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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무신님-30화 (30/454)

- 2권 5화

여형석은 연이은 탄식을 흘리며 애가 탄다는 표정으로 휴대폰을 검지로 빠르게 두드린다.

그 맞은편, 넓은 소파에 앉은 임사열이 안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정신 사나우니까 그 손가락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진정이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냐. 진정이 안 되는걸.”

혀끝으로 입술을 할는 여형석의 표정에는 조급함이 가득 묻어 있다.

오죽했으면 대한민국 최대 길드의 대표라는 직함에, 40줄이 넘은 그가 다리까지 떨며 불안함을 표시할까? 그 심정을 능히 짐작한 임사열이 혀를 찼다.

“쯧, 그렇게 급하면 직접 찾아가 보든지.”

“그럴까?”

여형석이 벌떡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깊게 한숨을 내쉰 임사열의 손에서 차가운 냉기가 홀러나와 그의 발목 주변을 얼려 버린다.

놀랍도록 빠르고, 세밀한 기운의 응용이다.

하지만 여형석은 놀라지 않았다.

자그마치 임사열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각성자 중 두번째로 뽑히는 여형석이 인정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실력자 중 하나, 이 정도쯤을 못 해 주면 오히려 섭섭하다.

다만 화가 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야, 장난해? 방금 전에는 직접 찾아가 보라며.”

“그런다고 바로 뛰어나가란 뜻은 아니지.”

임사열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형석의 이런 행동력이 좋아 그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저 조급함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이미 몇 번이고 연락을 보낸 상태야. 그럼에도 답신이 없다는 건 애초에 백두산에 올 생각이 없단 거지.”

임사열은 침착하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았다.

“그래서, 그냥 넋 놓고 다른 길드 가는 걸 보자고? 노네임드를 놓치자고? 미쳤어? 언제까지 백무학이 그 개새끼한테 휘둘리려고? 게다가 천혜랑 이무기 새끼들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개네도 나 못지 않게 성격 급해요.”

노네임드, 그리고 백무학, 이어서 이무기와 천혜까지, 신경 쓰이는 이름이 쏟아져 나온 순간 임사열의미간이 더욱 깊게 파였다.

“우선 노네임드는 양수혁이 분명해.”

“당연하지. 네가 그렇게 물고 빨고 했던 그 녀석이 아니면 누구겠어? 너 말고, 나 말고도 알 놈들은다 알걸.”

적어도 저번 기수 훈련생들을 담당했던 길드에 소속된 이들이라면 모두가 노네임드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소문이 나지 않은 것은 더 이상 또 다른 이에게 알려지기를 원치 않아서다. 먼저 침을 바르고, 계약서를 가지고 만나서,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양수혁이 더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백두산의 마음이 그런데 다른 길드라고 다를 리가 없다.

“사실 아니라도 상관없지. 양수혁이 보여 준 가능성은 결코 노네 임드에 못지않으니까.”

“질질 끌지 마. 나 성격 급한 거 알잖아.”

“좀 차분히 들어 봐. 너나, 부회장 녀석이나 성격 급한 건 고치라고 몇 번을 말하냐.”

순간 울컥, 하고 짜증 어린 표정으로 말하려던 여형석이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들어나 보자. 어쨌든 방법이 있다는 것 아니야?”

말했듯 임사열은 책사다.

기본적으로 행동 전 그의 말을 들어서 나쁜 경험은 없었다.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형석의 시선에는 믿음이 굳게 담겨 있었다.

“네가 조급해하고 있는 부분은 걱정할 것 없어. 양수혁은 훈련 기간 중에도 대인 관계를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었다. 길드의 문자나 전화를 무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이 상태로 100일, 아니 1년이 지나도 우리가 아니라, 그 누구도 양수혁과 계약할 일은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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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동은 바로 해야 하지만 직접적일 필요는 없어. 그런 수법은 하수들이나 쓰는 거지."

검지로 안경을 들어 올린 임사열의 눈이 빛났다.

“샤하르 칼 엘루리아트.”

생각지 못했던 이름의 등장에 여형석의 몸이 살짝 떨렸다.

“그녀가 왜?”

