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권 6화
“어느 쪽 버릇이 고? 쳐질지, 봅시다.”
수혁은 그렇게 말하고 손을 까닥였다. 아무런 기수식도 취하지 않은 빈틈 가득한 무방비한 자세다.
그 모습에 나서전의 눈썹이 꿈 틀하더니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것은 평범한 일보(一步)가 아니다. 독특한 움직임을 가졌고, 내공이 사용되면 폭발적인 속도를 내는 보법이기도 했다.
펑!
폭발적으로 나서전이 앞으로 돌진해 온다. 그걸 보면서 수혁은 생각했다.
‘태을미리보.’
보법이 무엇인지 수혁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가 있던 환 대륙에도 무림이 있었다. 또한 과거 중국 대륙에 존재하였다는 문파 역시 다수 존재했다.
따라서 태을미리보를 모를 수가 없었다.
‘패러렐 월드의 가설이 맞긴 하는가 보군.’
서로 비슷한 형태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이론인 패러렐 월드. 다 차원적인 지금 세계에서, 패러렐월드의 이론도 확실히 자세히 알려지고 있다.
수혁도 무공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그에 대해서는 얻어들은 바가 있었다.
싁!
수혁이 딴생각을 하는 사이 나서전이 신기루처럼 다가와 주먹을 뻗어 냈다.
‘이건 장패장권구식이로군?’
장괘장권구식.
종남파의 무공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연원은 전진파다. 애초에 종남파 자체가 전진파에서 파생되어 나온 문파이니 비슷할 수밖에.
'그나저나. 천무문은 종남파의 진전을 이은 건가? 아니면. 종남파의 무공을 습득해서 전수 하는 걸까? 아, 그래. 무림맹처럼 연맹 형태일 수도 있겠군.’
그것이 얼굴에 다가올 때까지도 수혁은 무방비하게 있었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수혁의 모습에 나서전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미소 지었다.
‘기대 이하로군. 노네임드. 역시 한국에서 만든 가짜 인형이었던 건가?’
설마하니 일권, 초수初手에 반응조차 하지 못할 줄은 몰랐다.
그렇게 나서전이 생각한 순간, 시야가 빙글 돌았다.
‘뭣?’
그가 놀라는 사이, 턱이 얼얼해졌다. 팔에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다.
'격타당했다? 언제? 아니, 어떻게?’
나서전은 재빠르게 생각하고, 흔들리는 몸을 바로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어느샌가 목이 수혁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컥!”
나서전은 목이 졸리며 바동거렸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점혈!?’
상대의 진기가 그의 목을 통해 왈칵 쏟아져 들어온다. 그게 그의 몸에 힘이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고, 통제가 안 되게 하고 있다.
“자. 이제. 누가 누구의 버릇을 고쳐야 합니까?”
나서전은 자신의 목을 잡은 양수혁을 보며 절망과 공포를 보았다.
“쿨럭! 쿨럭!”
나서전은 목을 잡은 채로 격하게 기침을 토했다.
“실망이군요. 나서전 씨. 그 정도 실력으로 버릇을 운운하다니……
그런 나서전의 위로 수혁의 정말 실망했다는 목소리가 내리꽂혔다.
“아, 혹시 방심한 건 아닙니까?”
수혁의 말에 나서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가 벌떡 일어섰다.
“이번에는 방심하지 않을 겁니다. 양수혁 씨.”
“흠. 그렇습니까? 그럼. 다시 한번 해 보시죠.”
공포와 절망, 그 감정을 분노와 오만이 이겼다. 자신이 졌다는 사실을 방심했다는 이유로 자기합리 화하고, 분노로 싸우려고 든다.
나서전의 상태를 보며 수혁은 혀를 찼다.
강호에서 저런 성격으로는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안다. 철저하게 약자를 배척하는 강자존, 강호에서 약점은 도태를 의미했다.
“제 특기는 권이 아닌 검. 검을 써도 괜찮습니까?”
“좋죠. 주특기로 하세요.”
나서전이 손을 까닥하자, 멀리서 구경 중이던 중국인으로 보이는 자가 검을 던졌다.
창!
검을 받자마자 뽑는다. 나서전은 그렇게 검을 뽑은 후 기수식의 자세를 취하고 수혁을 노려본다.
수혁이 손을 까닥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검을 뽑아낸 나서전이 천천히 움직였다. 슬금슬금 움직이던 나서전의 검에 웅웅하고 소리가 울리더니 빛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어설프지만 검기인가? 검이 주특기라더니 그래도 초절정 초입은 되는군.’
각성자 능력으로 치자면 11등급 이상, 나서전은 분명 중국에서도 꽤나 대우받는 각성자일 터였다.
애초에 수혁의 명성을 생각한다면 어중이떠중이를 보냈을 리도 없는 게 당연했지만 말이다.
그런 상태에서의 침묵이 잠시 흐른 후, 수혁이 말했다.
“제가 가죠.”
그리고 수혁은 나서전과 다르게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넓은 공간에서의 고요한 움직임이 한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순간, 수혁의 손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나서전은 번개처럼 몸을 튕겼다.
“합!”
실제로 그 속도는 아까보다도 빨랐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수혁은 느릿한 그 몸짓으로 그 검을 아주 쉽게 피해냈다.
그리고 검을 휘두르느라 비어버린 어깨를 툭 하고 쳤다.
“태을분광검. 좋은 검법입니다.
빠름을 중시하고, 도문(道門)의 무공 중에서도 아주 실전적이죠.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검법이라고 해도 그 무공의 사용자에게 실력이 없다면 쓸데가 없죠.”
“큭! 이놈!”
