을 가진 존재가 없다. 때문에 지구에서 무계無界라는 이름으로 명명했지.

굳이 이곳뿐만이 아니지. 이미 배웠겠지만 무계라는 이름을 가진 세계는 많다. 제대로 된 이름조차 지어 줄 이가 없는 버림받은 세계들이지.”

이론 교육 시간에 이미 들은 바 있던, 다소 쓴 내용을 담담하게 말한 샤하르가 앞으로 걸어 나가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혹시 마포역 무계에 어떤 종류의 괴물이 사는지 기억하고 있나?”

“나로입니다.”

수혁이 답했다.

몬스터 사전 첫 장에 있는 데다, 간단한 이름 덕에 쉽게 외웠던 기억이 있었다.

“특징은?”

“개 과의 몬스터로 몸길이는 약 3M 정도로 짧습니다. 그래도 다리가 제법 긴 덕에, 점프력이 좋고 턱 힘도 강합니다. 다행히 뛰는 속도는 느린 편이고요. 무리 생활을 하지만 많이 뭉치지는 않습니다.

적게는 셋, 많게는 다섯 정도.”

수혁이 설명을 대충 끝내 갈 때쯤, 네 사람은 자연스럽게 포털 가까이에 다가갔다.

날름, 하고 혀처럼 내밀어진 포털의 기운이 그들 모두를 동시에 집어삼킨다.

주위로 보이는 풍경이 뒤바뀐 것은 순식간이었다.

붉은빛 황무지.

작은 잡초 하나 보기 힘든 세계에 기온은 낮다.

순식간에 한겨울에 던져진 것 같은 느낌에 세 사람이 잠시 몸을 움츠렸다.

“정답이다. 이 세계에 대해서도 기억하나?”

시선이 이번에는 수혁을 지나쳐 백이연과 진창혁을 향했다.

천천히 걸어 포털에 입장하기까지 두 사람은 제법 안정된 듯했다.

“교관께서 설명해 주신 것들을 빼자면…… 마포역 무계의 기온은 영하 2도 정도라는 것. 먹을 수 있는 것은 전무, 마실 물도 없습니다.

또…… 포털에서만 구할 수 있는 부산물 채취, 그리고 훈련생 교육을 위하여 정부에서 고의적으로 유지 중인 포털 중 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진창혁이 답했다.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느껴지겠어.”

그를 향해 살짝 웃으며 말한 샤하르가 시선을 이번에는 먼 곳을 향해 두었다.

“손님을 반기려나 보군. 기다리다 보면 지루할 테니 우리도 가지.”

그녀의 말에 대한 의문은 머지않아 해결되었다.

네 사람이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치 바다의 지평선 같은 황무지 너머에서 뛰어오는 다섯 마리의 나로가 보인 탓이었다.

샤하르가 턱을 쓰다듬었다.

“흐.. ≪

O ?

다섯 마리면, 나로 무리 중 가장 큰 숫자다.

이들이 세 훈련생의 첫 전투에 적합할 것인가?

시선이 잠시 양수혁을 향했다.

‘자신감의 근원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 같은데 말이지.’

결정이 내려졌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8조,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세 사람이 한 몸이라도 된 듯 외쳤다.

그를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본 샤하르가 입맛을 다시며 말한다.

“겁먹지 마라. 객관적으로 보면 나로는 일반 지구인도 사냥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그 시점, 수혁은 문득 세 사람 중 누구도 전장에 오며 무기를 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각성자 협회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종류의 무기를 실전 훈련 전에 모두에게 보급하였다.

참고로 총기를 비롯한 현대식 무기는 그 보급물품에서 제외됐다.

어째서인지 3등급 이상의 포털너머의 이계종에게는 총기와 화약, 폭약, 심지어 화학 무기까지 통하지 않는 탓이다. 재미있는 점은 그런 주제에 재래식 무기들 그러니까 검, 혹은 창, 또는 화살 등의 병기에는 큰 타격을 받았다. 문제는 3등급 이상의 괴물에게 일반인이 그런 재래식 무기를 꽂아 넣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때문에 각성자의 훈련은 성장하여 그런 3등급 이상의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애초에 총기, 혹은 화약류가 통했다면 인류는 훨씬 더 수월하게 이계와의 싸움을 이끌 수 있었을 터였다.

결국 총에 의존하여 싸우는 것은 비각성자, 군인들뿐이다.

수혁의 경우는 각성자로서 활용 할 수 있는 재래식 무기조차 본인이 거부했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광귀난봉이 있긴 하지만…… 나 한텐 아무래도 몸을 직접 쓰는 쪽이 익숙하단 말이지.’

수혁은 십팔반병기를 다루기보다, 직접적으로 몸을 부딪치는 권각술을 애용하던 무인이었다.

내공과 무공 수준이 아직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지금인 만큼, 익숙한 쪽을 사용하는 것이 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진창혁과 백이연은?

나로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는 그 크기와 흉악스러운 인상이 세 사람의 눈에도 선명히 보였다.