“양수혁의 훈련을 담당했던 교관이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적지 않은 교감을 나눴다고 생각되더군.”

임사열의 말에 여형석이 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를 설득할 자신은 없어. 애초에 인간도 아니잖아?”

“나 역시 샤하르를 설득하라는 것은 아니야. 단지 그녀가 담당했던 훈련생이 양수혁만은 아니라는 뜻이지.”

이제야 대화가 풀어져 나간다.

여형석의 눈이 반짝였다.

“오호, 다른 훈련생과도 제법 교감이 있었나 보지?”

“통화 내역이다. 깊이까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듯하더군."

임사열이 품에서부터 서류를 몇 장을 꺼내 소파 앞 탁자에 내려놓는다.

그 시원한 소리와 함께 여형석의 발목 주변을 감싸고 있던 얼음덩어리들이 날카로운 칼날에 베여 쏟아져 내렸다.

동시에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서류가 허공으로 떠올라 여형석의 눈앞에 바짝 세워졌다.

좌르르륵-!

종이 뭉치가 무언가에 떠밀리며 빠르게 페이지를 넘긴다.

그를 굴러가는 눈으로 확인한 여형석의 입에서 한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

“백이연.”

알고 있는 이름이다.

저번 기수 루키로서, 백두산 측에서도 오퍼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인물.

대다수 수혁이 일방적으로 수신을 받았지만 어쨌든 통화 기록이 남아 있다.

제대로 기록조차 남지 않은 채 부재중으로 남은 다른 전화번호와는 엄연히 달랐다.

“가족을 제외하고는 그녀가 유일해. 접선해 볼 만하지 않아?”

“접선해서는?”

여형석이 임사열을 향해 묻는다.

“우리 백두산 길드와 계약을 체결하게 해야지. 그녀라면 가능성도 충분하니까. 설령 불발로 끝나도 가치는 중분해.”

“이후로 노네임드와 대화의 길을 연다.”

“정답."

임사열이 미소를 보였다.

“콕큭.”

작은 웃음을 터트린 여형석 역시 느긋한 걸음으로 소파로 다가와 앉았다.

임사열을 보는 눈에는 즐거움이 가득한 채다.

“이 불법적이고도 악독한 새끼.”

“그래서, 마음에 안 들어?”

“그럴 리가. 곧장 시행해.”

사장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2.

그를 원하는 손길들이 점점 다가오고 있을 무렵, 수혁은 더욱더 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일념통암.’

패철권장의 절초에 의하여 육체의 중심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사마귀 형태의 거대한 괴수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바닥으로 쓰러진다.

평-!

[A급 스킬, 패철권장을 마스터하셨습니다.]

직후 기분 좋은 알람이 들려왔다.

‘극성이 아니고?’

아무렴 어떨까,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그 짧은 시간 동안 수혁의 경지는 또 하나의 단계를 넘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기의 수발이 한층 더 자유로워진 엄연한 절정의 무인이 된 것이다.

무공 수준이 절정에 이르러서는 일시적으로나마 기를 흐릿한 형태로 유형화시킬 수 있는 경지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마검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끌어낼 수 없던 부분이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무형의 기와 유형의 기는 엄연히 그 힘의 질이 달랐다. 흐릿하다고는 해도 형태를 갖췄다는 것은 힘이 몰려들었다는 뜻으로, 이를 잘만 활용한다면 호랑이의 앞 발톱을 맨손으로 깨부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기술 없이도 단순한 힘만으로 호랑이를 넘어설 수 있게 된다는 것, 이미 이 경지부터는 일종의 초인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수혁은 아직 목이 말랐다.

온 길보다, 나아가야 할 길이 한참이나 남은 탓이다.

그래도 방금 눈에 뜨이는 좋은 성과를 얻었다.

알람음이 알려 준 대로, 패철권 장을 극성으로 익혔다.

이 말인즉 다음 무공으로 나아가도 된다는 뜻이다.

마침 수혁이 생각해 놓은 무공도 있었다.

다만 꽤나 고급의 무공인 만큼, 완벽하게 다루려면 아직은 한 번 더 벽을 넘을 필요가 있었다.