나서전이 분노하며 검법을 연신 펼쳐 냈다.
그러나, 수혁은 마치 어떻게 공격할지 안다는 듯이 피하고, 막아냈다.
“검기. 무서운 파괴력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맞추지 못하면 의미가 없죠. 게다가. 검기가 손잡이까지 이어진 것도 아니니, 손을 치면 막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렇게요.
자 쉽죠?”
말을 하면서도 피하고 막는다.
결국 나서전은 수혁에게 손을 격타 당해 검로가 뒤틀어져서는 넘어지고 말았다.
실로 철저하게 농락당하는 모습이었고, 나서전은 넋이 나간 채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서전 씨. 이런 수준이면, 제가 당신에게 위대한 한국인이 될 기회를 드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사실 나서전은 내공도 상당하고 무공 실력도 나쁘지 않았다.
말했듯 강호에서도 능히 초절정이라고 불려도 부족함이 없는 실력인 것이다.
다만 상대가 너무나 나빴다.
수혁은 환 대륙에서 이미 지구의 중원 강호에 있는 무공 대다수를 접해 보았다.
뛰어난 무재이자, 천재로서 절대자의 경지에까지 이른 몸이기도 했다.
그런 수혁에게 있어 익숙한 무공이란 너무나 상대하기 쉬울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이는 일반인은 물론, 나서전처럼 다소 뛰어난 수재들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무공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심지어 한번 펼치면 자신의 것으로 소화까지 하며 약점을 간파해낼 수 있다는 사실, 그 엄청난 격의 차이가 둘의 승부를 압도적으로 갈라놓았다.
“크으으……
치욕에 몸을 떠는 나서전의 눈에는 의문과 경악이 가득 담긴 채였다.
“어째서……! 노네임드 당신은 분명…… 아직 강기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초절정인데…… 어째서……!”
발악과도 같은 외침에 수혁이 피식 웃음을 보였다.
“아직도 차이를 모르는 게, 당신이 저보다 약한 이유입니다.”
심지어 두 사람의 차이는 굳이 재능의 영역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무공의 경지 자체도 다르다.
기본적으로 같은 초절정이라고 하여 싸울 시 동수! 력뚜를 이룬다면 무공이란 것이 얼마나 심심하고 재미없었겠는가?
따지자면 나서전은 초절정의 하급, 수혁은 최상급이다. 사실 육체적 능력이 초절정을 월등히 오버스팩한 부분까지 생각하자면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또한 효용성도 훨씬 떨어졌을 터였다. 나서전도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안다. 아마 충분히 교육도 받았을 터였다. 하나 치욕적인 상황이 건네준 감정이 그 모든 당연한 사실을 집어 삼켜버렸다.
“이건…… 말이 안 됩니다. 말이 안 돼요. 무공의 근원은 우리 중화! 분명 중국의 무공이 천하제일 이거늘!”
나서전이 지면을 박차며 다시금 수혁에게로 뛰어들었다.
순간 수혁의 표정이 크게 뒤바뀌었다.
나서전의 눈에서, 검에서 살기殺氣를 읽은 탓이다.
그 때문에 다음 행동에 나서는 수혁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한 걸음, 태극팔선보를 이용해 공격을 피한 후 가볍게 때리는 손목에 무거운 내력을 싣는다.
뚜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나서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악-!”
고통을 호소하는 나서전이 검을 놓쳤다.
수혁의 무릎이 바람을 찢는 소리와 함께 나서전의 턱 옆을 강하게 때렸다.
쾅-!
거대한 체육관 내부가 크게 울릴 정도의 큰 충격이 일었다.
동공에 초점이 사라진 나서전의 육체가 실 풀린 연처럼 비틀거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수혁은 그 모습을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고는 뒤로 물러났다.
주변을 포위한 중국 무인들에게서 뿜어져 나온 살기가 거대한 경기장 내부에 가득히 들이차고 있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난 날 죽이려고 드는 사람한테는 자비가 없어.
죽이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죽을 각오로 덤벼.”
왼손을 뒷짐 쥔 수혁이 오른손을 들어 주변으로 까딱 꺼렸다.
을 자신이 있다면 모두 들어오라는 것이다.
그 자만심을 넘은 오만함이 느껴지는 행동에 들끓는 분노가 더욱 격심해질 무렵이었다.
“크으으……
의식을 잃었던 나서전이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내젓는다.
‘호오……
수혁은 내심 짧은 감탄을 토했다.
죽이진 않더라도,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게끔 찼는데 생각보다 빨리 정신을 차렸다.
아마 타격 당하는 순간 내력을 통해 최대한 뇌의 충격을 줄인 듯했다.
“생각보다 내공의 수발 능력은 제법인가 보네.”
수혁이 칭찬을 하는 사이, 몇 번이나 더 머리를 휘저은 나서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후우…… 후우……
이어서 몇 번이나 거친 숨을 거둔 나서전이 손을 들어 올렸다.
“停止 뻥!”
거친 목소리로 뱉어진 멈추라는 외침에 주변을 가득 메우던 살기가 단숨에 사그라졌다.
수혁은 천천히 쥐고 있던 뒷짐을 풀었다.
언제든지 출수할 수 있게 준비해두었던 내력도 살며시 거둬들였다.
나서전의 눈빛에서 투기閱氣가 사라졌다.
“인정합니다. 노네임드, 당신의 명성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확인했어요. 그대의 무공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다시금 공수를 취하는 나서전이 눈을 빛낸다.
“하나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우리 천무문과 척을 지고 싶지 않다면 앞으로의 향방에 대해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겁니다. 이만 가시지요.”
레벨업하는 무신님