그쯤, 상체를 짐승처럼 반쯤 앞으로 구부린 진창혁의 몸에서 기이한 기운이 움직였다.

깜짝 놀란 수혁이 진창혁을 바라보는 순간 그의 주먹 뼈 사이로 두꺼운 칼날이 각자 하나씩 튀어나왔다. 어째서 그가 무기를 보급받지 않았는지 손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V맨이세요?’

초능력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을 떠을린 수혁이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백이연의 경우는 양손을 기도하는 자세로 모으며 눈을 빛내고 있다.

‘마법, 혹은 치유 계열이겠네.’

훈련생들 사이에서는 각자의 능력을 밝히지 못한다.

이론 수업까지 받지만 결국 각성자란 실전에 나가 싸우는 존재다.

더욱 유용하고, 훌륭한 능력이 관심과 추앙을 받게 되어 있다. 서로의 능력을 알게 된다면 훈련생들끼리도 비교를 시작하며 괜한 경계심과 우월감 등을 가지게 될 것을 방비하기 위하여 샤하르가 내린 결단이었다.

덕분에 수혁 역시 진창혁과 백이 연의 능력을 이번 전투에서 처음 보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나쁘지 않은 조합이다.

교관들끼리 나름대로 훈련생들의 배합을 신경 썼다는 뜻이리라.

“크르르……

생각이 이어지는 사이, 나로의 울음소리마저 귓가에 닿게 되었다.

이젠 지근거리.

곧이다.

“기대하지.”

어째서인지 다소 들떠 보이는 샤하르의 음성은 마치 육상 시합의 신호탄과 같았다.

팟-!

수혁과 진창혁이 동시에 지면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빠른 것은 수혁 측이었다.

내력이 전신혈도를 내달리며 힘을 끌어 올린다. 뼈가 단단해진다.

근육이 질겨지고, 탄탄해지면서 위협적으로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육신이 가진 기본적인 잠재력은 순식간에 뛰어넘어 버린다.

이것이 바로 내공이 가진 힘이었다.

코앞.

빠르게 접근한 수혁을 보고 입을 벌리며 뛰어드는 나로의 모습이 보였다.

‘느려.’

그리고 직선적이다.

이성이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공격은 아무리 힘이 좋고 빨라도 수혁의 입장에서는 위협적이지 않았다.

가볍게 몸을 옆으로 트는 것만으로 사나운 이빨을 피할 수 있다.

동시에 내뻗어진 손바닥에는 패철권장의 묘리가 담긴다.

‘파공派攻

손바닥이 나로의 옆머리에 닿는 순간 패철권장의 묘리에 담긴 내력이 물갈래처럼 퍼져 나간다.

쩌저적-!

나로의 짧은 털이 가뭄 걸린 땅처럼 갈라지는 모습이 수혁의 눈에는 선명히 들어왔다.

직후, 펑 하는 폭음이 수혁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리 크지는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패철권장의 파공은 발경을 통해 겉이 아닌 속을 폭파시키는 무공이었으니 말이다.

손바닥과 부딪친 나로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허공으로 날아올라, 이내 죽은 사체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수혁의 허벅지를 노리는 두 번째 나로가 덤벼들었다.

‘퇴풍각, 풍몰風沒

이미 첫 번째 나로를 쓰러트리기 전부터, 그 움직임을 느끼고 있던 수혁의 몸이 재빠르게 반응했다.

쐐에엑-!

수직으로 높게 들어 올린 다리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직선으로 떨어져 내려 입을 벌린 나로의 정수리 부위를 강하게 내려찍는다.

쾅-!

이번에는 모두가 들을 수 있는 폭음이 울려 퍼졌다.

머리가 곤죽이 되어 지면에 처박힌 나로의 사체가 푸들푸들 떨리는 것 같더니 그대로 축 늘어진다.

삽시간에 벌어진 그 전투를 무언가에 홀린 듯 바라보고 있던 샤하르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저게 훈련생이라고? 헛소리!’

지금 당장 3등급 이상의 포털에 투입되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세련된 움직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박살내고, 죽이는 데에도 망설임이 없을 정도로 과격하기까지 하다.

샤하르가 장담하건대 인간보다 월등한 종족값을 가진 엘븐하임의 루키들 중에도 수혁과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애초에 훈련생 따위와 비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 끝은, 수혁에게 겁을 집어먹었는지 몸을 움츠리고 있는 세 번째 나로에게서 정점을 찍었다.

물 흐르듯 접근하여 가벼운 주먹이 빠르게 나로의 신체를 때리고는 수혁이 그 옆을 스쳐 지나간다.

단지 그뿐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가만히 서 있던 나로가 신음과 함께 몸을 떨더니 신체 곳곳에서 핏물을 쏟아 내며 쓰러져 버린다.

첫 나로를 죽일 때 보여 주었던 발경을 삽시간에 수십 번이나 펼친것이다.

빠르다. 단순한 움직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의 수발이 마치 제 손과 발을 쓰듯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이미 수혁이 가지고 있던 무공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임독양맥의 타통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그는 샤하르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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