‘슬슬 준비하면 3개월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무심한 눈으로 쓰러진 맨체티스의사체로 다가간 수혁은 빠르게 분리 작업을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 짝의 앞다리만을 빠르게 떼어 내어 등에 둘러 맸다.

직후 머리의 중심 부위를 단검으로 쪼개 열어 보니, 푸른빛 마석이 보였다.

“럭키, 오늘은 운이 좋네.”

맨체티스의 사체는 대다수가 쓸모없다.

하지만 날카로운 예기를 자랑하는 두 앞다리만은 수많은 장인들이 선호하는 재료로 쓰였다. 자그마치한 쌍에 2등급 마석에 버금가는 천만 원 정도에 거래되는 것이다. 한데 거기에 더해 마석까지 얻었다.

결국 수혁은 이번 포털을 클리어한 것만으로 5천만 원을 넘는 돈을 벌은 것이다.

“좋아, 좋아.”

콧노래를 부르며 마석 채취까지 끝낸 수혁의 시선이 이번에는 거대한 맨체티스의 덩치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새하얀 돌을 향했다.

놀랍게도 돌은 저 홀로 공중에 부유한 채 자잘한 진동을 일으키는 중이었는데, 그 모습이 어째서인지 애처롭게도 보였다.

“저 돌이 이 세계의 코스모 에너지인가.”

이 차원의 보스 몬스터인 맨체티스를 쓰러트렸음에도 세계가 붕괴되지 않았다.

그리고 대신하여 세계의 기운을 휘감고 있는 새하얀 돌이 모습을 나타냈다.

이 세계의 근원과 다름없는 그 돌은, 더 이상 모습을 감출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수혁을 향한 적의를 가득 드러내고 있었다. 지독한 원념으로까지 느껴지는 살의다.

즉, 이 세계는 수혁을 미워하고 있다.

만약 저 돌에 형태를 만들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었다면 끔찍한 악령의 모습으로 표현되었을 터였다.

안타깝다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수혁은 그 감정을 외면하지 않았다.

결국 수혁이 막지 않았다면, 이 포털의 몬스터들은 지구로 뛰쳐나와 사람들을 죽였을 것이다.

서로를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끼리의 만남은 어느 한쪽에게 비극이라는 결말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이 차원 간의 연결이 만들어 낸 무시무시한 일이다.

수혁은 그런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도 무심히 단검 한 자루를 던질 뿐이다.

“그럼, 잘 가라.”

직후 이 세계의 코스모 에너지, 새하얀 돌을 향해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넸다.

내력을 담은 날카로운 단검과 부딪친 새하얀 돌은, 애처롭게 떨던 모습 그대로 작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쩌저적-!

그것은 세상의 붕괴를 알리는 소리였다.

수혁은 곧장 몸을 날려 수풀 사이에 감추어 두었던 ATV(4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몬스터 사체, 혹은 마석 등 돈이 되는 짐을 가득 실은 ATV가 사나운 엔진음을 일으킨다.

진한 기름 타는 냄새가 수혁의 코끝에 가득 번진다.

직후 ATV가 무너지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질주를 시작했다.

우와아아앙-!

거친 엔진 소리와 함께 피부를 엘 것 같은 바람의 느낌이 전해졌다.

수혁은 꽤나 거리가 있는 포털출구를 향해 더욱더 있는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당겼다.

갑작스럽게 지면이 움푹 파이는 지형이 나타났지만 ATV는 개의치 않았다. 다소 충격이 전해졌지만 곧장 자세를 바로잡고는, 더욱 진한 굉음을 일으키며 속도를 더욱 높일 뿐이다.

깨지고, 일그러지고, 무너지는 포털 속 세상을 가로지른 ATV가 4KM 이상 떨어져 있던 출구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1분 남짓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수혁은 포털을 발견한 순간 ATV의 옆구리를 더듬었다. 손에 잡히는 딱딱한 플라스틱의 감촉이 이제는 제법 익숙하다. 황금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아이언 로봇의 가면이다. 그것을 얼굴에 빠르게 뒤집어쓴 순간, ATV가 나는 듯이 포털 바깥을 향해 뛰어나갔다.

콰광-! 끼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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